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디 할머니 - 소설가가 사랑하는 박완서 단편 베스트 10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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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타계 15주기를 맞아 출간된 단편선 쥬디 할머니는 2026년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서늘하고도 뜨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31명의 후배 작가들이 고심하여 고른 10편의 작품은, 우리가 박완서라는 거대한 이름을 왜 끊임없이 다시 읽어야 하는지를 증명해 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지극히 속물적이면서도 끈질기게 삶을 부지합니다. 겉으로는 안온해 보이지만 속으로 흔들리는 쥬디 할머니나, 기품 있는 노년을 꿈꾸다 손자 육아라는 현실에 내던져진 '맹범 씨'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작가는 중산층의 허영과 셈 빠른 이기심을 날카롭게 해부하면서도, 그 밑바닥에 깔린 인간적인 비애와 생명력을 놓치지 않습니다.


특히 표제작 쥬디 할머니에서 보여주는 반전이나, 도둑맞은 가난이 꿰뚫어 본 계급 간의 몰이해는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부유층이 가난마저 '체험'의 영역으로 앗아가려 할 때 느껴지는 그 불쾌한 감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비로소 나는 내 아픔을 정직하게 받아들였다는 문장처럼, 작가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듭니다. 전쟁의 상흔부터 고부 갈등, 자식을 잃은 참척의 고통까지, 그가 길어 올린 문장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클래식이 되었습니다. 20세기의 풍속화를 넘어 영원히 고쳐 읽고 싶은 이 소설집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인간의 모질고도 질긴 본연의 얼굴을 마주하게 하는 귀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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