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가루 백년 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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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백 년 전 어느 봄 밤, 당신의 머리 위로 사뿐히 내려앉던 벚꽃 한 잎이 백 번의 봄을 지나 오늘 또 다른 당신의 머리 위로 살포시 떨어져 내린다. 그 순간 달빛은 더욱 고요히 빛나고 바람결에 출렁이던 호수의 물결마저 일렁임을 멈춘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벚꽃 잎에 실려 백 년을 건너 온 변치 않은 마음을 느끼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인간의 수명은 백 년을 살아내기가 힘들다. 요즘은 백세 시대라는 말을 종종 쓰지만, 대를 잇지 않고서는 백 년이란 시간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육신은 사라져도 백 년을 이어올 수 있는 비법은 단 하나 바로 '마음'이다.

 

 이미 <무지개 곶의 찻집> <당신에게>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위로와 온기와 감동의 눈물을 전했던 모리사와 아키오가, 이번에는 4대가 마음을 이어 가업을 계승해 가는 한없이 따스한 이야기 <쓰가루 백년식당>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가업을 계승한다고해서 대단한 성공담을 기대한다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여기에 거창하고 훌륭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가족같고 이웃 같은 사람들이 있어 더 애달프고 정감이 간다.

 

 일본 아이모리현 벚꽃이 유명한 쓰가루 지방에서 먹으면 마음이 따스해지는 메밀국수를 파는 오모리 식당. 메이지 시대의 초대 주인 오모리 겐지로부터 가업을 잇기를 희망하는 현대의 4대 오모리 요이치까지, 백 번의 봄이 찾아오고 벚꽃이 백 번을 피고 질 때까지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낡을 대로 낡아 빛이 바랜 포렴과 변함없는 국물 맛을 지켜온 것은, 바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의 연결된 마음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마음에 대해서 오모리 가족들이나 주변 인물들이 각자의 입장과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객관적인 제 3자의 입장에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여유롭게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오모리 식당의 4대 오모리 요이치와 여자 친구 쓰쓰이 나나미 두 청춘의 이야기가 주요 뼈대를 이룬다. 같은 고향의 선후배였으나 도쿄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 많은 젊은이들이 거치는 통과의례 즉 도시에서 자신의 화려한 꿈을 이루고 싶은 욕망과 귀향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한다. 공중에 떠다니는 잡고싶은 오색 빛깔 풍선과 두 발 딛고 살아가야할 현실 속에서 흔들린다. 두 사람은 수없이 오해와 갈등으로 마음 속 감옥을 짓고 허물며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그러나 당당하게 자신의 진심을 밀고 나아간다. 확실히 매듭짓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마무리되는 엔딩이 참으로 좋았다.

 

 자식의 꿈을 믿고 응원하는 아버지의 속 깊은 부정, 학창시절부터 오모리 식당의 계승이 자신의 꿈이었음을 깨닫는 아들의 효심, 이들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맑고 따스하고 유쾌한 인간미가 벚꽃보다 더 예쁘게 피어나는 소설이다.

 

 우리나라에 비해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일지라도 가업을 이어가는 전통이 살아있는 나라 일본, 내심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놀랍고 부러웠다. 그 비법은 가업에 대한 자부심과 장인 정신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서로를 이어가는 따스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단순하고 가벼운 이야기이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로 독자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일본 소설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다. 초등학생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쉬운 문체, 특별히 메타포가 뛰어나거나 문학성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독자를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백 년을 이어 온 메밀국수의 깔끔하고 구수한 국물 맛처럼, 깊고 순수한 진심이 수 백 그루 벚꽃처럼 만개하여 우리의 가슴에 꽃비를 내린다. 꽃잎들은 마침내 가슴속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덮어주며 꽃길을 만든다.

