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리커버 특별판)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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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초판이 2020년 2월 25일에 발간되어 최근 2023년 6월 5일에 개정판1쇄를 출간했다.

이 책의 저자 정재찬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님 베스트셀러인 『시를 잊은 그대에게』 출간 이후, 다양한 방송과 매체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시 읽는 즐거움을 가르쳐 준 우리 시대의 시 에세이스트시다.

내가 정재찬 교수님을 처음 알게된 것은 본문에도 언급된 JTBC의 《김제동의 톡투유》방송을 통해서였다. 숱한 회차 중 마침 내가 봤었던 방송을 소개하고 있어 놀랐다. 그때 그 방송 장면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너무 공감이 됐다. 양희은님의 노래 <엄마가 딸에게>를 양희은님과 폴킴이 듀엣으로 부르는 그 장면... 또 그 노랫말에 맞춰 객석에 앉아 있던 소녀시대 유리와 많은 일반인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던 장면...

이미 엄마의 딸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도 울컥해서 절로 눈물을 흘렸던...

추억 소환을 한 김에 그 감동 느껴보고자 몇 번이고 동영상 재생 채널에서 다시 듣기를 했다.

이렇게 또 훌쩍...

그렇게 알게 된 정재찬 교수님의 어느 공대생의 가슴을 울렸다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사서 읽은 이후, 개정판까지 찍은 데다 속지에 저자 친필 사인과 문장까지 적힌 도서를 받고 보니 반가웠다.

교수님의 간결하고 편안한 문장만큼이나 책의 구성까지 깔끔하면서도 정성들여 편집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총 7장으로 구분한 삶의 단면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시의적절한 시를 소개하며. 책의 말미에 참고문헌과 추천사를 색삽지로 소개해주어 독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또한 시와 연관된 삽화는 소장 욕구를 불러 일으킬 법하다.

'1장-밥벌이'편에서는,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 요소 중 하나로 생존활동인 '생업'과 '노동'에 관한 담론을 제시한다. '밥벌이는 숭고하다'라는 전제로, 알베르 카뮈 소설 『페스트』의 주인공 의사 리외의 대사, 의사 남궁인의 『지독한 하루』의 에피소드와 '이마'라는 허은실의 시를 인용하며. 저자는 "삼시 세끼 때를 놓치지 아니하며 밥을 먹고, 그 밥벌이를 위해 종일토록 수고하며 땀 흘리는 것. 그것은 지겨운 비애가 아니라 업의 본질을 엄숙하게 지켜가는 저 성스러운 수도승에 비겨야 할 일이 아닐까요. 자신의 소명을 알고 죽을 때까지 서로를 살리려고 밥을 먹여주며, 불을 끄고, 수술을 하고, 이마를 덮어주는 것."(본문 p.35)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눈물을 짜내는 노동을 소금에 비유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은 눈물의 맛입니다."(본문 p.41)라고 한다. 게다가 "우리가 직장인을 샐러리맨이라고 부르는데, 그때 '샐sal'의 라틴어 어원이 바로 소금"(본문 p.41)이라고.

'2장-돌봄'편은, '아이'와 '부모'라는 주제로, JTBC의 《김제동의 톡투유》방송에 출연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양희은님과 폴킴의 듀엣 공연을 보며 울컥하셨다고. 그러면서 사춘기 아이들은 기다려줘야 한다며,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다양하게 달라지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세워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다시 태어나는 사춘기 아이들을 보며 우리가 할 일은 배 속에서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기다려주는 일뿐입니다. 인생은 호르몬입니다. 호르몬을 이길 의지는 없습니다. 호르몬이 쏟아져 나와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고 못생긴 오리가 되는 그 시기를 잘 넘겨 우리 아이들이 백조로 성장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겁니다."(본문 p.76)라고 사춘기 자녀를 둔 독자들을 위로한다.

또한, 저자가 자녀 입장에서 부모의 돌봄에 대한 현실적인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마음과 의지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육아든 봉양이든 돌봄은 시간과 비용의 허용 범위 내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비용을 대려면 직장을 다녀야 하고 시간을 맞추려면 직장을 관둬야 하는 갈등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두고, 요즘 사람들은 이기적이라든가, 자식 다 소용없다든가 하는 말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부모세대더러 노후 하나 준비 못했느냐, 그러기에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몸을 만들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식의 철없는 투정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돌봄이 여의치 못한 상황이라면 원망보다 연민을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님이 오죽하면 저러실까 이해해야 하고, 부모는 자식의 속앓이를 걱정하며 안타까워해야 합니다."(본문 p.97)라고.

'3장-건강'편에서는,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전제 조건인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제안한다.

"죽을 때까지 밥을 먹듯, 죽기까지 성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살다보면 입안에 돌이 서걱거리기도 하고, 멸치똥 같은 날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푸성귀처럼 유순한 눈빛도 키워야 한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좌절이 있다 하더라도 생선뼈 마디마디 발라내듯이 미끈하게 빠져나올 줄도 알아야 하고, 그러면서 늘 수저 한 벌마냥 가지런히 몸과 마음을 가눌 줄 알아야 합니다. 식후 한 모금 물 마시며 한 끼 한 끼 먹어 넘기듯, 그렇게 잘 넘기고 넘어가는 게 우리의 사는 법 아니겠습니까."(본문 p.121)라고.

