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 야마구치 마사야, 김선영 역, 시공사(2009)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줄거리
미국 북동부의 시골 마을 툼스빌(묘지 마을). 발리콘 가家가 운영하는 유서 깊은 장례회사 ‘스마일리 공동묘지’가 위치한 그곳에서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때마침 아버지 몫의 유산을 받기 위해 툼스빌로 돌아온 펑크족 청년 그린 발리콘은 할아버지의 초콜릿을 먹고 사망하지만 곧 소생한다. 그린은 자신의 몸을 방부 처리하여 죽음을 숨긴 채 친척들의 뒤를 캐어 진실을 파헤친다. 그러던 중 발리콘 가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되는데……. 자신을, 아니 할아버지를 죽이려던 자는 누구인가. 시체가 되살아나는 지금, 범인은 왜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것인가. 산 자는 물론 죽은 이까지 용의자로 생각해야 하는 세계에서 과연 그린은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페이지
pp.93-95
˝흠, 죽은 자의 부활이라. 그건 확실히 복잡한 문제로군. 우선 상속이라는 건 말이지, 피상속인이 사망한 시점에서 시작되거든. 상속 문제에서 사망에 대한 견해는 몇 가지가 있어서. 예를 들어 일정기간 피상속인이 실종되어 실종 선고가 내려졌을 경우에는 비록 본인이 살아 있어도 사망으로 간주하고, 또한 시체가 없어도 재해 등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이른바 인정 사망이라고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 외에는 임상적인 사망, 즉 심장이나 뇌파의 정지 시점, 사망 진단서에 적힌 사망 시점이 상속 개시 시각이 되지. 우리는 지금까지 법적으로 그것을 ‘죽음‘이라고 정했네. 그런데 어떤가? 요즘 사건에서는 임상적인 사망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줄줄이 되살아나는데, 듣자하니 사고 능력도 살아 있는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다지?˝
˝살아 있는 시체라는 건가?˝
˝그렇다네. 그게 복잡해.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딱 그 중간에 있는 존재.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되어 살아 있는 시체가 증가한다면 미국 법률가들의 절반은 정신과에서 긴 의자에 드러눕고, 나머지 절반은 낡은 법률서를 물어뜯으며 사고방식을 바꿔야만 하겠지.˝
˝어떻게 바꾼다는 말이지?˝
˝이를테면 완전한 사망, 다시 말해 육체가 썩어 문드러지거나 티끌로 환원되는 때를 법적인 죽음으로 인정한다든가 하는 것이지. 임상적인 죽음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완벽한 사멸이 아니라면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걸세.˝
˝살아 있는 시체의 법적 사고 능력은 인정할 수 없는 건가?˝
˝이보게. 난 미네르바 신이 아니라 일개 변호사야 그런 어려운 질문에는 간단히 대답할 수 없네. 생전과 다름없는 정신 활동을 하는 시체들도 있다니까 금치산자로 취급할 수도 없을 테고, 당장 그들을 법적 무능력자라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육체는 죽음의 과정 속에 있고, 며칠 후나 아니면 몇 달 후에는 분명 썩어 없어질 거야. 과연 그런 자들에게 법적 사고 능력을 인정해줘도 될지……. 사회적 혼란은 피할 수 없을테니 말일세.˝
˝산 자와 죽은 자,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가?˝
˝가장 귀찮은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유산 상속이겠지. 때때로 실종이나 재해로 인정 사망 판결을 받은 사람이 불쑥 돌아와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는 되살아난 시체가 유언을 바꾸겠다고 하는 경우도 생각해야만 해. 이건 골치 아프군. 살아 있는 시체가 생전의 유언을 순순히 인정하면 문제가 없을 텐데 말이야.˝

