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사법이 변하면 사회가 변한다
세기 히로시 지음, 박현석 옮김 / 사과나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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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재판소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전직 재판관 세기 히로시가 일본의 사법, 재판에 대해 솔직하고 거침없이 써내려간 책이다. 전작 <절망의 재판소>에서는 주로 일본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에 대해 비판했는데, 이번 책에서는 재판과 재판소, 재판관 전반에 대해 보다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에서도 사법부 비판과 관련한 많은 부분에서 전작을 인용하고 있으니 두 책을 함께 읽으면 더욱 좋겠다. 
  이 책에 나온 일본의 모습과 우리나라의 사법부, 재판을 비교해보면, 판사의 판단매커니즘, 판결문이 길어지는 경향, 높은 유죄율, 재심개시요건을 엄격하게 보는 것, 국책수사, 국민참여재판제도의 낭비, 법원행정처의 통제, 행정소송 등 가치관계소송, 민사보전소송에서의 소극적 태도, 사법부 관료화, 조정, 화해의 강조 등 닮은 점도 매우 많지만, 재판원제도와 국민참여재판의 시행방법, 인사제도, 헌법재판소의 존재와 역할(일본에서는 거의 70년간 법령에 대한 위헌 판결이 9건에 불과했다고) 등 다른 부분도 많다. 최근 우리나라의 사법개혁 논의를 보면, 역동성이라는 점에서는 우리나라가 그나마 일본보다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저자는 전작과 이번 책에서 사법관료화로 인한 재판의 질 하락 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줄기차게 법조일원화를 제시하고 있지만, 법조일원화를 점차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보면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간단히 내용요약 
1. 우리는 재판관(우리나라에서는 판사)이 논리적 추론에 따라 결론을 내린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사실 재판관은 재판과정에서 얻는 직감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결론을 도출한 다음 그 추론과정을 논리적으로 검증, 설명하는 과정에서 판결문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한 매커니즘을 고려하면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재판관의 일반적, 법적 능력, 통찰력, 식견, 비전, 겸허함, 인권의식, 민주적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판의 생명은 사건의 개별성과 본질을 꿰뚫는 눈이다. 즉,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건 이면에 있는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일이 필요하다. 재판관은 사실인정과정에서 하나밖에 없는 사실, 진실에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인정은 어려운 일이다. 정황상 내려지는 결론과 증거가 맞지 않는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속단과 예단을 배제하고 주장과 증거를 검토하여 판단에 오류가 없는지 거듭 검증해야 한다. 

2. 재판관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 민사소송에서는 재판관의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별로 없어 결론이 대동소이하지만(이 경우에도 증거 가치나 신빙성 판단에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는 있다), 가치관계소송에서는 재판관의 가치관, 인격, 인간성, 거기에 사회나 시대 분위기, 권력, 정재계의 의도 등 여러 요소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최고재판소(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라고 해서 반드시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가치관계소송에서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으로는 대전제를 법률언어로 쓴 다음 결론을 내리는 '눈속임형'과 불리한 사실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는 '잘라내기형'이 있다.   

3. 억울한 죄, 국책수사의 공포 - 형사재판 이야기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은 검찰에 비해 불리한 지위에 놓여 있다. 인신구속이라도 되어 있을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일본 형사재판에서 유죄율은 99.9%에 달하고, 실제 재판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유죄추정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억울한 죄(원죄)가 생겨난다. 증거가 조작되거나 유전자감식결과에 오류가 있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예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재심 개시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보고 있다.  
  국책수사(정치적 사건)의 경우 검찰 특수부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표적수사가 이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무리한 기소로 무죄가 선고되는 비율도 높다. 표적수사라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마땅한지 의문이 드는 사건도 있다.  
  일본의 재판원제도(우리나라에서는 국민참여재판제도)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재판원들의 비밀유지의무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현재 재판원제도는 중죄에 대해 피고인이 유무죄를 다투는지 묻지 않고 이루어져 비용낭비나 감정적 재판이 이루어지기 쉬우므로, 죄의 경중과 무관하게, 피고인이 유무죄를 다투는 사건에 한해 재판원 재판을 하는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또한 양형은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세심하게 전문적으로 정해야 하므로, 재판원은 유무죄만 판단하고, 양형은 재판관이 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 

4.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우리나라에서는 법원행정처)의 문제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에서는 재판제도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를 주도하려 한다.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의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 정계 등의 압력이 있자, 사무총국에서는 세미나를 열어 위자료 인용액을 높이는 방향의 논의를 하도록 유도하였고, 그 후 재판관협의회를 거쳐 위자료 인용액이 갑자기 높아졌다. 원전 소송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대부분 원전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가, 후쿠시마 문제가 터진 후에는 원전을 중단하는 방향으로 재판 경향이 바뀌었다. 이는 재판소가 여론이나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5.  관료재판의 문제(특히 행정, 헌법소송의 경우) 
  행정, 헌법소송, 국가배상소송 등 가치판단이 많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사건에서 재판관은 더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행정소송의 경우 소송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판단해서 각하판결을 하여 본안심리를 하지 않거나, 소송요건이 갖추어졌더라도 행정청의 재량을 너무 넓게 인정해서 기각판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법의 행정에 대한 적정한 감시 기능을 포기한 것이다. 
  주민소송의 경우 지방공공단체 공무원의 위법한 지출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제도인데, 판결에서 그 책임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헌법재판의 경우 1945년부터 2015년까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법령 자체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사례는 단 9건에 불과했다. 
  슬랩(SLAPP) 소송은 국가나 지방공공단체, 대기업 등이 개인의 공공참여나 저항운동 등을 억제할 목적으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 등을 하는 전략적 소송이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이러한 소송이 문제되어 이를 제한하는 법률도 생겨났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이러한 소송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재판소에서도 이를 제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민사보전소송의 경우 채권자에게 잘못된 가압류, 가처분로 인한 손해배상을 위해 요구하는 담보금 액수가 너무 높아 사실상 권리행사가 이루어지기 어렵게 한다는 문제가 있다. 임시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의 경우 특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전반적으로 재판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 직업정신이 투철한 중간층 재판관이 없어지고, 사회전반적으로 우등생의 질이 저하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베끼기 판결, 설득력 없고 도덕성 결여된 재판, 폭언이 이루어지는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6. 화해의 속사정 
  현재 일본에서는 다투는 사건의 2/3 정도가 조정, 화해로 해결된다. 화해가 주특기인 재판관의 경우 공갈, 강요형과 인내(장시간 회유)형이 있다. 그밖에 어떠한 방법을 쓰든, 조정,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속임이나 협박이 필요하다. 

7. 사법부의 현상과 문제점 
  - 인선, 조사관 재판의 폐해, 가치관계소송에서 최고재판소나 다수의 재판소와 반대되는 의견을 낸 재판관에 대한 '찍어내기 인사', 보복인사, 명시적 복무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 등이 있다. 
 -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리어시스템(처음부터 재판관을 선발하여 양성하는 시스템)을 폐지하고 법조일원화를 이루어야 한다.  

8. 재판관의 고독과 우울 
- 사법부의 중요성, 역할에도 불구하고 최고재판소가 오히려 법 절차를 어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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