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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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선택, 그리고 우리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 [선택]

 

어쩌면 이 시대와 가장 맞지 않는 사상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책이 이 책이 아닐까, 그것이 처음 책을 읽어나갈 때의 감상이었다. 다 읽고 나서도 이러한 감정은 씻은 듯 사라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문열의 [선택]은 이래저래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선택, 그 선택을 위한 일종의 책임을 지게 한다.

 

이 책은 주인공 장씨 부인의 목소리로 여성의 미덕을 전달하는 일종의 지침서 형식을 띠고 있다. 장씨 부인은 조선시대 유교 사상에서 원하던 바람직한 여성상 그대로를 실제로 구현한 사람이었다. 부인은 일찍이 총명함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위치를 인식하고 혼인한 다음에는 남편을 보필하고 자녀를 수행하는 역할에 그저 충실하며 살았다. 책 제목이 왜 선택이었을까, 생각하면 각 장마다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바로 그녀의 선택에 따른 것이기 때문일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부인과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택했던 것은 그녀의 온전한 선택이었을까?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회의 보이지 않는 분위기에 젖어, 그녀가 해야 했던 그 선택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아예 쥐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본문을 제외하고도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이 저속하고 천박한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라는 말은 왜인지 그냥 넘겨들을 수 없는 구절이다.

 

책의 제목을 지을 때 여느 작가가 다 그렇듯, 이 책의 작가 역시 고심해서 제목을 지었을 터이다. 유독 다른 책보다 더 이 책의 제목을 곱씹어보게 된다. 밀어닥치는, 변화라는 이름의 격랑의 파도 속에 우리 시대와 사회, 그리고 우리 개인은 저마다 주체성이 담긴 선택을 내리도록 마치 순리처럼 강요받는다. 책을 읽고 장씨 부인의 선택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면 지지하는 것도, 또 책의 감상을 어떻게 조각하느냐도 어쩌면 오롯한 독자의 몫이다. 단순하게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사는 게 옳다는 외침이 큰 세상에서 이렇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은 귀한 책이다. 크고 작은 울림이 많은 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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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엽기인물 세계사
호리에 히로키 지음, 이강훈 그림,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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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위인들의 숨겨졌던 모습들을 찾아,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엽기인물 세계사]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면성이 존재한다. 예가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범죄 등을 다룬 사회면 기사를 보다 보면 종종 친절하고 이웃에게 예의 바르던 그 사람이 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극악한 범죄자였다는 사실에 놀란, 주변 사람들의 심경을 담은 문장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그렇다면 인류의 역사 속에 빛나는 모습으로 남은 사람들은, 즉 위인들은 어떨까? , 또는 그녀는 정말 후세 사람들이 생각하듯 완전하고 고결한 삶을 살았을까? 이런 비슷한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엽기인물 세계사]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기 쉽듯 나이팅게일, 간디, 클레오파트라, 마리 퀴리 등과 같이 역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자세히 조명해 본 책이다. 크게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 주제별로 위인 36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업적이 작지 않아 너무나 친숙한 이름의 사람도 있고, 어쩌나 이름만 들어봤을 사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들의 공통점은 알려진 고귀한 업적과는 달리 때로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이상한 면모를 지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 등장한 한 과학자는 그 끈기와 대단한 업적 덕분에 후세 사람들의 귀감으로 불리며 수많은 위인전을 통해 알려진 반면, 이 책에서 서술하는 것처럼 자신이 발견해낸 물질의 위험성과 사람들에게 미치는 인과관계를 고집스럽도록 평생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은이는 해당 과학자의 이해할 수 없는 이 태도를 평생을 바쳐 만들어낸 자식 같은 업적을 향한 맹목적인 신념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지니고 있을 인간의 좋지 않은 본성이 실은 그들, 역사 속 위인들에게도 존재했고 때로는 업적으로 알려진 바로 그 행동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은 조금의 씁쓸함도 느껴진다.

 

재미도 재미지만 상식도 넓혀갈 수 있으면서 이래저래 인간의 본성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 밖에서 달랠 수 없는 무료함이 있다면 이 책은 그런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달콤쌉쌀한 즐거움을 안겨 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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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생 -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하여
앤드루 H. 밀러 지음, 방진이 옮김 / 지식의편집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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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지 않은 삶, 살고 싶었던 삶, 그리고 내가 사는 삶, [우연한 생]

 

살지 않은 삶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연한 파스텔의 시뮬러 톤으로 구성된 책의 표지에서 유독 강렬하게 시선을 붙잡았다고 고백한다. 책은 소설이나 시, 영화 대사 등을 두고 삶과 나, 그리고 자아를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성찰한다. 소재는 다채롭지만 책이 다루는 주제는 심플하다.

 

모든 허구가 우리의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사는 인물들에게 편안한 집이 되어주었다는, 시작하는 글에서 알 수 있듯, 그렇기 때문에 허구는 더더욱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실체화한다. 그리고 그들을 철학적이나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지금은 아니지만 어쩌면 내가 살 수도 있었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평행 우주 같은, 좀 딱딱한 과학 이론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와 내 인생과는 다른, '다른 나와 다른 내 인생'을 주제로 상념에 잠겨본다. 살지 않은 삶이 있으려면 먼저 삶을 어느 정도 살아야 가능하니, 따라서 살지 않은 삶은 중년의 관심사라는 책의 문장부터 아마 많은 독자의 책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에 담겨진 많은 시들, 특히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포함해 여러 현대 시인의 시들은 등장과 동시에 진한 문학의 숲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한동안 가벼운 에세이와 자기 계발 책을 읽던 독자라면 조금은 결이 다른 책을 읽어냈다는 점에서 새롭고 또 좋지 않을까 싶다.

