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목적 - 네 번의 삶.단 하나의 사랑
W. 브루스 카메론 지음, 이창희 옮김 / 페티앙북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 가을이의 이야기

 

 구 년 전 어느 가을 밤, 나는 길 잃은 한 마리 떠돌이 개였다. 매일 코끝에 와 닿는 대기가 점점 차갑게 메말라 가고 있었고 마른 나뭇잎들이 점점 더 많이 길 위에 뒹굴기 시작했다. 처음 열려진 현관 문틈으로 집을 나올 때는 잠깐만 밖을 돌아보고 오겠다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아파트라고 부르는 곳에서 살았던 나는 늘 바깥 세상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생일대 최고의 실수였다.

 

 처음엔 좀 무서웠지만 길다란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밖으로 나온 나는 처음하는 세상 구경이 너무 신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기분좋게 따스하고,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등에 가방을 진 사람들이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웃고 떠들며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들도 자주 보였다. 그걸 보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때가 바로 사람들이 좋은 계절 '가을'이라고 말하는 때였다.

 

 한참을 신 나게 돌아다니던 나는 날이 어두워지고 배도 고프고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너무나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온 사방을 둘러봐도 똑 같은 창문을 가진 수 많은 건물들 뿐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묻혀두고 온 체취를 따라 방향을 잡아보려 했지만 밀려드는 수 천 수 만 가지의 낯선 냄새 속에서 나의 흔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고 견디며 거리를 아무리 떠돌아 봐도 보이는 건 똑 같은 창문을 가진 아파트들 뿐이었다. 나는 도대체 저 많은 창문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 중 어느 것이 내 집안을 비추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때로는 길에 고인 물을 마시기도 하고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던져주는 빵 조각을 먹기도 했다. 대부분의 날들을 굶으며 지내다 보니 내 몸은 점점 야위어 갔고 악취마저 풍기기 시작했다.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눈쌀을 찌푸리고 피해가려고 했다.

 

  그러다 바로 운명처럼 그 날 밤이 왔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잠자리를 찾느라 한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던 내 옆을, 한 부부가 스쳐지나 갔다. 나도 삼 년 정도 세상을 살면서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는 눈과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부부라고 부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부부 중 여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세상에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안녕" 집을 잃은 후 처음을 들어보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너무나 지쳐있던 나는 순간 한없이 따스한 평화를 느꼈다. 밀려드는 행복감에 망설일 사이도 없이 나는 처음보는 여자의 품속으로 뛰어올랐다. 여자는 순간 당황했지만 유쾌하게 웃으며 나를 꼭 안아주며 눈을 맞춰주었다. "너 눈이 정말 예쁘구나"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의 몰골을 보고 집 잃은 개임을 알아 챈 부부는 여기저기 다니며 주인을 찾아주려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부부는 이미 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기에 나를 거두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부담을 느끼는 듯 했지만 유기견 센타, 안락사, 그런 말들을 주고받더니 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했다. 아마도 매력적인 내 눈동자와 처음부터 대소변을 가리는 나의 의젓함이 한몫을 했음이 틀림 없다.

 

