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판 사나이 이삭줍기 환상문학 1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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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친애하는 친구 샤미소.
자네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려하네. 장화는 닿고 닿아 더이상 쓸 수 없으며 내 충실한 벗인 푸들도 먼저 떠나버렸고 여전히 그림자는 내 발 밑에 없지만, 내 마지막은 나의 것으므로
샤미소.
나는 안녕하게 영면 할 것이네.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을 어리석게 잃은 자가 세상에 나 하나뿐이겠는가.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자신에게 있는 소중한 것을 헐값에 팔아 넘기고 있을걸세. 혹자는 후회할 것이며 혹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 수도 있을 것이야.

그리고 나처럼,
무저갱에서 허우적거리다 겨우 나와 어떻게든 살아갈 사람들도 있겠지.

내 마지막은 그 모두를 위한 우스갯소리가 될 걸세. 하지만 잊지말게. 세상 모든 우스갯소리엔 아주 약간의 조언이 담겨있다는 것을.

나는 그림자를 팔았네.
아주 미약한 빛에도 어룽거리며 나타나는 그림자가 없으니 나는 존재하는 자인가, 아닌가?

부디 새겨듣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아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여야 한다네.

그럼 내내 평안하기를.
아, 그리고 그림자가 없어도 천국에 들 수있길 기도해주겠나?


무한정 퍼부어지는 재화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있을까. 그러나 눈먼 재화財貨는 재화災禍가 되기 쉬우니 흔들릴지언정 휘둘리지 않기를.
당부를 거듭하는 바,

눈 먼 유혹앞에 눈 감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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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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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
이 나라
이 도시
이 부모
이 형제와
이 모습으로
태어나길 선택한 사람은 단언컨대 존재치 않을 것이다. 아니, 실은 태어난 것조차 내 의지가 아니었다. 모체의 자궁을 빌어 태어나니 여기였고 그저 하루하루 쌓다 보니 나는 지금 여기 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며
원해서 그 곳에 존재한 것도 아닌데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며
배제와 제한의 대상인 두 어린아이는
그토록 힘겹게 사막을 지나고 절벽을 건너 존재의 이유와 기꺼이 자신이 내려앉을 땅뙈기, 그렇다 땅뙈기다. 그 작은 것을 온전히 찾기위해 온몸과 온맘을 내던진다.


그 사이사이 어떤 것은 영원히 잃고
또 어떤 것은 되찾기도 하고.


자신과 다른 것은 차별한다.
다수와 다른 것은 차별받는다.
약한것은 짓밟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들의 항의는 쉽게 공중으로 분분히 흩어진다.


그러나 끝내 날아라.
비오의 작은 날개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라.
나는 기꺼이 너희의 작은 땅뙈기가 될것이며, 떠날때가 되어도 붙잡지 않고 수통에 물을 가득 채워줄 것이다.


부디 끝까지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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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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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애는 추운 겨울 손을 마주잡았다. 거칠어보이는 손을 비비다가 결심한 듯 차가운 냇물에 손을 넣는다. 시린 물은 냉기보다 고통을 먼저 선사했다.
2. 바람은 살갗의 포를 뜨듯 매섭고 아프다. 속절없이 시린공기와 마주해 부르터 벌건, 입김을 보태어도 소용없는 손을 마주 비비다 눈을 질끈 감고 살얼음 낀 물에 담근다. 저릿핫 고통이 손끝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발자크는 예술이란 자연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대로 그리되 거기에는 살아숨쉬는, 즉 생기가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시작이라고, 미지의 걸작이란 그런 존재다.


그래서 나는 똑같은 장면을 다르게 써본다.
어떤게 더 좋은건지는 사실모르겠다. 글이라 그런건가. 그림이면 달라질까?


