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와 바나나 테마 소설집
하성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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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은 단도(短刀)이다. 이순신 장군의 '수루에 홀로 앉아 큰칼 옆에 차고'의 큰칼이 주는 장엄함이나 힘은 없다. 날이 잘 선 단도로 복숭아 속살 같은 가슴이나 봄날 새순같이 여리디 여린 손끝을 '쓰윽'하고 베는 순간의 서늘한 아픔, 비통함,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의 처연함, 거기서 오는 깨달음까지 단편소설은 그저 아름답다. 서사구조가 중요한 장편소설과는 달리 단편소설은 순간적이고 감각적이며 메타포의 힘으로 깊은 의미를 전달하기에 단언코 문학의 꽃이고 정수이며 최고봉이다.

 

 이런 단편소설과 역사와의 조우. 어떤 개인도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의 역사는 대부분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전쟁도 그 원인은 거의 정치와 연관 지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역사가 곧 정치는 아님을, 정치에서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인간들의 삶의 총화임을 한눈에 보여주는 책들이 있다.

 

  한겨레 출판 문학웹진 <한판>에 연재되었던 단편소설들을 모은 소설집 두 권이 탄생했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총 26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역사테마 소설집이다.

 

 15년이란 등단 연차를 지닌 기성과 신인작가 13명이 지나간 역사의 폐허 속을 탐사하며, 찾아낸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각기 다른 상상력의 옷을 입혀 오늘 날 우리의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키스와 바나나>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미국적인 작가 피츠제럴드의 아내 젤다로부터 (하성란의<젤다와 나>)조선 세조 때의 소경 점복가 홍제관의 이야기 (이영훈의 <상자>)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의 경험 (조영아의 <만년필>) 베트남전 참전군인 키스의 상처(황현진의 <키스와 바나나>)에 이르기까지 이 13편의 이야기들은 역사는 결코 흘러가버린 잊혀진 이야기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13명의 소설가들이 진지한 시선으로 멋진 상상력을 더하여 되살려 낸 작품들은, 때로는 우화와 풍자로 때로는 판타지로 때로는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단편소설의 매력을 한껏 뽐낸다.

 

 역시 19년이란 등단 연차를 넘어서 기성과 신인작가가 함께, 낡고 잊혀진 역사의 책장을 들추고 시간의 모퉁이를 더듬어 캐어낸 기억을 주제로 변주시킨 <한밤의 산행>

 

 아우라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철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발트 벤야민은 <일방통행로>라는 글에서 '감각들이 머릿속에 둥지를 틀고 있지 않다는, 다시 말해 창문과 구름, 나무가 우리 두뇌 속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보고 감각하는 바로 그 장소에 깃들고 있는 것이라는 학설이 옳다면,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린 우리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감각 즉 기억은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감각하는 장소나 상황 속에 깃든다는 것이다. 이 '기억'을 주제로 한국 문단을 이끌어가는 13명의 작가들이 다양한 개성을 빛내며 각자의 문체와 주제로 변주해낸 작품집이다.

 

 박재상이 '왜'에서 왕자를 구하던 삼국시대 (조영석의 <추구>)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던 만주의 하얼빈 (장강명의 <유리 최 이야기>) 재개발 지역 철거 반대 투쟁을 다룬 21세기의 대한민국 (김혜진의 <한밤의 산행>)에 이르기까지, 잊혀지고 흘러가버린 과거 속의 역사를 기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현재를 살고있는 우리 앞에 복원시킨다.

 

 한 작가의 단편소설들을 엮어낸 작품집만 읽어도 다양한 산해진미를 맛 본 기분이 드는데, 무려 26명의 작가들이 빚어낸 잔칫상을 받고보니 마음이 그득하다. 함께 이 책을 읽은 우리는, 이제 상호연결된 공동체가 된다고 한다.

