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 어머니됨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회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는 필연적으로 정신병을 수반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모두 미친 여자들이다. 데버라 리비의 <살림비용>은 ‘어머니란 우리가 만난 사람 중에서 언제나 가장 희한하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다’라는 뒤라스의 문장을 인용한다. 뒤라스의 말마따나, 내게 어머니란 존재는 확실히 광기를 상징한다.

어제 또 엄마랑 싸웠다. 엄마는 짐승처럼 울부짖다가 차키를 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크리넥스에 코를 풀고 세수를 한 뒤 엄마가 탄 엘리베이터가 지하 3층에 도착했을 즈음을 계산하여 집을 나왔다. 엄마는 나와 싸우는 내내 “내가 내 발등을 찍었지”라고 중얼거렸고, 나는 “그니까 누가 낳으랬냐고” 쏘아붙였다. 우리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피부는 분노로 시뻘게졌다. 이 추태와 참극을 에이드리언 리치는 고상하게 정리한다 : 아이와 엄마는 서로가 겪는 고통의 원인이다.

엄마는 스스로에게 엄마라는 정체성 밖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바로 그 행동 때문에 다시 분열을 겪는다. 엄마는 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이 문장은 적어도 내가 겪은 모녀관계에서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음의 진실을 훌륭하게 은폐한다 : 엄마는 ‘가족’을 위해 희생’된다’. 그러나 엄마에겐 진실을 마주할 힘이 없다. 가부장제는 엄마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성인 것처럼 광고해대지만, 실제 엄마들은 심신미약에 시달리며 글자 그대로 미쳐버렸다. 그래서 자신이 불사른 헌신에 대한 감사와 보상을 딸에게서 찾는다. 그러면 내 코는 아름답게 포장된 원망의 냄새를 맡고 내 입은 침을 뱉는다. 하지만 원망을 받아야 할 대상이자 엄마의 노고를 치하해야 할 주체는 내가 아니라 국가여야 한다.(잠재 납세자 생산)



어쩌면 내가 미친 것일까? 내 엄마의 주장대로 가장 제정신이 아닌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

<살림비용>의 전작인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서 데버라 리비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알고서는 도무지 살 수가 없는 종류의 앎을 두고 우리는 어찌하는가.’



나는 내 베개 밑에 숨겨져 있던 영문모를 식칼을 떠올린다.

지금보다 더 어리고 덜 미쳤을 때 엄마는 종종 내 침대에 들어와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아직까지도 보드라운 살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첫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그때 만지작거렸던 엄마의 피부다. 즐거운 엄마는 내게 오지 않는다. 하지만 비참한 엄마는 확실히 나를 찾았다. 아빠의 고성이 들리는 방문 뒤에 서면 나는 엄마와 내가 한패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어렴풋하게 두 가지 사실을 인과의 위치에 두게 된다. 아빠와 대거리를 벌이고 어김없이 내 침대에서 잠들었던 엄마와 다음날 베개 밑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만져진 선뜩한 칼날의 감각. 나는 잠깐동안 칼을 들여다보고 부엌에 도로 갖다두었다. 아무도 찔려 죽지 않았으므로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어떤 일들은 내가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벌어지고 기이한 느낌의 앎만을 남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무례한 말투로, 가장 상처 입힐 수 있는 말을 골라 엄마에게 건네고 친구를 따라 서울로 도망쳤다. 친구집에는 강아지가 있다. 친구는 강아지를 딸이라 불렀다. 친구의 쇼파에서 친구가 번역한 만화를 읽었다. 주인공이 엄마와 화해하는 장면을 읽자 사정없이 눈물이 흘렀다. 엄마에게서 도망쳤는데 여기저기 온통 엄마들이다. 딸은 왜 엄마를 벗어날 수 없나? 우리가 한패가 아님을 깨닫고 난 뒤에도 내게 엄마라는 존재는 너무 중요하다. 배게 밑에는 여전히 식칼이 있다. 너무나 기괴하고 너무도 친밀하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차에서 훌쩍이며 읽었음 사람은 책이랑 가까울 때 아름다와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내의 빈 방 - 죽음 후에 열화당 영혼도서관
존 버거, 이브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워하는 모든 글은 일정정도 이상으로 나빠지지 않는다. 마치 국장의 상하한가 제도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가 된 내 친구가 일요일 아침에 커피를 내려놓고 조용하게 천천히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이한 문제의식에 인물들의 사연이 너무 과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