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은 없다 - 문제는 불평등이 아니라 빈곤이다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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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민주주의 사회는 (대체로) 평등하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유와 평등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정확하지 않은 기억력에 의존하자면) 교과서에도 그렇게 써있었다.
호기심천국이었던 나는 질문했다
'전 날 본 드라마에 같은 나이 같은 동네에 사는 남자 2명이 군대에 갔는데 부자 애는 편한 데 갔고 가난한 애는 힘는데 가던데 우리나란 민주주의국가가 아닌가요? 안 평등하잖아요.' .
.


그 때 선생님의 동공지진을 보며 어린나이에 난 깨달았다. 민주주의에서도 '평등은 없다'고.


경제적 평등이 절대 선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한다. 부모가 물려준 가난은 자식이 같이 감당하는 건 옳고 부모가 물려준 부를 자식이 누리는 것이 그릇된 일이라 하는 것 이중잣대 아닌가.


소유한 것이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음식과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을 가지는 것은 악이 아니다. 니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 빈곤한 사람에게 나눠줄거야. 이 활빈당이 사실 범죄자인거지. 활빈당이 꾸준히 부의 재분배를 행하여 빈곤한 사람들이 가난을 겨우 면했다 치자. 활빈당이 떠난다면? 그 이 후는?


부의 재분배가 과연 평등을 이뤄낼 수 있는가?


이 책은 아니라고 말하고 그것에 동의 재창 삼창하겠다.


아니 그런데,
그 다음은요?
돈 때문에 분노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 '충분한' 부를 소유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선'이라면 어떤것을 실천해야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 방안이라도 말해주고 가시라.

평등보다 존중 이런 얘기는 다른 '에세이'에도 많잖아요.



입학 할 때 거의 비슷한 성적으로 입학한 두 아이가 있다. a는 숙면하고 일어나 수업을 착실히 받고 남는시간에 스펙쌓고 운동하고 b는 대리운전에 피곤에 쩔어 수업받고 남는 시간에 편의점, 마트, 택배상하차를 전전한다고 하면 a, b의 격차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옳다 그르다의 얘기는 아니다. a와 b는 모두 잘못이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합법적 활빈당'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 활빈당이 될 자는 나라이고, 국회이고, 결국 국민이 아니겠는가?


경제적 평등은 없을지언정
기회의 평등은 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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