p.170
˝돌랜드의 의학사전에서는 생명의 정의를 ‘생명 현상의 집합체‘로 보았단다. 생명 현상이란 아까 말했던 호흡이나 반사 같은 것들이지. 현재 인류의 생사 판정은 이 생명 현상의 유무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럼 생명 그 자체의 유무를 의학적으로 인식할 수는 없는 건가요?˝
˝도저히 불가능하겠지. 죽음의 정의를 묻는다면 대개의 생물학자들은 ‘생명의 결여‘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생명의 정의가 무어냐고 물으면, 현역 생물학자 수만큼 많은 대답이 돌아올뿐더러 그 본질은 하나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게 실정이란다.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생명의 정의에는 대개 그 본질에 접근하는 중요한 단어가 결여되어 있지…….
˝그게 뭔데요?˝
그린은 점차 허스 박사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죽음이다. 생명이 없는 물질에서 생명이 발생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로 생명을 설명하려 들지 않아. 자연계에서 죽음이란 평형상태이자, 생명 활동에 필요한 외부로부터의 보급이 사라졌을 때 모든 생명이 도달하는 자연스러운 상태지. 그러니 말이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생명의 정의는 ‘죽음의 결여‘가 될 게다.˝
˝논리적이라기보다 역설적인 얘기로군요.˝

p.174
인간은 다들 자기가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줄 알고 있다. 사회적인 상호관계에서는 조연을 담당하는 사람도 자기 내부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주역이다. 주역은 다소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젠가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더군다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죽는 일도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린도 지금까지 근거 없이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주역이 도중에 죽어 무대에서 굴러떨어지는 일도 있는 것이다.
그린은 생각했다.
‘주인공이 죽은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pp.438-439
˝그래,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기묘한 세상.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복잡한 요소를 추리 속에 짜 맞춰야만 한다. 그게 혼란의 최대 원인이지.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어떻게 추리할지 알고 있다는 말도 되지.˝
˝무슨 뜻이죠?˝
˝다시 말해 우리는 좀 더 죽은 자의 심리를 파악해야만 한다는 게야. 그들은 어쩌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짐작도 못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들의 그런 심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적임자는…….
˝살아 있는 시체인 나라고요?˝

pp.511-512
그린은 기다리다 지쳤다는 얼굴로 서 있는 그 조문객들을 바라보며, 문득 미국에서는 어째서 엠바밍이라는 행위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미국인들이 정성 들인 사화장으로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것은 단순히 멀리서 찾아오는 조문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저변에는 역시 죽음이라는 부정不淨을 두려워하고 은폐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한편 그와는 반대로 죽은 자를 상냥하게 달래려는 진혼 심리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육체의 부활을 믿는 기독교적 신조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뭐든지 패키지 상품으로 만들어온 미국의 산업은 분명 그들 미국인들의 심성을 통째로 집어삼켜 통제하고 있다.

pp.613-614
하지만 어찌 보면 살아 있는 나머지 사람들이 시체보다 더 비참한 상태였다. 이미 밤이 깊었고,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그들은 지치고 기운이 바닥났다. 그런 모습을 본 그린은 새삼 살아있다는 것은 조금씩 죽어간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살아 있는 시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몰라…….‘
살아 있는 시체들이 무덤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아직 이 세상에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골머리가 지끈지끈한 사건의 진상을 알기 전에는 안심하고 잠들 수 없는 것이다.

p.636
˝우리도 다들 마찬가지일세. 삶과 죽음은 표리일체表裏一體. 삶을 생각하는 일은 죽음을 생각하는 일,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삶을 생각하는 일. 우리도 다들 살아 있는 시체라네. 되살아난 시체들은 중세의 트란지 입상처럼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게야. 삶과 현세에 아무리 집착한들 언젠가는 이렇게 티끌이 되고 만다고 말일세. 이게 바로 20세기의 ‘메멘토 모리‘ 아니겠나. 우리 모두 집행유예 중인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네.˝

분류(교보문고)
소설 > 일본소설 > 미스터리/스릴러소설

기록
2024.12.11(水) (초판 1쇄)

다.

