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3개월은 거짓말 - 암 전문의사의 고백
곤도 마코토 지음, 박은희 옮김 / 영림카디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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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가족이 생명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직접 들어본 적이 있는가. 티비나 영화 속에선 익숙한 장면일지 몰라도 체험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사랑하는 이에 대한 시한부 선고를 의사의 사무적인 말투로 듣게 되는 순간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 상처로 남게 된다.

 

 구 년 전 기침과 어깨통증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지방의 대학병원을 옮겨다녔지만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하다가 서울의 유명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아버지가 흉막에 생기는 희귀암에 걸려 폐에 전이가 되었고 평균 일년 정도의 수명만 남았다는 의사의 선고를 간병하고 있다가 불려나가 듣게 되었다. 너무나 무미건조한 말투로 세상의 끝으로 가는 약도 같은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의사 앞에서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듣고 나왔다. 화장실에 가서 정말 많이도 울었고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솟구치곤 한다.

 

 수술은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고 항암치료를 했으나 일차 항암 주사 후 백혈구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고통스런 후유증에 무균실에 입원까지 하며 너무나 힘들어하셨던 아버지는 그 길로 항암치료를 중단하였다. 옆에서 지켜보며 놀랐던 것은  비록 기침과 통증은 있어도 식사도 잘 하고 체격도 좋았던 아버지가 항암치료 후 완전히 입맛과 기력을 읽고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암 자체보다도 항암제 후유증에 시달리며 힘들어하시다 진단 후 구개월을 사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한 항암제의 독성으로 인한 후유증을 누구보다 뼈져리게 느낄 수 있었다. 병을 알게되고 병원에 입원하는 그날로 환자가 되어버린다는 말이 있다. 불필요한 수술과 과다한 치료가 가져오는 부작용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물론 은밀히 따지자면 병원도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니 만큼 의사들은 수익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나 가족들은 다른 무엇도 아닌 고귀한 인간의 생명이 달려있기에 의사의 말을 신의 목소리처럼 믿고 따르려고 한다. 그러는 이들에게 수익을 위한 치료를 유도하기 위해 혹은 책임회피를 위해 유행처럼 시한부 3개월 선고를 내린다는 것은 의사의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암이 특별하거나 특이한 질병이 아닌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병이 되어버린 이상 암과 싸우지 마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암이 문제가 아니라 암 치료가 문제라는 것이다. 어차피 진짜 암의 경우 수술과 항암치료를 해도 큰 효과는 없으며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워 하시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암 환자가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살다가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는 삶의 질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었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백프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의사이면서도 과감하게 수술과 항암치료의 불필요성을 실제사례를 통해 주장한 점, 암도 노화현상의 일부이므로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사이좋게 공생하는 길을 찾으라는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자유와 강한 의지와 최후의 순간까지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고귀한 존재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도 결코 희망을 잃지말고 오늘 하루도 소중하게 살아가자는,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인간의 품격을 잃지 말자는 것이 이 책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비단 암환자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책이다. 건강한 몸으로 먹고 자고 움직이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일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의 기적 임을 명심하고 매 순간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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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 - 각 분야의 혁신가들이 생생하게 들려주는 협업 스토리
윌리엄 브래튼 & 재커리 튜민 지음, 차백만 옮김 / 유비온(랜드스쿨,패튼스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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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에만 유행이 있는 건 아니다. 언제부턴가 그 시대를 대변하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와 관심을 보여주는 유행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웰빙, 힐링 같은 유행어들이 있고 요즘에는 콜라보라는 말이 여기저기 열병처럼 퍼지고 있다. collaborate(공동경영합작협업)의 줄임말로 콜라보는 이제 현대인들에게 필수적인 삶의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 날에만 협업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아니다. 옛말에도 독불장군,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시대를 막론하고 협업은 중요하게 강조돼 왔다. 오직하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명제까지 있겠는가. 하지만 현재처럼 콜라보의 개념이 강조된 때는 없었던 듯 하다.

 

 오늘 날 우리는 지구촌 전체가 네트워크로 치밀하게 연결된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다. 페이스북 같은 SNS의 등장, 구글 플러스의 개발 등으로 비록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으되 함께 생각하고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변화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든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것은 어리석다.

 

 되돌이켜 보면 이십 년 이상을 직장에 근무하면서 늘 독불장군 식의 업무처리를 했던 것 같다. 특히 한 부서의 리더로서 업무를 추진할 때면 자신감과 의욕이 넘쳐 내 생각이 곧 진리다라는 식으로 행동했다. 혼자 기획하고 부서원들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해야할 일을 분배해준 후 추진 정도를 꼼꼼히 체크하고 독려하여 목표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리더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했고 결과는 늘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니 부서원들에게 상하지시하달식 업무처리를 종용했을 뿐 서로를 대등한 동료로서 인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고 시너지를 내는 데는 내 자신이 부족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LA 경찰청장과 뉴욕경찰청장을 역임하고 실제로 협업에 성공한 경험자인 저자 윌리엄 브래튼과 리더십 전문가로 강연하고 있는 재커리 튜민이 공동으로 쓴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손꼽히는 애플이 선정한 책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최고의 혁신,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비법으로 콜라보를 제시하며 구태의연한 이론적 설명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협업 성공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성공적인 협업을 위한 실제 매뉴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가장 마음을 두드린 부분은 기술첨단의 시대에도 협업의 핵심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최첨단 테크놀로지는 성공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변화 속도가 엄청난 네트워크 시대에도 성공의 열쇠는 협업에 동참하고 수행하는 동료들을 확보하는 데 달려있다는 것이다.

