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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의 이틀 밤
문지혁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여덟 개의 단편이 엮여 장편으로 재탄생했다. 여덟 개의 단편은 서로 다른 글의 색깔을 자랑하는 것도 몰라 내뿜어 대며 ‘나를 보아주세요!’ 라며 목차에서 마케팅을 벌인다. 이렇게 경쟁적인 단편 여덟 개가 책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겉은 몽환적인, 극단적으로는 음산하기까지 한 책의 겉표지가 계신다. 겉표지의 음산함, 특히 안개는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내용도 다른 듯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다. 현실에 부딪혀 꿈이 없어져 버렸거나, 시궁창의 현실에서 발버둥 치거나, 애인의 이중성을 발견하는 벼를 수확하는 만큼의 큰 수확을 하는 등의 현실을 기반으로 있을 법한, 느끼고 상상해 보았을 법한, 한 번쯤 의심해 보았을만한 이야기들을 실어놓았다.
인생에서 한 번쯤 느꼈을 절망, 추억, 희노애락 등을 무심한 글체에 담아 독자에게 강요되지 않는 배려와 작가의 성품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여덟 개의 이야기가 소제목일 뿐, 이야기가 이어져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서로 다른 색은 무지개가 되어버렸다. 마치 <무진기행>이라는 책을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단편 묶음집에는 꼭 한 가지 암묵적 룰이 있다. 나만이 이상하게 느끼는 건지 모른다. 다른 단편들이 아침의 안개 낀 나무들처럼 잔잔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가끔 하나씩 튀어 오르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남녀의 결합이나 어떤 자극적인 글의 소재들일 것이다.
이런 소재를 쓰기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게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예의라고 해둘까? ‘과연 이 주제가 문학으로서의 승화로 커버가 가능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어쩌면 문학의 승화라는 이름으로 남녀의 결합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일본, 다른 외국의 책을 읽다보면, 아니 길거리만 나가도 남녀의 결합쯤은 그저 무심한 것처럼, 상품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남자를 유혹할 줄 알아야 한다며 판매되는 상품둘을 볼 때마다 그 상품에 구토를 하고 싶거나 소각해 버리고 싶다.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문명의 극단적 습격이다. 이러한 자극의 소재는 문학에서는 문학의 승화로 포장이 되거나 1+1으로 마트의 마케팅과 같이 졸렬한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섭섭하다.
게다가 나는 소설에서 남녀의 결합이 나오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선 뭐랄까, 굉장히 적나라하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책을 집보다 더 자주 읽는다. 그렇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일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남녀의 결합이 소설에 나오는 것을 꺼리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그런 것을 받아들이기엔 난 시선이 좁은 건가 아니면 그런 것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가 보다.
(이 서평은 노블마인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