한 줄
내 취향은 아니지만 고전 명작

오탈자 (초판 1쇄)
못 찾음

확장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 조지 A. 로메로(1968)
조지 A. 로메로의 시체 시리즈 1편으로 좀비 영화계의 기념비적인 명작이다. 원제는 Night of the Living Dead로 The Night of Flesh Eater라는 제목도 있다. 원래는 드라이브 인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저예산 독립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개봉 직후, 센세이션적인 인기를 끌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여 11만 4천 달러의 제작비로 전세계적으로 3천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거두었다.
저예산 독립영화답게 흑백으로 촬영했고 배경도 지극히 한정되어 묘지, 집 한채, 동네 주변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 출연진들의 경력은 배우 지망생이나 광고 엑스트라, 연극 배우 정도이며, 좀비로 등장하는 엑스트라들은 무보수로 모집한 이웃들이다. 소품이나 배경이 되는 집도 거의 빌린 것이며 대부분의 좀비들의 분장도 그냥 보면 좀비가 아니라 괴한들로 생각될 정도로 촌스럽다못해 아예 분장을 안한 수준이다.
최초의 좀비 영화는 아니지만, 그 뒤로 등장한 모든 좀비 영화의 시조 격이 되어버린 전설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좀비 영화는 이 영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좀비 장르 뿐만 아니라 공포 영화사, 나아가 영화사 자체에서도 걸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개혁파, 보수파, 흑백 갈등, 반공 이데올로기, 베트남전 등 당시 미국에 있던 모든 갈등 상황을 극적인 상황으로 은유했다. 더욱 대단한 것은 영화에서 극찬받는 점들의 대부분이 의도한 것이 아닌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도 있다. 남주인공이 흑인인 것은 모집한 연기자들 중 가장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을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좀비의 등장도 제작진들이 좋아하던 SF 영화 지구 최후의 사나이와 바디 스내처에서 따왔으며, 통념과 상식을 뒤엎는 스토리는 원래 각본이 블랙 코미디로 써졌기 때문이다. 흑백 영화지만 잔혹하고 소름끼치는 묘사도 일품이다. 오히려 흑백이라서 촌스러웠을 법한 특수효과가 가려지는 장점도 있다. 영화에 사용한 가짜 피는 초코 시럽과 콘 시럽이다.

엠버밍
시체의 간단한 분장에서부터 방부 처리 또는 사고 등으로 훼손된 시신을 복원 처리하는 기술. 동사형인 Embalm 자체가 ‘(시체에) 방부 처리를 하다‘라는 뜻이다. 시체에 있는 피를 빼내고 혈관에 보존액(포르말린)을 채워 넣는 작업이 수반된다. 다른 말로는 유체보존기술, 시체방부처리, 사체위생보전, 시신위생처리라고도 한다. 사후 시신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중보건적 위험성 방지를 위한 외과적 처리로, 사후 발생하는 질병의 감염경로를 차단하고 생전의 모습과 가깝게 보존하는 장례전문기술이다.
이후 서부개척시대에 이르러 엠버밍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다시 한 번 발전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광활한 미개척지에서 개척이나 모험에 종사하다 객사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데다 아직 교통 요건도 미비했기 때문에 고향으로 운반할 때까지 시신의 장기간 보존이 절실했으며 미국 초기의 잦은 전쟁으로 인해 전상(戰傷)으로 훼손된 시신이 많이 생겨나자 시신의 복원과 보존, 그리고 부패로 인한 질병 발생의 방지를 목적으로 적용되어 점차 민간에 퍼져나갔다. 초기에는 일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장의사들이 개별적으로 고안해낸 방부액 등을 사용하여 간혹 난잡하게 처리되는 일도 많았으며 이러한 사례가 몇 건 폭로되자 결국 미국에서 시신위생처리사와 장의사들의 자격을 위한 규칙과 법령을 만들었다. 이후 대중에게 엠버밍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여 민간에서의 수요도 급증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장의사들이 손님 유치를 목적으로 신기술 개발에 열을 올린 결과 엠버밍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엠버밍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도 각지에서 생겨나 그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저자 - 山口雅也(1954-)

원서 - 生ける屍の死(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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