 

 한 권의 책이 주는 온기로 마음이 치유되고 딱지가 앉는 시간

 

 바람이 불어오는 저물녘, 벚꽃 잎이 흩날리고

 그 사이로 오모리 식당의 빛바랜 포렴이 세월처럼 펄럭인다

 

 백 년의 시간이 언뜻 한 순간인 듯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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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상길 옮김 / 책만드는집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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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촌철살인. 역사 속 수많은 현자들이 자신의 깨달음을 함축시킨 한 마디 말로 어리석은 인간들의 앞길을 밝혀주려 애썼다. 눈 앞의 안개를 걷어내 주고, 머릿속 어둠을 쫓아 내고, 가슴속 회오리 바람을 잠 재우며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등불을 밝혀 주었다. 그 속에 세계적인 대 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있다.

 

 눈 내리는 러시아의 추운 겨울 밤을 떠올려 본다. 어둠마저 얼어 붙어 끝내 아침이 올 것같지 않은 동토의 긴긴 밤. 창문에는 성에가 끼고 벽난로의 온기로도 데워지지 않는 한기속에서 오로지 문학을 향한 열정을 불사르며 세계적인 명작을 탄생시킨 톨스토이.

 

 대학 중퇴 후 고향에서의 농지 경영, 군대 생활의 경험을 거쳐 창작활동에 전념하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등의 걸작을 썼다.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톨스토이라는 이름과 작품명 정도는 한두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긴 세월을 건너 온 지금도 영화로 소설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가로만 알고 있던 톨스토이가 인생의 방향을 알려주는 책을 썼다는 것을 알고 깊은 사유가 담긴 철학서인 줄 알고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책은 인생전반에 대한 톨스토이의 사색을 담은 짧은 아포리즘들을 엮은 금언집으로 그의 철학관, 윤리관, 종교관등을 확인할 수 있다.

 

 총 12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처세, 행복, 시간, 사색, 교양, 정신, 일, 욕망, 사회, 시련, 이웃, 죽음에 대한 사유가 빛을 발한다. 소지하고 다니며 언제든 펼쳐볼 수 있도록 자그마한 판형과 책 전체를 채우고 있는 아름답고 다양한 사진들이 자칫 무겁고 지루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산뜻하고 현대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출판사의 새로운 시도와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절대로 한 번에 죽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금언 하나를 읽고 나면 추억도 떠오르고 반성도 되고 회한도 느껴지고 다짐도 생기기에, 힘들 때마다 어깨를 빌려주는 다정한 벗처럼 생각하며, 필요할 때마다 들춰보고 생각하고 깨달아야 되는 책이다.

 

 '불행은 누구의 잘못인가, 인간은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불행하다면 그것도 그 사람 자신의 잘못이다.'

 '사람들은 참으로 가엾은 존재다. 도덕이나 지혜의 순수함, 좋은 습관을 잃는 것은 잃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에 재산 , 가족, 아름다움, 건강, 세속적 명예를 잃을 때 귀한 것을 잃는 것으로 생각한다.'

 '모르는 것을 두려워 하지말라. 오히려 거짓된 지식을 두려워 하라. 이 세상의 모든 악은 그것에서 시작되느니.'

 '죽음에 대하여 두려워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죽음보다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자신의 행위와 처신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복과 불행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참된 지식의 중요성과 죽음을 향해 가는 삶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등등 읽을수록 탄성이 나오고 눈 앞이 밝아지는 주옥같은 글들이 깨달음의 공간으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

 

 그러나 이처럼 인생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한 그마저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인간으로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인생의 의미다. 스스로 학문이 높다고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산다. 그들의 주장은 신도 삶도 하등의 의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 자신의 어깨와 등을 짓누르는 짐을 짊어지고 뚜벅뚜벅 걸어갈 때, 이 책이 시원한 그늘과 차가운 샘물과 반짝이는 북극성의 역할을 해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19세기에 쓰여진 글이 세월의 더께속에서도 빛이 바래지 않고 21세기의 오늘, 우리의 가슴을 두드린다. 그것이 바로 글의 힘이다.

 

 그 속에서 각자 자기 인생의 참된 의미를 탐색해 보자.

