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아몬드 의 작가 손원평이 5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소설집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아래에서 서서히 마모되어 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서늘하게 포착해 낸 작품입니다. 문화센터, 최고급 호텔, SNS 공간 등 동시대의 일상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한 10편의 단편들은 돈이 인간관계와 선택, 심지어 꿈의 크기까지 결정짓는 냉혹한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표제작의 제목이기도 한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라는 문장은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이 말은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시스템의 탓으로 책임을 돌리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낙오시키는 행위를 교묘하게 정당화하는 현대인들의 미숙한 변명에 가깝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악인이 아닙니다. 그저 생존을 위해, 혹은 더 나은 계급으로 올라서기 위해 발버둥 치는 보통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타인의 미래를 빼앗거나,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SNS에 편집된 허상을 올리며 서로에게 깊은 생채기를 남깁니다. 악의는 없었으나 누구도 온전히 결백할 수 없는 이 모순적인 비극은 책을 읽는 내내 묵직한 부채감을 안깁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인물들을 단순히 냉소하거나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한때 희망이었으나 이제는 빚이 되어버린 꿈의 잔해 속에서도, 폭우로 침몰하는 도시를 바라보면서도 끝내 인간다움의 흔적을 붙잡으려는 미세한 떨림을 함께 응시합니다.
이 책은 "우리는 과연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무심코 뱉은 말들이 타인의 하루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거울 같은 소설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