나는 오히려 젊은 무명의 화가에게 마음을 줬다. 예술을 탐미하다 못해 아름다운 자신의 연인을 갖다바쳐버리는. 푸생은 진정 아름다운 연인은 심미안으로 보지 못하고 캔버스에 갇힌 아름다움만을 탐한다.
그림속의 여인을 바라보는 푸생의 눈을 보고 '나를 보는 그의 눈은 저렇지 않았다'고 말하는 질레트의 탄식이 어찌 슬프고 안타깝지않으랴.


액자속의 아름다움을 탐미하다
진정의 걸작을 놓칠 수 있다고,


발자크가 말하고 싶은 건은 사실 따로 있었겠지만,
나는 그것에 집중했다.


내 미지의 걸작은 아직이며
살아가는 동안 그것과 조우하는 날을 꿈꾼다.
그 때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일이 없도록 심미안을 수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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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소설 '모순'에서 안진진의 엄마는 배우자에게 매맞는 아내였다. 처음엔 다정하고 상냥한 그가 집들이를 끝내자 '자신의 손님들을 무시했다'는 트집을 잡아 접시를 던졌고 다음 날 진부하게 무릎꿇고 빌었다. 안진진의 엄마, 학대자의 아내, 즉 피해자는 '날아오는 접시를 보았을 뿐이야' 라고 자신을 설득했고 결국 매맞는 아내가 되었다.


이것이 보통의 학대자와 피해자의 패턴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보다 확장된 학대자의 종류와 피해형태를 낱낱이 폭로한다.


세상에 태어나 생명을 유지하는 모든 것들은 대부분 존귀하며 어떠한 형태로든 가치가 있다. 학대를 받아야할 생명체는 없으며 또한 학대를 가할 정당성을 갖고 있는 생명체도 당연히 없다.
모두 네가 자초한거야.
내가 이러는 건 다 네가 잘못해서야.
이건 다 너를 사랑해서야.
이 중에 개소리, 헛소리가 아닌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진정 잘못했다면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논하여 행동을 수정하도록 조언해야 옳은길이며
사랑한다면 더욱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존중이 빠진 사랑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혓바닥에 기름칠하고 매끄러운 말을 내뱉는 사기꾼을 조심해라.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불일치되는 점이 없는지 관찰하라.
불행히도 그런 사람에게 빠졌고, 시간이 지나보니 나는 없고 그 사람만이 존재하는 관계가 되어있다면 손을 내밀어라. 가까이에 있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반드시 한 명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그 남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사실 그 남자가 만에 하나 변할 수도 있지만 높은 확률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변하야 한다.
이 책이 여러 피해자에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일 것이다.


학대를 깨달았으면 변해야한다고.
설사 그곳을 깨뜨리고 나오는 파편에 다치더라도


학대자의 곁은 감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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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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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셋,
작으면서 큰 나이

발견부터 남달라 자신의 뒷덜미에 태그를 붙이고 살아온 아이는 남달리 불행했고, 남달리 행복했다.

상반된 감정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변덕스럽게 아이를 찾아온 것이 아니고 불행이 행복이 되고 행복이 불행이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아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온통 자신의 욕망과 편의에 맞춰 조종당해왔건만 아이는 자신만의 확고부동한 선이 있었다. 그 선을 넘는 순간 눈을 치켜뜨고, 손톱을 세우고, 물어뜯었다.
거짓말쟁이 어른들은 아이의 정직한 공격에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다.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어.
요즘 아이들은 근성이 없어.
요즘 아이들은 아이답지 않아.

그게 다 우리가 그렇게 키운 탓이다.

요즘 어른들은 자기밖에 몰라.
요즘 어른들은 자기만 옳은 줄 알아.
요즘 어른들은 귀기울일 줄 몰라.

외쳐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아이는 입 닫을밖에.


작은 아이들은 커다랗습니다.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을 한 곳에만 두지 마세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가 아홉개의 색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듯 아이들의 생각과 꿈과 미래도 세상의 모든 색만큼 다채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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