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까지, 다섯 블록
가브리엘라 미르사 지음, 알리시아 발라단 그림, 유 아가다 옮김 / 현암주니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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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 땅의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의 가족이 겪는 일상에서의 일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쓰여졌다.

『바다까지,다섯 블록』 앞,뒤표지

표지는 넓은 모래밭과 바다를 표현하고자, 주인공 사만다가 두 발로 딛고 선 모래밭은 연한 황토빛으로 표현하고 그와 경계를 둔 바다는 오른쪽 하단에 파도의 포말까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 물에 발을 담가보고 싶을 만큼.

앞면지, 속지, 뒤면지

그리고 이어지는 앞면지에서는 '공벌레'(절지동물 등각목(等脚目) 쥐며느리과의 갑각류. 출처:네이버 두산백과 두피디아)가 처음에 웅크리고 있다가 제 몸을 펴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뒤면지에서는 반대의 순서로 펴진 몸을 웅크리는 공벌레가 그려져 있다. 아마도 이는 주인공 사만다의 심리 상태와도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속지에 색을 입히지 않은 집들을 그려넣어, 다 비슷한 흑백처럼 보인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듯하다.

글쓴이는, 신체 표현 활동 교사, 사회심리학 전문가, 작가 등 많은 직업을 가진 '가브리엘라 미르사'이다. 중남미에서 여러 문학상을 받았으며, 이야기꾼이자 가수이기도 하다고.

그린이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무대 미술가로 활동중인 '알리시아 발라단'이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밀라노 브레라 국립 미술원에서 무대 미술을 공부했고, 2012년부터는 아르스 인 파불라 일러스트레이션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단다.

옮긴이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 대학원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여 스페인과 중남미의 좋은 그림책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또한 스페인어로 번역한 우리나라 그림책들을 멕시코와 스페인어에서 출판하기도 했단다. 대표 번역작으로는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 여행>, <마법의 숫자>외 다수의 도서가 있고, 스페인어로 옮긴 책으로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조그만 발명가>, <지하 정원>등이 있다고.


모자를 고쳐쓰고 슬리퍼 제대로 신었는지 확인, 가방 속 내용물 확인하는 장면

사만다는 자신의 친구이자 반려동물 공벌레에게 "절대 무당벌레를 쫓아내면 안 돼"라고 당부하며 집에서 다섯 블록 떨어진 바다까지 첫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시 한 번 준비물을 챙기며 준비합니다. 모자를 고쳐쓰고 슬리퍼를 제대로 신었는지 확인을 하고, 가방에 든 물건을 벌써 세 번째 쏟아 내용물을 확인합니다.

"손잡이 달린 물통, 확인!

크기가 다른 삽 두 개, 예비용 삽 한 개, 삽 세 개, 확인!

벌레 퇴치제, 카카오 향 립밤, 확인!

모자 달린 수건 한 개, 예비용 수건 한 개, 확인!

모래가 묻으면 입을 속옷 한 벌, 확인!

사만다는 가방을 네 번째로 챙기면서 또 확인했어요. 슬리퍼를 오른발, 왼발에 제대로 신었는지.

신발 제대로 신었는지 또 확인하는 사만다


그리고는 '짝, 짝, 짝' 손뼉을 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바닷가로 떠날 준비가 되었나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가기 싫어요"란 말을 반복하네요. 엄마는 가기 싫으면 다음에 가도 된다고 사만다를 달래보는데 사만다는 가겠다고 하며 또 한번 슬리퍼를 제대로 신었는지 확인하고 모자도 고쳐쓰고 얼음통에 있는 공벌레에 잘 있으라고 인사한 뒤 씩씩하게 문을 나섭니다. 하필 그때, 오토바이가 천천히 다가오네요. 엄마는 소리에 민감한 사만다의 성향을 알기에 걱정부터 드는데, 길을 묻는 오토바이 운전자...결국 엄마는 어서 지나가라고 몸으로 말했지만 남자가 당황스러워 하는 사이, 이미 엄마로부터 6미터나 뒤로 물러나 있던 사만다는 6초쯤 후 힘껏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오토바이 소음과 헬맷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사만다


"헬맷은 싫어요! 헬맷은 싫어요!"

결국 헬맷 쓴 그 남자를 얼른 쫓아보낸 후에 흥분한 사만다를 꼭 안아주었지요.