 

 정답은 없지만 의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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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목적 - 네 번의 삶.단 하나의 사랑
W. 브루스 카메론 지음, 이창희 옮김 / 페티앙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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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나. 가을이의 이야기

 

 구 년 전 어느 가을 밤, 나는 길 잃은 한 마리 떠돌이 개였다. 매일 코끝에 와 닿는 대기가 점점 차갑게 메말라 가고 있었고 마른 나뭇잎들이 점점 더 많이 길 위에 뒹굴기 시작했다. 처음 열려진 현관 문틈으로 집을 나올 때는 잠깐만 밖을 돌아보고 오겠다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아파트라고 부르는 곳에서 살았던 나는 늘 바깥 세상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생일대 최고의 실수였다.

 

 처음엔 좀 무서웠지만 길다란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밖으로 나온 나는 처음하는 세상 구경이 너무 신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기분좋게 따스하고,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등에 가방을 진 사람들이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웃고 떠들며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들도 자주 보였다. 그걸 보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때가 바로 사람들이 좋은 계절 '가을'이라고 말하는 때였다.

 

 한참을 신 나게 돌아다니던 나는 날이 어두워지고 배도 고프고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너무나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온 사방을 둘러봐도 똑 같은 창문을 가진 수 많은 건물들 뿐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묻혀두고 온 체취를 따라 방향을 잡아보려 했지만 밀려드는 수 천 수 만 가지의 낯선 냄새 속에서 나의 흔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고 견디며 거리를 아무리 떠돌아 봐도 보이는 건 똑 같은 창문을 가진 아파트들 뿐이었다. 나는 도대체 저 많은 창문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 중 어느 것이 내 집안을 비추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때로는 길에 고인 물을 마시기도 하고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던져주는 빵 조각을 먹기도 했다. 대부분의 날들을 굶으며 지내다 보니 내 몸은 점점 야위어 갔고 악취마저 풍기기 시작했다.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눈쌀을 찌푸리고 피해가려고 했다.

 

  그러다 바로 운명처럼 그 날 밤이 왔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잠자리를 찾느라 한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던 내 옆을, 한 부부가 스쳐지나 갔다. 나도 삼 년 정도 세상을 살면서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는 눈과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부부라고 부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부부 중 여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세상에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안녕" 집을 잃은 후 처음을 들어보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너무나 지쳐있던 나는 순간 한없이 따스한 평화를 느꼈다. 밀려드는 행복감에 망설일 사이도 없이 나는 처음보는 여자의 품속으로 뛰어올랐다. 여자는 순간 당황했지만 유쾌하게 웃으며 나를 꼭 안아주며 눈을 맞춰주었다. "너 눈이 정말 예쁘구나"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의 몰골을 보고 집 잃은 개임을 알아 챈 부부는 여기저기 다니며 주인을 찾아주려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부부는 이미 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기에 나를 거두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부담을 느끼는 듯 했지만 유기견 센타, 안락사, 그런 말들을 주고받더니 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했다. 아마도 매력적인 내 눈동자와 처음부터 대소변을 가리는 나의 의젓함이 한몫을 했음이 틀림 없다.

 