또한 각종 목표와 결심들을 이루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우울해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목표가 이끄는 삶, 그래서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매일 결심과 각오를 새로이 하며 사는 인생도 훌륭하지만, 그저 과정에 충실하고 결과에 감사한 삶이면 가히 족하고 남습니다. 어차피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는 삶, 긍정도 하고 부정도 하는 삶이지만, 그래도 헛것에 빠지지 않고, 뭔가를 욕심내는 바람에 자기 삶이나 주위 사람들을 희생하는 일도 없이, 기왕이면 선한 말, 칭찬하는 말 많이 베풀며 이냥저냥 살아가면 마음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본문 p.154)라고 다독인다.

'4장-배움'편은, '교육'과 '공부'를 나누어 교수인 저자가 학자로서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개탄하며 '학업'이 아닌 진정한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학업만이 아니라 다양한 세계에 관한 공부의 아마추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어느 분야든 그 공부에 대한 사랑을 키워 주는 것이 먼저여야 합니다. 사랑하면 질문이 생깁니다. 더 알고 싶어지니까요. 알면 보입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됩니다. 관찰은 창의를 낳고 창의는 다시 더 큰 사랑을 낳는 선순이 이어집니다."(본문 p.181-182)라고.

또한, 진짜 공부를 시작할 때는 중년부터 라며,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늙음의 젊음의 반대말도 아니고, 젊음이 모자라거나 사라진 상태도 아닙니다. 늙음은 젊음을 나이테처럼 감싸안고 더욱 크고 푸른 나무가 되어 쉴 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를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겁니다."(본문 p.198)라고 재차 강조한다.

그래서 아직은 '쉰'이 아닌 나는 이제 진짜 공부를 시작해보려 한다. 공부 아마추어로.

'5장-사람'편에서는, 결혼 전의 뜨거웠던 '열애'를 즐기던 연인도 결혼 후엔 인생이라는 여정을 함께 '동행'하는 삶으로 변해감을 이야기한다. 세계적인 불후의 명작 『어린왕자』 내용중,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를 인용하며, 사랑은 서로를 길들이고, 구속하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책임을 다해야 함을 강조한다. "사랑은 책임인 것입니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함께해 온 그 사람을 책임지고, 그 사람에게는 나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란 말입니다. 부당한 억압이나 고통스러운 책무가 아니라 아름다운 의무이자 권리인 것입니다.(본문 p.223)라고 부연한다.

또한, 이성복 시인의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이라는 시를 소개하며, "우린 다른 사랑에 대해 관대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함부로 혐오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내 자식만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제발 알아야 한다는 거죠. 나의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과 그 유전자의 자기복제만 사랑하지 말고, 타자의 사랑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본문 p.236)라고 강조한다.

'6장-관계'편은,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라는 큰 상위 주제로 분류 후에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시를 소개하며 관계 유지를 위한 여러 가면을 써야 하는 인간의 숙명과 고독을 즐기는 힘을 기를 것을 담론으로 제시한다.

"페르소나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역할에 어울리는 가면을 쓰며 살아야 합니다. 그 탈은 가짜나 사기나 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쓴 마스크인 겁니다. 그래야, 그것까지 포함해서야 비로소 내가 존재합니다. 나아가 성장하고 성숙하여 자기완성에 이르게 됩니다."(본문 p.269)라고.

또한, "고독한 자유는 우리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꿉니다. 세상의 주인인 인싸들이 세상을 바꿔온 것 같지만 그것들은 늘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은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나본 적이 있는 자들이 만듭니다."(본문 p.295)라고 하여 고독할 수 있는 용기도 살면서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7장-소유'편은, 나의 편집증적 책 소유욕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하는 내용으로, '가진 것'과 '잃은 것'을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나도 읽었던 故피천득님의 수필 <은전 한 닢>의 내용을 소개하며,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소유 양식having mode보다는 존재 양식being mode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더 높은 가치라는 것을요. 하지만 이런 양식을 안정적으로 지켜나가는 데 위협이 되는 것은, 우리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존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 대한 철거하고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그게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경쟁에서 퇴보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자존감보다는 자존심에 휘둘리면서 약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로는 거품을 빼자 빼자 하면서도 거품 위에 휘핑크림까지 듬뿍 얹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본문 p.308-310)라고 꼬집는다.

또한,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디엠'이 맞닿아 있음을 일깨워준다. '세상의 모든 이별과 상실이 가슴 아프지만 죽음만큼 강렬한 건 없습니다."(본문 p.332)라고 단언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냥 정신없이 살 때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삶을 살 뿐이죠. 그런데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산다는 게 뭔지를 생각하는 것이죠.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의미 있는 건가?' 하고 말입니다."(본문 p.335)라고 한다. 죽음을 맞이할 때 오히려 삶을 떠올리게 되는 상황은 결국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카르페디엠은 메멘토 모리와 상통하는 말입니다. 카르페디엠과 메멘토 모리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교훈입니다."라는 말로 일깨워준다.

