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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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哀歌)

황인숙

만 이틀
저렇게 오래 자는 새는 없을걸
아주 잠들었나 봐
그래도 혹시 깨어날지 몰라
다시 난로를 켰다가
다시 난로를 끈다
말라가는 플라타너스 잎새 위 작은 새
오, 새야!
진작 너를 놓아줄 것을!
눈보라를 피하게 하려다
익사시키고 말았네

내 예쁜 작은 새

어두운 길바닥에서 너는
날아오르지 못하고 애처롭게
날개를 퍼덕거리며 달아나려 했지
어렵사리 너를 붙잡아 심란한 가슴에 품고
걸음을 옮기다 플라타너스 잎 하나 주워 들었지
그러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네 거처였던 우리 집 화장실에서 너는
플라타너스 입새 아래 숨어들었지
며칠 뒤 그 잎새 반도 안 남았지
플라타너스 잎을 새가 쪼아 먹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았지
너는 차츰 숨바꼭질을 하지 않고
내 발치를 빙빙 돌다가
쌀알과 수수알을 쪼아 먹었지
네가 방충망에 날아올랐을 때
그때 너를 놔줘야 했을까?
아, 나는 확신할 수 없었지
네가 다 나았는지
네가 밖에서 겨울을 날 수 있는지
나는 그저 너를 위해
플라타너스 잎 세개를 새로 주워 왔지
길가 화단의 낙엽 더미에서
고르고 골라 그중 성한 것
크리스마스가 코앞인데 고맙게도
제 모양 간직한 낙엽이 있었지

아, 이제 플라타너스,
내게 특별한 나무가 되었네
너는 기쁜 듯 우짖었지
아니, 그리워서였을까?
네 우짖음 소리 생생히
내 가슴을 가르는구나
˝뺘아악! 뺘아악! 뺘아악!˝
무슨 새소리가 저럴까, 나는 웃음을 터뜨렸찌
이제 생각하니 너는
아주 어린 새였던 거야!
오, 내 작은 새, 작은 새,
내가 너를 죽게 만들었네

네 놀이터인 빨래건조대를 뺏어 들고 나와서
나는 한가롭게 빨래를 널고 있었지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까마득히 모르고
그게 대체 몇 분 동안이었을까!
축 늘어진 너를 물에서 건져 올려
미친 듯 물기를 닦아내고 네 몸을 문지렀지
내 손끝에서 네 고운 깃털들이
뭉실뭉실 빠져 날아다녔지
네 죽지 아래를 눌러대자 작은 삐,삐, 소리가 났지
너는 반짝 눈을 떴지
내 가슴에 희망이 눈 떴지
너는 작은 새니까, 아주 작은 새니까,
숨을 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
죽음을 무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
네가 그토록 작아서, 아주 작아서,
그토록 쉽게 목숨이
훅 꺼진다는 걸 생각지 못했지
네 목에 힘이 빠져도 네 눈이 빛을 잃어도
너를 붙드느라 내가 너무 들볶아서 지친 거라고 생각했지
푹 자고 깨어나기를!
푹 자고 깨어나기를!
하루를 기다리고 이틀을 기다렸지

저렇게 오래 자는 새가 있을까?
내 작은새 죽고 말았네
말라가는 플라타너스 잎새 위 작은 새


―황인숙, 「애가(哀歌)」, 『못다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2016),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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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때 이 시 읽다가 울었다
(찐따)
본적도 없는 작은 새의 죽음에 가슴이 미어진다

황인숙은 유명한 캣맘이다
그녀의 집에는 고양이 사료가 한무더기 쌓여있다고 한다
그때문에 주민들과 싸우기도 하고, 고양이 밥주고 오는 길에 넘어져 팔이 부러지기도 하지만
돈주고 알바를 고용해서라도 고양이 밥을 챙기는 이상한 시인
그런 황인숙의 시들에는 미물을 향한 애정이 절절히 녹아있다

고양이 밥줘야한다고 미국 초청을 거절하는 사람..
황인숙 같은 사람이 전멸한 세상은 얼마나 끔찍하고 쓸쓸할것인가

예전에 지윤이에게 황인숙 시집을 선물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봐도 지윤이랑 아주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인이란 본디 세상의 시스템에 적응할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황인숙도 그렇고 최승자도 그렇고..
둘의 시는 확연히 다르지만 사실 같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혹은 않은 사람의 목소릐..
최승자는 비극으로 치달은 지독함
황인숙은 명랑한 슬픔
꼬챙이에 찔리면 기어서라도 너에게 가고싶다는 최승자도
너에게 말할게 생겨서 비가 오는게 기쁘다는 황인숙도 좋다!
그래도 내 삶을 시로 써줄 사람을 고르라면 황인숙 할래 ㅠ..ㅠ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맑은시 많이 써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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