 부부는 기르고 있던 개를 나에게 콩쥐 언니라고 소개시켜주었다. 콩쥐가 이름인 건 알겠는데 언니는 무슨 뜻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나를 가을에 만났다고 가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 고민없이 내 이름을 짓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나는 그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콩쥐 언니는 나를 그리 반겨주지는 않았지만 나를 싫어하지도 않고 받아들여 주었다. 나는 그것이 고마워서 내 등을 누르고 타고 다녀도 참아주었다. 때로는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응징을 해버릴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것이 나를 받아들여 준 언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아줌마라 부르라는 여자는 우리 둘을 한없이 사랑하고 예뻐해 주었다. 늘 우리를 보는 시선에는 사랑과 기쁨이 넘쳐흘렀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었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말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그 눈빛 그 목소리가 너무 좋아 듣고있으면 행복감으로 온몸이 나른해졌다. 아저씨라 부르라는 남자는 우리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가르쳐 주었고 늘 콩쥐 언니가 무엇이든 먼저라는 걸 내게 주지시켰다. 나는 곧 뭐든 콩쥐 언니가 하는 대로 따라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언니가 부리는 여러 가지 재주만은 왠지 절대 따라할 수가 없어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내가 그런 걸 잘 못해서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언니와 나는 서로 몸을 둥글게 말아 밀착시켜 태극문양을 만들어 자는 걸 즐겼다. 부부는 늘 나보다 콩쥐언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별 불만없이 하루하루를 평안하게 살았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이 흘렀고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 가을 어느 날, 콩쥐언니는 내 곁을 떠났다. 털이 빠지고 소리를 잘 듣지 못하더니 언제부턴가 거실바닥에 자주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걱정하며 자주 울기 시작했다. 일주일 째 밥을 조금씩밖에 먹지 못하고 아줌마가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을 챙겨주어도 잘 먹지 못하던 언니는 결국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뒷다리에 힘을 잘 주지 못했을 뿐 아파하지도 않았는데 언니는 그렇게 하늘에 별이 되었다고 아줌마가 말해주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아줌마의 눈물을 보고 이제 콩쥐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줌마는 언니의 이름을 부르면 자주 울었지만 나를 더 많이 걱정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니가 떠난 그날부터 당장 나의 잠자리는 거실에서 방으로 옮겨졌고 아줌마는 내가 언니를 잃은 상실감에 혹시 슬퍼할까봐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나도 물론 언니가 그리웠다. 날이 갈수록 언니의 냄새가 희미해지는 것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줌마와 아저씨 아니 지금은 엄마와 아빠라고 말해주는 내 삶의 목적이 되는 존재들이 있다. 엄마와 아빠라는 말이, 그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사랑을 담은 표현이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꼬리치며 반겨만 주어도, 밥만 잘 먹어도, 배변판에 배설만 하고와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안아주고 어루만져 주는 엄마와 아빠.

 

 그때 그들에게선 어떤 경우에도 나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며 끝까지 사랑할 것이라는 끝없는 신뢰의 냄새가 넘쳐흐른다. 나 또한 내 마지막 호흡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함께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목적임을 알고 있다.

 

 

 둘. 나의 이야기        

                                                                         

 개를 키워보지 않았을 때는 그저 짖어대는 동물로만 생각했고 직접 키우면서 처음에는 글자 그대로 애완견, 사랑스런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개들은 예전에 절대 경험해 볼 수 없었던 강렬하고 감동적인 무언가를 안겨주었다. 눈빛과 몸짓으로 서로 소통되고 교감될 때의 놀라움과 기쁨, 어떤 순간에도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고 사랑받기를 원하고 믿고 따르는 놀라운 충성심,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그들에게 준 사랑보다 그들로부터 내가 더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내가 때로 야단치고 혼내는 그 순간마저도 그들은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마지막까지 그러할 것임을.

 