모든 것이 멈췄고,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습니다. 사만다와 엄마의 가슴에 휘몰아치던 모래 폭풍이 잔잔해졌고, 사만다를 감싸던 단단한 껍질이 서서히 부드러워졌어요. 다시 가방 속 물건을 확인한 사만다는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지만 다시 도전의 길로 나아갔어요.


자기만 알고 있는 완벽한 각도에 서서 첫 번째 도로를 건너고 집도 완전히 등지고 서서 나풀거리는 응원 수술처럼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며 걸어갑니다.

엄마, 아빠가 항상 일해 준 대로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다리가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빠른 걸음으로, 그러나 두 발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지는 않게."

사만다는 온 정신을 발에 쏟느라 앞만 보며 길을 건넜어요.

사만다의 상태를 짐작하고 경적을 울리려다 마는 자동차 운전자

그 때 달려오던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려다, 사만다가 발에 집중한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본 운전자는 사만다를 조용히 기다려 주었어요. 무사히 도로를 건너간 사만다는 잠시 숨을 돌리며 힐끗 저 너머를 바라봅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걸 확인한 사만다는 제자리에서 폴짝 가볍게 뛰며 가방을 고쳐 멨고, 가방 속 물통과 삽이 요란한 소리를 내자 사나워 보이는 개 한 마리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으르렁거렸어요.

개가 짖을까봐 멈칫하는 사만다

사만다는 잠시 멈춰 섰어요. 개가 짖을지 말지 망설이는 사이 사만다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합니다.

"개 짖는 소리 싫어, 개 짖는 소리 싫어..."

다행히 개는 사만다는 힐끔 돌아보고는 다시 엎드렸어요.

사만다는 다시 걸어가며 중얼거렸습니다.

"도착하면 만날 수 있어. 도착하면 만날 수 있어."

마지막 보행로를 무사히 지나 어린 소나무가 펼쳐진 산책길을 10미터쯤 걷다가 눈을 들어 길 끝을 보고 길이 끝나는 곳까지 와서 자신의 슬리퍼를 내려다보았어요.

주변이 모래로 가득했고, 바다냄새도 바람에 실려 오네요.

슬리퍼를 양손에 끼고 가림막 삼아 멀리 앞을 내다보는 사만다,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사만다는 슬리퍼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아빠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슬리퍼를 벗어 양손에 장갑처럼 꼈어요.

그리고 2미터 앞을 보다가, 3미터 앞, 5미터 앞까지 시야를 넓혀 갔어요. 아빠가 가르쳐 준 20미터까지를 보기 위해.

곧 노을이 질거라 손에 끼워 든 슬리퍼를 가림막 삼아 햇살을 막으며 저 앞을 바라보았어요.

거기, 아빠가 있었습니다. 사만다를 바라보며 두 팔을 벌린 채로.

두 팔 벌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아빠에게 달려가는 사만다

사만다가 파도처럼 달려갑니다.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사만다에게는 다섯 블록마냥 멀게 느껴지네요. 사만다는 아빠 바로 앞, 50센티미터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거리를 잰 다음, 수평선과 완벽히 직각을 이루는 바로 그 곳에서 아빠를 꼭 껴안았어요.

그림책이지만, 작년 여름 우리가 TV드라마로 만났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속 우영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그 드라마 속 우영우의 대사처럼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울림을 준다. 책 속의 사만다의 일상은 수많은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양상 중 극히 일부분일텐데도 일상 생활중에 얼마나 많은 불안과 싸우고 있는지, 그 처지를 감당해야 하는 가족들의 고난한 일상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힘이 들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책이 사만다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 가족들에게 한 줄기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며, 부디 우리 사회에서 자폐성 장애인들같은 발달 장애인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지속적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본 서평은 현암주니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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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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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앞 표지

표지에 열린 문 안쪽에 아쿠아리움이 펼쳐져 있는, 이 책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이자, 출간 즉시 20만 부 판매 및 전 세계 28개국에 출간되었으며, 아마존 '올해의 소설'로 선정된 '셸비 반 펠트'의 장편소설이다. 우리나라에도 전국적으로 십여 개의 아쿠아리움이 있는데, 그중 최대 규모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이란다. 650정 55,000마리의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고.(출처:네이버 검색)

사실 아쿠아리움도 큰 범주에서는 동물원과 마찬가지로 해양생물을 관상용 대형 수조에 가두어놓고 종일 관람객들을 맞는 강제노동의 현장이 아닐까 한다.

