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 2nd Edition
김영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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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함은 신세대에서 나타난다. 기존에 저항하고,반항하는 이것은 때로는 충격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신선함이기도 하다.그러기에 발칙함은 진행중이며 미래에는 그 강도 또한 세차게 강타할 것이다.2004년 한 설문 조사에서,기성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작품으로 <샘>에 이어 <아비뇽의 처녀들> <마를린먼로>가 각각 1,2,3위를 차지했다. 뒤샹,피카소,앤디 워홀의 작품들이다. 미술사를 처음부터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모더니즘(19세기 말), 포스트모더니즘(20세기 후반)을 거처 동시대 미술에서 우리는 이 발칙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예술이 선보인 것이다.미니멀리즘, 개념미술,전위예술 등의 형태 등등으로. 현대 미술이 어렵다는 이유는 더 이상 구상화가 아니고 화가의 개념을 읽는 추상화로 발돋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이 개념이란 것은 구현되는 방식에서 논란이 일어났었고, 지금도 그렇다.뒤샹의 변기, <샘 Fountain> 에서만 보더라도 예술가의 독창성 부재,화가의 손으로 탄생하지 않은 작품이 유명화가의 이름만으로 떡하니 미술관에 자리할 수 있다는 점 쉬이 수용되지 못했고,지금도 이것은 논란의 핵심이다. 물감을 입에 물고 미친듯이 캠퍼스에 뿌려댄 폴록의 작품이 미친가격으로 매매되고 있는 것도 일반인의 시선으론 의아해지는 부분이다. 게다가, 마를린 먼로의 사진을 복사하듯이 찍어낸 워홀의 작품은 어떤가.하나같이 화가의 예술적 독창성이라기엔 어딘가 미덥지 못하다.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현대의 몰개성이 현대 미술 작품속에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고,화가는 이를 씹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역시 몰지각한 미술계는 현대미술이라는 고명하에 현대 미술을 끼워맞추듯이 이해시키려고만 하는 걸까.발칙함은 시선을 잡는다.하지만, 그 인격의 경미함으로 영원성을 장담할 수 없다. 예술은 영원성이 깃들어있어야만 한다.후세의 미술계는 지금의 동시대 예술(contemporary art)을 어떤 시선으로 볼 지 궁금하다.찰나의 발상이 예술이 되는 시대이다. 그리고 사기가 예술이 되는 시대이다.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닮은 꼴들도 예술로 전시해도 될까.또 다른 마를린 먼로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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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국을 보았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 1
이븐 알렉산더 지음, 고미라 옮김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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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지 못한 특이한 실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십거리다. 그의 간판이 화려하면 할수록, 화제가 되어 책으로 영화로 퍼진다. 사망이란 것은, 심장이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가 죽는 것으로 재정의 된 지 오래(1968년)되었다. 이 경이로운 신비의 세계,뇌에서 과연 유체이탈이 일어난 것처럼 '의식'이 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과학적으로 부정되고 증명할 수 없기에 의문이다. 뇌와 의식을 연구하는 저자인 신경외과 의사가 밝힌 대답은 '그렇다'이다. 뇌와 별개로 우리의 의식이 존재할 수 있다고 그는 적고 있다./그는 박테리아성 뇌척수염으로 7일간 뇌사상태였다. 입원 당시 신피질 기능이 마비된 상태였다. 따라서, 약물로 인한 환각 작용을 담당하는 신피질 기능 불능으로 그가 임사 경험동안 겪은 실제? 기억은 환각이 아니고,더욱 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여기서, 그는 임사체험 이전, 이후 달라진 '의식'에 대한 변화된 개념을 갖기에 이른다. 비과학적으로 인지될 그의 체험으로,의식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유일한 최고의 실체(p.214)임을 지각하게 된다. 일반적으로도, 죽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솔깃하다.흥미롭다. 하지만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같은 경험을 한 일부인만이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동조하는 실정이다. 천국을 보았다고 믿는 저자는 실로 행복한 사람이지 않은가.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주는 방대하며,우리가 깨닫지 못할만큼,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사후 세계가 어떤 광경일지도 궁금하다. 사람마다 다른 세계를 본다는데, 사랑으로 충만한 세계를 나도 보고 싶다.그렇다고 유신론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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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 Ubuntu -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생각의 전염력
데이비드 R. 해밀턴 지음, 이정국 옮김 / 애플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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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얼굴 표정을 보면, 어느샌가 우리도 그 표정에 동화되어 버린다. 웃는 사람을 보면 따라 웃고, 우는 사람을 보면 슬프거나 운다(아기). 인간은 서로의 감정을 알게모르게 모방하고 있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그리고, 젊을수록 더 잘 동화된다. 이는 우리에게 거울 뉴런이 있어 마치 거울처럼 상대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누가 화를 내면 주위의 분위가가 다운되는 것도, 누가 활짝 웃어보이면 순식간 기분이 업되는 것도 이 감정의 전염이 얼마나 파급적인 효과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뇌는 반응한다. 그럼 이것은 감정만 좌우하는 것일까. 또 있다. 우리 학창시절에 수동학습 참 많이 경험했다. 학습효과 저하의 주요원인으로 주목된 이것이 효과는 있었다.또한,보는 것은 뇌만이 아니라,근육도 자극한다.타인이 운동하는 것만 보아도 실제로 자신이 운동한 것 같은 효과가 난다고 밝혀졌다. 우리는 감정을 지닌 생물이다. 오늘 내가 행복하고 싶다면? 첫째,억지로라도 거울을 보고 내게 웃어보인다. 웃기 때문에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 둘째, 주변인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생각보다 큰 전염성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사회적 연결망 내에서 상호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나에서 이웃에게 그리고 그 이웃에게 전혀 상관없는 초면자에게도 단지 웃어보임으로써 행복을 전파할 수 있다. 그리고 친구를 많이 사귄다. 이 책으로, 친구는 불행의 해독제'라는 근사한 슬로건을 건졌다.연인보다도 더 친구의 감정은 나를 행복하게도 우울하게도 만드는데 큰 몫을 담당한다.실제로 장수하는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친절도 폭력도 모두 전염된다. 나 하나의 생각과 감정,행동이 다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데 오늘부터 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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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위대한 리더십
파스칼 앨런 나자렛 지음, 진영종 옮김 / 홍익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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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비폭력 저항운동하면, 떠오르는 지도자에는 인도에는 간디가, 미국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대표된다. 전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지도자들이 많지만, 이에는 이로, 피에는 피로 맞서지 않고 평화로운 수단으로 목적을 정당화시킨 인물들은 드물다. 간디앞에 따르는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다. 무엇이 그에게 이토록 고귀한 칭호를 선사했을까.그가 위대한 이유는?

