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 온 손님 모든요일그림책 8
박혜선 지음, 이수연 그림 / 모든요일그림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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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워 보이는 토끼들의 열매 수확 장면이 그려진 앞표지와는 달리 뒤표지의 문장들은 평화로움이 깨진 뭔가 분노로 가득찬 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해준다.


글쓴이는 미루나무를 좋아하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말 걸기를 좋아한다는, 다수의 그림책과 동시집·동화책을 집필하여 한국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열린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한 박혜선 작가님이고, 그린이는 영국 캠버웰예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석사 과정을 밟고, 현재는 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 파티(PaTi)에서 그림책과 그래픽노블 스토리텔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수연 일러스트레이터님이다.

내가 미술을 좀 공부했으면 이 책 그림의 기법이나 화풍을 멋들어지게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예체능 분야의 문외한인 나는 그저 '유화풍'의 그림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짐작하듯, 평화롭던 토끼마을에 다양한 동물들이 이주해오면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 상황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다람쥐, 멧새, 달팽이 같은 작은 동물부터 들쥐, 오소리 같은 토끼랑 비슷한 몸집의 동물들이 몇 마리씩 이주해 오더니,

나중에는 고라니, 멧돼지, 두더지 같은 토끼의 천적일법한 동물들까지 토끼들이 사는 마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에 토끼마을은 갈수록 의식주가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민심도 흉흉해져 "당근밭에 당근이 없어진다"는 둥, "옹달샘이 점점 오염된다"는 둥, "두더지들이 토끼인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둥…심지어 "멧새들의 노랫소리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등의 정말 많은 걱정과 오해가 쌓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토끼들은 '공론의 장'인 '마을 광장'으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주 동물들을 향해 "모두 우리 마을에서 나가!"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어른 동물들과 달리 아이 동물들끼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른 동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건 좀 더 지켜보자는 유보적인 입장의 토끼도 있었으나 다수의 토끼들은 여전히 원주민인 토끼들을 제외한 다른 이주 동물들의 강제 이주에 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애있게 즐겁게 노는 아이 동물들. 그 모습을 보며 토끼마을의 어르신인 늙은 토끼는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도 이 마을에 온 손님이었지. 그 옛날 누군가 따뜻하게 맞아 주어 지금의 우리 토끼 마을이 있는 거고. 어른들은 잊었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는 거야. 마을에 온 손님을 따뜻하게 대해 줘야 한다는 걸" 이라고 말했다. 이에 토끼들은 다시 전처럼 울타리를 활짝 열어두었다.

언제라도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인사와 함께.


이 책은 그림책이지만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우리 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골 인심이 후하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린 듯하다. 귀농귀촌을 꿈꾸고 내려갔다가 원주민과의 갈등으로 도로 도시생활로 복귀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얼마 전에도 어느 마을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회비 납부 문제로, 이주민들이 원주민 대표에게 이의를 제기하자, 그 마을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따돌림 등을 하여 언론에 보도된 사례도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단지내 보행로를 입주민 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폐쇄하여 원주민들과 보행로 통행권 갈등이 발생하여 통행로 입구에 '타 주민들의 통행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현수막까지 부착된 사례가 보도되기도 하였다.

이런 사례들 중 아파트 입주민 전용 통행로 개방 금지 사례는 나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수년 전, 서울의 모 아파트 거주 당시 인접한 아파트를 일부 지나는 길이 어느 날 폐쇄되어 먼 길을 돌아 목적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가 더 먼저 생긴 대단지 아파트였는데도 그러한 조치가 없었는데, 나중에 들어 선 아파트 입주민들이 '단지내 통행로 제한' 조치를 취하는 행태가 참으로 못마땅했다. 그 이후로도 신도시나 신입주 단지들에서 같은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실을 보니 씁쓸함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예전 반상(班常)의 구별이 뚜렷한 조선시대에는 태생적 신분 차이로 인한 차별을 경험했다면, 21세기의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빈부(貧富)차에 의한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신분이든 자산 규모든 어떤 이유로도 존엄한 인간의 가치가 훼손당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작가는 이 책에서처럼, 아이들만은 제발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나'와 '남', '우리'와 '다른 사람들'로 편가르기 하지 않는 순수함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요즘은 드라마나 뉴스 보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아파트 평수, 차종, 부모의 직업' 등으로 끼리끼리 또래문화를 형성하며, 자신들과 다른 부류의 아이들은 따돌리는 행태가 만연해있다.

촌락 단위로 구성된 마을의 범위를 넘어선 21세기의 현실에서,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전통적 주민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부디 아이들에게까지 '이기주의, 편가르기, 차별' 같은 부정적 정서는 교육시키지도, 물려주지도 말자!


본 서평은 모든요일그림책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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