 그동안 두 마리의 개를 키우면서 관련 책들에 관심이 갔고 <말리와 나> <개>같은 책들을 감명깊게 혹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책처럼 나를 사로잡은 책은 없었다. 나 또한 언젠가는 개들의 관점에서 바라 본 우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윤회를 통해 네 번의 삶을 가지는 개의 이야기라니 그 놀라운 창의적인 발상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나라로 간 콩쥐가 그리워서 곁에 있는 가을이의 심리를 생각하며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이 책은 개의 이야기를 빌어 우리의 삶의 목적을 묻는 듯 하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더라도 잊지 못하는 사랑, 그 한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개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우리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성찰해 보게 한다. 나는 내 곁의 사람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주고 있는지 또 그런 사랑을 받고 있는지 되돌이켜 보고, 오늘 당장 더 많이 사랑하고 표현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개와 함께하는 또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삶의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재미와 감동으로 깨움침을 준 이 책에 대한 헌사로, 나도 같이 살고 있는 '가을'이란 개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써 보았다. 인간의 입장에서만 개를 이해하고 판단하지 않고 개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려는 시도를 한 점이 가장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상대가 인간이든, 개든, 고양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 하는 생명체와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삶에 있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구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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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마음속 108마리 코끼리 이야기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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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피가 흐른다 태양마저 두려워 숨어버린 하늘, 뿌리채 뽑혀 나뒹구는 나무들, 금이 가고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 진흙탕 위에 무수히 어지럽게 깊게 패인 큰 발자국들. 그 위로 어둠이 비처럼 내리는데 왼종일 미친 듯 날뛰던 술 취한 코끼리는 아직도 모자라는지 내 마음속 거리 한 모퉁이에서 여전히 좌충우돌하며 암울한 울음을 운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면 인생의 내면을 궤뚫는 혜안이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고 나에게 닥쳐오는 일들과 다가오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어루만질 수 있는 부드럽고 따스하고 고요한 마음결을 지니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해가 거듭될수록 고집과 편견, 오만과 탐욕의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그 무게가 무거워 등이 휘면서도 억지로 버티는 어리석은 나무가 되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의 집의 크기에 따라 코끼리를 키운다. 크기만 다를 뿐 코끼리가 없는 사람은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코끼리도 따라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면 코끼리도 그제야 바닥에 몸을 부려 눕는다. 어떤 날은 잠결과 꿈길마저도 사정 없이 짓밟는다. 우리의 마음속에 욕망과 두려움과 분노와 고통의 몸집을 가진 코끼리가 주인으로 살고 있는 한 마음의 평화는 없다.

 

 생명의 탄생은 곧 죽음의 선고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삶이 영원히 지속 될 것 같은 즐거운 망상에 빠져 살며 매 순간 욕망의 노예가 되어 크고 작은 고통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책은 삶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108가지 부정적인 생각을 걷어내고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이다.

 

 저자 아잔 브라흐마는 놀랍게도 영국인이며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 태국으로 건너와 위대한 스승 아잔 차의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되었다. 그가 스승과의 일화, 자신의 경험담, 이야기, 농담, 법문등 108가지를 모아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의 몸, 마음, 영혼을 위한 안내서를 펴낸 것이다.

 

 코끼리는 마음의 상징으로서 코끼리에 끌려 다니지 말고 자신이 그 코끼리의 주인이 되라고 한다.

 '진정한 만족은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마음으로 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욕망의 자유가 아니라 욕망으로 부터의 자유이다.'

 '진정으로 내려 놓는다면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그때 당신은 이미 코끼리 등위에 올라 앉아 있다. 이것은 깨달음의 아름다운 순간이다.'

 

 처음에는 난해한 불교 사상이 담긴 불교 서적이 아닐까 싶어 걱정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읽는 내내 미소를 떠올렸다. 꼭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솜씨 좋은 스토리텔러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다보면 적어도 술 취한 코끼리에게 끌려다니지 말고 코끼리를 길들이고 마지막엔 그 코끼리마저 놓아버려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이해는 되니 다행이다.

 

 하지만 이해했다고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 혹시라도 술 취한 코끼리를 길들여야겠다는 욕망이 내 마음에 고통의 돌 하나를 더 얹는 건 아닌지 염려도 된다. 그러나 고통은 거부하지 않고 통제하려는 마음마저 내려 놓을 때 고통은 완전히 사라진다고 말한다.

 

 '내려 놓으라'

 '고통이여, 네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하든 내마음의 문은 너에게 열려있다. 안으로 들어오라.'

매일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놓아버리려는 시도, 비록 찰나일지라도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느껴보자.  내 마음의 코끼리가 점점 순해질 것이다.

 

 물론 코끼리와의 이별이 쉽진 않을 것이다. 

 내가 이끄는데로 따라만 와 주어도 좋은 주인이 될 수 있다.

 

 오늘은 코끼리가 햇살을 쬐며 초원을 기분 좋게 산책한다.