 

 상상력과 기억의 힘으로 우리를 공동체로 묶어

 같은 역사의 경험을 공유하게 해 준 책

 

 이 책은 26명의 작가가 각기 자아를 드러낸 솔직한 몽타주이며

 역사에 바치는 그들만의 찬란한 오마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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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나무 2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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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량한 빈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그 나무를 향해 속죄의 발걸음을 옮기는 한 남자의 마음의 궤적과 행보에 동행해 본 시간.

어쩌면 인생이란 죄와 속죄의 반복과 연속의 누적이 아닐까.

 

 어린 시절의 소소한 거짓말, 사춘기시절 잠깐 통과의례처럼 갖게 되는 나쁜 손버릇, 애절한 눈빛의 연인에게 모질게 내뱉고 돌아서던 마지막 이별의 인사,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타인에게 준 상처들, 불의와의 적당한 타협등 평생에 걸쳐 인간은 수없이 크고 작은 속죄주머니를 가지게 되고, 그 주머니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속죄나무의 형상은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과 닮아있다.

 

 1989년 첫 장편소설  < 타임 투 킬 >로 전세계 독자를 뒤흔들고, 그 뒤로도 법정소설이라는 장르의 독보적 존재로 이름을 날린 존 그리샴이 돌아왔다. 작품의 전체적인 플롯은 참으로 단순하다. 자신 소유의 땅에 있는 시커모어 나무에 목을 매달고 자살한 세스 후버드가 남긴 유언장. 엄청난 유산의 90%를 흑인 가정부에게 물려주도록 되어있는 유언장을 놓고 세스의 유지를 지키려는 주인공 제이크(타임 투 킬의 전설적인 변호사)쪽과 유산을 차지하려는 자녀쪽의 법정싸움이다.

 

 두꺼운 두 권의 책 삼분의 이를 넘길 때까지 별다른 사건도 특별한 반전도 없다. 그저 판사와 양쪽 변호인들과 당사자들과 배심원들이 재판을 준비하고 재판에 임하는 과정이 , 제 3자의 관찰자의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마치 속기사가 기록한 법정기록물을 읽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특정인물을 부각 시키거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제이크조차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추리물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놀라게하거나 가슴 뛰게하는 사건이나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책은 선악의 구도를 벗어났으며, 작품전개가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인물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트리 판사로부터 동네 레스토랑의 서빙 여직원까지 각각의 인물들의 개성과 행동묘사가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들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세 명이었다.

 

 첫째는 아트리 판사님이다. '판사라면 이 정도는 되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사람. 그래서 꼭 판사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

'특별한 편향성이나 치우침을 찾아볼 수 없으며, 어떤 사건 어떤 사람을 만나도 선입견을 갖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아니 유전적으로 열린 마음과 올곧은 정신을 타고 난 전형적인 판사였다. 자신의 법정에서는 철권을 휘두르며 준비가 부족한 변호인에게는 주저없이 불호령을 내렸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믿기지 않는 연민의 정을 보여 주는가 하면 이 카운티의 모든 변호사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괴팍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p188)

공정함과 따스하고 열린 마음과 권위를 모두 갖춘 아트리 판사님이야말로 이 작품의 조타키를 쥐고 있는 훌륭한 선장인 것이다.

 

 둘째는 포티아란 여성이다. 유산을 물려받게 된 가정부의 딸로 가난한 환경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육군에 입대하여 세상을 돌아다니며 공부를 계속하며 법대 진학의 꿈을 가진 아가씨. 당차고 영리하며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제이크를 도와 부사수 역할을 하는 따스하고 섬세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故 세스 후버드 씨. 작품의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놀라운 반전. 어린 시절 목격한 아버지의 잘못을 속죄하고 정의를 실현하려 한 인물. 첫장에서 자살했지만 결국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주인공이다.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고 바로 잡기 힘든데, 아버지의 잘못을 잊지 않고 대신 속죄하려한 그 양심과 용기가 묵직한 무게감을 더해 주었다.

