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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 - 34살 영국 여성, 59일의 남극 일기
펠리시티 애스턴 지음, 하윤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사람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쯤 혼자만의 치유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한다. 카페에서의 차 한 잔과 책 한 권, 숲속 오솔길의 호젓한 산책, 해변에 앉아 바라보는 일몰의 바다, 산사의 마루에 앉아 들어보는 풍경소리. 그러나 그 어디에도 진정한 혼자는 없다. 어딜가서 무얼해도 주위에는 누군가가 아니 적어도 생명을 지닌 무언가가 있다. 하다못해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이라도 -.
내 자신 이외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 곳, 생명의 호흡이라고는 자신이 내뿜는 숨소리뿐, 생명의 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텅 빈 공간에서 혼자 고립된다는 것은 바로 절대고독과 마주해야한다는 뜻이다.
오로지 내가 나에게만 의존하며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냉엄한 현실. 내면이 공포와 외로움으로 가득차 죽을듯이 힘들어도 스스로 다독이고 이겨내야 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과감히 자신을 던져넣은 여성 탐험가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고 그것을 뛰어넘고 싶은 도전의식에 사로잡힌다.
'지난 원정 경험을 되돌아보니 분명 주위 사람들에게서 늘 동기와 회복력을 얻곤 했다. 힘든 시기마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은 팀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깨달음 덕분이었다. 이제 나 혼자가 되면 무엇이 날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줄까? 모든 근육과 뼈가 포기하기를 원할 때 무엇이 나를 계속 나아가도록 자극할까?'(p42)
그리하여 그녀는 중앙에 남극점이 위치하고 전반적으로 둥근 모양인 남극대륙 횡단을 시도한다.
그동안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은 평범한 인간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히어로 즉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남다른 면모를 지닌 강인한 여성 그 자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프롤로그에서부터 당혹감을 맛보고 말았다. 그녀를 남극대륙으로 실어온 비행기가 떠나자 마자 그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무릎을 꿇고 우는 일이었다. 그녀는 미칠 듯한 공포와 불안감으로 인한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눈밭에 눈물방울을 뚝뚝 흘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내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다. 엄청나고 대단한 탐험기를 읽기위해 긴장되고 경직되던 신경들이 편안해지며, 비로소 진심으로 함께 동행할 마음의 준비가 갖춰졌다는 신호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세계 최초의 여성 단독 남극 대륙 횡단에 성공한 영국여성 펠레시티 에스턴의 탐험기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한점 미약한 존재로 육체와 정신의 시련을 견뎌낸 인내의 기록이다. 또 한 가지 이 책의 매력은 그녀의 글솜씨이다. 탐험길이 계속되는 동안 이어지는 외부 풍경에 대한 세밀하고 멋진 묘사는 마치 잘 만들어진 다큐 영상을 보고 있는 듯이 눈앞에 남극의 풍경이 펼쳐지게 해주었다. 진솔하고 섬세한 내면 풍경에 대한 묘사는 절대고독을 맛보는 그녀의 한없이 나약하면서도 한없이 강인한 자아에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59일 동안 사투를 벌이며 세상의 끝을 홀로 횡단하고 그녀가 얻어온 것은, 바로 풍부해지고 강인해진 정신의 고양이었다. 삶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도 아름다운 색을 덧입힐 수 있게 되고, 내면은 새로운 확신과 자신감, 단호한 평정심으로 가득차게 된다. 아울러 자신이 삶에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과 이해를 하게 되었고 자연과도 깊은 교감을 하게 된다.
혹독한 환경의 세상의 끝에 홀로 서서 모든 시련을 이기고 돌아온 그녀의 가슴 벅찬 행보에 경의와 찬사를 보낸다.
영웅의 자질을 가져서가 아니라 단지 남보다
'조금 더 '용감하고, 인내하고, 도전하는, 하루하루를 보냈기에 이룰 수 있었던 꿈
그 '조금 더'의 에너지를 이어받아
우리의 꿈도 얹어보라고
그녀의 두 눈동자가 지금 얘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