이번에 받은 도서는 가제본 형태여서 저자나 역자에 대한 가제본 형태여서 저자나 역자에 대한 이력이나 소개글이 없어서 조금 막연하긴 하지만, 이 책의 작가인 '셸비 반 펠트'가 "한국 독자들에게"라는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글을 편지글 형태로 써두어 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부터 훈훈한 느낌을 받는다.

"어느 날 저는 거대태평양문어가 수조를 탈출하는 인터넷 영상을 보고 문어 마셀러스를 떠올렸습니다.(…중략)완벽하지 않고 엉망진창인 인간들이 비슷한 문제로 얽히고설켜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쿠아리움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실제로든 비유적으로든 어딘가에 갇혀 있거나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켰습니다."(본문 pp.7-8)라며, 즐겁게 이 책을 읽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소웰 베이'라는 미국 워싱턴주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에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바로 '소웰 베이 아쿠아리움'.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곳에 실은 아주 신묘한 존재가 살고 있다. 인간에게 염증과 분노를 느끼는 괴팍한 문어, '마셀러스'다. 지능이 높고 위장에 능할 뿐 아니라 글도 읽을 줄 아는 그는, 5억 개의 뉴런이 퍼져 있는 여덟 개의 팔을 유연하게 흔들며 유리 수조 너머를 관찰하곤 한다. 아는 것이 많고 삶의 이치를 통달한 듯해 보이는 문어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이고 슬픈 약점이 있으니...그건 바로 살 날이 160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오래 된 아쿠아리움에는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 쓸고 닦으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사는 70대 야간 청소부 할머니 토바가 일하고 있다. 어느 날 토비는 어찌 된 일인지 수조 밖에서 온몸이 전선에 뒤엉켜 꼼짝하지 못하는 못하는 발견하고 구조하게 되고, 둘은 친구가 된다.

토바는 아들 에릭을 그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잃었다. 낚시를 하러 간 건지 바다로 작은 보트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하필 그날 저녁 에릭의 늦은 귀가에도 남편 윌과의 오랜만에 달콤한 사랑을 나누느라 미처 빨리 알아채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며 평생을 우울하게 지내왔다. 윌마저 떠나 보냈기에.

토바의 아픈 사연을 알게 된 마셀러스는 이 특별한 친구를 위해 비밀을 밝혀내는데...

토바와 마셀러스의 에피소드 외에 자유로운 영혼인 어디엔가 소속되어 진득하게 하는 직업으로서의 일 대신 당장의 의식주를 해결할 만큼만 단기 아르바이트만 하며 삶을 꾸려가는 캐머런 캐스모어는 결국 연인 케이티의 집에서도 버림받고 쫓겨난다. 아빠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없었고 엄마는 캐머런이 아홉 살 때부터 약물중독으로 이모 진에게 맡기고 자신의 곁을 떠났다. 진 이모는 법원에서 캐머런의 단독 친권자로 지정받아 캐머런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그 진 이모가 건넨 엄마의 물품 상자에서 귀금속과 고교 시절 사진을 발견한 캐머런은 사진 속 엄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엄마의 뺨에 입맞춤을 하려는 듯 고래가 옆으로 돌아가 있는 남자, 그리고 귀금속 중 반지 안쪽에 새겨진 'EELS'란 글자를 단서로 소웰 베이 고등학교로 검색된 스캔 사진 중 "다프네 캐스모어와 사이먼 브링스"란 사진 설명글을 발견한다. 자신의 나이를 역산하니 그 사진 속 엄마는 이미 자신을 임신한 상태였고, 그 팔을 두른 남자, 사이먼 브링스가 왠지 자신의 아버지라고 확신하고 그를 검색하니 상당한 재력가라는 소개글이 있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기분으로 든든한 후원자라 생각한 캐머런은 아빠를 찾아 워싱턴의 소웰 베이 마을로 오게 된다.

