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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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쉼 없이 굴러온 수레바퀴.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인 사람들은 수레 위에 탄 소수가 아니라 수레를 밀고 당긴 대다수의 사람들, 시대와 지역에 따라 평민, 백성, 인민, 시민, 대중 등으로 달리 불리우던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소리없는 아우성, 빛의 이면에 존재하는 그림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역사의 위기 속에서도 그 삶은 독하고 끈질기게 면면히 이어져 왔고 또 오늘을 살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장애물을 만나 크게 덜컹거리며 위태로울 때가 있으니 바로 역사의 격변기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대한제국만큼 역동적이고 혼란스러우며 가마솥처럼 펄펄 끓어넘치던 격동기가 또 있을까. 13년에 불과한 대한제국의 역사가 조선왕조 500년보다 더 파란만장한 파노라마가 펼쳐진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였던 것이다.

 

 밀려드는 열강들의 야욕 앞에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조국의 존립을 고뇌하던 고종은 나라의 면모를 새롭게 하고자 큰 결단을 내렸다. 일본 제국주의의 간섭을 피하여 아관파천을 단행했던 고종이 환궁 후 마침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독립연호 광무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자주독립 국가이며 세계 열강들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서려는 힘찬 첫걸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엄청난 변화와 충격과 혼돈의 시대였다. 조선과 대한제국, 서구 열강과 일본, 오랫동안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고 있던 주자학과 새로운 서구 문명의 충돌 등 황제에서부터 저잣거리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밀려드는 폭풍우 속에서 방향을 읽고 헤매이며 정체성을 찾기위해 나름대로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온 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보통 사람들의 삶에 애정어린 시선을 맞추고, 온기를 불어넣고, 손길로 어루만져 마침내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되살려 낸 책이 있다. 역사학자가 아닌 한국 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저자가 당시 발간된 여러 신문의 3면 기사와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평을 통해 지배층의 역사가 아닌 저잣거리 보통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삶의 풍경들을 되살려 낸 것이다.

 

 오늘 날에도 신문의 시사만평이 가지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한 컷에 담겨있는 비판과 해학과 풍자는 신문 한 면의 기사가 지니는 힘과 비할 것이 못 될 정도로 촌철살인의 힘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시사만평이 대한제국 시대에도 있었다니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신문은 관보인 한성순보 발간을 시작으로 하여,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그 뒤를 이어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 여러 신문들이 발행되었다. 이들 신문들이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독립의지를 공고히 하고 근대화에 앞장서 백성을 계몽하는 등 언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압축된 상징적 의미를 담고있는 시사만평에 주목하고, 그 의미를 풀기위해 신문의 3면 기사를 끌어왔다.

'저잣거리의 다양한 소문, 공인의 스캔들로부터 사기와 도박, 절도와 살인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건, 사고가 3면을 가득채웠다. 그 속에는 흔히 정사보다 야사에 기록될 만한 소재가 많았다. 교과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역사 속 군상의 삶과 일상과 욕망이 적나라게 하게 드러난 것이다.'(P30)

 

 즉 시사만평에 숨겨진 진실의 뼈대에 기사 속에서 찾아낸 살을 붙이고 머리카락을 심어 호흡을 불러넣음으로써 마침내 역사의 격변기를 살아낸, 저잣거리의 보통 사람들을 현재의 우리 앞에 되살려낸 것이다.

 

 사이비 종교의 유행, 권력자들의 문란한 스캔들, 사생활 보도장이 된 신문광고, 성병 관련 기사가 보여주는 성의 불평등, 권력의 하수인들에게서 행사되는 갖가지 비리와 폭력들, 도박으로 인한 패가망신, 경품 추첨에 이르기까지 인간 군상이 살아가는 장소라면 어디에서나 뗄래야 뗄 수 없는 삶의 모습들이 너무나 재미있고 생생하게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불현듯 드는 생각

'이것이 대한제국의 신문기사인가? 오늘 배달된 신문기사인가?'