 

마하트마 간디는 소심한 젊은 변호사였다. 그러던 그가 인도의 신분 차별에 저항하고,세계의 유색 인종차별에 맞서고,인도가 영국부로부터 독립(1947년)하는데 일조한 대지도자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부터였다.남아프리카에서의 피터마리츠버그 사건이다.당시 24세 변호사였던 그가 백인칸에 좌석하고 화물칸으로 이동하길 거부했기에 쫓겨난 이 사건은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악에 대한 각성임과 동시에 가시밭길같은 인생 행로를 택한 일대의 사건이 되었다.

 

간디(1869년 10/ 2 ~ 1948년 1/ 30)의 리더십이 위대한 이유는, 시대가 폭력을 일삼던 때(1,2차 세계 대전)에 ,그의 투쟁은 비폭력으로 일관하였다는 점이다.만인에게 영감을 준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이 소유한 것을 무소유화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다.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신분을 박차고,스스로 가진 것,걸친 것 무엇하나 충분하지 않은 신분같이 검소하게, 또 극빈자(불가촉천민이라는 인도 최하위계츧) 들이 위안삼던 물레질까지 서슴치 않았다. 갈수록 물질적인 삶에 익숙해져가고 탐욕적으로 변해가는 것이 사람이 지닌 악한 본성 가운데 하나다. 간디는 입으로 떠벌리는 겁쟁이,약자가 아니었고, 스스로 겪은 부당한 경험에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윤리적으로 모범을 보인 예다. 인도델리 거리에는 그의 업적으로 유명한 소금행진(Salt March)을 묘사한 조각상이 있다고 한다. 깊은 영혼의 나라, 지금은 중국과 견주는 인구파워와 기술파워를 지닌 이 인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위대한 선구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마하트마 간디다.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타인을 전염시켰다. 그리고 세상은 싸움보다는 악수를 나누며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오직 비폭력을 통해서만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증오는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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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섬 나오시마 - 아트 프로젝트 예술의 재탄생
후쿠타케 소이치로.안도 다다오 외 지음, 박누리 옮김, 정준모 감수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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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보다.

 

떨어져있다. 이어져 있다.떨어져 있지만,크게보면 연결되어 있는 섬들은 사람처럼 떼어놓고 보면 작지만 활용도에 따라 그 역활은 무궁무진하다.나오시마란 섬은, 죽은 섬이었던 옛 모습에서 자체로 온전한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부활에 부활은 거듭한 것은,시각예술인 건축으로부터다. 시각은 여로모로 '보이는 것'에 대해 환상을 입히고 있다.본다는 것과 보이는 것은 같지 않은데, 그것은 보는 이의 감정 역시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분출을 연출하는 까닭이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의 영상으로 보는 것이 겹쳐지고 때론 분리되고 그런 순환이 반복하면서 중첩과 분리의 이탈성과 재창조를 거듭하기 때문에.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섬 본연의 미를 살린다는 것은 섬 주위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땅속에 하늘이 투영되고, 어둠속에 빛이 스며들게해 죽었던 섬이 예술과 함께 희망으로 태어난 이 나오시마를 언젠가 몇 번이고 거닐어 보고 싶다. 첫번 째 본다'는 것이 다음 번에 볼' 것에 대해 어떤 시상과 심상을 기억하고 반영하게 될 지 꿈에 부풀게 된다. 섬마다 특유의 미를 간직하는데, 이는 사람마다의 내재하는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것과 다르지 않음에 보이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때가 올 때까지 또 거닐어 보고 싶다.바다를 둘러싸고 하늘을 닮은 땅을 가진 이 섬을. 시각 예술보다 이를 낳은 사유의 예술이 내 맘과 닿아 있어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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