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까지, 다섯 블록
가브리엘라 미르사 지음, 알리시아 발라단 그림, 유 아가다 옮김 / 현암주니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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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 땅의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의 가족이 겪는 일상에서의 일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쓰여졌다.

『바다까지,다섯 블록』 앞,뒤표지

표지는 넓은 모래밭과 바다를 표현하고자, 주인공 사만다가 두 발로 딛고 선 모래밭은 연한 황토빛으로 표현하고 그와 경계를 둔 바다는 오른쪽 하단에 파도의 포말까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 물에 발을 담가보고 싶을 만큼.

앞면지, 속지, 뒤면지

그리고 이어지는 앞면지에서는 '공벌레'(절지동물 등각목(等脚目) 쥐며느리과의 갑각류. 출처:네이버 두산백과 두피디아)가 처음에 웅크리고 있다가 제 몸을 펴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뒤면지에서는 반대의 순서로 펴진 몸을 웅크리는 공벌레가 그려져 있다. 아마도 이는 주인공 사만다의 심리 상태와도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속지에 색을 입히지 않은 집들을 그려넣어, 다 비슷한 흑백처럼 보인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듯하다.

글쓴이는, 신체 표현 활동 교사, 사회심리학 전문가, 작가 등 많은 직업을 가진 '가브리엘라 미르사'이다. 중남미에서 여러 문학상을 받았으며, 이야기꾼이자 가수이기도 하다고.

그린이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무대 미술가로 활동중인 '알리시아 발라단'이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밀라노 브레라 국립 미술원에서 무대 미술을 공부했고, 2012년부터는 아르스 인 파불라 일러스트레이션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단다.

옮긴이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 대학원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여 스페인과 중남미의 좋은 그림책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또한 스페인어로 번역한 우리나라 그림책들을 멕시코와 스페인어에서 출판하기도 했단다. 대표 번역작으로는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 여행>, <마법의 숫자>외 다수의 도서가 있고, 스페인어로 옮긴 책으로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조그만 발명가>, <지하 정원>등이 있다고.


모자를 고쳐쓰고 슬리퍼 제대로 신었는지 확인, 가방 속 내용물 확인하는 장면

사만다는 자신의 친구이자 반려동물 공벌레에게 "절대 무당벌레를 쫓아내면 안 돼"라고 당부하며 집에서 다섯 블록 떨어진 바다까지 첫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시 한 번 준비물을 챙기며 준비합니다. 모자를 고쳐쓰고 슬리퍼를 제대로 신었는지 확인을 하고, 가방에 든 물건을 벌써 세 번째 쏟아 내용물을 확인합니다.

"손잡이 달린 물통, 확인!

크기가 다른 삽 두 개, 예비용 삽 한 개, 삽 세 개, 확인!

벌레 퇴치제, 카카오 향 립밤, 확인!

모자 달린 수건 한 개, 예비용 수건 한 개, 확인!

모래가 묻으면 입을 속옷 한 벌, 확인!

사만다는 가방을 네 번째로 챙기면서 또 확인했어요. 슬리퍼를 오른발, 왼발에 제대로 신었는지.

신발 제대로 신었는지 또 확인하는 사만다


그리고는 '짝, 짝, 짝' 손뼉을 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바닷가로 떠날 준비가 되었나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가기 싫어요"란 말을 반복하네요. 엄마는 가기 싫으면 다음에 가도 된다고 사만다를 달래보는데 사만다는 가겠다고 하며 또 한번 슬리퍼를 제대로 신었는지 확인하고 모자도 고쳐쓰고 얼음통에 있는 공벌레에 잘 있으라고 인사한 뒤 씩씩하게 문을 나섭니다. 하필 그때, 오토바이가 천천히 다가오네요. 엄마는 소리에 민감한 사만다의 성향을 알기에 걱정부터 드는데, 길을 묻는 오토바이 운전자...결국 엄마는 어서 지나가라고 몸으로 말했지만 남자가 당황스러워 하는 사이, 이미 엄마로부터 6미터나 뒤로 물러나 있던 사만다는 6초쯤 후 힘껏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오토바이 소음과 헬맷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사만다


"헬맷은 싫어요! 헬맷은 싫어요!"

