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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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도둑질의 시작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분신'은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이지만 몰입하는 순간, '제목'은 잊게 된다.

엄마를 닮지 않은 딸의 이야기는 꽤 평범한 가정을 보여준다. 어째서 제목이 '분신'인가,는 몇 장을 더 넘기면 대략 알게 된다.

임야비 작가의 '악의 유전성'의 일부가 떠오르기도 한다. '과학'과 '윤리'의 경계선에 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다.

생명공학과 의학에 대해 살펴보면, 꽤 철학적인 질문을 맞이한다. '테세우스의 배' 역설이다.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은 이렇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아테네에 귀환한다. 아테네 사람들은 그가 타고 왔던 배를 보존하기로 한다. 판자가 썪으면 판자를 바꾸고 어떤 부품을 새 부품으로 교체하며 이 배를 보존한다. 이렇게 부품 하나 하나를 교체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테세우스'가 타고 왔던 그 모체는 완전히 사라지고 '테세우스의 배'라는 이름만 변하지 않고 남게 된다.

그렇다면 그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만약 테세우스의 배가 더이상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라면, 언제부터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게 되는가. 그 명확하지 않은 경계선을 우리는 구분할 수 있는가.

'불경'의 '금강경'에 따르면 모든 것은 고여 있지 않고 흐르고 순환한다. 우리를 구성하는 원자 또한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고 그 형태를 바꾼다. 우리는 호흡하고 배설하고 취식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원자는 우리를 구성하다가 밖으로 나가고, 어떤 원자는 다른 것을 구성하다가 우리의 몸으로 들어온다.

자, 어느 순간부터 '나'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원자를 교환하는 방식은 잠시도 게으르지 않고 꾸준하다. 어떤 세포는 사라지고 어떤 세포는 생겨나며, 어떤 세포는 산화되고 어떤 세포는 환원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꾸준히 교체되는데, 과연 어느 순간부터가 '나'라고 규정할 수 있고, 어느 순간부터가 '나'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만약 '나'라고 하는 것이 '테세우스의 배'와 마찬가지로 '이름'만 유효하다면 어떤 교체도 허용할 수 있다면 '나'는 결국 '이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분신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복제된 인간'은 과연 '나'인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면 결국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철학적인 질문에 '일란성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로써 사색해보면 이렇다.

일란성 쌍둥이는 한 개의 수정란이 분할되어 형성된다. 쉽게 말해, 인위적으로 똑같은 유전 복제품을 만드는 것과 같이 '일란성 쌍둥이'의 유전 정보는 거의 똑같다. 일란성 쌍둥이는 태어날 때, 유전정보가 거의 동일하다. 초기에 일란성 쌍둥이의 DNA는 100%일치한다. 다만 각각 다른 환경적 요인과 개인적 경험을 겪게 되며 작은 유전 변화가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유전 복제'를 통해 '클론'을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그 복제품은 결코 '나'가 될 수 없다. 쌍둥이를 키워보면 알 수 있다. 아이가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그 성향은 완전히 다르며,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 외형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확연하게 다른 외형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두 아이를 동일시 하고 있지 않고 그들 스스로도 상대를 '자신'이라고 인지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로 올라 갔을 때, 그들이 결국 하나의 세포에서 분할된 두 개의 객체라 할지라도 이 둘을 하나로 볼 수는 없다. 다만 소설에서 '극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너는 복제품이야'라는 플롯이 만들어졌다.

유전자 복제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있어야겠지만 유전복제는 결코 '나'가 될 수 없다. 쌍둥이 어느 하나가 '모체'고 어느 하나가 '복제품'이 되지 않는 것처럼 유전 정보가 같은 여러 인간은 결코 동일인이 아니다. 같은 부품을 사용했다고 해서 모든 스마트폰이 모체와 복제품으로 나눠지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 고로 '복제품'은 스스로 특별히 '모체'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분신'은 꽤 많은 생각할꺼리를 독자에게 던저준다. 끊임없이 복제되는 복제품들과 '모체'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과연 수 십년 전 모체로부터 복제된다면 과연 나의 어머니는 '모체'가 되는가, 혹은 '모체'의 어머니가 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출산을 했던 '대리모'가 되는가. 키워준 양육모가 되는가. 이런 여러가지 윤리적인 문제는 '과학과 의학의 발전' 만큼이나 중요하다.

소설에는 꽤 인상적인 문구가 하나 나온다.

"거짓말은 도둑질의 시작이다."

모든 문제는 사소한 문제로 시작하지만 그 결과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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