 

 시대가 암울하고 혼란스러워도 온 몸으로 역사의 파도에 맞서며 매일의 일상을 견디고 살아간, 그 시대 저잣거리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

 

 정치와 일상을 따로 또 같이 살아낸 그들에게서 우리가 살아갈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

 

 마치 만화경 같았던 이 책이 주는 가르침이다

 

 옛날의 그와 오늘의 내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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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다
쥘리 보니 지음, 박명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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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바다 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다니노라면 형형색색 자신만의 모양과 빛깔로 자신만의 속울음을 토해내는 수많은 책들을 만난다. 그것은 때로 태곳적부터 해저에 엎드려있는 묵직한 바위같기도 하고, 때로 물결에 몸을 내맡기고 부드럽게 흔들리는 수초같기도 하고, 때로 희미하게 비쳐드는 한 줄기 햇살같기도 하다. 또 때때로 그것은 수백 킬로 거리를 두고 저 멀리서 날아오는 돌고래들의 음파같기도 하다. 그 중에 이 책은 너무나 예뻐 성큼 손을 뻗어 집었다가 날카롭게 손을 베이고 마는 영롱한 조개껍질 같은 책이다.

 

 책의 외양이 너무 아름다워 외출 시 손에 들고 다니고 싶은 책. 그 속에 담긴 한 여자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영혼의 내면의 기록이자, 너무나 섬세하고 감각적이라 독자의 가슴에 피를 흘리게 하는 날카로운 비수 같은 글이다.

 

 길 위의 삶을 살며 순회공연을 하는 뮤지션들을 만나고, 그 중 바이올린 연주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후 그녀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댄서가 되어 그 속에서 한없는 충족감과 행복을 느낀다.

 

 무대 위에서 음악에 맞춰 알몸으로 춤을 추는 순간, 그녀의 자아는 한없이 자유롭게 고양되며 육체와 영혼이 합일되는 완벽한 순간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함께 공연을 다니던 친구들의 자살과 이별로 팀은 와해되고, 생활인의 삶을 거부하는 남편마저 떠나버린다.

 

 그녀는 사랑하는 두 아이를 기르기 위해 현실 속에서 어머니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바로 산부인과 병동에서의 간호조무사 생활이다. 알몸으로 춤을 추던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과 육체는 꽉 끼는 분홍빛 유니폼 속에 가둬졌고, 매일 반복되는 과중한 업무와 비인간적인 병원의 관료주의적 시스템은, 그녀의 육체와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녀가 돌보는 각 병실마다, 저마다 다른 여자들, 바로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아이를 낳은 여자의 숭고한 모성만을 알고 있다면 여기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기뻐하기 보다 놀라고 충격받고 당황해 하며 심지어 출산과 아이를 부정하고 싶어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여자들도 있다. 임신과 출산을 통해 여자들이 겪어야 하는 정서적 충격과 고통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섬세하게, 표현해내다니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여자도 어머니이기 이전에 여리고 나약한 인간임을. 그러나 그것을 힘들게 넘어서 어머니라는 자리로 가는 감동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유리처럼 쉽게 깨지면서도 강철보다 더 단단한 것이 '어머니'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이 책의 번역자는 늘 현실의 삶을 힘겨워하고 소통하지 못하고 절망감을 느끼던, 그녀가 좀 더 씩씩하게 현실 속에 뿌리를 내리고 당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다지만, 나는 그 반대의 생각을 했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이 모두 같은 영혼의 강도를 지닌 것은 아니다. 절망감을 이기고 현실 속에서 건강한 삶을 살 수도 있지만, 자유롭지 않으면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녀가 간호조무사의 삶에서 마침내 벗어나 함께 공연했던 옛 동료를 만났을 때 그가 한 말,  

'당신은 애초부터 거기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었소. 베아트리스, 난 당신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소.'

이 말을 들으며 나도 그녀와 함께 안도했다.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늘 그들이 추구했던 삶

'서서히 꺼져가기 보다는 한 번에 뜨겁게 타오르는 삶이기를...'

 

 음악과 춤에 대한 활활 불타오르는 열정과 자유라는 양날개를 달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 여자를 넘어서 자아를 찾아가는 한 인간의 삶을 향해 훨훨 날아올라 주기를 바라본다.