 

 손에 땀을 쥐는 공포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신기하고 낯선 특별한 배경도 아니다. 작은 소도시에서 일어난 법정싸움을 800여 페이지가 넘게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몰입하도록 만드는 작가의 대단한 필력이 새삼 놀라웠다.

 

 피가 튀는 공포는 없지만 잘 짜여진 탄탄한 구성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격조 있는 범죄소설.

 

추리물의 또다른 면모와 가능성을 보아 좋았던 시간.

 

'재미있었다.' 덮고 끝내지 말고 자신의 속죄나무를 살펴보자.

 

 사소한 실수나 잘못이라도 용기있게 인정하고 바로 잡으라고 존 그리샴

 그가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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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집 - 사부작 사부작 오월의 전주
이새보미야 글.사진, 박상림 그림 / 51BOOKS(오일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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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향 전주. 예술과 전통이 어우러져 독특한 빛깔을 빚어낸 도시. 예술 지상주의와 숭배주의자로서 전주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유혹적인 도시이다. 딱 삼십 년 전 답사 중 비빔밥을 먹기위해 들렀던 전주 그리고 이십 년 전 지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내려가 콩나물 국밥을 먹고 덕진공원의 연꽃을 구경했던 전주.

 

 그 두 가지가  내 기억 저장고 속에서 꺼내볼 수 있는 전주 추억의 전부이다. 그때는 전주에서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심지어 예술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랬던 전주가 언제부턴가 바람결을 타고, 갖가지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전주 국제영화제, 한옥마을, 혼불 문학공원, 전동성당, 먹자거리, 가맥, 모주. 낭만적이고 특색있는 카페들...그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전통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주 국제영화제 기간에 전주를 여행한 이십 대 발랄한 청춘들의 사박 오일 간의 에세이. 비록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사부작사부작, 그들만의 시선과 걸음으로 전주의 오월을 노닌 흔적들이 예쁘게 유쾌하게 아기자기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직접 그린 손 지도, 꼼꼼한 일정표, 여행 경비내역서, 발품판 흔적이 역력한 생생한 사진들 그리고 무엇보다 전주를 바라보고 느끼는 애정어린 시선이 담겨있다.

 

 여행지의 풍경을 단지 정물화된 풍경으로만 느끼지 않고 숨결을 불어넣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여행자의 몫이다. 꼭 깊은 사유나 큰 의미가 아니어도 좋다. 자신이 가진 이성과 감성의 폭만큼 보고 받아들이고 누리고 느끼면 충분하지 않을까.

 

 술집 유리창에 적혀있는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라는 고 김근태 의원의 글귀에서도 위안을 얻는다. 콩나물 국밥집의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는 끓고 있습니다.'란 간판에서 자신의 나날을 반성해 보는 열린 마음들. 즉 여행지의 소소한 풍경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길어올리는 그녀의 마음결이 만저져 한옥마을의 소롯길처럼 예쁜 책이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왜 가는 것일까? 여행지를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었거나 미처 몰랐던 자신을 찾으러 가는 건 아닐까.

 

 전주에 가서 옛사람처럼 사부작 사부작 걸으면, 누구보다 시를 좋아했고 예술을 흠모했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내 청춘의 얼굴을 만날 수있을 것 같다.

 

 돌담길 모퉁이를 도는 순간, 진흙 속에 묻힌 연꽃뿌리에 집중하는 순간, 어느 카페의 문을 밀고 들어서며 진한 커피향을 느끼는 순간

 

 숨겨지고 억눌려 있던 자신을 찾으러 오라고 자꾸만 유혹한다

 

 이 책은 그 유혹의 촉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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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파도 눈부신 태양 - 우울증? 이건 삶이 주는 새로운 기회야!
타냐 잘코프스키 지음, 이지혜 옮김 / 여운(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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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캄한 해저의 심연. 햇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그곳에는 오로지 암흑만이 존재한다.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도 없다. 엄청난 수압에 짓눌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몸은 점점 납작해지다 못해 마침내 사라져버릴 것 같다. 마음은 끊임없이 수초처럼 흔들리기도 하고, 바윗덩이처럼 굳어지기도 하고, 지구가 누르 듯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곳엔 언제나 '혼자'인 내가 있다. 비록 제대로 앓아보지 못했지만 이러한 무기력감과 고립감이 우울증의 대표증세가 아닐까 싶다.

