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감자 200그램
박상순 지음 / 난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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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걸음 스무 걸음, 그리고 여름

박상순

너를 꼭 데리고 갈게.
나도 꼭 데리고 가줘.

내 몸속에서 자란 조개들을 꺼내
조개들의 입을 열고,
그 조개들이 한 입씩 베어 물고 있었던
내 몸속의 조각들로 구름을 만들고, 구릉을 만들고

단단한 조개껍데기들 위로 달리고 달려
고운 길을 만들고,
다시 또 구르고 굴러
더 곱게 반짝이는 모래를 만들고,

내 몸속에서 얼어붙은 얼음을 녹여
바다를 만들고, 이름을 짓고
수평선을 만들고, 여름을 만들고
내가 정말 싫어하는 강아지도, 너를 위해 한 마리는 만들고

돛단배도, 고래도, 열대어도 다 만들어놓겠지만
움직이지 않는, 파도치지 않는
숨쉬지도, 헤엄치지도, 흐르지도 않는
나의 돛단배, 나의 파도, 나의 고래, 나의 물고기, 나의 구름

그래도 너를 꼭 데리고 갈게
나도 꼭 데리고 가줘.
그냥 열 걸음, 스무 걸음, 네 뒤에 있을게.

-

예순을 향해 달려가는 할배 시인이(물론 요즘은 예순이면 청춘이라지만 어쨌든) 썼다고 믿겨지지 않는 이 유치함..
하지만 이 유치함 맘에 들어;; 널 델꼬 갈테니 나도 꼭 데리고 가달라하는 이 낭만적 유치함..

박상순은 미술을 전공해서 그런지, 모든 감정을 그림을 그리듯 묘사한다.
절대 슬프다고 외롭다고 고독하다고 쓰지 않는데
이미지가 상상되면서 독자로하여금 그 너머의 감정을 읽게 만든다

사실 내가 읽어왔던 현대시들 중 난해함이 탑을 달리는 시인이다 ㅠ(서대경과 김이듬이 그 뒤를 잇는다..)
이런 시들의 공통점은 대상을 통해서만 자기 감정을 말한다는거다. 그래서 그 감정의 전이가 독자인 내게 다가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걸림.. 왜냐면 난 대상을 통해 감정을 이해하지 않는 일반인이니까..^^....

예를 들면 이런식,

그 칼
박상순
손잡이가 검은 그 칼, 내가 사왔지.
지하 이층, 내려가던 길.
손잡이가 검은 칼, 매끈한 그 칼, 예리한 그 칼.

지상으로 올라왔지. 그 칼을 들고.
손잡이가 검은 그 칼. 내가 사왔지.
손잡이가 검은 칼, 매끈한 그 칼, 오늘밤, 그 칼.

빛나는 그 칼, 새하얀 그 칼,
손잡이가 검은 칼.
울부짖는 기둥 같은 칼.

-
시종일관 칼얘기만 하는데 음습함이, 화자의 극단으로 치달은 감정이 보이는거 같다.
금방이라도 뭔일 낼 거 같은 느낌이..

아무튼
객관적으로 사물을 묘사하면서 그 뒤에 숨은 감정을 독자가 증폭시키도록 만드는데 탁월한 시인이다
하지만 현대시를 좋아하지 않는, 즐겨 접하지 않는 사람에겐 절대 비추하는 시인,,,, 나도 수업이 아니었으면 아마 평생 안읽었겠지..

+
이 시집에서 제일 좋았던 시는 <나는 네게> !! 이 시는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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