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리커버 에디션) - 손흥민 첫 에세이
손흥민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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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어떻지 모르지만 손흥민에 대해 잘 모른다. 한창 그가 주가를 올리던 시기, 개인적인 어려움의 시간을 겪고 있었다. 세상이 손흥민 선수에 열광을 하던 시기, 전혀 그의 존재도 모르고 삶을 살았다.

불현듯 그럴 때가 있다. '너무 세상을 모르고 살고 있나' 할 때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TV프로그램이나 시대의 아이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손흥민'의 책, 그의 영상을 찾아 본 것은 '손웅정'이라는 사람 때문이다.

누군가는 '손웅정 작가'를 보고 '손흥민 아버지'라고 떠올리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손흥민'은 '손웅정 아들'로 보인다. '스포츠'가 단순히 '신체 강화'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부자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스포츠'가 다른 무언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그 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철학'을 만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지금도 손웅정 작가의 '책'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트로피를 받은 손흥민에게 칭찬을 하고 들어오며 '트로피와 상장'은 분리수거 잘 하고 오라고 했다는 말.

'손웅정' 작가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라는 책의 일부다. 이 책은 갑자기 마음에 들어왔고 밤 10시 30분이 되어 급하게 서점으로 뛰어가 구매한 책이다. 직원이 마감 정리를 할 때, 잽싸게 구매해서 잠들기 전에 속독으로 훑었다.

다급함에 훑어 내려가다, '탁'하고 걸렸던 부분이다.

'내가 읽은게 맞나?'

책은 '손웅정 작가'의 성격처럼 그저 '툭'하고 그 일화를 소개했다. 뭐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그저 '툭'하고 넌지시던진 그 몇 줄이 가슴에 '팍'하고 꽂혔다. 아이의 추억을 간직하겠다며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꽃모양 색종이도 모두 쌓아두던 나에게 던지던 메시지였다. '물건'이 대관절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가만히 보면 내가 쓴 글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어머니에 관한 일화다. 어머니는 거의 모든 것을 버리길 좋아하셨다. 기분 좋게 구매한 어떤 것을 보고도 '쓰레기'를 사왔다며 타박 하셨다. 때로는 '책', '일기장', '상장'을 비롯해 깔끔하게 버리셨다. 당시 일었던 약속한 마음이 괜스레 죄송스러웠다.

최근 읽었던 손웅정 작가의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에서 다른 인사이트를 얻었다. 이것을 읽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도서를 읽으면서, 읽고 난 뒤 꾸준하게 버렸다. 자가용으로 몇 차를 갔다 버렸는데도 아직도 버릴 것이 많다.

수 년 간, 단 한번도 선택받지 못한 것들.

또한 비슷한 종류의 다른 선택지들.

그런 것들이 다음 경쟁에서도 밀리면서 영원히 쌓여 있을 것만 같았다. 찻장에 '비타민'이 보였다. 종류는 두 종류였다. 가만보니 어떤 하나는 선택을 받고, 다른 하나는 선택 받지 못했다. 선택 받던 녀석을 다 먹고 나면 선택받지 못한 것을 두고 다른 선택지를 또 구매했다. 다만 매번 비타만에 손을 뻗을 때마다 새로운 비타민을 다시 구매할 때마다 선택하지 않았던 '것'에 미련을 두었다.

'미련(未練)'이란 '한자'의 뜻을 보건데 '아닐 미(未)에 익힐 련(練)'을 쓰고 있다. 어쩌면 아직 '익혀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미 내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붙잡고 있는 마음이다.

물건 뿐만 아니다. 과거와 사람. 나는 거기에 익혀지지 않았다. 잊혀져야 할 것을 붙잡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익숙치 않으니, 거기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짧게 일주일 간 손웅정을 빙의했다. 매일 두 시간 씩 청소를 하느라 보낸다는 그를 보며 '미친척'하고 버릴 것을 버렸다. '버리는 방법'에 대한 많은 책과 청소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리고 대략 꽤 필요한 뼈대만 남고 상당히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비로소 느껴졌다.

'개운하다'

혼탁했던 시야가 말끔해진 느낌이다. 집안에 '선택지'는 사라졌고 본질만 남았다. 불필요한 고민과 생각이 단순화 되는 느낌이다.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독서법에 무서운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뒤늦게 그의 행동이 '독서'에 기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손흥민'의 책에 그의 자취가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손흥민'의 책을 읽었다. 손흥민의 책에는 꽤 많은 분량이 '아버지'에게 할당되어 있었다. 주인공이 곁으로 비껴서며 조연으로 등장할 때, 그 사람의 객관성이 명확하게 보였다.

이 부자가 서로 주고 받은 말 중에 가장 많은 핵심 키워드가 보였다.

'호사다마'

언젠가 친구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개인적인 성장이 꽤 이뤄지고 있을 때, 친구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 야속한 마음에 내가 했던 말은 '긍정'이었다. 이후 안좋은 일로 고통스러워 할 때, 친구가 한 말이 있다. '새옹지마'.

좋을 때는 모든 것이 좋게만 보이고, 나쁠 때는 모든 것이 나쁘게만 보인다. 좋을 때 갖는 '긍정'은 '긍정'이 아니다. 때로 좋을 때 보이는 나쁜 면이 긍정이다. '긍정'은 '수긍하다'의 '긍'과 같다. '옳다고 여기다'라는 의미다. 즉, 세상에 존재하는 양면 중 '좋은 면'만 보는 것도, '나쁜 면'만 보는 것도 모두 긍정이 아니다. 긍정은 모든 상황과 현상에 존재하는 양면은 모두 바라보고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호황은 좋다. 불황은 더 좋다'

책에서 언급한 이 말이 더욱 와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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