 

 

 아름답고 고혹적인 책을 나눔해 준 '별반디' 님과 '북이십일 아르테 출판사'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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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 조선 화가들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삶
이일수 지음 / 시공아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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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가볍게 여인의 귀밑 솜털을 건드리며 속삭인다. 

'오늘은 스님이 오시지 않아요. 제가 스님이 계신 절이 있는 산을 지나왔기에 잘 안답니다.'

그러나 여인은 귀를 닫은 듯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왼종일 하염없이 송낙의 임자를 가슴으로 기다리고 몸으로 기다린다.

 

 스님을 짝사랑하는 기생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신윤복의 <기다림>이란 그림에 내 마음을 이렇듯 얹어보았다.

 

 꼬물대는 새끼강아지 세 마리를 품고 젖을 물리는 어미개의 눈동자에서는 강한 모정뿐만 아니라 자긍심까지 느껴진다.

'사람들아, 나 좀 보소. 이렇게 예쁜 놈들을 내가 낳았고 기르고 있소.'

그 눈빛에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이 겹쳐진다.

 

 어미개와 새끼 세 마리를 그린 이암의 <모견도>란 그림에 또 내 마음을 얹어보았다.

 

 '나 윤두서, 아직 죽지 않았소.'

앙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매, 올올이 일어서 있는 수염이 화가의 꿋꿋한 자존심을 보여주는 <자화상>이란 그림에서 윤두서가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요, 그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선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이 필요하지요.'라고 답을 해보았다.

 

 이처럼 그림에 책처럼 풍부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줄, 마음이 깃들어 있는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그림은 그저 시각적인 감상의 대상이었고 그것마저 정해진 틀 속에서만 보도록 교육받은 세대였다. 서양화는 사조로써 분류되었고, 동양화는 우리 조상들이 그린 그림, 산수화 정도로 인식하는 잘못된 미술교육이 낳은 부작용이었다. 그나마 김홍도의 그림에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유홍준의 <화인열전>으로 우리 조상들의 그림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 <그림에 마음을 놓다> <당신도 그림처럼>등의 대중을 위한 미술 안내서적에서는,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고 느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림을 보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더하는 묘미를 맛볼 줄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에는 주로 서양화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들을 읽다가 만나게 된 <옛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에 관한 감상법을 풀어놓은 책이다.

 

 우리가 엄격한 규율과 법도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 성리학을 최고의 지상 가치로 여기고 절제를 미덕으로 아는 사대부들이 이끌어 간 시대. 그림하면 산수화나 사군자가 바로 떠오르는 문인화의 시대.

 

 그 조선시대에도 희노애락을 느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노라고, 그들의 웃음과 눈물과 땀방울을 그림으로 그렸노라고, 이 책은 마치 우리의 잘못된 인식에 항변하듯 짙은 사람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화가들부터 생소한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화가들의 면면과 그림들. 거기에 깃든 풍성한 이야기들을 때로는 조곤조곤 때로는 엄숙하게 때로는 웃음이 터지게 지루할 틈이 없이 재미나게 들려준다.

 

 소설처럼, 시집처럼, 푹 빠져 읽다보면 많은 지식도 얻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대표작 이외의 그림들, 중국미술이 조선에 끼친 영향, 그림을 그리는 기법, 그림이 그려진 당시의 역사적 배경, 민중들의 삶의 모습 등 미술서와 역사서와 에세이의 역할을 모두 훌륭히 소화해 낸 멋진 책이다.

 

 우리 조상들에게도 자유로운 예술혼과 불타오르는 창조성과 창의력이 있었음을 가르쳐 준 책.

 

 '우리 옛그림을 감상하는 행위란, 결국은 그 사건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지적유희의 과정이면서, 또한 오늘과 다를 바 없이 역동적인 시대를 살아간 고뇌의 공유다.'

조선시대는 오늘 날 우리의 삶과 다름없이 하루하루 인간 군상들의 역동적인 삶이 펼쳐졌고, 거기서 만들어진 수많은 이야기들과 감정을 공감하고 공유하라고 자꾸만 손짓한다.

 

 남성위주의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여성에게 눈을 돌릴 줄 알았던 남자, 신윤복.

 여성의 섬세하고 여린 자아를 느끼고 읽어내고 그것을 붓끝으로 표현해주었던, 신윤복.

