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일상 창비시선 294
백무산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의 다른 생

 싸락눈 소복 담긴 낡은 새둥지 하나
키 낮은 싸리나무 기둥에
간신히 달린 집 한 채
봄날 근사한 집 짓고 예쁜 짝 만나
가족 이루고 재잘재잘 한철 살다
찬바람 속으로 떠나보냈 뿔뿔이
둥지마저 버리고
긴 겨울 골짜기 나무처럼 울다

 다시 봄날 처음 날듯이 날개짓하
새집 짓고 새짝도 만나
첫봄 맞듯 처음 살듯 다시 산다
새들은 몇번의 생을 살다 가는 것일까 

 내게도 벌써 여러 봄과
여러 겨울이 지났
지난 계절들 내 손으로 다 거두어온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나의 낯선 생이 바람 속
빈 둥지처럼 나뒹굴고 있
나는 지나온 나의 전부가 아니 

내 온몸이 통과했왔건만 낯선 생이
불쑥 낯익은 바람에 타인의 것인 양 흩어지고 있 

나는 그걸 하나의 생이라고 우겨왔
저기 다른 생이 또 하나 밀려오 

 
 #############

전체적으로 보면, ~하네 투로 인생의 허무함을 아저씨 스타일로 그려냈다. 그런데, 일반적인 율격으로 보나, 이 작가가 대부분의 연에서 채택한 ~네, 로 끝나는 방식은 2연부터 평범하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 1연만 유난히 부사절이 호흡이 긴데다가 6째줄에 -뗘나보냈네-라고 쓰며 연이 끝나지 않고 뿔뿔이, 로 다시 3줄이 연결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졍형시의 잣대로 이 시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1연의 마지막을 보자. -긴 겨울 골짜기 나무처럼 울다- 이렇게 한 연이 끊긴 상태가 다음 연에서 -다시 봄날 처음 날듯이 날갯짓하네-로 연결되고 있다.

 이 시는 이 시집의 첫시다. 제목도 심상치 않다. 생의 다른 생. 그런데, 연을 나누는 방식이 시를 전혀 써본적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만약에 ~네의 율격이 파괴되는불협화음을 계산했다라면, 전체가 유기적으로 이루어 졌어야 한다. 그런데, 2연부터는 ~네로 이어지는 상투적 푸념조가 끝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1연에서 율격을 파괴하는 것 같은 행 나눔은 의도적이었던가? 일반적으로 웬만한 시인들은 외재율이나 내재율을 이용하여 행나누기를 하거나, 예외적으로 파격적인 의도로 행을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는 어떤가. 아무런 내용상, 내율상의 의도적 파괴랑은 상관없이 그냥 무작위적인 행나누기를 시도하고 있으니 내게는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바보라서 그런가. 이 작가는 이미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을 수상한 소위 중견시인이다. 더군다나 창비시선은 나름의 필터가 있어, 어느 정도 여과기능이 있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 걸 요새 느끼고 있다. 내용이나 표현이 너무나 상투적인 것은 그것이 작가의 표현방식이겠거니 하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행 나누기를 못하면서, 시를 쓴다는 것은 박자를 못맞추면서 노래를 부르려는 가수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퇴고하는 수고도 더하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낸 시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대한 일상]이란 시집제목은 거대한 말로 치장한 헐벗은 열정으로 화자의 쓸쓸한 自嘲感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