 

 우울증이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앓게 되는 우울증. 주부, 갱년기여성, 직장인, 수험생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우울증의 덫에 걸려 자신의 삶을 멍들게 하고 주변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며 심지어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약물과 상담요법 등의 개발로 우울증은 이제 정신질환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스쳐 지나갈 수 있고 치료가능한 감기와 같은 것으로 바람직한 인식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기력감과 고립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를 느끼지 못했다면 그 정서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 자신이 직접 고통스러운 우울증의 늪에 빠져 경험한 정신과 육체의 변화와, 절망의 늪을 빠져나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용기있는 여성이 있다. 이 책을 선택한 유일한 이유는 바로 우울증을 경험한 당사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라는 것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혹은 상담가가 쓴 이론서였다면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 저자가 말하듯이 그들은 우울증을 앓아보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이론이 완벽해도 채울 수 없는 틈이 있고 경험만이 그 틈을 메워 완성시킬 수 있는 거니까.

 

 '울 이유도 없는데 눈물이 나고 뭘 해도 재미가 없어요.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보고싶지 않아요. 전화를 받는 것도 귀찮고 이메일에 답장을 한다든지 문자메시지를 보낸다든지 한마디로 누구와 연락이  닿는 것 자체가 싫어요. 그냥 잠수해 버리는 거예요.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않고,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아요.' (P28)

 

 당신은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가? 대부분, 일부분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다고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저자는 이런 감정에 시달리다 마침내 전문의를 찾는다.

 

 흔히들 우울증을 앓는다고 하면 일정부분이 취약한 약자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 타냐 잘코프스키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언론 홍보 대학원에서 광고 마케팅학을 전공한 재원으로 카피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마케터, 방송MC, 객원기자, 작가 등 너무나 열정적이고 다양한 삶을 살아왔다.

 

 '전 언제나 용기있고 강하고 재기발랄한 데다 유머감각도 뛰어나고, 활동적이고 삶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이었어요.' (P27)

 

 즉 우울증은 원래 문제가 있거나 특이한 환경이나 품성을 지닌 사람만이 겪는 질병이 아니라,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지닌 사람에게도 어느 날 문득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성공가도를 달리던 저자는 직장 상사와의 불화와 따돌림으로 마음의 병을 얻게 되고 알콜중독, 자살시도 등을 거쳐 마침내 자기와의 싸움을 선포한다.

'조용하고도 치열한 내면의 싸움'

그리고 그 과정을 용기있게 블로그와 페이스 북을 통하여 공개하고 아픔을 나누고 함께 치유해 가는 노력을 하게 된다.

 

 작고 얇은 책 한 권이지만 정말 읽기가 녹록지 않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녀의 처절한 고통과 절망과 무기력과 외로움의 절규가 들려왔다. 또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과 노력이 전해져,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고 눈물이 어렸고 그녀를 응원하느라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자살 시도 뉴스를 접할 때마다 늘 마지막 선택을 하는 결정적 이유는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고립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깨를 빌려주고 토닥여 준다면, 그래서 그 순간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녀 혹은 그의 앞에는 또다른 인생길이 펼쳐질 것이다.

 

 김춘수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안도현 시인은 단 한 번이라도 누구에게 연탄만큼 뜨거운 사람이었냐고 묻는다. 시인들이 말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맺기. 그 따스한 그물망이야 말로 가볍거나 혹은 무거운 우울증을 앓고있는 우리를 치유해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이 책은 말해준다.