본문 속 인용된 시들을 다시 한 번 필사하며, 이 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의 내용들도 함께 떠올려 보시길 권한다. 정재찬 교수님께서 사인과 함께 전하는 "시의 숲에서 인생의 길을 찾는 이에겐 향기로운 빛이 납니다."라는 문장을 품으며...

본 서평은 인플루엔셜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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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고아들 - 나는 동물 고아원에서 사랑을 보았습니다.
바이 신이 지음, 김지민 옮김 / 페리버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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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국제영화제 최고 다큐멘터리상과 아시아TV 어워드 대상을 수상한 <지구의 고아>,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촬영한 감동적인 4년의 기록을 담은 이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로 등록했단다.

역시 사실에 기반한 출판·저작물이 독자나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진정성 획득'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바이 신이'는 캐나다 맥길대학교 미디어아트 학과를 졸업 후, TVBS뉴스 정치 센터/국제 센터의 베테랑 기자, CTI뉴스 국제 센터의 베테랑 기자로 활약했으며, 2016년 타이완에서는 처음으로 지구상에 있는 위험에 빠진 동물을 주제로 하는 자연 생태 다큐멘터리 <지구의 고아>를 제작했으며, 현재는 EBC방송의 프로그램 <지구의 고아> <타이완 1001가지>의 진행자 겸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단다.

표지 그림은 김아델님의 창작물로, 속표지와 총 5장으로 구성된 장의 시작부분에도 동일하게 꾸며졌다.

상처입은 동물들의 맨살의 느낌이 나는 분홍색 바탕에 안전하면서 초식 동물들의 먹이이기도 한 풀을 상징하는 초록색을 사용해 집과 대지를 표현하는 앞, 뒤표지의 연결된 디자인이 독자로 하여금 한결 편안함을 준다.

총 5장으로 구성된 본문은 각 장마다 주로 한 종류의 멸종 위기종을 다루고 있다.

'제1장-남아공, 코뿔소 고아원'편에서는, 지구상에 있는 코뿔소의 80퍼센트가 집중돼 있는 남아공의 크루거 국립공원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코뿔소 도살장으로 전락한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1킬로그램에 6천 5백 달러부터 시작하는 코뿔소 뿔 거래가격은 코뿔소 뿔 밀렵행위로 5년의 유기징역과 10만 랜드(한화 약150만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뿐인 형사 처벌에 비해 훨씬 수익이 크므로 아예 밀렵 그룹을 결성해 국제 범죄 조직으로 활동하는 현실.

취재 중에 만난 남아프리카공화국 어느 깊은 산속-책에는 산 속 위치가 속한 주의 지명이 언급되지만, 차마 밝힐 수 없다. 저자와 번역자의 '지구 생물 보전'의 취지를 이해하는 열혈 독자의 한 사람으로.-고아원에서 만난 '잭'이라는 새끼 코뿔소에 살짝 들이받힌 저자가 귀국 후 자신이 제작한 영상들을 보며 문득, '그 새끼 코뿔소가 자신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닐까?'라는 확대 해석으로, 이 <지구의 고아>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다는 뜻밖의 계기를 밝히고 있다.

또한,

"만물은 본디 서로 의지하며 공생한다. 생물종 하나의 소실이 빚어내는 영향은 절대 일방적이지 않다. 생물종 하나가 멸종하면 나머지 생물종도 따라서 멸종하거나 피해를 본다.

본문 p.34

라는 깨달음도 함께 전하면서.

'제2장-코스타리카, 나무늘보 고아원'편에서는, 중앙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주무대로 사업을 하셨던 저자의 아버지가 사다 주신 코스타리카의 기념품인 왕부리새 코스타리카의 이름 모를 변두리 농장 속 나무늘보 고아원에서 나무늘보의 '움직이는' 영상 활영을 위해 몇 날 며칠 밤을 새며 코스타리카의 에어컨도 없는 40여 도가 넘는 열기를 그대로 느끼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숙소에서 농장을 오가는 강행군 속에 저자인 바이 신이를 비롯한 <지구의 고아>제작팀은 각각 3킬로그램씩 빠지고 말았다고.

이렇게 나무늘보가 느린 이유에 대해, "나무늘보는 특수한 나뭇잎 몇 가지만 먹는다. 하필 그 나뭇잎은 영양이 부족하고 칼로리도 너무 적은 데다가 소화하기도 힘들다. 한 번먹은 걸 완전히 소화하는 데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니 나무늘보는 자기의 활동량을 줄여서 체력을 보존할 수밖에 없다. 느리게 느리게. 이건 그들이 생존하는 방법이다. 나무늘보가 하루에 소모하는 칼로리는 고작 140칼로리인데, 이 이상을 소모하면 목숨이 위험하다."(본문 p. 50)고 일러준다.

그리고 코스타리카를 떠나기 전, 나무늘보 고아원 원장 레슬리가 준 왕부리새 인형 선물에 결국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고.

언젠가 잡담 중 저자가 아버지가 코스타리카에서 가져 온 왕부리새 인형을 선물한 얘기를 기억하고는, "이제 대만 집에 있는 왕부리새한테도 친구가 생기겠죠. 더는 외롭지 않을 거예요."(본문 p.76)라며 건네 주었기에.

