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 - 개정판 이매진 컨텍스트 8
김원 지음 / 이매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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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때, 내 책상 서랍에는 늘 신경숙의 『외딴 방』이 있었다. 그 책은 내게 성장소설의 바이블이었다. 소년의 성장기와는 달리 대부분 소녀의 성장기는 세상의 억압에 굴복하고 인습화되어가는 패턴을 띤다. 신경숙은 『외딴 방』을 통해 소녀였던 자신과 또래 여공들을 세상의 주체로 다시 호출한다.

이 책이 『외딴 방』을 실제 여공의 수기처럼 이곳저곳에 인용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 연원한다. 󰡔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는 주류 노동사에서 삭제되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주체성을 복원하고 의미를 되찾는 긴 여정이다.



여공 이전에 존재했던 ‘여성 노동자’의 스테레오 타입은 식모였다. 식모는 대부분 여공보다 낮은 지위로 형상화되었는데, 주요 담론은 식모를 타락될 여지가 충분한 요보효 여성으로 보는 측면이 강했다. 식모 폐지론이 고개를 든 것은 한국사회가 산업화로 근대화에 접어들던 무렵이다. 당시 식모 폐지론은 가정 내 존재하는 주인-하인의 봉건적 관계 타파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중산층 여성의 봉건적 ‘의식’ 계몽이 주된 목적이었다. 가내노동을 천시해 남의 손에 자녀양육과 가족의 식사를 맡기지 말고 ‘근대적이고 과학적인 모성’을 형성해야한다는 것이다. 한편 당대 엘리트 여성들은 이 같은 식모 폐지론에 반기를 들어 식모 불가결론을 주장했는데, 여성의 사회활동을 위해 식모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근대적이고 과학적인 모성을 자녀 교육에 매진하고 가족의 영양에 지대한 신경을 쓰는 것이라 정의하는 식모 폐지론도 가부장제를 그대로 답습한 주장이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을 위해 가내노동을 대리 수행하는 이들이 다시 여성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식모 불가결론도 성별 이데올로기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가졌던 한계와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노동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형식의 억압과 지배구조가 드러난다. 저자는 민주화 담론에 기초한 노동사 해석을 비판하는데 이는 어용vs민주노조 구도로 진행되어온 노동사 해석이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은폐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1970년대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과 지나치게 맞닿아 있었음을 지적한다. 지식인들의 개별적 개입은 노동운동의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노동문제를 외부화했다. 여기서도 피해를 입는 것은 여성 노동자였다. 반집행부적 성향의 여성 노동자를 어용으로 몰아 운동에서 배제하고, 운동권 내부에서 일어난 성폭력을 사측의 사주로 명명함으로써 일축시켜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민주화 담론은 이런 억압구조를 덮어버리고 노동운동을 무모순의 신화로 만들어 국가와 사측에 대항하는 저항적 주체로 재특권화한다.



공장 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자들을 노동조합 안에서 무력화시켰던 인식은 다음과 같다. 1. 여성의 적극적인 활동과 그에 따른 고위직 진출이 남성 노동자를 무력하게 만들고 2. 여성의 본디 머물 곳은 가정이기 때문에 노동현장은 여성에게 일시적 거처일 뿐이며 3. 노동운동의 투쟁적이고 조직적인 성질이 여성의 타고난 성질과 부합하지 않는다.

전부 비논리적이며 비과학적인 유교적 관념을 관통한다.



산업화 시대, 국가는 유교논리를 사회 전체로 확장시켜 국가주의를 견고히 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국민 개인의 권리보다 조국의 근대화가 먼저였고 따라서 회사의 생산력 향상 앞에서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은 얼마든지 등한시될 수 있는 요소였다. 이렇게 국가주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공은 이중적으로 다뤄졌다. 필요할 때는 조국 근대화에 이바지하는 ‘산업전사’로 명명하며 무성화 시킴으로써 강한 노동 강도를 요구했지만 다시‘여성의 노동’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어 저임금을 합리화했다. 여성의 임금은 생계 보조적인 임금이며 여성의 노동력은 남성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유교적 관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말 여성의 임금은 생계 보조적인 임금이었던가? 우리는 남자형제의 고등교육을 위해 공장에 보내졌던 딸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급속한 산업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공의 급여로 생계를 이어갔던 농촌 가정은 얼마나 많았던가. 여공에 대한 주류 담론이 희생양 담론이었다는 걸 떠올려 보면 이 같은 유교논리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희생양 담론도 현실을 제대로 재현한 담론은 아니었다. 희생양 담론은 여성 노동자들의 이농 동경과 향학열 등 공적영역에 대한 욕구를 삭제하고 공장취직 동기를 단순히 가난과 희생으로 간단하게 환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은 그녀들도 명백한 사회적 열망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을 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저자는 여공의 사회문화적 욕망을 다각도로 살핌으로써 희생양 담론을 해체한다.



미시사는 거대한 흐름에 의해 누락되었던-그러나 분명 존재했던-사실들을 세밀하게 살펴 건져 올린다. 그리고 그렇게 건져 올린 사실을 조합해 새로운 해석망을 구축한다. 기존의 역사가 놓치거나 은폐시키고 있는 의미를 발굴해내는 각별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멈칫거렸던 순간이 많았다. 스스로 남성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걸 여러 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허나 조금 의아했던 부분도 있었는데, 중성적 투사로 치환되는 여성의 노동운동을 과연 비판만 할 수 있는건지 의문이 든다. 중성적 노동운동이 노동운동 내에 존재하는 가부장의 소멸에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성이 ‘여성다움’을 상실하는 것을 경계하는 남성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여성 노동운동의 ‘중성화’ 또한 같이 비판한다. 조금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여성적 노동운동이라는 발상 자체가 일정부분 성별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거 아닌가? 저자가 생각하는 여성 노동운동의 여성화는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 되고 있는걸까? 이런 의문은 6장을 읽으면서 더욱 굳어졌는데, 여성성에 대한 저자의 서술이 조금 편협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대 사회가 여공을 대하는 태도와 그에 따른 여공들의 상실감을 옮긴 것이지만, 사회가 여공들에게 여성성을 앗아간 것을 비판하는 것에 그쳐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사회가 여성에게 씌어주는 ‘여성성’의 굴레에 대한 지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여공을 둘러싼 지배적 담론에 대한 저자의 도발적인 반박시도, 그동안의 노동사 연구에서 흔하게 보였던 형태에서 벗어난 풍부하고 개성 있는 자료들은 이 책을 가치 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노조의 단결, 민주노조 쟁취라는 ‘대의’를 위해 여성의제는 여성들에게조차 쉽게 유보되었다. 이것은 미뤄지고 또 미뤄져 지금에 와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치의 영역에서 여성문제를 논할 때 더 크고 시급한 문제가 있는데 그게 대수냐는 식으로 문제를 축소시키는 현 사회의 모습은 지난 역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책을 지침 삼아 우리는 과거답습에서 벗어나 반성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아무렴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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