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다
쥘리 보니 지음, 박명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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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바다 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다니노라면 형형색색 자신만의 모양과 빛깔로 자신만의 속울음을 토해내는 수많은 책들을 만난다. 그것은 때로 태곳적부터 해저에 엎드려있는 묵직한 바위같기도 하고, 때로 물결에 몸을 내맡기고 부드럽게 흔들리는 수초같기도 하고, 때로 희미하게 비쳐드는 한 줄기 햇살같기도 하다. 또 때때로 그것은 수백 킬로 거리를 두고 저 멀리서 날아오는 돌고래들의 음파같기도 하다. 그 중에 이 책은 너무나 예뻐 성큼 손을 뻗어 집었다가 날카롭게 손을 베이고 마는 영롱한 조개껍질 같은 책이다.

 

 책의 외양이 너무 아름다워 외출 시 손에 들고 다니고 싶은 책. 그 속에 담긴 한 여자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영혼의 내면의 기록이자, 너무나 섬세하고 감각적이라 독자의 가슴에 피를 흘리게 하는 날카로운 비수 같은 글이다.

 

 길 위의 삶을 살며 순회공연을 하는 뮤지션들을 만나고, 그 중 바이올린 연주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후 그녀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댄서가 되어 그 속에서 한없는 충족감과 행복을 느낀다.

 

 무대 위에서 음악에 맞춰 알몸으로 춤을 추는 순간, 그녀의 자아는 한없이 자유롭게 고양되며 육체와 영혼이 합일되는 완벽한 순간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함께 공연을 다니던 친구들의 자살과 이별로 팀은 와해되고, 생활인의 삶을 거부하는 남편마저 떠나버린다.

 

 그녀는 사랑하는 두 아이를 기르기 위해 현실 속에서 어머니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바로 산부인과 병동에서의 간호조무사 생활이다. 알몸으로 춤을 추던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과 육체는 꽉 끼는 분홍빛 유니폼 속에 가둬졌고, 매일 반복되는 과중한 업무와 비인간적인 병원의 관료주의적 시스템은, 그녀의 육체와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녀가 돌보는 각 병실마다, 저마다 다른 여자들, 바로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아이를 낳은 여자의 숭고한 모성만을 알고 있다면 여기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기뻐하기 보다 놀라고 충격받고 당황해 하며 심지어 출산과 아이를 부정하고 싶어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여자들도 있다. 임신과 출산을 통해 여자들이 겪어야 하는 정서적 충격과 고통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섬세하게, 표현해내다니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여자도 어머니이기 이전에 여리고 나약한 인간임을. 그러나 그것을 힘들게 넘어서 어머니라는 자리로 가는 감동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유리처럼 쉽게 깨지면서도 강철보다 더 단단한 것이 '어머니'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이 책의 번역자는 늘 현실의 삶을 힘겨워하고 소통하지 못하고 절망감을 느끼던, 그녀가 좀 더 씩씩하게 현실 속에 뿌리를 내리고 당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다지만, 나는 그 반대의 생각을 했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이 모두 같은 영혼의 강도를 지닌 것은 아니다. 절망감을 이기고 현실 속에서 건강한 삶을 살 수도 있지만, 자유롭지 않으면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녀가 간호조무사의 삶에서 마침내 벗어나 함께 공연했던 옛 동료를 만났을 때 그가 한 말,  

'당신은 애초부터 거기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었소. 베아트리스, 난 당신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소.'

이 말을 들으며 나도 그녀와 함께 안도했다.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늘 그들이 추구했던 삶

'서서히 꺼져가기 보다는 한 번에 뜨겁게 타오르는 삶이기를...'

 

 음악과 춤에 대한 활활 불타오르는 열정과 자유라는 양날개를 달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 여자를 넘어서 자아를 찾아가는 한 인간의 삶을 향해 훨훨 날아올라 주기를 바라본다.

 

 

 아름답고 고혹적인 책을 나눔해 준 '별반디' 님과 '북이십일 아르테 출판사'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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