어쩌다 보니 마트 사장 이선네 집에서 월세를 살며 이선의 소개로 토바가 아쿠아리움 청소 중 불량 사다리의 발판이 부러져 다리 골절상을 당해 6주 정도 병가를 쓰는 사이, 캐머런이 대체 직원으로 고용되어 일하던 중 자신의 소중한 일터 상태가 걱정되어 들렀던 토바와 대면한다. 하필 마셀러스가 탈출을 시도하여 사무실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닌 그 때, 영특한 마셀러스는 인간의 유전자 중 하나인, 국내 소설에서도 소재가 된 적이 있는 '걸음걸이'의 유사성은 피를 나눈 인간들은 걸음걸이가 정말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전에 있던 청소부와 새로 온 청년은 말이다. 걸음걸이가 똑같다. 두 사람 모두 보조개치고는 보기 드물게 아래쪽에, 왼쪽 뺨 아래쪽에 있으며 모양도 같은 하트다. 두 사람의 눈은 반점처럼 초록빛과 금빛이 섞여 있다.(…중략)얼마 전부터 청소 일을 맡게 된 젊은 남성은 발을 다친 여자 청소부의 직계 자손이다."(본문 pp.297-298)라고.

내가 받은 가제본의 도서는 대체로 마셀러스가 자신이 수족관에 감금된 지 "1,341일째"라는 일지의 기록을 남기며 끝이 난다.

"인간은 재미를 위해 진실을 거짓으로 말하는 유일한 종이다. 그들은 이를 농담이라고 부른다. 말장난이라고도 하고. 저의가 다른 말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그들은 웃거나 예의상 웃는 척 한다."(본문 p.315)라고 인간의 속성을 꼬집으며.

정식 출간본의 60%정도만 읽고 이 작품을 다 읽었다고 감히 말하기 힘들지만 출간본은 무려 550페이지 정도일테니-목차를 봤을 때-첨삭의 내용이 없다면, 애독자가 아닐 경우 선뜻 집어들기 힘든 분량일수도 있다. 다만, 독자층의

청소년부터는 읽어도 좋은 내용이니 미리 분량에 질려서 이 흥미로운 책을 제쳐두지 않길 바란다.

요즘 실제 바다 속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생태계의 교란이 심해 외래 어종이나 희귀 어종들이 출현하고, 해양쓰레기로 인해 점점 해양 생물들의 터전이 사라지는 서글픈 현실이다. 반면, 아쿠아리움은 실내에서 매일 청결한 환경에서

영양소까지 고려한 먹이도 정시에, 정량으로 제공되니 해양생물들에게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마셀러스는 월드컵 경기때마다 우승팀을 맞출 정도의 문어보다 더 뛰어난 지적 능력의 문어로서, 자신이 수족관에 감금된 날수를 세며 관객들의 눈요깃감이 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며 동시에 인간들을 향해 비판적 시선을 보낸다. 때로는 강도높게 비난도 하면서…. 그러나 자신을 구해 준 토바에 대해선 자신처럼 늙어가는 존재로서의 동병상련을 느끼듯 애틋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한편, 하나뿐인 자식 에릭을 열여덟 살인 채로 떠나보내고 그 뒤 남편 윌도 사망하니 홀홀단신으로 결국 요양원 입소까지 생각하고 집까지 처분하는 장면에서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면서도 언젠간 내 얘기가 되겠다 싶으니 괜시리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동물과 인간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 라고만 평하기엔 뭔가 현자같은 마셀러스와 너무도 치열하게 사는 토바의 일생을 담은 두 종(種)의 각각의 자서전 같기도 한 소설이다. 마셀러스의 '토바와 캐머런의 친족관계'를 유추하는 과정은 마치, 이효석 작가의 《메밀꽃 필 무렵》이나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를 떠올리게 했고, 토바가 요양원 입소를 결정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UP》이 떠올랐다. 미처 아직 읽지 못했거나,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시간되시면 한 번 찾아 보시기를……

본 서평은 미디어창비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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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내 인생 살겠습니다 - 4인4색, 엄마들의 꿈, 도전, 성장 이야기
우희경 외 지음 / 대경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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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의 저자들은 다른 듯 닮은 우리네 보통의 주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각자의 상황과 일상은 조금씩 다른다. 그러나 또 저자들 모두 하루 24시간을 그 누구보다 알차게 보내고 있는 워킹맘들이다.

표지부터 다이어리처럼 아기자기한 디자인이어서, '다이어리 꾸미기'의 취미가 있는 독자라면 표지를 보는 순간 한번은 집어들게 될 것이다. 또한 제목 또한 너무 당당하기에 속이 시원하지 않은가. 육아와 살림에 지친 엄마들이라면.