'제3장-러시아 불곰 고아원'편에서는, 앞 장에서의 폭염과 달리 이번엔 혹한으로 자꾸만 얼어붙는 촬영장비에 온몸으로 끌어안고 녹여야만 하는 일도 많았단다. 모스크바에서 450킬로미터 떨어진 서북쪽 지방의 숲속마을에 있는 불곰 고아원에 와서 '파제트노프 가족'의 지극정성 불곰 사랑에 촬영 전 방문 수칙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폭신폭신한, 꼬물거리는 테디 베어"(본문 p.87)같은 새끼 불곰을 실제로 보니 정말 만지고 싶은 유혹을 참기가 힘들었다고.

그렇지만, "…하지만 새끼곰들이 애완동물도 아니고 장난감도 아니잖아요. 이 아이들은 산과 숲, 대지에 속해 있어요. 매일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나 자신에게도 당부해요. 네가 얘들을 얼마나 좋아하실지는 상관없어. 이 아이들은 네 테디 베어가 아니야."(본문 pp.89-90)라는 불곰 고아원 설립자 파제트노프 가족의 2대인 세르게이의 아내 카탸의 말을 듣고는 "사랑은 점유하는 게 아니라 자유로이 놓아주는 것이다. 야생동물에게도 그렇고, 사람에게도 역시 그러하다."(본문 p.90)고 깨닫게 되었다고.

이 러시아 가족의 환대를 받고 떠난 <지구의 고아>제작팀은 코로나 확산으로 아프리카에서까지 현지 방문 취재와 촬영이 힘들어져 돌아가려는 순간, 자신들의 취재 차량에 버티고 서서 눈물을 비오듯 흘린 기린을 보게 되었단다. 자세히 보니 기린의 목에는 끊어진 철사가 걸려 눈물이 날만큼 꽉 조이고 있었다고. 그런데 이런 기린을 밀렵하는 이유가 기린의 고기를 먹기 위해서라니... 인간의 무자비함과 엄청난 식욕은 끝이 없음을 실감케 했다.

'제4장-스리랑카 코끼리 고아원' 편에서는, "수용센터에서는 버림받고, 다치고, 노동 가치가 사라진 코끼리를 돌보고 치료하기 위해 코끼리 주인에게 비용을 지불해 이 곳에 코끼리를 위탁하게 한다."(본문 p.141)고.

스리랑카의 대표적 관광상품인 '페라헤라'-음력 7월에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가르침을 전파한 것을 기념하여 펼쳐지는 축제-에서 주인공인 화려한 옷을 입은 코끼리가 '머하웃'-mahout, 코끼리를 타고 훈련하는 등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을 태우고 행진하는 장면은 호려한 겉모습 뒤에서 채찍이나 매질을 당하여 고된 훈련을 감당해냈을 아시아코끼리의 역사와 숙명의 눈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게다가 머하웃이 세상을 떠나면 코끼리도 안락사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서글프고 화도 난다. 그 중 특이한 이력의 머하웃에 대한 이야기는 청소년 자녀를 양육하는 대한민국 학부모인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의학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의료 스태프로 일하던 '니로샨'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형제 같은 코끼리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서 가업을 이어 머하웃이 되기로 했다고. 나라면 그런 결심한 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말도 안 된다면 펄쩍펄쩍 뛰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많은 독자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코끼리를 돌보는 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처럼 보이리라. 하지만 니로샨의 진지한 눈빛으로부터 그의 마음속에 후회도 미련도 없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같은 제삼자가 무슨 자격으로 그의 결단을 판단할 수 있을까?"(본문 p.148)라고.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의대에 가기 위해 쏟아부었을 학습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많이 아깝긴 하다. 코끼리만을 돌보기엔. 혹시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수의학 공부를 다시 하여 좀 더 많은 다른 동물들에게도 그 사랑 나눠주면 안될까 싶다.

"인도양에 외로이 매달린 스리랑카. 마르크 폴로는 이곳을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묘사했다. 선량한 마음 덕에 이 섬은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본문 p.164)라는 저자의 말처럼.

'제5장-대만 흑곰과 삵 고아원'편은, 저자의 본거지, 타이중현에 있는 저해발실험소는 사실상 '대만흑곰고아원'이라 소개하는 글로 시작한다. 2018년에 <지구의 고아-곰의 나라>시리즈 촬영을 위해 수 차례 방문했었다며.

발가락 하나 정도 잘리는 게 일상인 대만 흑곰들은 이곳 고유종연구보전센터에 수용되어 치료도 받고 훈련을 거쳐 표식을 붙여 자연으로 방사된다고. 그전까지만 해도 대만흑곰이라고 하면 사회와 대중이 가장 친숙하게 연상하는 건 마스코트가 대부분이었단다.

저자는 "우리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보도가 대만흑곰 무리가 계속 대를 이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본문 p.173)며, "지구의 어떤 종도 이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재차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지구의 고아>시리즈물 중 가장 많은 기관과 가장 많은 전문가와 인터유한테마 프로그램이라며, 북극곰, 대만흑곰보다 더 찍기 힘든 동물이 바로 삶이었단다. 삵은 아시아의 소형 고양잇과 동물 중 가장 드넓게 분포한 종으로, 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는 삵을 '관심 대상 혹은 최소관심'등급 종으로 지정했단다. 그런 삵이 대만에서는 어쩌다 '위기' 등급 종으로 변했는지에 대한 탐구심으로 시작한 촬영은 산 넘고 고개를 건너 삵의 발자국을 찾으러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기게 정신없었다고.

