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속죄나무 2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황량한 빈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그 나무를 향해 속죄의 발걸음을 옮기는 한 남자의 마음의 궤적과 행보에 동행해 본 시간.
어쩌면 인생이란 죄와 속죄의 반복과 연속의 누적이 아닐까.
어린 시절의 소소한 거짓말, 사춘기시절 잠깐 통과의례처럼 갖게 되는 나쁜 손버릇, 애절한 눈빛의 연인에게 모질게 내뱉고 돌아서던 마지막 이별의 인사,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타인에게 준 상처들, 불의와의 적당한 타협등 평생에 걸쳐 인간은 수없이 크고 작은 속죄주머니를 가지게 되고, 그 주머니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속죄나무의 형상은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과 닮아있다.
1989년 첫 장편소설 < 타임 투 킬 >로 전세계 독자를 뒤흔들고, 그 뒤로도 법정소설이라는 장르의 독보적 존재로 이름을 날린 존 그리샴이 돌아왔다. 작품의 전체적인 플롯은 참으로 단순하다. 자신 소유의 땅에 있는 시커모어 나무에 목을 매달고 자살한 세스 후버드가 남긴 유언장. 엄청난 유산의 90%를 흑인 가정부에게 물려주도록 되어있는 유언장을 놓고 세스의 유지를 지키려는 주인공 제이크(타임 투 킬의 전설적인 변호사)쪽과 유산을 차지하려는 자녀쪽의 법정싸움이다.
두꺼운 두 권의 책 삼분의 이를 넘길 때까지 별다른 사건도 특별한 반전도 없다. 그저 판사와 양쪽 변호인들과 당사자들과 배심원들이 재판을 준비하고 재판에 임하는 과정이 , 제 3자의 관찰자의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마치 속기사가 기록한 법정기록물을 읽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특정인물을 부각 시키거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제이크조차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추리물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놀라게하거나 가슴 뛰게하는 사건이나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책은 선악의 구도를 벗어났으며, 작품전개가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인물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트리 판사로부터 동네 레스토랑의 서빙 여직원까지 각각의 인물들의 개성과 행동묘사가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들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세 명이었다.
첫째는 아트리 판사님이다. '판사라면 이 정도는 되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사람. 그래서 꼭 판사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
'특별한 편향성이나 치우침을 찾아볼 수 없으며, 어떤 사건 어떤 사람을 만나도 선입견을 갖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아니 유전적으로 열린 마음과 올곧은 정신을 타고 난 전형적인 판사였다. 자신의 법정에서는 철권을 휘두르며 준비가 부족한 변호인에게는 주저없이 불호령을 내렸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믿기지 않는 연민의 정을 보여 주는가 하면 이 카운티의 모든 변호사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괴팍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p188)
공정함과 따스하고 열린 마음과 권위를 모두 갖춘 아트리 판사님이야말로 이 작품의 조타키를 쥐고 있는 훌륭한 선장인 것이다.
둘째는 포티아란 여성이다. 유산을 물려받게 된 가정부의 딸로 가난한 환경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육군에 입대하여 세상을 돌아다니며 공부를 계속하며 법대 진학의 꿈을 가진 아가씨. 당차고 영리하며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제이크를 도와 부사수 역할을 하는 따스하고 섬세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故 세스 후버드 씨. 작품의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놀라운 반전. 어린 시절 목격한 아버지의 잘못을 속죄하고 정의를 실현하려 한 인물. 첫장에서 자살했지만 결국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주인공이다.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고 바로 잡기 힘든데, 아버지의 잘못을 잊지 않고 대신 속죄하려한 그 양심과 용기가 묵직한 무게감을 더해 주었다.
손에 땀을 쥐는 공포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신기하고 낯선 특별한 배경도 아니다. 작은 소도시에서 일어난 법정싸움을 800여 페이지가 넘게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몰입하도록 만드는 작가의 대단한 필력이 새삼 놀라웠다.
피가 튀는 공포는 없지만 잘 짜여진 탄탄한 구성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격조 있는 범죄소설.
추리물의 또다른 면모와 가능성을 보아 좋았던 시간.
'재미있었다.' 덮고 끝내지 말고 자신의 속죄나무를 살펴보자.
사소한 실수나 잘못이라도 용기있게 인정하고 바로 잡으라고 존 그리샴
그가 메시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