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캔버스 - 하라다 마하, 권영주 역, 검은숲(2015)
낙원의 캔버스
줄거리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팀은 전설적인 컬렉터 바일러에게 루소의 미공개 그림을 감정해달라는 초대장을 받는다. 팀의 상사이자 치프 큐레이터인 ‘톰’의 이름을 ‘팀’으로 잘못 쓴 초대장임을 알면서도, 어린 시절부터 루소의 열렬한 팬이었던 팀은 미공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상사 톰 몰래 바일러의 저택으로 향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단 7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앙리 루소 연구원 오리에를 상대로 한 치의 양보 없는 두뇌싸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루소와 피카소, 두 천재 화가가 평생토록 품고 살았던 비밀이 드디어 그 베일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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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20-21
그렇다. 미술품과의 만남은 우연과 혜안에 지배된다.
희소성이 높고 뛰어난 미술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은 우연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소유자가 어떤 이유로 (현금 수입이나 다른 작품의 구입 자금을 얻기 위해) 화랑이나 경매 회사에 판매를 위탁하는 것도 계획에 의한 일은 아니다. 돌연히 변덕이 나 이 작품을 내놔도 되겠다 싶어진다든지, 갑작스레 현금이 필요해진다든지, 그런 우연한 타이밍이 소유자에게 찾아들지 않는 한, 한번 컬렉터의 수중에 들어간 작품은 웬만하면 다시 나오지 않는다. 개인 소장품은 소유자가 한정적으로 즐기는 것, 또는 소유한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것, 그게 수집가의 심리다. 극단적인 경우 자신이 죽을 때까지, 또는 죽고 나서까지 전매도 공개도 허락하지 않는다. 일본의 거품경제 시기에 고흐의 명작을 손에 넣은 어느 기업가는 ‘내가 죽으면 작품도 같이 태워달라’ 하고 호언해 세계적으로 빈축을 샀다. 하지만 그런 게 수집가의 본심이 아닐까.
p.34
명화는 이따금 이런 식으로 생각지도 못한 계시를 준다. 명화는 그렇기에 명화다. 구도와 색채, 밸런스, 기교가 뛰어난 것만이 아니다. 시대성, 대상물에 대한 깊은 감정, 영감, 끌어당기는 힘, 뭐라 말할 수 없는 꿈틀거리는 느낌.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결정적인 어떤 것이 그림 안에 있는가. ’눈’과 ‘손’과 ‘마음’, 이 세 가지가 갖춰져 있는가. 그게 명화를 명화이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pp.70-71
19세기 말 루소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을 무렵, 참으로 추악하고 서툴기 그지없는 기기묘묘한 그림을 보려고 대중이 전시회장으로 몰려들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사람들은 루소의 그림 앞에서 배꼽 쥐고 웃었다고 한다. 기품 넘치는 예술가들이 모여 있어야 할 전시회장이 흡사 서커스장 같은 열기에 휩싸였다고.
루소에 대한 평가는 화가의 사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본질적으로는 바뀌지 않은 듯했다. 심술궂게 보자면 그의 작품은 역시 원근법도 명암법도 배우지 못한 무지하고 서툰 일요화가의 솜씨다. 하지만 한편으로 루소의 등장이 피카소와 쉬르레알리슴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특이한 재능은 미술사에 있어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그가 ‘무지’를 가장한 ‘천재‘였다면?
pp.98-99
루소를 깊이 연구하면서도, 명작 〈꿈〉의 세계에 매료되면서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세상 사람들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팀 또한 ‘그런 스위치가 달린 인종‘이 아닌 것이다. 명작을 만난 순간 스위치가 찰칵 켜지는 인종. 이걸 갖고 싶다 하는 스위치가.
세계적으로 따지면 그리 많지 않은 ‘그런 스위치가 달린‘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명작의 운명을 쥐고 있다. 어떤 컬렉터는 저명한 미술관의 이사가 되어 자신이 소유하는 작품을 기부하고 명예를 얻어서 미술관 로비에 붙은 현판에 영원히 이름을 남긴다. 어떤 컬렉터는 작품을 사 모아서 싫증나면 팔고 또 새 작품을 사들인다. 또 어떤 컬렉터는 자신만의 은밀한 즐거움으로 명작을 침실에 장식하고 문자 그대로 동침한다.
