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가의 살인 -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역, 재인(2014)

학생가의 살인

줄거리
주인공 고헤이는 대학졸업 후 자신이 다니던 대학가의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이른바 ‘모라토리움 프리터(기성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채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 그가 일하는 곳은 한때 번화했지만 대학 정문이 이전하는 바람에 몰락하게 된 구(舊)대학가다. 이곳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첫 희생자는 고헤이가 일하는 당구장의 동료 직원. 그는 평소 입버릇처럼 ‘이 거리가 싫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던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전직 전자회사 연구원이다. 이 살인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고헤이와 동거중인 애인 히로미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이 사건은 이른바 외부와 모든 것이 단절된 채 벌어진 ‘밀실(密室)살인’. 고헤이는 주변 인물이 잇따라 피살되자 직접 범인 추적에 나서는데…….

페이지
pp.19-20
˝왜냐고 물으니까 대답할 말이 별로 없군요. 일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그런데 기계공학과에서 공부한 저 같은 사람은 졸업하면 제조업계에 취직하는 것이 보통이거든요. 하지만 전 그런 길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내가 정말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친구들은 바보로 취급하는데 마쓰키는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해 주었다.
˝그거 꽤 바람직한 생각인데. 요즘 세상에는 진로를 정하려고 생각하는 시점에 이미 정해진 레일 위에 있는 꼴이니까. 하지만 꿈만 품고 있어서는 아무 소용 없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고.˝

p.224
˝그래서 나더러도 취직하라는 거야?˝
˝그 반대. 그런 썩어 빠진 인생을 선택하지 않길 천만다행이라는 거야. 그런 인간은 회사에 들어가 봐야 제대로 된 일은 못해. 기껏해야 하라는 일이나 충실하게 하는 정도지. 지금은 그런 정도만 되어도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는 못 버티는 시대가 올 거야. 지시받은 일을 충실하게 하는 정도는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그만일 테니까. 그뿐인 줄 알아? 무지한 일반인들은 기계가 육체노동이나 대신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컴퓨터가 지적 노동 분야에도 진출할 거야. 판단, 추리, 상상,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게다가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불만이 있다고 투덜거리지도 않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지. 의욕 없는 인간은 방해만 될 뿐이야.˝
고헤이는 등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래에는 기계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거야?˝
친구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기계를 만드는 건 인간이야. 기계 이하의 인간은 필요 없어진다는 거지. 우수한 인간과 우수한 컴퓨터가 사회를 이끌어 가게 될 거야.˝

pp.254-255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판단도 하죠.˝
아이자와가 형사의 의견을 보충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는 전문가가 필요 없어진다는 말인가요?˝
˝표면적으로야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자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의사 결정이나 행동을 지원하는 보조적인 도구라고 보면 되겠죠.˝
˝인간을 돕는 것이로군요.˝
˝그렇죠. 예를 들어, 지금 주목받고 있는 의료 진단 엑스퍼트 시스템은 각 개인의 증상을 가지고 병명이나 치료법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 제안이 곧 의사에게 떨어진 지시는 아닙니다. 엑스퍼트 시스템은 추론의 결과를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하는 자세로 의사에게 전할 뿐입니다. 고도의 시스템일수록 의사와의 협동 작업을 요구하고, 또 최종 결론은 의사에게 위임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즉 의료 진단 엑스퍼트 시스템은 의사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것이지 의사를 부정할 만큼의 권위는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의사는 AI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늘 자신을 연마해야 하는 것이죠.˝

p.255
˝다만 전문가가 부족한 현 상황에서 그 대체 도구로 엑스퍼트 시스템을 활용하는 케이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령 공업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제품을 수출할 때, 엑스퍼트 시스템을 첨부하면 그 제품이 현지에 원활하게 적응할 수도 있는 것이죠. GE 사의 ‘기관차 고장 진단 엑스퍼트 시스템‘이 그 한 예인데요. 이 경우에도 인간의 보조 도구로 인식해야지 시스템이 있으니 기초 기술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사용하되 사용되지 말라, 그런 뜻이군요.

pp.478-479
˝나이를 좀 먹었다고 해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둥 훈계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나 자신도 만족스럽게 알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런 겁니까?˝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어떤 인간이든 한 가지 인생밖에 경험할 수 없어. 한 가지 밖에. 그런데 타인의 인생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오만이지.˝
˝길을 잘못 들면 어떻게 하죠?˝
고헤이가 물었다. 어둠이란 서로의 모습을 가리는 대신 마음을 열도록 한다.
˝잘못 들었는지 아닌지도 사실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 잘못 들었다 여겨지면 되돌아가면 되고. 사람의 인생이란 결국 작은 실수를 거듭하다 끝나는 게 아니겠냐.˝
˝간혹 큰 실수도 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아버지는 찬찬히 말을 곱씹듯이 대답했다.
˝그런 경우에도 그 사실을 외면하면 안 되겠지. 그후의 일에도 대가를 치르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고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거야, 아마.˝

분류(교보문고)
소설 > 일본소설 > 미스터리/스릴러소설

기록
2026.03.04(水) (초판 1쇄)

다.

한 줄
사회파 작가의 경계로 넘어왔다

오탈자 (초판 1쇄)
못 찾음

확장
잘 나갔던 신촌 상권은 왜 망했을까? - 취재대행소 왱(2024)
정문 이전으로 쇠락해가는 학생가의 묘사를 보고 신촌 거리가 떠올랐다. 신촌역 3번 출구 맥도날드 앞은 항상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인데 그 맥도날드마저 사라졌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달라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추억의 장소마저 사라져 간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사프란(Saffron)
p.141
에쓰코가 주저앉아 그걸 주워 들었다. 그것은 하얗고 길쭉한 꽃잎이었다.
˝히로미 옆에 흩어져 있던 꽃이잖아. 그때는 빨간 꽃인 줄 알았는데 피 때문이었군.˝
아마도 히로미가 생일 파티를 위해 준비한 것이리라.
˝가을 크로커스네.˝
꽃잎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쓰코가 말했다.
˝언니가 좋아하던 꽃이라서 잘 알아.˝
˝왜 이 꽃을 좋아했을까?˝
˝몰라. 꽃말은 알지만.˝
˝뭔데?˝
에쓰코는 꽃잎을 고헤이의 블루종 주머니에 넣어 주고서 그 위를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대답했다.
˝내 인생의 가장 좋은 날은 끝났다.˝

봄에 피는 꽃은 크로커스, 가을에 피는 꽃을 사프란이라고 구분짓기도 한다.
꽃말은 환희, 지나간 행복, 후회 없는 청춘이다.

저자 - 東野圭吾(1958-)

원서 - 学生街の殺人(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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