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건축 - 건축으로 사람과 삶을 보다
최동규 지음 / 넥서스BOOKS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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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건축은 항상 흥미롭다.

집 안의 가구 배치를 바꾸거나, 벽지와 바닥만 교체해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내는데,

없었던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 내거나, 공간을 자유자재로 블럭처럼 부풀리는/활용하는

이 모든 작업이 종이 위의 도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유형의 존재가 만들어지기 전에, 

건축가의 머리 속에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미 이루어진 것.

하지만 건축이 의미를 갖는 것은 건물이나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활동하는 사람들의 삶과 에너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에

과연 건축에는 -그리고 세상 어떤 것들에도 그렇지 않은 것이 있겠느냐마는- 

철학이 있다고 느낀다.


<사유의 건축>의 저자는 최동규님이다.

그 시대에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공부했고, 

무려 세계적 거장이며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는 

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에게 사사하였다.


서인건축의 대표로, 40년이 넘는 동안 사람과 자연에 초점을 맞춘 공간을 주제로 

이름을 들으면 알만 한 교회들을 비롯하여 총 150개 이상의 교회를 설계했다.

그래서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 <사유의 건축>에

거의 4장이 되는 분량은 교회 건축을 소개하는데 할애되어 있다.


최동규 건축가의 교회는, 일단 크다.

주변을 압도하는 느낌이라서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나 같은 종교인들에게는 

뿌듯한 랜드마크이자 신앙의 공간일 수 있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건축에 대한 '생각'과 '철학'을 알기 전까지는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매끈하게 마감된 표면과 산뜻하고 감각적이며 역동적이기까지 한 

 전체적인 건물의 형태는 럭셔리 호텔이나 고대의 성벽같은 기분이 들었다.)


건축가 자신이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며 겪은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 

어둠을 아예 없애버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빛을 붙들고 기도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어두움을 힘 있게 가를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마음에 컴컴한 어둠이 들어찬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제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고백같은 이야기를 한다.



물론, 건축가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공간/건축물이 

꼭 그의 철학에 따라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 스스로도 메가 처치(mega church)들의 출연과 그것에서 비롯된 교세의 확장,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비리와 범죄로 인한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실망이

대형 건물의 높은 첨탑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탐욕적으로 땅을 차지하는 이미지와 만나, 

교회 건축물을 건축물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것을 

아쉬워 한다.


종교와는 상관없이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가우디의 성당과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예로 들면서.


결국, 공간에 대한 이미지와 철학을 완성하는 것은 건축가가 아니라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들, 그 삶의 태도와 모습이다.


교회, 라는 건물과는 완전히 다른 도심 속의 호텔에서 

그것이 구현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불규칙하고 작은 대지 위에 건축된 명동의 호텔은, 

건축주의 안목과 요구에 건축가가 감응하며

최소한의 장식으로 호텔의 정체성을 알리자는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좁은 객실을 타계하기 위한 '돌출된 창문'이라는 아이디어는 그곳에서 나왔다.

한 걸음 정도의 공간을 사용자에게 제공하며,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경험을 주었다.


건축주, 건축가, 사용자의 철학과 기술과 감정과 경험이 

공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경우이다.



미술관에가서 도슨트나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면, 

내가 보던 작품의 다른 층이 보인다.

그저 '건물'의 물체성만 보았다가 

건축가가 그 건물을 어떻게 지었는지 설명하는 책을 읽으니

건축가의 '부모'같은 마음이 느껴진다.

(원래, 자식은 부모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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