p.174
˝대단한데, 저 사람은 진짜 창조자야. 아니, 파괴자로군.˝
pp.176-177
독특한 색조의 청색과 장미색으로 아를르캉(할리퀸)이며 눈먼 걸인 등 사회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모티브로 그리던 피카소는, 기술로 보나 야심으로 보나 동지들을 크게 앞서는 존재였습니다. 하기야 당시 화가들 사이에서 ‘기술’은 문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벌이는 토론의 중심은 이미 ‘그림을 잘 그린다’라는 출발점을 크게 벗어나 있었습니다. ‘잘 그린 그림’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대체 어떤 예술가를 가리켜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는가? 그런 것에 대해 아무도 명확히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인물이든 정물이든 풍경이든 눈앞에 있는 것을 똑같이 캔버스에 그려낸 그림만이 ‘잘 그린 그림’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예리한 감성과 시대를 앞지르려는 기개에 있어 피카소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티스와 드랭이 ‘색채의 파괴자’로서 세간의 이목을 끈 것과 같은 대담한 표현 방법을 아직 찾아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대체 무엇이 새로운 건가, 대체 나는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 피카소는 매일 탐욕스레 시내 곳곳을 서성이고 미술관을 드나들었습니다. 고갱이나 세잔의 전시회를 보고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그게 가시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이 젊은 화가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 시대의 물결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코 ‘잘 그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 ‘새로운 표현‘이었습니다.
p.179
그것은 한마디로 ‘추악한 회화’였습니다. 모두가 ‘프랑스 미술에 참으로 큰 손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애조를 띤 피카소 작품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 말에 잘 드러납니다. 피카소를 아는 사람들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인물상을 보는 즐거움을 그들에게서 빼앗은 이 작품의 출현을 진심으로 저주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바로 피카소가 끊임없이 미와 미술에 관해 고민하고 몸부림치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끌어낸 결론이었습니다. 피카소는 이 ‘추악한 회화’를 들이댐으로써 ‘미란 무엇인가?’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중대하고도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p.181
피카소는 이때 마티스의 색채에 대한 도전을 굳이 따지자면 냉담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색채는 확실히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한 요인에 불과하지 않나 하고. 피카소의 관심을 끈 것은 오히려 루소의 〈굶주린 사자〉였습니다.
p.183
모든 걸작은 걸작은 상당한 추악함을 지니고 태어나는 법이다.
이 추악함은 창조자가 새로운 것을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싸웠다는 증표다.
미를 거부하는 추악함이야말로 새로운 예술에게 허락된 ‘새로운 미’다. 그게 피카소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처럼 대담하고 독창적인 미의 논리를 획득한 피카소는, 전 인류 중에서 유일하게 모조리 파괴하고 새로이 창조하는 것을 신에게 허락받은 듯한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 뒤 예술의 흐름을 크게 바꾸게 될, 추악한 미를 지닌 〈아비뇽의 여인들〉, 그리고 큐비슴. 혁명을 부르짖으며 단행하는 젊은 지도자 피카소의 마음속에 앙리 루소가 살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동지들도 후세의 미술사가들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pp.213-214
˝돈 문제가 문제가 아니야. 그런 괴물 같은 그림에서 가치를 발견해내는 인간이 있다는 게 재미있잖아. 어쩌면 이 그림도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뭐랄까…… 이런 그림을 보고 ‘근대적’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야드비가는 턱을 괸 채 “이상해”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근대적’이라니, 그게 뭐야?”
“나도 잘 모르지만 독일인 같은 화랑 주인이 여러 번 말했어. 아마 새롭다는 뜻 아닐까. 새로운 그림…… 새로운 가치관 같은.˝
p.332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려면 낡은 어떤 것을 파괴해야 한다.
타인이 뭐라 하든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려면 그만한 각오가 필요하다. 타인의 그림을 유린하는 한이 있어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어도 자신을 믿는다. 그게 바로 새로운 시대의 예술가가 가져야 할 모습이다.
파블로는 내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p.346
˝이 작품엔 정열이 있어요. 화가의 모든 정열이. ……그게 다입니다.”
pp.346-347
화가의 모든 정열이 있다.
그게 바로 앙리 루소가 이 그림 속에 표현하려던 것이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피카소는 모든 정열을 쏟아부으라고 말했다.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려면 낡은 어떤 것을 파괴해야 한다.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어도 자신을 믿는다. 그게 바로 새로운 시대의 예술가가 가져야 할 모습이다. 아들이라 해도 될 만큼 나이 차가 나는 천재 화가의 조언을 루소는 그렇게 해석했다.
세상 사람들의 야유와 조소를 견디며 자신의 화법을 고수했던 화가. 사후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평가가 확립되지 못하고 여전히 ‘세관원’이라고 불린다. 원근법도 모르는 일요화가라는 말을 아직까지 듣는다.
