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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평점 :
가을이 되면 아침 저녁 가슴에 먼저 바람이 불기 마련이다. 일상으로 지나치는 풍경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고 스쳐지나가는 바람결도 서럽게 느껴지고 삶의 무게에 등이 시리기도 하다. 발끝에 툭툭 채이는 돌멩이도 아파 보이고 퇴근길 올려다 본 밤하늘의 둥근달은 또 왜 그리 슬픈 낯빛이던지 -.
이럴 때면 누구든지 자신을 내려놓고 기대고 보호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 심리적 어머니를 갈구하게 된다. 생물학적 어머니와 일치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곳에서 그 어머니를 찾기도 한다. 박완서 님의 소설은 바로 그 어머니이다. 그 분의 소설을 읽을 때면 항상 마음이 든든해지곤 했다. 가슴 속에 구멍이 메워지고 팔다리에 힘이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눈물 줄줄 흘리면서 보는 절절하고 달콤한 연애소설도 아니고, 손에 땀을 쥐고 가슴 두근거리며 읽어내리는 기차게 재미있는 추리물도 아니다. 대부분의 소설이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곳에는 그 시대의 풍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소시민들의 삶의 애환이 펼쳐지고 그들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있다. 한국전쟁 전후의 시대상과 풍경들을 묘사한 소설을 읽을 때면 생생한 사실감에 마치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생활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처럼 허황된 이미지로서의 소설이 아닌 성실한 삶의 표본인 소설을 썼던 작가가 불현듯 우리 곁을 떠난 후로 예전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아쉬움과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게 노란집에서 도란도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비록 긴 호흡의 글들은 아니지만 약해져가는 삶의 의지를 다시 북돋워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수수하면서도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한 글들을 통해 다시 우리 곁으로 와주신 것이다.
첫 장「그들만의 사랑법」은 짧은 소설 형식으로 자칫 남루해보일 수도 있는 노부부의 삶을 애틋하고 정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사소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건져올리는 작가의 시선이 살갑다. 나머지 다섯 장의 글들은 어쩌면 작가가 더 오래 생존해 있었다면 여러 권의 소설로 옷을 바꿔 입고 우리 곁으로 올 수 있었던 생각의 단상들이다.
비록 거창하진 않지만 일상에서 주어진 자신의 자리에 최선을 다하고 사소한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감사할 줄 알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야 말로 제대로 한바탕 잘 살고 가는 거라고 몸소 모범을 보여준다.
우리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 노란집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봐주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