결국 헬맷 쓴 그 남자를 얼른 쫓아보낸 후에 흥분한 사만다를 꼭 안아주었지요.

모든 것이 멈췄고,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습니다. 사만다와 엄마의 가슴에 휘몰아치던 모래 폭풍이 잔잔해졌고, 사만다를 감싸던 단단한 껍질이 서서히 부드러워졌어요. 다시 가방 속 물건을 확인한 사만다는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지만 다시 도전의 길로 나아갔어요.


자기만 알고 있는 완벽한 각도에 서서 첫 번째 도로를 건너고 집도 완전히 등지고 서서 나풀거리는 응원 수술처럼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며 걸어갑니다.

엄마, 아빠가 항상 일해 준 대로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다리가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빠른 걸음으로, 그러나 두 발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지는 않게."

사만다는 온 정신을 발에 쏟느라 앞만 보며 길을 건넜어요.

사만다의 상태를 짐작하고 경적을 울리려다 마는 자동차 운전자

그 때 달려오던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려다, 사만다가 발에 집중한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본 운전자는 사만다를 조용히 기다려 주었어요. 무사히 도로를 건너간 사만다는 잠시 숨을 돌리며 힐끗 저 너머를 바라봅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걸 확인한 사만다는 제자리에서 폴짝 가볍게 뛰며 가방을 고쳐 멨고, 가방 속 물통과 삽이 요란한 소리를 내자 사나워 보이는 개 한 마리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으르렁거렸어요.

개가 짖을까봐 멈칫하는 사만다

사만다는 잠시 멈춰 섰어요. 개가 짖을지 말지 망설이는 사이 사만다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합니다.

"개 짖는 소리 싫어, 개 짖는 소리 싫어..."

다행히 개는 사만다는 힐끔 돌아보고는 다시 엎드렸어요.

사만다는 다시 걸어가며 중얼거렸습니다.

"도착하면 만날 수 있어. 도착하면 만날 수 있어."

마지막 보행로를 무사히 지나 어린 소나무가 펼쳐진 산책길을 10미터쯤 걷다가 눈을 들어 길 끝을 보고 길이 끝나는 곳까지 와서 자신의 슬리퍼를 내려다보았어요.

주변이 모래로 가득했고, 바다냄새도 바람에 실려 오네요.

슬리퍼를 양손에 끼고 가림막 삼아 멀리 앞을 내다보는 사만다,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사만다는 슬리퍼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아빠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슬리퍼를 벗어 양손에 장갑처럼 꼈어요.

그리고 2미터 앞을 보다가, 3미터 앞, 5미터 앞까지 시야를 넓혀 갔어요. 아빠가 가르쳐 준 20미터까지를 보기 위해.

곧 노을이 질거라 손에 끼워 든 슬리퍼를 가림막 삼아 햇살을 막으며 저 앞을 바라보았어요.

거기, 아빠가 있었습니다. 사만다를 바라보며 두 팔을 벌린 채로.

두 팔 벌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아빠에게 달려가는 사만다

사만다가 파도처럼 달려갑니다.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사만다에게는 다섯 블록마냥 멀게 느껴지네요. 사만다는 아빠 바로 앞, 50센티미터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거리를 잰 다음, 수평선과 완벽히 직각을 이루는 바로 그 곳에서 아빠를 꼭 껴안았어요.

그림책이지만, 작년 여름 우리가 TV드라마로 만났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속 우영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그 드라마 속 우영우의 대사처럼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울림을 준다. 책 속의 사만다의 일상은 수많은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양상 중 극히 일부분일텐데도 일상 생활중에 얼마나 많은 불안과 싸우고 있는지, 그 처지를 감당해야 하는 가족들의 고난한 일상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힘이 들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책이 사만다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 가족들에게 한 줄기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며, 부디 우리 사회에서 자폐성 장애인들같은 발달 장애인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지속적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본 서평은 현암주니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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