 

 등 위에 올라 앉은 나도 평화롭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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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 여전히 서툰 어른아이 당신에게 주고 싶은 다시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시 90편
신현림 엮음 / 북클라우드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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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때 시는 소녀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기도였고 잡을 수 없는 북극 하늘의 오로라처럼 신비로운 것이었다.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또는 기도처럼 왔는가

                               행복이 반짝이며 하늘에서 몰려와

                               해를 거두고 꽃피는 나의 가슴에 걸어온 것을

                               하얀 국화가 피어있는 날

                               그 짙은 화사함이 어쩐지 마음에 불안하였다

                               그날 밤늦게 네가

                               내 마음에 닿아왔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대 때 시는 삶의 목표였고 뜨거운 불덩어리였고, 아픈 생채기를 감싸주는 반창고였다가 끝내 실체없이 사라져간 사막의 신기루였다. 나이 스물이 넘어 처음 시의 세계에 발을 디뎠을 때 산문을 썼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정서적 충격을 느꼈다. 24시간 오로지 시만 생각한 날도 있었고 캄캄한 새벽 잠결에 문득 떠오른 시상이 달아날까 불을 켜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종이에 옮겨 적어보던 시를 향한 열정. 한때 나의 시가 나의 마음을 떠나 다른 이들에게 가 닿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그 열병은 오래가지 못했고 시는 나의 정신적 허영과 취미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시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하며 시와의 이별을 고했다. 기형도의 빈집에 나를 가두었다.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그리고 그 뒤로 오랫동안 시와 눈길을 맞추지 않았다. 너를 버린 것이 부끄러워서,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들킬까봐,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으로 마음이 흔들릴까봐, 스스로를 차단 시키고 살았다.

 

 참으로 긴 시간을 건너 마주하게 된 시선집, 제목이 가벼워서 표지가 예뻐서 다양한 시를 맛볼 수 있을 거 같아서 신청했다. 그러나 막상 받아들고는 왜그리 마음이 무거웠는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 방황하는 어른아이들에게 꿈과 열정을 살려주려고 엮었다는 신현림 시인의 말처럼, 그냥 읽고 위안받고 행복감을 느끼면 되는 것을. 아마도 책 속에 오래 전 시를 버린 내 모습이 있을까봐 다시 흔들릴까봐 두려웠나보다. 그래서 마치 만지면 안 될 물건이라도 되듯이 진저리치며 관심없는 척 여기 저기 뒤적이며 성의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시는 시였다. 한없이 슬프고 한없이 따스하고 끝없이 절망적이고 끝없이 희망적인 것.

 

 온 생의 고갱이들이 담겨있는 삶의 정수, 그 발 아래 엎드려 눈물 흘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시집을 읽는 행위는 내게 있어서 시와 화해하는 악수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비록 시에 내 모든 걸 다 바치지 못해도 여전히 시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 이제 그냥 그 품에 안겨 맛보고 즐기기만 해도 편안하리라는 것. 남은 생은 시의 품속에서 한가로이 놀아보고 싶다.

                                            

                                       술패랭이 꽃

 

 

                                  네 개의 꽃잎들은

                                  어쨌든

                                  아슴한 부채를 펼쳐들고

                                  양지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한 평생 놀아버리자

 

                                  이번 생은 아주 제껴버리자

  

                                  아빠, 저기로도 가보자

 

                                  아직도 어린 딸내미가

                                  그의 소매를 잡아 채 이끄는 것이었다

 

                                                                           이윤학

 

 

 문득 20대 때 썼던 짧은 자작시가 떠오른다

 

                                        

                                            손금

                                            

                                         접어 보고

                                         펼쳐 보아도

                                         팍팍한 산길

                                         내 유랑의 대동여지도 

 

                                                                                

 그때의 산길이 이미지로 그려낸 것이었다면, 이제는 온 몸과 가슴으로 삶은 가도가도 팍팍한 산길임을 안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가야하며 때때로 그늘도 시원한 물도 기다리고 있음도 안다.

 

 이제 시는 가 닿아야할 높은 목표가 아니라

 어루만져주고 쉬게 해주는 부드러운 손길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까지 물드는

 저물녘 바닷가 붉디붉은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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