이쯤해서 간혹 큰 동물에나 가야 만날까말까한 고양이과의 동물 삵을 집고양이와 구별할 수 있는 특징 두 가지가 있단다. "삵은 눈구멍 안쪽에서 이마까지 뻗은 흰 선이 두 줄 있고, 귀 뒤에도 흰 점무늬가 뚜렷이 박혀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특징만 기억해 두면 삵을 집고양이로, 집고양이를 삵으로 오인하진 않을 거라고.

이 책에 <지구인 고아>의 모든 촬영 동물을 다 싣진 않았지만, 저자 바이 신이님이 만난 보전 활동가는 강심장이어야 한단다. 왜냐하면 "보전 활동가는 마음과 정을 다 쏟고, 간도 쓸개도 빼주다시피 하며 어린 짐승을 아이처럼 돌본다. 하지만 매번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오면 감정을 잘라내고 영혼을 떼어놓아야"(본문 p.202) 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삶과 죽음, 스쳐 지나가는 인연, 만남과 헤어짐까지. 강심장이 아니면 보전은 할 수 없다."(본문 p.203)고 힘주어 말하며 글을 맺는다.

번역자 김지민님에 따르면 『지구의 고아들』의 원제는 '나는 동물 고아원에서 사랑을 보았습니다'란다. 또한, 책에서는 동물 고아원 여섯 군데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지만, 제작진이 실제로 촬영한 동물은 훨씬 많다고.

"<지구의 고아>에는 다른 자연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웅장한 자연 광경이나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야생의 모습이 담겨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인간 때문에 상처받은 동물의 모습,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는 데 집중했다. 동물 고아원의 사람들은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도 않고, 인류가 우월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인간을 지구하는 모자이크 작품을 구성하는 조각으로 여기고, 다른 조각과 잘 어우러지는 길을 모색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나 역시 그 모자이크 작품의 일부로서 그들과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작품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일견 무모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가 대중의 반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본문 p.209)라고 하여 <지구의 고아> 다큐프로그램을 제작한 '바이 신이'님이 멸종 위기 동물과 자연 보전의 개념의 작은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을 받은 김지민님은 "부디 독자의 마음에도 작은 씨앗이 뿌려지기를 바란다. 이 작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날수록 우리의 지구는 지금보다 좀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본문 pp.211-212)라고 마침표를 찍었다.

진정으로 기후 위기와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페리버튼출판사의 기업 이념과 지구의 아픔은 멸종 위기 동물을 구하고 그 동물들이 다시 자연으로 무사히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보육과 훈련까지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쳐 지켜내는 숭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지구의 고아들>은 감히 BBC나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가 담아낼 수 없는 '인류애(人類愛,love for humanity)'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서평을 쓰는 이로서 이 『지구의 고아들』의 원작 프로그램인 <지구의 고아> 다큐멘터리 방송을 찾아보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의이겠으나, 아무래도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타이완 국가의 정치적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작물의 영상을 한 편도 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 책에 쓰인 바이 신이님의 주요 제작일지를 따라 대표적 멸종 위기 동물인 코뿔소, 나무늘보, 불곰, 코끼리, 흑곰과 삵을 보호하고 훈련하여 다시 그들의 삶의 터전인 자연으로 복귀시키는 거룩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세계 곳곳의 숨은 동물고아원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더불어 다시 한번 지구를 위한 결심을 한다. 원래 지구의 주인은 인간만이 아니고, 수많은 동·식물과 함께 나눠 쓰고 있음을. 이 지구의 운명 공동체인 개체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쓰레기 줄이기'와 같은 개인의 작은 실천 습관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본 서평은 페리버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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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 - 여행 PD의 출장이 여행이 되는 순간
김가람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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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 대표적 공영방송사인 KBS의 다큐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PD를 거쳐 지금은 <환경스페셜>을 연출하고 있는 김가람PD의 첫 에세이다.

'여행PD의 출장이 여행이 되는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토대가 된 <걸어서 세계속으로>방송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감히 서평을 남기는 것이 면목없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책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변명일까? 뭐라고 비난하든 지금은 <환경스페셜>을 연출중이라 하니 꼭 봐야겠다. 2년여간 김PD님의 삶의 일부인 '여행'을 하며, 눈과 오감으로 담아냈을 지구 곳곳의 거침없는 환경이야기를.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일, 사랑 그리고 삶을 차례로 이야기하고 있다.

'1장-카메라 너머의 세계'편은, 김 PD님이 <걸어서 세계속으로> 방송분량을 위해 걷고, 뛰고, 오르던 숱한 발걸음이 머문 지구촌 곳곳의 출장일지를 소개하고 있다.