 인간의 욕망을 과감하고 솔직하게 춘화로 표현했던, 신윤복.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아름답고 고맙다

 

 조선시대 화가들과 그림에 새록새록 애정이 돋아난다

 

 또 어떤 그림에 나의 마음을 얹어 볼까,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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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비즈니스 - 화이트 독 카페 창업자 주디윅스가 전하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자연훼손으로부터 벗어나 모두가 잘 사는 방법!
주디 윅스 지음, 박여진 옮김 / 마일스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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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사람이 좋다.

여기서의 아름다움은 단언코 외모의 기준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고 , 타인과 사회를 위하여 애쓰고 봉사하며 그 향기를 퍼트릴 줄 아는 사람들. 그동안 생각했던 아름다운 사람들은 대부분 성직자나 의사, 시민운동가, 봉사자들이었다. 그 중에 기업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성기업가 한 명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기업은 이윤추구가 최고와 최선의 유일한 목적이며, 목적달성을 위해 펼쳐지는 비즈니스는 상대를 짓밟고 이겨야만 내가 살아남는 전쟁터라고 생각했다. 그 전쟁이 너무 살벌하고 치열해지다 못해 자본주의 경제라는 거대괴물이 쓰러지고 말리라는 추측들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여기, 비즈니스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아름다운 인간관계임을 주장하고 몸소 실천해보인 아름다운 여성기업가 주디 윅스가 있다.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생생하게 체험하는 삶을 추구했던 그녀는 198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낡은 건물 1층에 화이트 독 카페를 차렸다. 그녀는 그 지역의 땅에서 농부들이 거둔 신선한 유기농 과일과 채소들 그리고 학대받지 않고 인도적으로 길러진 식재료들만을 이용해 요리를 내놓았다. 요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자기 지역의 농산물을 애용하자는 로컬푸드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식단에 대한 신념으로 시작했던 그녀의 행보는 곧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로 확대 되었다. 글로벌 경제체제 속에서 다국적기업과 거대기업만이 더 발전하고 살아남는 현실 속에서, 작은 지역경제를 올바로 추구할 때 모두가 함께 살아 남을 수 있고 , 이는 곧 세계평화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자본의 논리에 지배 받지 않는 인간적인 비즈니스, 바로 뷰티풀 비즈니스를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 중심의 기업들이 지역주민과 공동체를 이루어 건강한 존립을 이루어나가는 '지역 생활 경제를 위한 비즈니스 연합'(발리)을 공동 설립하여 건강하고 공정한 삶을 뒷받침해주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한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그녀가 이러한 이타적 비즈니스를 펼친다고 해서 자신의 사업에 소홀했거나 적자를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이트 독 카페는 미국의 유수한 레스토랑 중의 한 곳이 되었고, 연간 총 매출액 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절대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같았던, 인간적인 비즈니스와 이윤을 추구하는 비즈니스가 마침내 하나로 합처져, 이윤을 내면서도 인간을 배려하는 경제 시스템 창조라는 새로운 경제 모형을 성공적으로 제시해 준 것이다.

 

 이 책에는 주디 윅스의 말괄량이 소녀시절부터 중년을 지나, 백발에 지혜가 가득한 회색빛 눈동자를 지닌 주디 윅스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삶의 과정과 노력과 땀과 고뇌가 담겨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만 집중할 때 주변으로 눈을 돌리고, 용기와 사랑과 열정으로 필라델피아의 작은 식당에서 시작해 지역으로 도시로 국가로 키워나간 뷰티풀 비즈니스의 힘.

 

 이윤 이전에 환경과 인간적 윤리와 건강한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이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노력한 수십 년간의 여정이 담겨 있어 ,많은 배울 점과 생각할 점을 제시해 주는 알찬 책이었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여느 기업가들과 다른 길을 걸어 온 그녀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가치관일 것이다. 이윤만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물들지 않고 생명과 자연과 지역에 대한 사랑, 소중한 것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려는 신념, 나와 더불어 우리 모두를 위하고 보살피는 포용력, 이런 그녀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그녀를 아름다운 사람의 반열에 올려 놓았을 것이다.

 

 무엇을 하는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느냐가 바로 자신의 가치를 결정한다.

