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을 좋아합니다 - 초록 지붕 집부터 오건디 드레스까지, 내 마음속 앤을 담은 그림 에세이
다카야나기 사치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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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머리 앤을 생각하면 어릴적 티비만화영화 주제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만화영화 속 주인공의 미덕이 '예쁨'이었던 시절이다. (심지어 혁명가, 남장 여자 오스칼도 빼어나게 예뻤다규!! 혁명가가 예쁘기까지 할 필욘 없는데!!_물론 안 예쁠이유도 없지만..) 이 아이는 예쁘지 않은 사랑스러움을 전면에 내세운 대담하고 독보적인 캐릭터였다.


나는 별난 아이 앤이 좋아했다.


모든 이야기는 철저한 고증이 뒤따라야 하고, 개연성이 무너지면 그 이야기는 폐기하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깐깐하기 이를데 없는 어린이가 나였다. 그런 내가 앤을 좋아한 이유는 오히려 나와는 반대되는 몽상가적 감수성이다. 모든 애정하는 장소에 이름을 붙이고, 불러줘서 숨결을 불어넣는 아이. 상상에는 한계가 없다며 말도 안되는 것들을 모조리 끌어와 기어코 꿈을 꾸는 아이.
그래서 보는 것은 즐겁지만 친구하기엔 버거운 아이, 너를 사랑했는데, 개연성의 노예인 나는 금방 그 아이를 잊었다.


책을 펼치면
곱디고운 그림들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나를 인도한다. 자작나무 숲과 사과나무 길, 어설프게 '응접실 아니고 거실에서' 가졌던 티타임. 내가 눈을 빛내며 바라봤던 장면장면들을 다시 불러온다.
이 만큼이나 커서 너의 몽상에서 뛰어놀이에는 몸도 마음도 무겁지만
너의 산책길을 뒤따라 갈게.
개연성같은거 호숫가에 숨겨놓고 갈게.
어디선가 나를 또 기다려줘.


강렬하게 떠오르는건 다이애나와의 이별식 때, 검은 머리칼을 징표로 요구하던 앤이다. 그런걸 보면 나는 앤의 변태성을 사랑했던 것일수도 (왜 머리카락을 잘라달래? 구슬반지, 손거울 이런거 놔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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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다 고아지.' 로 시작하는 시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그 시를 떠올렸다. 비빌 언덕이 없거나 아주아주 낮은 청춘들이 서로의 팔을 얽고 나아간다. 더디고 슬프게.


슬픔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주저앉아 땅을 치는 통곡이 있는가하면 소리를 한껏 죽여 떨리는 어깨만이 슬픈 흐느낌이 있고, 목 놓아 울어놓고는 또 금방 소맷부리로 눈물을 쓱쓱 닦아내는 씩씩한 슬픔이 있다. 마치 이 책 속 청춘들의 슬픔처럼.


이 청춘들에게 콜센터란 아주 길고 화난 사람이 많은 환승게이트같은 곳이었다. 비행기는 지연되고, 날씨는 불길한 것이 기체가 뜰 것 같지 않고, 자꾸만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번 A기업에 탑승 대기 중인 고객님들께 안내말씀 드립니다. A기업의 정원은 이미 만석이오니 다음 탑승을 대기하여주시기바랍니다.'
화난 사람들은 길길이 날뛰고 서로 할퀴기도 하고, 화풀이 하며 또 또 화풀이 당하고,


그러나 청춘들이여.
비행기는 뜬다.
비행기가 뜨지않으면 배도 있고, 기차도 있는 법.
흔한 위로인가?
하지만 클리셰는 역시 클리셰다, 잘 먹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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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없다 - 문제는 불평등이 아니라 빈곤이다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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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민주주의 사회는 (대체로) 평등하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유와 평등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정확하지 않은 기억력에 의존하자면) 교과서에도 그렇게 써있었다.
호기심천국이었던 나는 질문했다
'전 날 본 드라마에 같은 나이 같은 동네에 사는 남자 2명이 군대에 갔는데 부자 애는 편한 데 갔고 가난한 애는 힘는데 가던데 우리나란 민주주의국가가 아닌가요? 안 평등하잖아요.' .
.


그 때 선생님의 동공지진을 보며 어린나이에 난 깨달았다. 민주주의에서도 '평등은 없다'고.


경제적 평등이 절대 선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한다. 부모가 물려준 가난은 자식이 같이 감당하는 건 옳고 부모가 물려준 부를 자식이 누리는 것이 그릇된 일이라 하는 것 이중잣대 아닌가.