목차는 총 4인의 저자의 이야기가 한 꼭지씩 'STORY 1~4'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 STORY는 각자의 이야기 분량에 따라 아홉 개~열 개로 나누어 기술되어 있다.
그럼, 4인의 엄마들의 성장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STORY 1. 글쓰기로 성장한 엄마, 우희경'편은, 1인 기업 <브랜드미스쿨>대표로서, 책쓰기와 글쓰기 프로그램을 자체 기획, 진행하여 다수의 저자를 배출했고, 1인 기업가 양성을 위한 퍼스널브랜드 코치로도 큰 성과를 보이며 꾸준한 집필 활동과 강연을 통해 작가로도 활동중인 우희경님의 이야기다. 그간 발간한 저서로는 <완벽한 퇴사>,<생계형 긍정주의자 선언>,<나는 성장하는 엄마입니다>등이 있다고. (앞표지 책날개 참조)
자신을 전형적인 '육아형 경력단절 여성'이라 칭하는 저자 우희경은, 퇴사 후 한동안 육아에만 전념하던 중, 책 속에서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성공한 워킹맘들의 사례를 접하면서 그들을 롤모델로 삼고 새로운 두 번째 커리어를 만들기로 결심했단다. 그러면서 하루에 최소 1시간은 나를 돌보는 '자기돌봄 시간'으로 만들라고 이야기한다.
'STORY 2. 육아로 성장하는 엄마, 조도임'편은, 삼 남매의 엄마이자 유학원 일과 '제주한달살기'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 워킹맘으로서, 희귀난치병을 가지고 태어난 셋째 덕분에 삶 자체가 바뀌었다는 조동임님의 이야기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렇게 다자녀 양육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애국하고 있는 그녀는, '엄마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이라는 공식처럼 양육하는 일상 중에서도 엄마의 행복을 꼭 찾아보라는 조언을 한다.
'STORY 3. 재테크로 성장하는 엄마, 유혜인' 편에서는, 재테크에 진심인 현재 성남시 여성비전센터 입주 기업으로 선정되어 1인 기업을 준비중이며, 어린이 경제 교육 프로그램을 자체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는 유혜인님의 이야기다.
불우한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모든 불행의 원인이 "돈"때문이라는 신념으로 20대 젊은 청춘을 돈버는 일에만 심취했었단다.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자신을 평생 잘 돌봐줄 것 같은 듬직한 남편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불우한 인생을 품어 준 남편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돈을 불릴 방법을 고민하며, 저축, 주식, 코인, 부동산 등 여러 자산증식 수단에 투자하다가 손해를 보기도 하면서 더욱 열심히 연구하며 상당한 재력을 보유하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독서도 중요하지만 '실천력'에 좀더 힘주어 말한다.
'STORY 4. 자신의 '행복찾기'로 성장하는 엄마, 정하연'편은, '평범한 대한민국 워킹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독서를 시작하면서 서평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를 발판으로 책까지 내고 싶어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집에서 글을 쓰며 제2의 직업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는 '정하연'님의 이야기이다.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을 꿈꾸던 그녀는 가족으로부터의 조기 독립을 계획하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일종의 도피적인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동안 임신도 미룬채 여가도 즐기며 자유로운 부부만의 일상을 이어가던 중 난임과 수술, 재임신 후 출산까지 힘든 출산과정을 겪었지만 에너지가 많은 성정상 오래 집에만 머무르기는 힘들었고 재취업과 퇴사, 이직을 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왔단다. 저자 정하연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이 4인 엄마들의 이야기를 갈음하고자 한다. "나 자신이 어떨 때 행복하지 나를 헤아리고 나만의 행복을 찾아보세요."(본문 p.266)

어쩌면 대한민국의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82년생 김지영>의 '지영'이를 떠올리게 하는 이 책 속 4인 4색 엄마들은 공통적으로 "철저한 자기 관리에 기반한 실천력"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행복의 매개체로 '독서'를 꼽고 있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부터 실천해보자!


본 서평은 대경북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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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 온 손님 모든요일그림책 8
박혜선 지음, 이수연 그림 / 모든요일그림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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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워 보이는 토끼들의 열매 수확 장면이 그려진 앞표지와는 달리 뒤표지의 문장들은 평화로움이 깨진 뭔가 분노로 가득찬 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해준다.


글쓴이는 미루나무를 좋아하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말 걸기를 좋아한다는, 다수의 그림책과 동시집·동화책을 집필하여 한국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열린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한 박혜선 작가님이고, 그린이는 영국 캠버웰예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석사 과정을 밟고, 현재는 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 파티(PaTi)에서 그림책과 그래픽노블 스토리텔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수연 일러스트레이터님이다.