 

 협업에 대한 상상과 열정, 서로 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비전 제시, 테크놀로지와 협업 플랫폼 구축, 참여자들에게 이득 제공, 정치적 지지기반 마련 등의 기초를 닦고 협업을 수행해 보자. 평범한 사람들이 협업을 통해 비범한 성과를 도출해낸 실제사례들을 읽어보면서, 콜라보야 말로 테크놀로지 세상에서 우리를 사람냄새 풍기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삶의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콜라보에 대한 확실한 개념정리와 이론의 정립 나아가 실생활에 직접 적용함으로써 좀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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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아버지 -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바치는 감사의 글
신현락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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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책을 읽을 때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도 하지만 책 내용과 관련있는 자신의 상황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이 책이야 말로 독자로 하여금 각자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자신만의 아버지와 얽힌 추억들을 밤새도록 떠올릴 수 있도록 해준다.

 

 가슴 속으로 아버지 하고 불러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분재화분 앞에 앉아계신 모습, 낚시가방을 챙겨메고 나가시던 뒷모습, 사냥총으로 사격연습하시던 모습들이다. 모두 자신의 취미생활에 몰두하던 광경들이다.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 힘든 역경에도 삶을 검증하며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솔직히 나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교직에 계시다가 일찍이 그만두시고 여러가지 사업에 손을 댔지만 순탄치 않았기에 가정의 경제는 늘 어머니가 꾸려가시고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오직 자신만의 취미생활에만 몰두하기 시작하셨다. 어머니에게도 자식들에게도 무관심하고 무뚝뚝하게 대하셨다.

 

 어린시절 사남매중 유독 큰딸인 나를 편애하였던 아버지, 무릎 위에 앉히고 함께 티비 보기를 좋아하시고 그렇게 품에 안겨있을 때면 아버지 발가락에 난 털이 신기해서 그걸 뽑아보던 기억도 있다. 교사이셨던 어머니가 연수로 한 달간 집을 비웠을 때 밤마다 팔베개를 해주시고 내게만은 항상 웃음을 보여주셨기에 초등학교 때까지 세상에서 엄마보다 더 좋은 사람이 아버지였다. 그러나 사춘기가 찾아오고 아버지도 점점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시면서 아버지와의 거리는 멀어져 갔고 가정에 무관심한 아버지는 미움의 대상이기까지 했다. 하물며 어린시절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은 내가 이 정도인데 나머지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엄청난 거리감을 느꼈지 않을까 싶다. 그 거리감은 자식들이 다 자라서 성인이 되고 각자의 가정을 가지게 될 때까지도 줄어들 줄을 몰랐다. 가끔 명절이나 생신 때 모두 모여도 아버지는 인사만 받으시고 가족들과 섞이지를 않으셨다.

 

 그러다 팔 년 전 아버지는 희귀암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 생활을 시작하셨다. 그 소식을 듣고 직장에 휴가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가 간병을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이후 늘 멀게만 느껴지고 많이 미워하기만 했던 아버지인데 아프시다는 얘기를 듣게되자 그런 감정은 다 사라지고 어린시절 큰딸을 끔찍이도 사랑하셨던 아버지만 보였다. 결국 완쾌되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버지 곁에서 간병했던 그 시간들은 항상 내 가슴 속에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집이 되었다. 언제 들어가 봐도 훈훈하고 따스한 곳.

 

 오로지 아버지 곁에서 보냈던 두 달의 시간 동안 예전에는 몰랐던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이기 이전에 청운의 꿈을 품었던 한 인간이었던 아버지,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몸도 마음도 황폐해져 결국 취미생활 속에 자신만의 집을 짓고 그 속에 자신을 가두어버린 아버지. 비록 자식들을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땀흘려 일하고 희생하신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침묵이라는 나름의 언어로 우리를 사랑하신 게 아니었을까, 도리어 우리 자식들이 그 침묵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듣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지난한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아버지에게 한없는 애정과 존경의 헌사를 바친다. 비록 많이 배우진 못했어도 삶의 원칙을 지켰고 인생의 가치를 중요시 했던 아버지. '아부지'란 정겨운 호칭으로 부르며 자신 또한 아버지처럼 자식들에게 아름다운 삶의 지표가 되기를 소망한다. 서두에 썼듯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독자 모두를 저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버지들은 그 숫자만큼 다양한 삶을 살지만 궁극의 공통점은 단 하나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이야기 해주고 있다.