소유한 것이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음식과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을 가지는 것은 악이 아니다. 니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 빈곤한 사람에게 나눠줄거야. 이 활빈당이 사실 범죄자인거지. 활빈당이 꾸준히 부의 재분배를 행하여 빈곤한 사람들이 가난을 겨우 면했다 치자. 활빈당이 떠난다면? 그 이 후는?


부의 재분배가 과연 평등을 이뤄낼 수 있는가?


이 책은 아니라고 말하고 그것에 동의 재창 삼창하겠다.


아니 그런데,
그 다음은요?
돈 때문에 분노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 '충분한' 부를 소유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선'이라면 어떤것을 실천해야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 방안이라도 말해주고 가시라.

평등보다 존중 이런 얘기는 다른 '에세이'에도 많잖아요.



입학 할 때 거의 비슷한 성적으로 입학한 두 아이가 있다. a는 숙면하고 일어나 수업을 착실히 받고 남는시간에 스펙쌓고 운동하고 b는 대리운전에 피곤에 쩔어 수업받고 남는 시간에 편의점, 마트, 택배상하차를 전전한다고 하면 a, b의 격차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옳다 그르다의 얘기는 아니다. a와 b는 모두 잘못이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합법적 활빈당'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 활빈당이 될 자는 나라이고, 국회이고, 결국 국민이 아니겠는가?


경제적 평등은 없을지언정
기회의 평등은 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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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 성격 급한 뉴요커, 고대 철학의 지혜를 만나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석기용 옮김 / 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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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거의 출발시긱이 다 되어 갈 무렵 매표직원이 한 좌석을 2명에게 판매하는 실수를 해버렸다. 남는 좌석이 있었다면 문제가 없없을텐데 표는 매진이었다.
당연하게도 먼저 산 사람에게 좌석은 배정 됐고 나중에 산 사람이 거세게 항의해서 버스는 출발시각 10분후에도 출발하지 못했다.
탑승하고 있던 승객들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나는 '스토아주의'를 읽고있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리. 이것은 어차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인것을.

이것은 스토아주의의 통제이분법이다.

나는 이것을 스토아주의의 핵심이라고 이해했다. 어찌나 많이 반복되는지 작가는 스토아주의의 가르침 중 하나인 반복하기를 우리에게 몸소 가르친다.

읽다보니 이 이분법이 어찌나 합리적이고도 지혜로운지 모든 상황에 이분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약속시간에 늦었어? 약속시간을 정하는 것까지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걔가 지킬 지 말 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저 사람이 숙제를 안 해왔네. 숙제를 주는 것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해오고 말고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택배가 지연 돼? 주문까지가 내 통제, 배송은 내 통제가 아님.

내 역량밖의 일에 짜증내고 초조해하고 화를 낸다고 달라지는 건 사실 없다. 순간의 내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글쎄.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것이 바로 이너피스?


이 책은 어려울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지만 되게 재밌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뉴요커 말많은 교수의 끊임없는 TMI를 따라가다보면 독자는 에픽테토스와 주절주절 상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저 쓰앵님,
저는 요즘 애써 잠재워놨던 관심병이 도진것같은데 어떡하죠?

노예여,
내 제자가 그렇게 손가락 부르트도록 쓴 통제이분법을 내면화하세요. 그대가 결정할 수 있는것은 키의 방향뿐이고 바람의 방향과 세기는 결정할 수 없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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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국
정호승 지음 / 책읽는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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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자라고 살면서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피가 철철 나는 가슴을 싸안고 못박은 자를 원망하며 떠났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박힌 못을 빼 상대의 가슴에 똑같이 찔러 넣었을 수도 있고,

또는 가슴에 못박힌 채 서툰 망치질로 네 손이 다치지 않았나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상처주느라 오히려 상쳐 입은 너를 꼭 안아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긴 네가 다칠까봐 튀어나온 못을 더욱더 제 가슴 깊숙이 찔러넣으면서 말이다.


깊이 후회하고 참회하여 못 뺀 자리에 지워지지 않을 못자국이 남는 것처럼 다친 마음엔 흉터가 남는다.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랑이 어디있으랴.


그러니 사랑은
상처받겠다는 상처를 받아도 상관없다는 각오를 동반하는 것이니


사람들아,
적어도 딱지앉아 새살이 차올라 가려울 때 긁어 다시 피내지 말고, 호호 바람 불어 잘 달래주기라도 하거라.


흉터가 조그마하게 남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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