내가 미술을 좀 공부했으면 이 책 그림의 기법이나 화풍을 멋들어지게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예체능 분야의 문외한인 나는 그저 '유화풍'의 그림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짐작하듯, 평화롭던 토끼마을에 다양한 동물들이 이주해오면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 상황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다람쥐, 멧새, 달팽이 같은 작은 동물부터 들쥐, 오소리 같은 토끼랑 비슷한 몸집의 동물들이 몇 마리씩 이주해 오더니,

나중에는 고라니, 멧돼지, 두더지 같은 토끼의 천적일법한 동물들까지 토끼들이 사는 마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에 토끼마을은 갈수록 의식주가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민심도 흉흉해져 "당근밭에 당근이 없어진다"는 둥, "옹달샘이 점점 오염된다"는 둥, "두더지들이 토끼인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둥…심지어 "멧새들의 노랫소리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등의 정말 많은 걱정과 오해가 쌓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토끼들은 '공론의 장'인 '마을 광장'으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주 동물들을 향해 "모두 우리 마을에서 나가!"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어른 동물들과 달리 아이 동물들끼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른 동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건 좀 더 지켜보자는 유보적인 입장의 토끼도 있었으나 다수의 토끼들은 여전히 원주민인 토끼들을 제외한 다른 이주 동물들의 강제 이주에 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애있게 즐겁게 노는 아이 동물들. 그 모습을 보며 토끼마을의 어르신인 늙은 토끼는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도 이 마을에 온 손님이었지. 그 옛날 누군가 따뜻하게 맞아 주어 지금의 우리 토끼 마을이 있는 거고. 어른들은 잊었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는 거야. 마을에 온 손님을 따뜻하게 대해 줘야 한다는 걸" 이라고 말했다. 이에 토끼들은 다시 전처럼 울타리를 활짝 열어두었다.

언제라도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인사와 함께.


이 책은 그림책이지만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우리 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골 인심이 후하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린 듯하다. 귀농귀촌을 꿈꾸고 내려갔다가 원주민과의 갈등으로 도로 도시생활로 복귀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얼마 전에도 어느 마을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회비 납부 문제로, 이주민들이 원주민 대표에게 이의를 제기하자, 그 마을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따돌림 등을 하여 언론에 보도된 사례도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단지내 보행로를 입주민 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폐쇄하여 원주민들과 보행로 통행권 갈등이 발생하여 통행로 입구에 '타 주민들의 통행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현수막까지 부착된 사례가 보도되기도 하였다.

이런 사례들 중 아파트 입주민 전용 통행로 개방 금지 사례는 나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수년 전, 서울의 모 아파트 거주 당시 인접한 아파트를 일부 지나는 길이 어느 날 폐쇄되어 먼 길을 돌아 목적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가 더 먼저 생긴 대단지 아파트였는데도 그러한 조치가 없었는데, 나중에 들어 선 아파트 입주민들이 '단지내 통행로 제한' 조치를 취하는 행태가 참으로 못마땅했다. 그 이후로도 신도시나 신입주 단지들에서 같은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실을 보니 씁쓸함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예전 반상(班常)의 구별이 뚜렷한 조선시대에는 태생적 신분 차이로 인한 차별을 경험했다면, 21세기의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빈부(貧富)차에 의한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신분이든 자산 규모든 어떤 이유로도 존엄한 인간의 가치가 훼손당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작가는 이 책에서처럼, 아이들만은 제발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나'와 '남', '우리'와 '다른 사람들'로 편가르기 하지 않는 순수함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요즘은 드라마나 뉴스 보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아파트 평수, 차종, 부모의 직업' 등으로 끼리끼리 또래문화를 형성하며, 자신들과 다른 부류의 아이들은 따돌리는 행태가 만연해있다.

촌락 단위로 구성된 마을의 범위를 넘어선 21세기의 현실에서,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전통적 주민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부디 아이들에게까지 '이기주의, 편가르기, 차별' 같은 부정적 정서는 교육시키지도, 물려주지도 말자!


본 서평은 모든요일그림책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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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 온 손님 모든요일그림책 8
박혜선 지음, 이수연 그림 / 모든요일그림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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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 중 하나인,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을 주제로 한 그림책!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이 갈등의 해법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여전히 잘 지내는 아이 동물들을 보면서, 작가는 아이들만은 제발 순수함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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