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파도 눈부신 태양 - 우울증? 이건 삶이 주는 새로운 기회야!
타냐 잘코프스키 지음, 이지혜 옮김 / 여운(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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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캄한 해저의 심연. 햇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그곳에는 오로지 암흑만이 존재한다.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도 없다. 엄청난 수압에 짓눌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몸은 점점 납작해지다 못해 마침내 사라져버릴 것 같다. 마음은 끊임없이 수초처럼 흔들리기도 하고, 바윗덩이처럼 굳어지기도 하고, 지구가 누르 듯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곳엔 언제나 '혼자'인 내가 있다. 비록 제대로 앓아보지 못했지만 이러한 무기력감과 고립감이 우울증의 대표증세가 아닐까 싶다.

 

 우울증이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앓게 되는 우울증. 주부, 갱년기여성, 직장인, 수험생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우울증의 덫에 걸려 자신의 삶을 멍들게 하고 주변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며 심지어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약물과 상담요법 등의 개발로 우울증은 이제 정신질환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스쳐 지나갈 수 있고 치료가능한 감기와 같은 것으로 바람직한 인식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기력감과 고립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를 느끼지 못했다면 그 정서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 자신이 직접 고통스러운 우울증의 늪에 빠져 경험한 정신과 육체의 변화와, 절망의 늪을 빠져나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용기있는 여성이 있다. 이 책을 선택한 유일한 이유는 바로 우울증을 경험한 당사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라는 것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혹은 상담가가 쓴 이론서였다면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 저자가 말하듯이 그들은 우울증을 앓아보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이론이 완벽해도 채울 수 없는 틈이 있고 경험만이 그 틈을 메워 완성시킬 수 있는 거니까.

 

 '울 이유도 없는데 눈물이 나고 뭘 해도 재미가 없어요.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보고싶지 않아요. 전화를 받는 것도 귀찮고 이메일에 답장을 한다든지 문자메시지를 보낸다든지 한마디로 누구와 연락이  닿는 것 자체가 싫어요. 그냥 잠수해 버리는 거예요.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않고,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아요.' (P28)

 

 당신은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가? 대부분, 일부분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다고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저자는 이런 감정에 시달리다 마침내 전문의를 찾는다.

 

 흔히들 우울증을 앓는다고 하면 일정부분이 취약한 약자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 타냐 잘코프스키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언론 홍보 대학원에서 광고 마케팅학을 전공한 재원으로 카피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마케터, 방송MC, 객원기자, 작가 등 너무나 열정적이고 다양한 삶을 살아왔다.

 

 '전 언제나 용기있고 강하고 재기발랄한 데다 유머감각도 뛰어나고, 활동적이고 삶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이었어요.' (P27)

 

 즉 우울증은 원래 문제가 있거나 특이한 환경이나 품성을 지닌 사람만이 겪는 질병이 아니라,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지닌 사람에게도 어느 날 문득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성공가도를 달리던 저자는 직장 상사와의 불화와 따돌림으로 마음의 병을 얻게 되고 알콜중독, 자살시도 등을 거쳐 마침내 자기와의 싸움을 선포한다.

'조용하고도 치열한 내면의 싸움'

그리고 그 과정을 용기있게 블로그와 페이스 북을 통하여 공개하고 아픔을 나누고 함께 치유해 가는 노력을 하게 된다.

 

 작고 얇은 책 한 권이지만 정말 읽기가 녹록지 않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녀의 처절한 고통과 절망과 무기력과 외로움의 절규가 들려왔다. 또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과 노력이 전해져,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고 눈물이 어렸고 그녀를 응원하느라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자살 시도 뉴스를 접할 때마다 늘 마지막 선택을 하는 결정적 이유는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고립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깨를 빌려주고 토닥여 준다면, 그래서 그 순간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녀 혹은 그의 앞에는 또다른 인생길이 펼쳐질 것이다.

 

 김춘수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안도현 시인은 단 한 번이라도 누구에게 연탄만큼 뜨거운 사람이었냐고 묻는다. 시인들이 말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맺기. 그 따스한 그물망이야 말로 가볍거나 혹은 무거운 우울증을 앓고있는 우리를 치유해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이 책은 말해준다.

 

 나도 외롭고 힘들다

 너 또한 외롭고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되어보자

 함께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해저의 심연을 박차고 수면으로 부상해 보자

 

 검은 파도너머, 눈부신 태양이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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