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독서의 힘 - 전략이 있는 부모를 위한 독서 인문학
심영면 지음 / 지학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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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눈과 귀로 들어와서 혀와 펜으로 나간다. 듣고 읽지 못하는데, 말하고 쓰는 능력이 생길 수 없다. 결국 많이 읽고 많이 들어야, 잘 말하고 잘 쓸 수 있다. 어떤 기능은 '인풋'이고 어떤 기능은 '아웃풋'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위치에 오를 수록 '인풋'기능만큼이나 '아웃풋' 기능이 필수적이다. 두 기능 모두 물론 중요한 기능이지만 어떤 이들은 '인풋' 기능에만 특화되고, 어떤 이들은 이 두 기능에 탁월하다. 이런 능력 차이는 분명 '역할'에도 차이를 만들어낸다. 고로 '사회'는 '아웃풋' 기능을 가진 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한다.

다만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이 모두 연결 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상호 보완적인 위치에 있으나 명백히 다른 영역이다. 이것을 깨닫는데 10년 간의 해외 생활이 한 몫 했다. 유학 시절에 들었던 3.3.3 법칙이 있다. 3개월이면 듣기의 '감'이 생기고, 3년이면 대략 '말'을 할 수 있고, 30년이 돼야 '쓰기'의 감이 생긴다. 실제 그렇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말이 트인지 않는 고민은 나를 괴롭게 했다. 물론 아무리 많이 읽어도 쓰기가 쉽지 않은 일도 마찬가지다. 그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됐다. 말하기 위해서 많이 듣는 것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많이 듣는 것은 '기본'이고 다시, 많이 써야 한다.

이것을 어린 아이에게 적용해도 비슷하다. 아이의 성장도 생후 3살, 만 3살, 만 서른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언어는 저절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즉 많이 들었다고 말을 잘하고 잘 읽고, 잘 말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부모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아이의 어휘력이 늘어남을 확인한다. 일상의 언어를 이해하고 간단한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단,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느 순간부터 교육은 '듣기'보다는 '읽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결국 초등 고학년이 되면 아이는 소리로 듣는 학습에서 벗어나, 문자로 이해하는 학습으로 넘어간다. 실제로 고학년부터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은 음성으로 전달하기 힘들어진다. 점차 다양해지고 방대해지는 정보 때문에 교육은 그것을 습득하기 위해 '문자'를 사용한다. 결국 '문자'를 읽는 능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문자를 습득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까. 문자를 많이 접해야 한다. 별 수 없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한국어를 잘하고,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결국 '노출'이 답이다. 고로 아이의 언어능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할 것.

둘째, 아이에게 많은 책을 읽어 줄 것.

결국 이 둘이다. 아무리 고상한 언어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대체로 2000~3000단어의 어휘만을 사용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나 '관료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일이 적고, '메소포타미아'나 '미토콘드리아'라는 말을 사용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학교에서 이런 어휘를 상용한 문자를 읽게 하고 그것을 확인한다.

결국 어휘력은 몹시 중요하다. 수업 일정에 맞춰 수업하는 '교사'나 집에서 일상 생활을 하는 '부모'에게 몇 번의 그 어휘를 접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아이가 그것의 이미를 인지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멈춰진 정보가 필요하다. 그것을 가장 저렴하고 쉽게 이용하는 방법은 '종이 문서'가 유일하다.

그것을 혼자서 읽고 이해하는 아이들은 단순 정보를 더 자주 접할 수 있게 된다. 자주 접하면 쉽게 익힐 수 있다.

아이의 지능 발달과 상관없이 아이의 학습능력은 고로 '습관'에서 비롯된다. '습관'은 굳게 마음 먹거나, 단순히 '의지력'으로 하루 아침에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상이 중첩된 결과물이다. 수 십 명의 아이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공교육'에서 모든 아이의 능력을 확인하고 교육 할 수는 없다. 결국 공교육은 '학습'보다는 '평가'하는데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학교를 끝나고 어떤 생활 습관을 쌓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인간은 처음부터 문자 보고 이해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인간은 처음에는 '청각정보'를 가지고 정보를 받아드린다. 그러나 7~8살부터 그 정보를 습득하는 창구의 변화가 생긴다. 바로 '글자'이다. 점차 '글'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이 올라가는데 소리로 정보를 받아 들이는 양과 문자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양이 정확하게 '크로스'되는 지점은 만 12살이다.

어느 순간 아이는 '영상'이나 '강의'가 아니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지에 도달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회에 '사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아이들 대부분이 이 황금기를 놓쳐 주요 학습 나이로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학교 성적은 과연 중요한가. 우리는 그것 때문에 책을 읽는가.'

이 질문에 대답은 아니다. 한때, '부자가 되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온라인에서 떠돌았다. '읽기'가 수단인 사람들에게 '읽기'를 '생활'과 '습관'이 되라고 할 수 있을까. 수단 즉, 도구는 단순히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될 뿐이다. 이는 육아와 비슷하다. 육아는 아이를 '고학력'으로 만드는 목적 혹은 수단이 아니다. 육아는 그저 아이와 살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쌓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고로 책은 '수단'이나 '목적'이 아니다. 그저 '기호'이고 '생활'이어야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갑자기 아이에게 뛰어난 성적을 기대하기에 대부분의 성인은 '도서'를 멀리한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에게는 책을 들여다 보고, 문제집을 풀어 고득점을 받길 원한다. 이탈리아 신경심리학자 리촐라티 교수는 원숭이의 다양한 동작을 관찰하면서 '거울뉴런'을 발견했다. 원숭이가 다른 우너숭이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움직일 때와 마찬가지로 반응하는 뉴런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아이의 뇌에 어떤 행동을 심어주고 있는가. 결국 아이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아이의 습관과 성적, 가치관에 부모가 완전히 책임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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