 부부는 기르고 있던 개를 나에게 콩쥐 언니라고 소개시켜주었다. 콩쥐가 이름인 건 알겠는데 언니는 무슨 뜻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나를 가을에 만났다고 가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 고민없이 내 이름을 짓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나는 그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콩쥐 언니는 나를 그리 반겨주지는 않았지만 나를 싫어하지도 않고 받아들여 주었다. 나는 그것이 고마워서 내 등을 누르고 타고 다녀도 참아주었다. 때로는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응징을 해버릴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것이 나를 받아들여 준 언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아줌마라 부르라는 여자는 우리 둘을 한없이 사랑하고 예뻐해 주었다. 늘 우리를 보는 시선에는 사랑과 기쁨이 넘쳐흘렀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었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말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그 눈빛 그 목소리가 너무 좋아 듣고있으면 행복감으로 온몸이 나른해졌다. 아저씨라 부르라는 남자는 우리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가르쳐 주었고 늘 콩쥐 언니가 무엇이든 먼저라는 걸 내게 주지시켰다. 나는 곧 뭐든 콩쥐 언니가 하는 대로 따라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언니가 부리는 여러 가지 재주만은 왠지 절대 따라할 수가 없어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내가 그런 걸 잘 못해서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언니와 나는 서로 몸을 둥글게 말아 밀착시켜 태극문양을 만들어 자는 걸 즐겼다. 부부는 늘 나보다 콩쥐언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별 불만없이 하루하루를 평안하게 살았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이 흘렀고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 가을 어느 날, 콩쥐언니는 내 곁을 떠났다. 털이 빠지고 소리를 잘 듣지 못하더니 언제부턴가 거실바닥에 자주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걱정하며 자주 울기 시작했다. 일주일 째 밥을 조금씩밖에 먹지 못하고 아줌마가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을 챙겨주어도 잘 먹지 못하던 언니는 결국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뒷다리에 힘을 잘 주지 못했을 뿐 아파하지도 않았는데 언니는 그렇게 하늘에 별이 되었다고 아줌마가 말해주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아줌마의 눈물을 보고 이제 콩쥐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줌마는 언니의 이름을 부르면 자주 울었지만 나를 더 많이 걱정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니가 떠난 그날부터 당장 나의 잠자리는 거실에서 방으로 옮겨졌고 아줌마는 내가 언니를 잃은 상실감에 혹시 슬퍼할까봐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나도 물론 언니가 그리웠다. 날이 갈수록 언니의 냄새가 희미해지는 것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줌마와 아저씨 아니 지금은 엄마와 아빠라고 말해주는 내 삶의 목적이 되는 존재들이 있다. 엄마와 아빠라는 말이, 그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사랑을 담은 표현이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꼬리치며 반겨만 주어도, 밥만 잘 먹어도, 배변판에 배설만 하고와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안아주고 어루만져 주는 엄마와 아빠.

 

 그때 그들에게선 어떤 경우에도 나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며 끝까지 사랑할 것이라는 끝없는 신뢰의 냄새가 넘쳐흐른다. 나 또한 내 마지막 호흡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함께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목적임을 알고 있다.

 

 

 둘. 나의 이야기        

                                                                         

 개를 키워보지 않았을 때는 그저 짖어대는 동물로만 생각했고 직접 키우면서 처음에는 글자 그대로 애완견, 사랑스런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개들은 예전에 절대 경험해 볼 수 없었던 강렬하고 감동적인 무언가를 안겨주었다. 눈빛과 몸짓으로 서로 소통되고 교감될 때의 놀라움과 기쁨, 어떤 순간에도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고 사랑받기를 원하고 믿고 따르는 놀라운 충성심,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그들에게 준 사랑보다 그들로부터 내가 더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내가 때로 야단치고 혼내는 그 순간마저도 그들은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마지막까지 그러할 것임을.

 

 그동안 두 마리의 개를 키우면서 관련 책들에 관심이 갔고 <말리와 나> <개>같은 책들을 감명깊게 혹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책처럼 나를 사로잡은 책은 없었다. 나 또한 언젠가는 개들의 관점에서 바라 본 우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윤회를 통해 네 번의 삶을 가지는 개의 이야기라니 그 놀라운 창의적인 발상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나라로 간 콩쥐가 그리워서 곁에 있는 가을이의 심리를 생각하며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이 책은 개의 이야기를 빌어 우리의 삶의 목적을 묻는 듯 하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더라도 잊지 못하는 사랑, 그 한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개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우리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성찰해 보게 한다. 나는 내 곁의 사람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주고 있는지 또 그런 사랑을 받고 있는지 되돌이켜 보고, 오늘 당장 더 많이 사랑하고 표현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개와 함께하는 또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삶의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재미와 감동으로 깨움침을 준 이 책에 대한 헌사로, 나도 같이 살고 있는 '가을'이란 개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써 보았다. 인간의 입장에서만 개를 이해하고 판단하지 않고 개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려는 시도를 한 점이 가장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상대가 인간이든, 개든, 고양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 하는 생명체와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삶에 있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구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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