국내 아웃도어 인기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아르헨티나의 지명임을 알게 된 순간 여행과 세계지리에 무지한 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평화 집회,시위로 자리매김한 '촛불집회' 못지 않게 1989년 8월 23일, 50년간 소비에트 연방에 합병되어 있던 발트해의 세 나라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국민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600킬로미터의 인간 띠를 만들어 자유를 노래했단다. 1991년 세 나라는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이뤘냈고, 이 시위는 냉전 시대 대표적인 비폭력 저항의 상징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고.(본문 p.40 참조)



 


 



발트해의 세 나라(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현재까지도 5년에 한 번씩 총 인구 200만명 남짓인 라트비아에서는 4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노래축제가 벌어진단다. 그 거대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벅찬 노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얼마나 웅장할까.

다음은 브라질에서의 드론 추락사고로 현지 가이드 두 명과 함께 험준한 산을 오르며 4시간 이상 헤맨 끝에 자넬라 파크 깊숙한 수풀 속에서 겨우 찾았다는 안타까운 에피소드도 기록되어 있다. 얼마나 지치고 한편으론 뿌듯했을까.

또 1장에서 가장 울림을 줬던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콩고 민주공화국의 대규모 '코발트' 광산에서 일하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내용.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유명무실한 아동노동제한 규정에 독성이 있는 중금속 중 하나인 코발트-IT기술의 혈액이기도 할 만큼 스마트폰, 노트북, 무선 이어폰, 무선 청소기부터 전기 자동차까지 거의 모든 무선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리튬 배터리의 가장 중요한 원료-를 종일 큰 자루 30개쯤 채워야 겨우 1달러를 받는 아이들. 그 중 가까스로 인터뷰를 하게 된 모린과 카스 남매. 책 속 사진은 그 참혹함을 더한다.

인도에서는 세계 5대 종교라는 시크교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항상 몸에 지녀야 할 5가지와 절대 신 대신 '구루'라는 선지자의 말씀이 적힌 경전을 신봉하는 문화, 그리고 시크교도끼리는 남자는 '싱', 여자는 '카우르'라는 성을 쓴다는 것. 역시 많은 책에서 '평생동안 인도는 꼭 한 번 가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1장의 말미에서 김PD는 자신의 일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게 뻔한 마을을 구태여 찾아가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네'라는 허무한 결말을 얻어오는 것.

어쩌다 느슨한 인연이 닿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인들의 삶을 기록하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먹고사는 인간이라는 이해를 한 발짝 넓혀가는 것.

누군가 토요일 아침에 생전 처음 듣는 도시의 사람들을 보며 빙긋이 웃게 만드는 것.

언젠가 '만나보고 싶은' 동시대 지구인의 책을 한 권씩 만들어 도서관을 채우는 것.

그게 나의 일이다.

본문 pp.117-118

라고.

'2장-내 여행의 이유'편에서는, 저자의 배우자인 라트비아 출신 야니스 로젠펠즈와의 사랑과 이별, 결혼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이제는 '친정엄마'가 된 김PD님의 엄마와의 설렘으로 시작해 싸움으로 끝난 둘만의 여행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제는 남편인 라트비아의 흔한 이름을 가진 야니스씨와의 첫 만남, 이별여행,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피지의 무인도에서 즐긴 허니문까지...아직도 틈틈이 여행을 즐기는 활력 넘치는 부부. 그 젊음이 아름답다.

(위) 일본의 신호타카 전망대, (아래) 피지의 야사와 군도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코로나 시국에 해외여행이 힘들었던 시기에 김PD부부가 자주 찾던 도심 속 서울 여행지 '노들섬'에 대한 소개도 간단히 해주는데, 이 부분을 읽을때는 '당장도 갈 수 있겠구나' 생각들어 왠지 더 공감되었다. 조만간 대중교통으로라도 잠시 다녀와야지...온 가족 늦봄, 초여름 나들이.





이어지는 여행다큐프로그램 PD답게 딸 김가람씨는 엄마의 환갑맞이 효도관광으로 출장차 다녀갔던 아름다웠던 도시 이탈리아의 '알토 아티제'로 목적지를 정하고, 곤돌라를 타고 2518미터의 세체다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바라 본 바위산 '돌로미터' 산맥과 마을의 집들이 온통 파스텔톤으로 오밀조밀 사랑스럽게 서 있는 오르티세이 마을에서 이색적인 남녀 혼탕도 즐기고 저녁에는 오르티세이 숙소의 마지막 밤을 추억하며 와인에 옛이야기를 즐겼다고. 딱 거기까지 했어야 했는데, 딸의 과한 욕심으로 베네치아의 기차타고 2시간 저녁투어는 급기야 지친 엄마의 화를 불렀단다. 그래도 귀국시엔 언제 화해를 했는지 딸인 김가람씨는 엄마를 안아주고, 엄마는 "잘 다녀왔다~"고 화답했다하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 모녀 싸움도 칼로 물 베기인가? ㅋㅋ

그래서 김PD님은 하나 배웠다며 효도 여행은 "일주일 이내 일정으로 조금 아쉬운 만큼만 짜라"고 조언했다.


