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자연스레 책 읽는 사람에게로 눈길이 간다.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는 내가 왠지 애송이가 된 느낌. 동시에 일면식도 없었던 그 사람이 왠지 좋아지는 기분.
이건 작년에 서울갈때 탔던 고속버스에서 옆좌석 앉은 청년이 골몰하고 있던 책이다. 제목과 터키문학이라는 것 정도가 내가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의 전부였다. 게다가 실제 장정도 처음볼 뿐더러 이걸 읽는 사람도 처음 봤기 때문에 속으로 “와,, 이세상 간지가 아니네,,,”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이북리스트로 학교에서 책 사줄 때 리스트에 끼워넣음ㅋ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왠지 구매한 책은 이미 내꺼가 된 것 같아서 독서를 나중으로 미루게 된 단 말이지..
그렇게 미루기를 일 년하고 얼마 전 영혜랑 카톡하다 우연히 이 책이 화두에 올라서 생각난 김에 펼쳤다.
두 권짜리라 생각보다 좀 오래 걸렸다
대체 <안나 카레니나> 같은 대장정 읽는 사람들의 독서력은 무엇..?

여튼,
첫 문장이 아름다운 소설에 자주 꼽힝다는데 사실 난 잘 모르겠고 별 감흥 없이 지나갔음 ㅎ

살해당한 자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각 장마다 수십번씩 화자를 바꾸며 전체적으로는 살인자를 추적하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다. 구성적으로는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하는데, 수십번 목소리를 바꿔가며 들려주던 이야기가 셰큐레의 아들 ‘오르한’의 입에서 마치는 것이 맘에 들었다. 일부러 본인 이름과 똑같이 설정한 거겠지? 오르한 파묵 요 익살쟁이 ><~!~!!!

근데 도중에 책 정보 서핑하다 네이버지식백과새끼한테 스포당함..ㅋ
개빡쳐 ㅅㅂ 존나 빡대갈이 아니고서야 거기에 그렇게 누가 죽였는지 명시해놓진 않을거 같은데 대체 편집자 누구냐? 아무튼 네이버 덕에 다 읽지도 않았는데 이미 누가 살인잔지 다 알아버렸음 ㅡㅡ
네이버는 생각이 있으면 일을 똑바로 해라;;;!!!


어쨌든;;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세밀화가들의 예술론’ 정도로 축약하고 싶다.
지금의 터키, 그러니까 오스만 제국은 지리적으로 서방과 동방을 잇는 위치덕에 수 많은 문화들이 흘러들어와 고이는 곳이다. 신의 형태나 인물의 외양을 인간의 시각으로 ‘똑같이’ 묘사하는 것은 결국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에, 이슬람 예술은 초상화처럼 정확한 묘사를 필요로하는 그림 그리는 방식을 악마적 기법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전통을 깨고 새로운 사상에 경도되는 이는 존재하고, 에니시테는 서양에서 유행중인 원근법과 초상화 그리기에 반해 세밀화가들에게 술탄의 초상화가 들어간 책을 제작할 것을 지시한다.
자신만의 개성, 스타일, 화풍을 갖는 것은 그들에게 축복일까 신에대한 오만과 죄악일까. 이야기는 이 물음에 대한 세밀화가들의 끝없는 고뇌의 기록이다.

기본적으로 이슬람 화가들에게 ‘서명’은 흠결이라는 생각이 바탕이다. 진정한 장인은 자신이 그린 그림이 과거의 대가가 그린 것인지 자신이 그린 것인지 분간해 낼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고방식 자체가 무척 새로웠다. 화가 각자의 특성을 갖는 것, 모네의 그림을 보면 모네가 그렸구나, 알고 고흐의 그림을 보면 고흐 그림이네, 알 수 있도록 자신만의 화풍을 갖는 것이 당연한 거라 생각했는데 이또한 서구주의적 관념이 아닐지..
사실 생각해보면 각자의 스타일대로 그리는 것 보다 수백년동안 수많은 사람이 똑같은 화풍을 갖는 게 더 어렵고 수련을 요하는 작업일듯하다.
하지만 그 오래되고 일관적인 화풍이라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대가의, 한 인물 개인의 화풍인 거니까 개성을 버리는 게 결국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내가 구구절절 떠들어봤자 책 속의 세밀화가들의 고뇌엔 어림반푼어치도 안되는데 걍 닥쳐야지..
유럽의 화가들을 모방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도 스타일이 있나?”하고 물어보는 세밀화가의 연한 마음이 순간 너무 가슴아프게 다가와서 눈물을 조금 흘렸다 ㅠ


뒷표지엔 ‘세 남자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은 매혹적인 여인 셰큐레를 둘러싼, 목숨을 건 사랑이야기’ 라고 써있는데 나는 완전히 틀린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여주인공 격인 셰큐레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자신밖에 사랑하지 않았다. 굳이 셰큐레를 ‘목숨을 건 사랑이야기’로 엮는거 넘 이성애중심적인 강박으로 느껴진다. 예쁜여자가 등장인물이 되면 꼭 이딴식 ㅋ.. 아름다운 여성이 어떤 보상처럼 주어지는 거 토나온다. 이 이야기가 주력한 사랑은 오히려 화원장 오스만과 그의 제자들 사이의 사랑, 세밀화가들 사이의 사랑, 그들의 신과 그림에 대한 사랑이다.


좀 더 어릴때 이 책을 읽었으면 더 재밌게 읽었을 거 같다는 후회가 들었다. 이국적인 지명과 골목들은 이제 나에게 너무나 일관적인 이미지만을 가져다 준다.
어린이들에게 세계문학을 많이 읽혀야하는 이유는 그들 나이대의 유연한 상상력이 스스로 새로운 풍경과 이미지를 창작해낼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삽화 한 점 없는 하이디와 피터팬을 읽으며 느꼈던 행복은 지금과 절대 같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세계문학은 서구문화권 소설만 줄창 접했는데 요런 페르시아 환상문학st 읽으니 새롭게 즐거웠다. 터키뽕 차올라서 이스탄불 여행 가고 싶어...;;;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참으로 많냄..
블루투스 키보드로 포스팅하니까 참으로 편하고 좋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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