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도시 - 후각 청각 촉각 미각, 사감의 도시
최민아 지음 / 효형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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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많이 감각을 받아들이는 곳 시각.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눈 감고, 도시>다.

시각을 제외한 후각, 청각, 촉각, 미각의 사감으로 도시를 느껴보자는 취지이다.


도시에 관한 '책'인데 시각을 잠시 접어보자는 제안이 재미있었다.

이렇게 신박한 책을 낸 저자는 최민아씨.

파리 8대학 건축학 박사, 프랑스 정부공인 건축사의 자격을 가지고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의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란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시골의 자연과 순박함을 잠시 즐길 수는 있어도

도시의 스피드, 편리함, 그리고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을 포기할 순 없지만

또 사람들이 많은 복작복작한 곳에 가는 것은 굳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도시를 마치 도슨트의 안내를 받듯, 카페나 방에 앉아서도

재미진 곳을 탐험하기에 딱 좋은 책이 <눈 감고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오디오북이 있다면 그것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도시의 냄새부터 시작한 책은 파리를 다룬다.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한 작가의 이력을 드러내듯, 

책 곳곳에 유럽 건축과 문화에 대한 소소한 지식과 풍요로운 이야기가 숨어있다.


생판 몰랐던 이야기를 다룬다면 흥미를 잃겠지만

태양왕 루이 14세의 지독한 악취 때문에 향수가 발명되고

아름다운 면모에 어울리지 않는 유명한 파리의 악취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하수도를 규모와 체계에 있어 보다 철저하게 만들게 되었고,

그것이 현대 도시 관리 개념을  지하공간에 적용한 것이라는 것은 

전문가의 귀뜸이 없었으면 영영 몰랐을 터다.


하수도가 정원으로, 커피로, 와플로, 인쇄골목으로, 가구골목으로

생각하면 점점 기분이 좋아지도록 냄새에서 향기로 글을 옮겨가는 솜씨도 좋다. 


세계의 유명한 도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우리나라를 연결짓는 유려함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좀 더 새롭게 보게 한다.

익숙했던 공간의 냄새, 소리, 거칠거칠 혹은 매끄러운 표면이나 맛집 같은

시각에만 집중해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에 신경을 쓰게 한다.


이를테면, 사진으로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연등을 보았을 때

바람에 사각거리는 종이의 소리를 상상해본다거나, 

축원을 비는 사람이 연등을 달기 위해 모래바닥을 걸을 때 사각거리는 소리로

빙그레- 웃음이 떠오르는 경험같은 것을 할 수 있겠다.


그저 지나치며 봤던 도시의 모든 물건들에는 각각의 쓰임과 사연이 있고

그 자체로 이야기를 걸고 있음을 알게 되면

그곳에 왜 그런 의자, 쉼터, 가로등, 공원이 존재하고 있는지 납득이 가며

도시의 이쯤엔 무엇을 빼고 더하면 좋을 지 생각하게 된다.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간단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안겨준다.

천천히 길을 걸어가며 그 도시를 사랑하고 잘 알고 있는 현지인의 재미난 설명을 듣고

모퉁이를 돌기 전에 후각과 청각을 이용하여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보고

발끝으로만 겨우 느꼈던 도시의 표면들에 손을 대어볼 생각도 품게 된다.


너무 바빠서 흘러가듯 지나쳤던 도시의 풍경들에 대한 자각.

혹은 신호등이나 버스 정류장, 안내판같은 목적과 목표가 뚜렷한 것들만 

효율적으로 봤던 익숙했던 습관들을 이제 좀 느긋하고 여유롭게 바꿔볼까? 하는 전환.

책에서 소개된 각 지역의 맛집과 풍광들을 주말마다 방문해볼까? 하는 호기심까지도!

읽는 동안 가만히 멈춰있던 독자들의 마음을 달각달각 기분좋게 흔들어 주는

오감만족 책 <눈 감고, 도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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