그렇건만 팀은 이 화가에게 사로잡혔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자신의 커리어와 운명을 걸고, 그리고 큐레이터로서 모든 정열을 걸고.
루소가 평생 회화에 쏟아부었던 ‘정열’ 때문이 아닐까.
p.377
˝이번에 바일러와 함께 지내면서 실감한 게 있어. 화가를 알려면 작품을 볼 것. 몇 십 시간, 몇 백 시간을 들여 작품과 마주할 것.”
그런 의미에서 컬렉터만큼 그림과 오래 마주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 큐레이터, 연구자, 평론가. 아무도 컬렉터의 발치에도 따라가지 못해.
아아, 하지만…… 아니, 잠깐. 컬렉터 이상으로 명화와 마주하는 사람도 있군.
“그게 누군데요?”
오리에의 물음에 팀은 웃으며 대답했다.
“미술관 감시원이야. ……그래, 난 큐레이터가 아니라 감시원이 돼도 좋겠어.˝
pp.396-398
˝모던 아트의 전당이라고 하는데 말이지. 사나에, 모던 아트가 뭔지 아니?˝
˝몰라. 과자야?˝
일부러 시치미 떼는 게 귀엽다.
오리에는 ˝잠깐만˝ 하며 일어섰다. 자기 방으로 달려가 화집 한 권을 들고 온다.
˝이거 어때?˝
표지가 다소 변색됐고 구겨진 화집을 닭고기 조림 접시 옆에 놓았다. 1985년 MoMA에서 개최된 ‘세관원 루소 전‘의 도록이었다. 표지의 그림은 1890년에 제작된 〈나 자신, 초상-풍경〉이라는 작품이다. 붉게 물든 구름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인처럼 우뚝 선, 수염을 기른 남자. 머리에는 챙이 넓은 베레모. 손에는 팔레트와 붓. 등 뒤에 만국기를 건 배가 센 강에 떠 있고, 그 너머에 에펠탑이 보인다.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쥐처럼 조그만 게, 중앙에 찌푸린 표정으로 선 남자와 명백히 비율이 맞지 않는다. 화면에서 깊이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1백 년 전에는 ‘일요화가의 그림‘이니 ‘어린애 낙서‘ 같은 말을 들으며 사람들에게 조소를 샀던 작품이다.
사나에는 표지의 그림을 꼼짝 않고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짤막하게 말했다.
“재미있어.”
그 순간, 오리에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그래, 재미있지? 그거 말고는?”
“색이 예뻐.”
“맞아. 그리고 또?”
“정성스럽게 그렸다는 느낌이 들어.”
오리에는 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인다. 사나에는 얼굴을 표지에 조금 가까이 가져가더니 무심코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쩐지…… 살아 있는 것 같아.˝
그 순간 오리에는 숨을 멈추었다. 어머니까지 같이 숨을 멈춘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나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흘깃 보더니 “이제 됐지?”라고 중얼거리고는 다시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살아 있다.
그림이 살아 있다.
그 한마디가 바로 진리였다. 지난 1백 년 동안 모던 아트를 발굴하고 모던 아트에 매료됐던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 그들의 가슴에 깃든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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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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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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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다.
2016.07.12(火) (초판 1쇄)
루
다.
한 줄
창조자? 파괴자? 아직은 그냥 일요화가
오탈자 (초판 1쇄)
못 찾음
확장
미술관에 간 심리학 - 윤현희, 믹스커피(2019)
나이브 아트를 소개하면서 앙리 루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낙원의 캔버스》의 내용과는 다르게 루소를 취미의 영역의 화가라는 뉘앙스로 설명해놓았다.
베스트 오퍼 - 쥬세페 토르나토레(2013)
˝모든 위조품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 〈꿈〉과 〈꿈을 꾸었다〉, 두 작품의 진실은 무엇일까?
저자 - 原田マハ(1962-)
원서 - 楽園のカンヴァス(2012)
p.11 피에르 퓌비 드샤반 - 환상
p.13 엘 그레코 - 수태고지
p.32 파블로 피카소 - 새장
p.100 앙리 루소 -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p.173 앙리 루소 - 여인의 초상
p.178 파블로 피카소 - 아비뇽의 여인들
p.188 파블로 피카소 - 부채를 든 여인
p.188 파블로 피카소 - 파이프를 든 소년
p.188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 터키 목욕탕
p.396 앙리 루소 - 나 자신, 초상-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