 

 멋진 그녀의 미소에서

 바로 그 가치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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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 - 34살 영국 여성, 59일의 남극 일기
펠리시티 애스턴 지음, 하윤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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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사람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쯤 혼자만의 치유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한다. 카페에서의 차 한 잔과 책 한 권, 숲속 오솔길의 호젓한 산책, 해변에 앉아 바라보는 일몰의 바다, 산사의 마루에 앉아 들어보는 풍경소리. 그러나 그 어디에도 진정한 혼자는 없다. 어딜가서 무얼해도 주위에는 누군가가 아니 적어도 생명을 지닌 무언가가 있다. 하다못해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이라도 -.

 

 내 자신 이외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 곳, 생명의 호흡이라고는 자신이 내뿜는 숨소리뿐, 생명의 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텅 빈 공간에서 혼자 고립된다는 것은 바로 절대고독과 마주해야한다는 뜻이다.

 

 오로지 내가 나에게만 의존하며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냉엄한 현실. 내면이 공포와 외로움으로 가득차 죽을듯이 힘들어도 스스로 다독이고 이겨내야 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과감히 자신을 던져넣은 여성 탐험가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고 그것을 뛰어넘고 싶은 도전의식에 사로잡힌다.

 

 '지난 원정 경험을 되돌아보니 분명 주위 사람들에게서 늘 동기와 회복력을 얻곤 했다. 힘든 시기마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은 팀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깨달음 덕분이었다. 이제 나 혼자가 되면 무엇이 날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줄까? 모든 근육과 뼈가 포기하기를 원할 때 무엇이 나를 계속 나아가도록 자극할까?'(p42)

그리하여 그녀는 중앙에 남극점이 위치하고 전반적으로 둥근 모양인 남극대륙 횡단을 시도한다.

 

 그동안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은 평범한 인간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히어로 즉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남다른 면모를 지닌 강인한 여성 그 자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프롤로그에서부터 당혹감을 맛보고 말았다. 그녀를 남극대륙으로 실어온 비행기가 떠나자 마자 그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무릎을 꿇고 우는 일이었다. 그녀는 미칠 듯한 공포와 불안감으로 인한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눈밭에 눈물방울을 뚝뚝 흘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내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다. 엄청나고 대단한 탐험기를 읽기위해 긴장되고 경직되던 신경들이 편안해지며, 비로소 진심으로 함께 동행할 마음의 준비가 갖춰졌다는 신호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세계 최초의 여성 단독 남극 대륙 횡단에 성공한 영국여성 펠레시티 에스턴의 탐험기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한점 미약한 존재로 육체와 정신의 시련을 견뎌낸 인내의 기록이다. 또 한 가지 이 책의 매력은 그녀의 글솜씨이다. 탐험길이 계속되는 동안 이어지는 외부 풍경에 대한 세밀하고 멋진 묘사는 마치 잘 만들어진 다큐 영상을 보고 있는 듯이 눈앞에 남극의 풍경이 펼쳐지게 해주었다. 진솔하고 섬세한 내면 풍경에 대한 묘사는 절대고독을 맛보는 그녀의 한없이 나약하면서도 한없이 강인한 자아에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59일 동안 사투를 벌이며 세상의 끝을 홀로 횡단하고 그녀가 얻어온 것은, 바로 풍부해지고 강인해진 정신의 고양이었다. 삶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도 아름다운 색을 덧입힐 수 있게 되고, 내면은 새로운 확신과 자신감, 단호한 평정심으로 가득차게 된다. 아울러 자신이 삶에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과 이해를 하게 되었고 자연과도 깊은 교감을 하게 된다.

 

 혹독한 환경의 세상의 끝에 홀로 서서 모든 시련을 이기고 돌아온 그녀의 가슴 벅찬 행보에 경의와 찬사를 보낸다.

 

 영웅의 자질을 가져서가 아니라 단지 남보다

'조금 더 '용감하고, 인내하고, 도전하는, 하루하루를 보냈기에 이룰 수 있었던 꿈

 

 그 '조금 더'의 에너지를 이어받아

 우리의 꿈도 얹어보라고

 그녀의 두 눈동자가 지금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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