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지음 / 푸른숲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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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았을 때, 괜히 반가웠다.

금지된 결투를 벌인 대가로 42일동안 가택연금형을 받았던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쓴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재밌게 읽었던 터이다.


'금지'를 어기고 '결투'까지 벌인 피가 끓고 가만 있지 못하는 그가,

42일동안 집 안에서 머물면서 자기 방에 있는 물건, 자신의 공간들을

다시, 새롭게 보며 알게 되고 깨닫게 되고 느끼게 된 것들을 적은 책이어서

그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문득 내 방에 있는 물건들을 

평소와는 다른 기분으로 한번 스윽- 훑어보기도 했더랬다.


작가 안바다님은 그와 조금은 비슷한 이유로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을 썼다.

시작은 삐끗-거려 흥이 깨어진 여행이다.

즐겁고 설렌 마음으로 향한 공항길. 

저녁 6시에 이륙해야하는 비행기는 무려 날개에 이상이 있다는 램프의 

-알고보니 오작동!!!- 불빛으로 지상에 묶여 있다.

그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로 떠나야 하는 승객들도 하릴없이 묶여 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안전을 위한 매뉴얼을 당연히 지키는 것 뿐이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간단한 일이던가.

도착해서의 일정, 숙소, 그리고 언제가 되어야 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막막함.

이 모든 것이 짜증으로 변하기에 충분한 6시간이 지나서야

비행기는 출발했고, 몇몇 승객들은 탑승거부를 선언하고 집으로 갔다.


저자는 그 승객들을 보며 자신의 여행을 돌아보았고,

집으로 '가고'싶다는 욕구, 집에 있는 물건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기분을 떠올리며 사물에 대한 태도를 세상에 대한 태도로

확장시키는 책의 출발점이자 목적지를 잡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젠장;- 일어날 수 있는 짜증나는 상황에서

이렇게 결이 다른 생각을 하고 마침내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는 작가 안바다는

-역시나- 문학을 가르치고 밤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독일 철학, 카프카에 관심이 많고

모국어 문장으로 표현하는 감각과 감정과 사유를 연구했고

미술, 음악, 사진, 영화 등 여러 예술 장르에 대한 즐거움과 가치로움을 아는

게다가 문장이 주는 '맛'을 알고 시도하는 작가의 매력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집을 출발하고 나설 때 그저 잠시 머물거나 통과할 뿐인 현관이나

귀찮을 때면 그저 물건을 턱턱 얹어 놓는 곳인 '의자'와도 같은 사물과 공간이

섬세한 감정과 일상의 포착으로 길어 올려지고

어떤 부분은 닮고, 또 어떤 부분은 생경할 경험과 기억으로 다듬어져 소개되면

갑갑하게 갇혀 있다고 생각했던 방과 집이 아주 잠깐,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곧, 좀 치워야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이.....ㅎ)



집이나 가구 뿐 아니라, 갓 구운 빵에까지 머무는 눈길과 감성은

작가가 왜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는지 능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글만 읽었는데도 (솔직하게 말해서 사진은.. 음... 좀..... 친밀감이 느껴진다.)

사진 속의 빵이 반죽이었다가 오븐 속에서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숨고르는 시간을 거쳐 손으로 하나하나 쓱-쓱 썰려 바구니에 담겨졌는지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기분이 들고 냄새가 떠오른다.


잠시 멈춤의 순간이 얼마나 아름답게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돈을 주거나 남을 시켜 쉽게 누릴 수 있는 간접성의 것들에 

애써 자신의 시간과 수고를 들이고 난 뒤 느끼는 유일함과 경험의 뿌듯함.

글과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순간의 감정을 붙들어 기억으로 남기고픈 마음이

'여행'이란 언제나 떠나고 어디에나 도착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라는

<파랑새> 책과 같이 -사골처럼- 두고두고 반복되는 '익숙함의 재발견'이

페이지 터너로 기능한다. ^^


요즘 유행하는 방송에서 '랜선 집들이'를 하듯,

집을 여행하느라 보여주는 공간의 사진들을 통해

작가의 일상과 취향, 감각을 살펴보는 재미도, 물론, 있다. ^^

 


작가는 작가구나. 

싶었던 문장이었다.


한번도 냉장고에 대해, 그리고 냉장고 속에 있는 사물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적이 없다.

모든 것들에게 감정과 생각을 부여하는 사람이 보는 세상은

확실히 더 포근하고 말랑하고 그래서 여릴 것 같다.


집콕.

어느새 조금씩 적응한 것 같은 팬데믹의 시대.

그리고 가을 바람의 서늘함이 겨울의 도래를 예고하는 요즈음.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며 여행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곳으로 여행을 먼저 다녀온 감성 넘치는 여행자의 이야기도 읽기 좋은 시간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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