 

옮긴이의 말 중에 책을 작업하며 내 선택과 화해할 수 있었다는 구절도, 본문이 아니지만 여운이 남는다. 지나온 선택을 덧칠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 선택이 바닥에 깔려 있는 보도블록 같은 거라면 담담하게 허리까지 조금 굽혀 몇 번 두들기며 미소 한번 지어줄 순간이 있다면 좋겠다. 그런 순간이 모이면 후회라는 것과는 조금 더 멀게, 가뿐히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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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마음 괜찮은 걸까?
오강섭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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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내게 방법을 알려줄래, [불안한 마음 괜찮은 걸까?]

 

불안에 관한 모든 것을 소개하고자 했다는 저자의 패기 넘친 머리말처럼, 과연 책은 불안의 원인부터 시작해 불안이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현상, 실제 치료 사례, 그리고 극복을 위한 훈련 방법과 음식, 운동 등의 광범위한 목록을 300페이지가 넘는 볼륨에 꽉 채워 담고 있다.

 

불안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일단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한 경쟁으로 사회는 현대인을 몰아넣고 있으며, 기본적으로도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인간에게 일찍이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1장에서 우리와 불안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고 2장으로 넘어가면 불안을 좀 더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하지,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라고 느꼈던 사람이라면 자신이 혹시 불안 장애나 신경증처럼 남들과 차이 나게 불안도가 높지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실체가 없는 적일수록 상대하기 힘들다는 세간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안이 어떤 녀석인지 감을 잡는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제대로 상대할 지점에 접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3장에서는 강박장애,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범불안장애, 사회불안장애, 분리불안장애, 선택적 함구증, 적응장애 등과 같이 사람들을 힘겹게 하는 불안 관련 현상들을 자세하게 다룬다. 특히 요즘 들어 현대인에게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강박장애와 공황장애의 경우, 본문에 체크리스트가 제공되어 자가진단을 해볼 기회가 주어지는 점이 좋다. 그리고 4장으로 넘어가 신경해부학적으로 불안의 요인을 분석하고 나면 5장에서 몸과 마음, 행동을 지배하는 불안의 양상에 대해 최신 연구 결과와 다양한 임상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6장에서는 불안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는 이유를, 7장에서는 훈련과 음식, 운동과 기타 전문 치료 방법 및 약물 등의 소개를 통해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다룬다.

 

삶은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고 많은 새로움은 동시에 낯섦으로 이어져 불안을 동반한다. 문제는 그런 불안도가 지나치게 높아서 일상이 힘겨워지고 심하게는 우울증으로도 발전한다는 점이다. 주변과 어쩔 수 없이 단절되는 코로나 시기이기에 힘든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를 찾는 발길이 많아졌다는, 참 안타까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전문적인 치료도 좋지만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증상을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우리의 의지일 것이다. 완치가 빠른 시일 내에 어렵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을 만큼의 농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불안, 그리고 그렇게 불안한 매일을 힘겨워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 책이 훌륭한 안내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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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기 - 에리히 캐스트너 시집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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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보듬어주는 치료 시들의 향연, [마주보기]

 

시는 여백의 문학이다. 함축된 시어에서 읽는 이는 기억을 꺼내고 추억을 더듬는다. 생각을 끌어내는 짧은 글, 어쩌면 요즘 같은 혼돈의 시기에 가장 적절한 위로의 수단이자 따스한 벗일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번역되었다는 에리히 캐스트너의 대표작을 모아 국내 최초로 완역판이 출간되었다. 바로 이 책, [마주보기] 이야기이다.

 

일요일 아침의 소도시처럼 옛 기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두 아주머니를 묘사하는 등, 작은 도시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슬퍼할 용기처럼 슬픔이 소중한 생명을 갉아먹지는 않는다며 맘껏 슬퍼하라고 명료하게 조언해주는 시가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몇몇 시 중에서도 악의 기원을 하나 간단히 소개하자면, 시의 마지막 문단에는 선과 악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간결하고도 또렷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의 본성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악은 고칠 수 없고, 선은 어린 시절에 죽는다.’ 본문 뒤에 이어지는 옮긴이의 글을 보면 저자 에리히 캐스트너의 삶과 그의 시가 미쳤던 영향에 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초기 번역판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신즉물주의를 대표하는 저자의 사상과 삶이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대충이라도 꼭 읽어보는 편이 본문의 이해를 도우리라 생각된다. 또 하나, 부제로 내건 시로 쓴 가정상비약이라는 문구를, 책 전체를 다 읽고 나면 아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라 하면 대개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에 심오한 주제를 떠올려, 자칫하면 어렵게만 접근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 속 저자의 시는 의도적으로 쉽고 재미있는 시어를 사용해 친근하게 주제를 풀어낸다. , 본문 시작 전에 사용 지침서라고 하여,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 ‘날씨가 나쁠 때’, ‘예술을 이해하지 못할 때등 각각의 상황에 읽으면 좋을 법한, 알맞은 시를 따로 모아 놓았다. 책의 콘셉트에 맞춘 듯한 꼭지로 독자들에게 또 다른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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