 



 

(위)플뢰르와 함께한 암스테르담 시티투어, (가운데)전북 완주 한옥마을 옆 까페, 러시아 모스크바 성 바실리 성당(아래)

'3장-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편은, PD라는 직함을 뺀 '인간 김가람'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 싱가포르 미디어 기업의 6개월짜리 계약직에 합격해서 무작정 떠난 그 곳에서 같은 이방인 '플뢰르'와의 우정, 비록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PD로서 세계 곳곳 현지 출장을 다녔지만, 최장신국 출신답게 180센티미터의 그녀의 조국 네덜란드에 가서 그 유명한 자전거 투어를 플뢰르가 태워주며 구석구석 암스테르담 시티 투어를 마친 이야기, 그리고 종종 단풍철에는 남편 야니스씨와 어르신과 1인당 2만원 하는 새벽 출발 단체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떠나는 국내 여행을 즐긴다는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뒷좌석 아주머니들의 수다에서 저자는 여행에 대한 정의를 새로 쓴다.

어쩌면 여행은 그런 적절한 소음을,

익숙지 않은 불편을 찾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남들 사는 모습을 구경하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내 삶이 왠지 조금 낯설고 또 기특해 보이기도 하는 그런 것

본문 pp.213-214

이 여행에세이 3장의 후반부에서는 책날개 저자 소개편에도 기재되지 않은 김PD님의 명문 출신 학교가 등장한다. 정시 도착이 대체로 힘든 '아에로플로트(러시아 항공)'에 대한 후기를 들려주다가 자연스럽게..."'오늘은 아니야'하며 한 번도 오르지 않은 관악산처럼."(본문 p.224)이라고. 마치 호기심은 있지만 막상 혼자 여행하기엔 이런저런 걱정이 앞선다는 러시아에 비유하며.

또한, 마지막 에피소드는 아직은 연인 사이였던 야니스와 김가람 커플의 '따로 또 같이' 1박 2일 모스크바 여행기이다. 1988년생인 야니스씨는 아직 소비에트 연방 그늘에서 벗어나기 전이어서 같은 동네에 살던 러시아 형들에게 맞을까봐 열심히 배운 덕에 러시아어에도 능통하기에 현지 가이드 삼아 동반 여행을 계획하고 숙소까지 다 예약했는데 비자가 없어서 입국을 불허당했다고. 오히려 한국 국적의 김PD는 즉시 통과! 그래서 잠시 그냥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하나 고민했던 김PD는 서울가면 다시 볼 수 있는 라트비아 청년 대신 역사와 예술이 살아숨쉬는 러시아 땅을 기어이 혼자서라도 밟고야 만 사연을 들려준다.

에세이는 읽을 때는 참 편하게 읽히는 대신 서평을 쓰기는 참 어렵다. 한 사람의 인생을 녹여낸 사실적인 글이기에 감히 제3자인 독자가 어설픈 감상평을 내놓는 게 실례인 것 같아서다.

나의 여행이력은 누추하기 짝이 없다. 국내 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해외 여행은 20대 후반 결혼식 후 떠났던 호주로의 허니문 패키지가 그나마 여행이라 부를 만하고, 신랑이 해운회사 재직 당시 잠시 해상직원으로 승선 근무를 할 당시 배우자 자격으로 동승(배우자와 자녀에 한하여 배에 함께 승선할 수 있는 제도)하여 미국 서부 지역 롱비치항에 입항 후 때마침 '추수감사절 휴무'로 2박 3일의 자유 시간이 허락되어 하선하여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방문한 게 전부다. 그래도 사실 크루즈는 아니었지만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눈앞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배우자가 일하는 직장 기숙사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배우자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었고 힘들게 말 그대로 기관실에 다녀올 때마다 구슬땀을 흘리는 남편을 보면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갈 결심도 하게 되었다.

올해는 소소하지만 집을 나서는 발걸음을 많이 떼려고 한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꼭 아름답고 대단한 것을 찾아낸다는 김가람PD님의 평생 짝꿍, 야니스씨처럼.

본 서평은 한빛라이프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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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자라는 방 : 제8회 CJ도너스캠프 꿈키움 문예공모 작품집
강내은 외 135명 지음, 꿈이 자라는 방을 만드는 사람들 엮음 / 샘터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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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평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행복'의 일상을 전하는 샘터출판사가 매년 CJ도너스캠프 꿈키움 문예공모의 작품집을 발간한 지 여덟번째 출간물이다.

그래서 저자는 '공부방(지역아동센터, 그룹홈 등) 아동·청소년 136'명이다.

사실 대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기업홍보수단의 일환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인 우리 아이들의 꿈과 재능을 발굴하는 문화사업은 장려할만 하다.

제8회 꿈키움 문예공모에는 전국 333곳의 공부방(지역아동센터, 그룹홈 등)에서 맑고 순수한 동심과 반짝이는 재능이 담긴 총 3,577작품이 응모되었고, 그 중 꿈상(보건복지부 장관상)수상작인 현유준 아동의 글 <팽이>, 박서현 아동의 그림 <모든 세상 사랑>을 비롯해 사랑상 수상작 21작품(개인 18작품, 단체 3작품)과 가작인 용기상 수상작 100작품이 수록되었단다.(pp.4-5 '펴내는 글' 참조)

차례는 총 네 부분으로 나누어 작품 소개와 저작자인 아이들의 인터뷰 등을 수록하고 있다.

Part 1. 두근두근 꿈키움 스토리

-'팽이'라는 시로 네 살때 돌아가신 엄마의 그리움을 표현한 제주 성읍지역아동센터, 한마음초 2학년 현유준 친구는 빙글빙글 도는 팽이를 보면서 엄마를 떠올렸단다.

