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페이지터너로 기능하는 장치들이 많아 흡인력이 좋은 책. 드디어 2000년대도 ‘저옛날’로서 묘사의 대상이 되는 구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더 많은 2000년대 세태소설을 원한다… 그러나 왠지 아쉽다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 치기를 그리워하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젊은가 봄.
5번 시도했는데 매번 20% 정도 읽다가 떨어져 나감 나 진짜 궁금함이거 왜 다들 재밌다고 하는 거임ㅠ ㅠ
박완서가 다작을 했다는 것이 좋다.. 습관처럼 주기적으로 박완서 책을 찾게 되는데 아직 읽을 것이 한발데기 남았다는 게 안도를 준다. <저문 날의 삽화> 연작으로 시작되는 소설집이고 표제작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지만, 내게는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이 최고작이다. 꺼져가는 남편의 목숨을 붙잡으려 노력하는 화자의 모습이 하나도 간절하지 않은데(왜냐면 박완서 화자는 언제나 메타자아가 너무 성실히 발동하는 탓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쌓아온 사랑을 느끼게 하고 담담한 어조가 가슴을 저미다가 마지막에 가서 ‘틈바구니‘라는 화두로 주제를 확장시킨다. 가장 작은 가정 드라마로 시작해서 사회 전반/인간사로 메세지를 확장시키는 게 요술같은 솜씨다.
서양로맨스고전 3대장을 꼽으라면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워더링 하이츠(폭풍의 언덕)>일진대… 난 왜케 브론테 자매의 남주에게 정이 안 갈까. 다아시 정도는 귀엽게 봐줄 만한데 로체스터나 히스클리프는 기행의 레벨이 달라서 그런가 걍 미친놈 소리만 나오구 정내미가 떨어짐;;로맨스 장르에서 내 몰입에 제일 중요한 건 두 인물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라고 생각하는데 <워더링 하이츠>는 읽다보면 독자인 나는 쏙빼놓고 저들끼리 이미 정분 나있음.. 히스클리프랑 캐시도 그렇고 캐서린이랑 헤어튼도 그렇고.. 온갖 악다구니는 다 부리더니 갑자기 눈맞았대 ㅠ;(혐관의 규칙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세기의 파애, 미친 순애 타이틀이 종종 나붙는 히스캐시 커플의 아름다운 사랑 나는 잘 모르겠고 그냥 다 존나 짜증나는 인간들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 사람들이 다 황야에 살아서 그런 걸까요 :) 저의 최애 등장인물은 역시 조지프 입니다… 싹퉁바가지 귀족들의 지랄쌈바에 한데 섞여 내내 주님타령하며 저주를 퍼붓는 조지프의 모습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유일한 미소를 짓게 하였어요.. :) 내내 이 책만 읽으며 하루를 다 보냈는데 인물들이 하도 격정적이구 지랄맞아서 쉬어도 쉰 것 같지가 않고 개피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