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벙 다음은 파도 창비시선 523
오산하 지음 / 창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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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하의 첫 시집 첨벙 다음은 파도는 재난과 종말의 이미지를 통해 오히려 지금 여기의 삶을 또렷하게 비추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종말은 끝이 아니라 감각의 출발점이며, 죽음은 삶을 밀어 올리는 또 하나의 힘으로 작동한다. 


전쟁, 기후위기, 사고와 파멸 같은 장면들이 반복되지만 시는 결코 비관에 머무르지 않는다. 첨벙 다음은 파도 라는 문장처럼, 세계는 계속 움직이고 질문은 남는다. 오산하는 냉소 대신 유머와 리듬을 택하고, 절망 대신 언어를 붙잡는다. 야광 인간, 잠수부, 빈 병 같은 기묘한 이미지들은 일상의 불안을 낯설게 변주하며 우리가 이미 재난의 시대 한복판에 서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특히 “서로를 바깥으로 꺼내면서 걷자”는 반복되는 제안은 이 시집의 핵심 정서로, 무너진 세계에서도 연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첨벙 다음은 파도는 종말을 노래하면서도 끝내 삶을 선택하는, 기쁘게 망가진 세계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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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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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기억을 15세 소녀 요코의 ‘몸’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10년에 걸친 치열한 증언 청취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말로 다 담지 못한 고통과 침묵을 문학적 언어로 옮겼다. 


‘간단후쿠’라는 원피스형 옷은 단순한 복장이 아니라, 소녀들의 존재와 생존을 상징하며, 벗어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과 몸의 고통을 드러낸다. 요코와 동료 소녀들의 각기 다른 생존 방식, 내면의 상상과 갈등, 서로를 지탱하는 연대는 극한 상황에서도 개인의 존엄과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군표’를 모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장면 등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삶과 애착이 끊임없이 이어짐을 상기시킨다. 김숨은 단어 하나, 침묵 하나까지 세심히 다듬어 소녀들의 목소리를 살리고, 전쟁의 폭력과 상처를 현재와 연결된 기억으로 재현한다. 


간단후쿠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인간의 고통과 존엄을 깊이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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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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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작품"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소설이다. 주인공 이시봉은 인간이 아니라 반려견 비숑 프리제인데, 그와 함께 살아가는 청년 이시습의 상실과 성장 이야기가 교차하며 서사가 전개된다. 


소설은 개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을 오가며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눈물겹게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특히 브리딩 업체의 등장으로 이시봉이 '비숑의 왕'  혈통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야기는 개인의 상실을 넘어 가족사, 사회적 책임, 심지어 유럽 왕정사의 풍경까지 확장된다. 이기호 특유의 유머와 따뜻한 시선이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삶을 명랑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단순히 반려견을 키우는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인간과 동물의 공존, 사랑의 무게, 책임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이다. 울면서도 웃게 만드는 이 소설은, 투쟁 없는 삶이란 무엇인지 되새기게 하며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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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이야기
조예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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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의 세 번째 소설집  치즈 이야기는 여름이라는 계절의 끈적한 감각, 그리고 일상의 뒤편에 웅크린 잔혹한 환상들을 촘촘히 엮어낸 작품이다. 표제작 치즈 이야기부터 독자는 차가운 바닥 위에 놓인 치즈처럼, 부패와 숙성 사이 어딘가의 경계에 놓인 감정과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짜고, 달고, 역하고, 사랑스러운" 맛이라는 문장이 소설집 전체의 분위기를 압축한다.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불쾌하고 낯설면서도 끈덕지게 매혹적이다. 보증금 돌려받기는 주거 불안이라는 현실적인 공포 위에 도시의 섬뜩한 존재들을 겹쳐낸다.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강요되는 희생과 왜곡된 애정을 폭로하며, 관계의 본질을 묻는다. 반쪽 머리의 천사와 소라는 영원히는 삶과 죽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고, 두번째 해연과 안락의 섬은 기억과 존재, 사랑의 지속 가능성을 섬세하게 탐구한다.


조예은은 언제나 장르적 상상력을 현실의 아픔과 접붙이는 데 능하다. 그녀의 인물들은 절망 속에서도 묘하게 사랑스럽고, 무너져가는 세계 안에서도 끝내 자신을 재구성한다. 상처 입고, 썩어가며, 그러나 결코 정체되지 않는 존재들.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치즈’다.


치즈 이야기는 조예은 특유의 잔혹동화 같은 세계관 속에서도, 삶의 가장 깊은 곳에 스며 있는 감정과 기억을 포착하는 예리한 감각이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여름의 습기처럼 끈적이지만, 한 편 한 편을 다 읽고 나면 오히려 속이 시원해지는 기묘한 체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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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한강을 읽는 한 해 (주제 2 : 인간 삶의 연약함) - 전3권 - 바람이 분다, 가라 +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내 여자의 열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을 읽는 한 해 2
한강 지음 / 알라딘 이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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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폭력성, 그리고 해방에 관한 치열한 문학적 탐구다. 이 소설은 '영혜'라는 한 여성이 육식을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세 인물(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흥미롭게도 주인공 영혜는 단 한 번도 자기 목소리를 직접 내지 않으며, 주변 인물들의 서술을 통해서만 그녀의 내면과 변화가 드러난다.


육식을 거부한다는 단순한 선택은, 가족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가부장제와 폭력,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확장된다. 영혜는 끝내 자신이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모든 동물성과 인간성을 벗어던지려 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더이상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이 아니라, 상처입은 존재로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식물적 존재로 이행하고자 한다.


한강은 이 불편하고도 고요한 탈주의 여정을 섬세하고도 냉정한 문체로 그려낸다.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고통받는 존재를 통해, 인간이 과연 내면의 폭력성을 벗어나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단순한 도덕적 판단이나 극적인 감정 유도 없이, 존재의 근원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채식주의자"는 문학이 인간을 어떻게 직면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직면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작품이다. 인간성과 문명, 그리고 삶의 경계에 대해 사유하는 이 시대의 독자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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