 

 나도 외롭고 힘들다

 너 또한 외롭고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되어보자

 함께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해저의 심연을 박차고 수면으로 부상해 보자

 

 검은 파도너머, 눈부신 태양이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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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종교로 움직인다 - 글로벌 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 신
하시즈메 다이사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북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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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 못한 길'

정갈한 수녀복을 입고 미사를 드리거나, 파르라니 깎은 뒷통수가 슬픈 비구니가 되어보고 싶었다.

 '사람들의 참된 마음자리'

일상에 찌들고 때론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며 오만한 삶을 살다가도, 겸허해지고 맑아지고 선해지고 싶은 순간.

 '인류역사의 한 축'

인간의 역사와 한몸이며 우리네 삶을 규정짓는 보이지 않는 손.

무신론자로서 내릴 수 있는 나름의 종교의 정의이다.

 

 유신론자도 무신론자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종교의 막강한 영향력. 작게는 개인의 순정한 삶의 지표가 되고 크게는 국가와 민족간의 분쟁의 불씨가 된다. 선과 악의 두 가지 얼굴을 가진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면모를 보여줄 때면, 종교의 탄생의 의미와 필요성에 의문과 회의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읽었던 현대 법철학계의 거목 로널드 드워킨의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종교를 초자연적인 존재인 신을 믿는 행위로 고착화 시키지 않고 객관적 가치 즉 올바른 신념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떤 신을 믿느냐는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인류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나름의 문명을 창조하고 발전시켰으며, 그 속에서 종교 또한 문명의 특색에 맞추어 각각 다르게 탄생하고 발전되어 온 것이다. 비록 지구상에는 여러 이름의 신과 신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지역이나 인종에 따른 행동양식의 차이이지 긍정과 부정의 기준이 될 수도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올바로 수용하는 것이 글로벌 사회를 이해하는 지름길임을 강조하는 책이 바로 <세계는 종교로 움직인다>이다. 일본의 종교 사회학자인 저자가 게이오 대학에서 강연한 <종교로 이해하는 세계>라는 강의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다.

 

 저자는 특이하게 '비즈니스맨이라면 먼저 종교를 공부하십시오.'라고 얘기한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와 영성을 갈고닦는 종교는 어찌보면 상충된다고 할 정도로 별개의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종교는 홀로 우뚝 선 독립개체가 아니며 지구인의 삶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동반자이다. 지구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주요 키워드이기에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비즈니스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유사 이래 무수히 많은 종교가 탄생했지만 저자는 그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현존하는 대표적인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의 탄생과 역사와 의미와 영향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제 1강에서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다시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일신교인 기독교의 탄생을

 제 2강에서는 기독교와 자본주의와의 연관성, 기독교에 기반을 둔 미국적 가친관을

 제 3강에서는 평화를 추구하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제 4강에서는 카스트 제도의 본질과 모든 종교를 수렴하는 다신교인 힌두교의 다양성을

 제 5강에서는 공자와 맹자의 유학에서부터 주자학에 이르는 유교의 면모와 독자적 성격인 중국 불교를

 제 6강에서는 신과 인간을 대등한 관계로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종교관에서 대해서, 실제 강연을 듣듯이 현장감있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의 착하고 고마운 매력은 두 가지이다.

첫째, 그동안 접해본 종교서적들은 어떤 책을 막론하고 한 가지 종교를 심도있게 파헤친 책들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양한 종교가 가지는 각각의 특색뿐만 아니라 상호관계를 비교 설명함으로써, 종교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인류의 문명사라는 큰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둘째,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즈니스맨 중심의 수강생에게 한 강의록이니 만큼 차근차근 알기쉽게 설명하고 이끌어주어 종교학 개론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인류의 정신적 유산인 종교에 대해 전반적인 정리를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가 허상이나 신기루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고 현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삶의 나이테이며 목리(木理)인 종교의 의미와 가치

 

 저자의 한마디를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

 

 '인간이라면 모두 종교를 공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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