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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생 -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하여
앤드루 H. 밀러 지음, 방진이 옮김 / 지식의편집 / 2021년 8월
평점 :
살지 않은 삶, 살고 싶었던 삶, 그리고 내가 사는 삶, [우연한 생]
‘살지 않은 삶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연한 파스텔의 시뮬러 톤으로 구성된 책의 표지에서 유독 강렬하게 시선을 붙잡았다고 고백한다. 책은 소설이나 시, 영화 대사 등을 두고 삶과 나, 그리고 자아를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성찰한다. 소재는 다채롭지만 책이 다루는 주제는 심플하다.
모든 허구가 우리의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사는 인물들에게 편안한 집이 되어주었다는, 시작하는 글에서 알 수 있듯, 그렇기 때문에 허구는 더더욱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실체화한다. 그리고 그들을 철학적이나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지금은 아니지만 ‘어쩌면 내가 살 수도 있었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평행 우주 같은, 좀 딱딱한 과학 이론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와 내 인생과는 다른, '다른 나와 다른 내 인생'을 주제로 상념에 잠겨본다. 살지 않은 삶이 있으려면 먼저 삶을 어느 정도 살아야 가능하니, 따라서 살지 않은 삶은 중년의 관심사라는 책의 문장부터 아마 많은 독자의 책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에 담겨진 많은 시들, 특히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포함해 여러 현대 시인의 시들은 등장과 동시에 진한 문학의 숲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한동안 가벼운 에세이와 자기 계발 책을 읽던 독자라면 조금은 결이 다른 책을 읽어냈다는 점에서 새롭고 또 좋지 않을까 싶다.
옮긴이의 말 중에 책을 작업하며 내 선택과 화해할 수 있었다는 구절도, 본문이 아니지만 여운이 남는다. 지나온 선택을 덧칠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 선택이 바닥에 깔려 있는 보도블록 같은 거라면 담담하게 허리까지 조금 굽혀 몇 번 두들기며 미소 한번 지어줄 순간이 있다면 좋겠다. 그런 순간이 모이면 후회라는 것과는 조금 더 멀게, 가뿐히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