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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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정말 좋다!

요즘 나는 사랑을 다룬 책에 손이 간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나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같은 것들. 나는 사랑의 감정을 낱낱이 해부하고 싶다. 그러나 책을 읽어도 정작 알게 된 건 별로 없다. 특히 에리히 프롬의 주장들은 내겐 너무 멀게 느껴지는 말 뿐이다 ㅠ 그런게 성숙한 사랑이라면 난 평생 미성숙한 사랑 하고 싶다. 나는 주는 거 보다 많이 받고 싶고, 그래서 덜 상처 받고 싶고, 아차 싶으면 도망칠 수 있는 안전거리가 확보된 관계를 원한다. 난 비겁하고 나약한 겁쟁이니까 ㅎ

스턴버그에 의하면 사랑을 이루는 3요소에는 열정, 친밀감, 헌신이 있다고 한다. 세가지가 균형을 이루어 정삼각형을 그릴때 성숙한 사랑을 할수 있다고.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 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내 사랑에 친밀감이나 헌신 같은 것들은 언제나 끼어들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언제나 열정이었고 열정의 소멸은 곧 연애의 종말이었다. (이런 내 감정을 학자들은 가장 미성숙하고 얕은 사랑으로 분류하겠지만, 솔직히 난 깊고 영원한 사랑 같은거 필요없다.) 그래서 난 사강이 좋다. 사랑의 영원보다 덧없음을 일깨워주자나,,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작가가 외국인 연하 유부남과의 불꽃 같은 불륜 경험을 아주 평평한 문체로 담담히 써내려간 짧은 글이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소설이나 수기로 이분화해서 범주화하는 것을 거부하지만, 이 글이 독자들에게 짜릿한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이 모든 강렬한 감정들이 ‘실화’ 라는 것에 있을 것이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도입부에서 강렬한 공감을 느끼지 않을까. 약 70p의 짧은 글(ebook기준)에서 그녀는 내내 자신이 얼마나 한 남자에게 푹 빠져있는지 그것이 자신의 하루 하루를 얼마나 좌지우지 하는 지 서술한다. 와, 어쩜 이렇게 내가 아닌 타인에게 완전히 사로잡힐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녀의 사랑은 강렬하고 열정적이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내가 다 애달프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ㅠ

물론 도덕적 판단은 유보해야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A는 유부남이니까 ㅎ 이런걸 보면 결혼제도라는 건 결국 인류의 허황된 망상이고 속박 같아 ㅠ 낭만적 사랑이 지나간 이후의 부부는 그저 양육 파트너가 될 뿐인데, 새로운 사랑의 기회를 앗아가니까..
(불륜 정당화인가?)

아무튼
어 맞아 내 얘기인데! 할법한 작품이므로 열렬히 좋아하는 상대가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제일 좋았던 구절은 결국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그 사람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머지않아 모든게 흐릿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사랑에 빠지고 격동의 감정을 기억해낸다. 맞다. 사랑은 이토록 중독적이다.

아니 에르노에게 글쓰기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구해내는 일’이었다. 나도 마냥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구해내기 위해 계속 써야지,,, 언젠가 내 사랑의 경험을 이렇게 낱낱이 고백하는 글을 쓰게 된다면 난 복잡한 열정이라고 제목 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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