"곁에 없지만 항상 보고 싶은 엄마 얼굴이 맴맴 돌아요."(본문 p.17)라고 말하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

이 책의 본문 첫 페이지여서일까? 나도 이 페이지의 시를 읽는 순간 아이의 비유가 참 창의적이다.'라고 생각했는데,글 부문을 심사한 '나태주 시인'께서도 "무엇보다도 진정성이 돋보이면서 어린이다운 호기심과 직관력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팽이'라는 객관적 사물에 투사된 주관적이면서 감성적인 해석과 반응이 커다란 감흥을 불러옵니다."(본문 p.17)라는 심사평을 남기셨다.

유준 친구와 함께 그림 부분에서 '모든 세상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바닷가에서 노을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그린 서울 갈현지역아동센터, 갈현초 5학년 박서현 친구의 작품이 꿈상인 보건복지부상을 수상했다.

그림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노을지는 풍경을 표현한 색감이 사실적이고 사람들의 표정보다는 뒷모습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림 부문을 심사한 '지비지 화가'도 "노을을 바라보며 그 풍경을 오롯이 즐기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특히 인물의 표정이나 얼굴 등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대신에, 노을을 배경으로 한 그림자로 표현해 낸 점이 좋습니다. '노을'이라는 풍경 덕분에 서현 학생이 표현해 낸 '사랑'이 더욱 아련하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본문 p.21)라고 심사평을 남기셨다.

이 외에 21작품은 사랑상을 수상했다.


Part 2. 우당당탕 꿈을 두드려요

-'꿈'이나 '진로'와 관련된 주제로 각각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38작품이 가작인 용기상을 수상했다. '유튜버'로부터 '액션 모델'까지 각자의 꿈과 진도에 대해 사뭇 진지하게 구체적인 설계를 하고 있어 지금 어른인 내가 그때 그 시절, '이 책 속 아이들처럼 좀 더 구체적인 미래를 꿈꾸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멋진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Part 3. 몽글몽글 마음이 따뜻해져요

-가족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등을 주제로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34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들의 개성과 진심이 담긴 글과 그림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경기 세광지역아동센터의 '고래 마음 안에 꿈, 사랑, 용기를 싣고'라는 큰 고래 안에 다양한 모습의 사람을 그려 넣은 대형 그림이 마음에 와 닿았다.

석호초 2학년부터 5학년 학생 9명이 협동하여 완성한 작품인데, "큰 고래 한 마리가 사람들을 태우고 바다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 고래를 가득 채운 것은 꿈꾸는 사람, 사랑이 필요한 사람,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고래 주변에는 그물을 던져 꿈, 사랑, 용기를 모으는 배들도 여러 척 항해 중입니다."(본문 p.173)라는 작품 설명이 없더라도.

Part 4. 으쓱으쓱 자신감이 절로 생겨요

-조금은 내성적인 친구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31작품을 실었다.

그 중 내 눈길을 끈 작품은 '용기는 힘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어른들의 큰 세상도, 아이들의 작은 세상도 싸움이나 분쟁은 늘 그렇게 작은 오해에서 시작된다. 큰 세상이든 작은 세상이든, 언제든 오해는 생길 수 있고 싸움도 생길 수 있다. 이때 구경만 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고 누군가 나서서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좀 더 밝고 멋진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본문 p.189)라고 말하는 경기 좋은터지역아동센터, 오정초 4학년 친구의 이 글은 어른인 내게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더불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통치자와 정치가들도 이 친구의 말을 좀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책에 수록된 123작품 외에도 비수상작인 3,454작품에 담긴 꿈, 사랑, 용기 또한 소중하게 간직하겠다"는 CJ도너스캠프 관계자의 말처럼, 어찌 수상 여부로 아이들의 소중한 꿈과 사랑, 용기의 크기를 재단할 수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꿈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희망적인 대한민국을 꿈꾸며, 얼마 전 서거 14주기를 맞은 故노무현 대통령의 2008년 5월 2일 '대창초등학교 운동회 승자와 패자에 대한 연설' 중 하신 말씀을 떠올려 본다.

"...인생은 항상 겨루기지만 반드시 항상 이기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니고 진 사람도 다시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회 그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한번 겨루기에서 진 사람도 다음 겨루기에서 또 이길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 아니겠어요? (...중략) 그래서 이기고 지는 데 너무 집학하지 말고. 여러분 첫 번째로 최선을 다하시고 또 첫 번째로 정정당당하게 규칙을 지켜서 오늘 열심히 겨루세요."(출처: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그러니 이번 작품집에 실리지 못한 친구들은 내년에 또 도전해보자. 절대 포기하지 말고!

https://youtube.com/clip/Ugkx9S0jrlr3NOMH3SG9-l3ZrtWRxf9Tuczx


본 도서는 샘터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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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슈퍼 乙 전략
전병서 지음 / 경향BP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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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시대에 미,중 사이에서 한국반도체의 생존전략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도표와 그래프를 사용하여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한 구성이 돋보였고, 책 후반부에 11가지의 구체적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본 리뷰는 경향BP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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