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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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번역하는 사람은 번역가라는 말로 적당하지 않다. 예술가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첫 페이지 첫 단락을 보자.

 

The Nellie, a cruising yawl, swung to her anchor without a flutter of the sails, and was at rest. The flood had made, the wind was nearly callm, and being bound down the river, the only thng for it was to come to and wait for the turn of the tide.

 

[쌍돛대 유람선 <넬리>호의 돛은 펄럭이지 않았고 배는 닻을 내린 채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멎었다. 조수는 이미 밀려들고 있었는데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그래서 강 하류로 내려갈 예정이었던 배는 정박한 채 조수가 썰물로 바뀔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잠깐, 번역가의 약력을 보자. 서울대 영문학과, 뉴욕주립대 영문학 박사, 서울대 교수역임. 현재 서울대학원장에 재직중인 사람이다. 약력은 뒤통수치는 예라고 해야겠다.

 

첫 단락의 정조는 어떠한가. 고요함 그 자체이다. at rest, calm, come to, wait for로 연결되는 문장이다. 번역문장은 펄럭이지 않았고 흔들리다가 멎었다. 밀려들고 있는데, 내려갈 예정이었던 으로 묘사하고 있다. 문학의 번역은 문학적이어야 한다. 콘레드의 문장은 대단히 영국적인 동시에 고전적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한국어 문장을 읽고서 지옥의 묵시록을 상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첫째, 돛은 펄럭이지 않았고라고 했다. 돛이 펄럭이기를 바라는가.

둘째, 흔들리다가 멎었다는데, 흔들거렸던 배가 이제 조용히 물위에 있는 모습이다. 흔들리다가 멎는다하면 정적인 느낌은 다 어디로 가는가.

셋째, 조수는 이미 밀려들고 있었는데라고 했는데, The flood had made로 이미 밀물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밀려들어오는 것은 동적이다.

넷째, 내려갈 예정이었던 배라고 했는데, 이 부분이 이 단락을 오역으로 인해 동적으로 만들어준다. bound가 어디 행이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bind의 과거분사형으로 묶여있는 형국을 말한다.  여기서 나오는 배가 어디를 출발할 예정이라는 이미지와 Heart of Darkness란 제목과 일치하는가. 서울대 영문과 교수가 이러고 앉아 있으니...

 

어떤가. 약력과 실력이 일치하는가. 문학번역의 치밀함은 정조를 얼마만큼 제대로 전달하는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더군다나 이런 분위기는 콘레드의 기저를 만들어준다. 콘래드에 관한 논문까지 쓰면서, 이런 식으로 작품을 접근해서 작품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는 파다하다. 대한민국의 문학수준은 정말 개똥도 안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쉽지 않은 고농도의 작품의 번역을 맡길 사람이 이 땅에 몇 명이나 될까.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5명이나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책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진국이라 불리는 거다.  

 

PS. 제목을 암흑의 핵심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번역자와, 그걸 고대로 두는 출간하는 민음사는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암흑의 핵심도 수학정석의 핵심이나 성문영어의 핵심처럼 쪽집게처럼 암흑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뜻에서 쓴 것인가. 한국사람한테는 한국말 우기기 없기~

그런데, 이런 책이 한국영문과 교수들이 뽑은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에 추천본으로 되어있다. 참으로 기가차서 말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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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6-18 07:22   좋아요 0 | URL
아 왜 이렇게 웃기지..ㅋ

알비스 2011-01-30 08:44   좋아요 0 | URL
아마도 학생한테 번역을 맡겼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민음사 세계전집을 별로 신뢰하지 않지요.

책실이 2011-02-01 20:38   좋아요 0 | URL
학생이라면 더 못했겠죠..^^; 대산재단에서 지원해서 나온 책들이 그나마 수준이 나은 것 같던데요.. 쓰레기 번역문제는 사실 한국 출판의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독자들도 알고서 미래를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죠.. 자기 자식도 그런 책들을 읽고 자라야 하기 때문인데.. 번역가, 저작권, 인세 등의 것들이 총체적으로 고려되어야 나아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주요 출판사 편집자들마져 역량이 수준이하이기 때문에 현상황에서는 나쁜 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