 

 가을이 깊어간다. 자신만의 아버지를 떠올려 보고, 아버지 가슴 속 이야기들을 가슴으로 들어봐 드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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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1 - 관상의 神 역학 시리즈
백금남 지음 / 도서출판 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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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지인은 매년 정초만 되면 점을 보러가곤 했다. 그것도 유명한 점집이라 미리 준비해간 김밥 한 줄을 먹으며 서너 시간씩 마루에 앉아 차례를 기다려야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영문학과를 나왔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졌고 평소 나름 합리적인 생활태도를 가진 사람이 유독 점쟁이의 말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면 속으로 어이없어 하거나 웃어넘기기 일쑤였다. 점이나 사주팔자, 관상 등은 오로지 미신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허영만 화백의 만화 '꼴'을 접한 후 관상도 나름의 체계와 원리를 가진 이론이라는 생각의 변화가 조금 왔었다. 그리고 영화 관상이 개봉되자 참 특이한 소재를 다루었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일었고 먼저 책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역사의 한 장면을 소재로 삼는 역사 팩션이 소설로도 드라마, 영화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도 역사가 던지는 묵직한 무게감과 사실감에 상상의 재미를 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한 매력으로 작용하는 탓일 것이다.

 

 소설 관상은 제목 그대로 관상가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배경은 너무나 잘 알려진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제거하면서 왕권 장악에 나섰던 계유정난이다. 주인공 내경은 수양대군과 김종서가 치열하게 권력다툼을 벌이던 와중에 김종서에게 아버지를 잃고 역적의 자식으로 몰려 도망자가 되어 쫒기며 살다가 천재적인 관상가로 변신하게 된다. 내경을 관상쟁이의 길로 이끌었던 이가 바로 스승 상학이다. 제자에게 관상을 가르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상학의 에피소드가 눈물겹기까지 하다. 스승에게서 관상을 배운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권력다툼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 내경은 오히려 원수인 김종서를 위해 조정에 들어가 수양대군의 역모를 무산시키려고 한다. 수양대군이 왕의 관상을 타고났지만 내경은 오히려 그의 관상을 역적의 상으로 바꾸어 운명을 물줄기를 돌리려고 한다.

 

 일단 소설 관상은 너무나 재미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있어 신선함이 떨어지리라는 선입견을 깨부술 정도로 관상이란 특이한 소재를 흥미진진하게 잘 덧입혀낸 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하다.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긴장감도 있어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가 힘들다.

 

 관상이란 무었일까. 소설을 읽고나니 관상이야 말로 인간군상들의 삶의 축소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고, 증오하고,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멈출 수 없는 무한폭주 열차 같은 것.

 

 우리는 모두 자신이 좋은 관상을 타고났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평탄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운명은 절대 정해져 있지 않다. 늘 미소띤 표정으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당신의 얼굴, 바로 최고의 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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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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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되면 아침 저녁 가슴에 먼저 바람이 불기 마련이다. 일상으로 지나치는 풍경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고 스쳐지나가는 바람결도 서럽게 느껴지고 삶의 무게에 등이 시리기도 하다. 발끝에 툭툭 채이는 돌멩이도 아파 보이고 퇴근길 올려다 본 밤하늘의 둥근달은 또 왜 그리 슬픈 낯빛이던지 -.

 

 이럴 때면 누구든지 자신을 내려놓고 기대고 보호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 심리적 어머니를 갈구하게 된다. 생물학적 어머니와 일치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곳에서 그 어머니를 찾기도 한다. 박완서 님의 소설은 바로 그 어머니이다. 그 분의 소설을 읽을 때면 항상 마음이 든든해지곤 했다. 가슴 속에 구멍이 메워지고 팔다리에 힘이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눈물 줄줄 흘리면서 보는 절절하고 달콤한 연애소설도 아니고, 손에 땀을 쥐고 가슴 두근거리며 읽어내리는 기차게 재미있는 추리물도 아니다. 대부분의 소설이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곳에는 그 시대의 풍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소시민들의 삶의 애환이 펼쳐지고 그들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있다. 한국전쟁 전후의 시대상과 풍경들을 묘사한 소설을 읽을 때면 생생한 사실감에 마치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생활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처럼 허황된 이미지로서의 소설이 아닌 성실한 삶의 표본인 소설을 썼던 작가가 불현듯 우리 곁을 떠난 후로 예전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아쉬움과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게 노란집에서 도란도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비록 긴 호흡의 글들은 아니지만 약해져가는 삶의 의지를 다시 북돋워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수수하면서도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한 글들을 통해 다시 우리 곁으로 와주신 것이다.

 

 첫 장「그들만의 사랑법」은 짧은 소설 형식으로 자칫 남루해보일 수도 있는 노부부의 삶을 애틋하고 정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사소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건져올리는 작가의 시선이 살갑다. 나머지 다섯 장의 글들은 어쩌면 작가가 더 오래 생존해 있었다면 여러 권의 소설로 옷을 바꿔 입고 우리 곁으로 올 수 있었던 생각의 단상들이다.

 

 비록 거창하진 않지만 일상에서 주어진 자신의 자리에 최선을 다하고 사소한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감사할 줄 알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야 말로 제대로 한바탕 잘 살고 가는 거라고 몸소 모범을 보여준다.

 

 우리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 노란집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봐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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