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 - 여행 PD의 출장이 여행이 되는 순간
김가람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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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 대표적 공영방송사인 KBS의 다큐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PD를 거쳐 지금은 <환경스페셜>을 연출하고 있는 김가람PD의 첫 에세이다.

'여행PD의 출장이 여행이 되는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토대가 된 <걸어서 세계속으로>방송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감히 서평을 남기는 것이 면목없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책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변명일까? 뭐라고 비난하든 지금은 <환경스페셜>을 연출중이라 하니 꼭 봐야겠다. 2년여간 김PD님의 삶의 일부인 '여행'을 하며, 눈과 오감으로 담아냈을 지구 곳곳의 거침없는 환경이야기를.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일, 사랑 그리고 삶을 차례로 이야기하고 있다.

'1장-카메라 너머의 세계'편은, 김 PD님이 <걸어서 세계속으로> 방송분량을 위해 걷고, 뛰고, 오르던 숱한 발걸음이 머문 지구촌 곳곳의 출장일지를 소개하고 있다.

국내 아웃도어 인기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아르헨티나의 지명임을 알게 된 순간 여행과 세계지리에 무지한 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평화 집회,시위로 자리매김한 '촛불집회' 못지 않게 1989년 8월 23일, 50년간 소비에트 연방에 합병되어 있던 발트해의 세 나라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국민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600킬로미터의 인간 띠를 만들어 자유를 노래했단다. 1991년 세 나라는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이뤘냈고, 이 시위는 냉전 시대 대표적인 비폭력 저항의 상징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고.(본문 p.40 참조)



 


 



발트해의 세 나라(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현재까지도 5년에 한 번씩 총 인구 200만명 남짓인 라트비아에서는 4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노래축제가 벌어진단다. 그 거대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벅찬 노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얼마나 웅장할까.

다음은 브라질에서의 드론 추락사고로 현지 가이드 두 명과 함께 험준한 산을 오르며 4시간 이상 헤맨 끝에 자넬라 파크 깊숙한 수풀 속에서 겨우 찾았다는 안타까운 에피소드도 기록되어 있다. 얼마나 지치고 한편으론 뿌듯했을까.

또 1장에서 가장 울림을 줬던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콩고 민주공화국의 대규모 '코발트' 광산에서 일하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내용.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유명무실한 아동노동제한 규정에 독성이 있는 중금속 중 하나인 코발트-IT기술의 혈액이기도 할 만큼 스마트폰, 노트북, 무선 이어폰, 무선 청소기부터 전기 자동차까지 거의 모든 무선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리튬 배터리의 가장 중요한 원료-를 종일 큰 자루 30개쯤 채워야 겨우 1달러를 받는 아이들. 그 중 가까스로 인터뷰를 하게 된 모린과 카스 남매. 책 속 사진은 그 참혹함을 더한다.

인도에서는 세계 5대 종교라는 시크교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항상 몸에 지녀야 할 5가지와 절대 신 대신 '구루'라는 선지자의 말씀이 적힌 경전을 신봉하는 문화, 그리고 시크교도끼리는 남자는 '싱', 여자는 '카우르'라는 성을 쓴다는 것. 역시 많은 책에서 '평생동안 인도는 꼭 한 번 가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1장의 말미에서 김PD는 자신의 일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게 뻔한 마을을 구태여 찾아가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네'라는 허무한 결말을 얻어오는 것.

어쩌다 느슨한 인연이 닿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인들의 삶을 기록하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먹고사는 인간이라는 이해를 한 발짝 넓혀가는 것.

누군가 토요일 아침에 생전 처음 듣는 도시의 사람들을 보며 빙긋이 웃게 만드는 것.

언젠가 '만나보고 싶은' 동시대 지구인의 책을 한 권씩 만들어 도서관을 채우는 것.

그게 나의 일이다.

본문 pp.117-118

라고.

'2장-내 여행의 이유'편에서는, 저자의 배우자인 라트비아 출신 야니스 로젠펠즈와의 사랑과 이별, 결혼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이제는 '친정엄마'가 된 김PD님의 엄마와의 설렘으로 시작해 싸움으로 끝난 둘만의 여행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제는 남편인 라트비아의 흔한 이름을 가진 야니스씨와의 첫 만남, 이별여행,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피지의 무인도에서 즐긴 허니문까지...아직도 틈틈이 여행을 즐기는 활력 넘치는 부부. 그 젊음이 아름답다.

(위) 일본의 신호타카 전망대, (아래) 피지의 야사와 군도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코로나 시국에 해외여행이 힘들었던 시기에 김PD부부가 자주 찾던 도심 속 서울 여행지 '노들섬'에 대한 소개도 간단히 해주는데, 이 부분을 읽을때는 '당장도 갈 수 있겠구나' 생각들어 왠지 더 공감되었다. 조만간 대중교통으로라도 잠시 다녀와야지...온 가족 늦봄, 초여름 나들이.





이어지는 여행다큐프로그램 PD답게 딸 김가람씨는 엄마의 환갑맞이 효도관광으로 출장차 다녀갔던 아름다웠던 도시 이탈리아의 '알토 아티제'로 목적지를 정하고, 곤돌라를 타고 2518미터의 세체다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바라 본 바위산 '돌로미터' 산맥과 마을의 집들이 온통 파스텔톤으로 오밀조밀 사랑스럽게 서 있는 오르티세이 마을에서 이색적인 남녀 혼탕도 즐기고 저녁에는 오르티세이 숙소의 마지막 밤을 추억하며 와인에 옛이야기를 즐겼다고. 딱 거기까지 했어야 했는데, 딸의 과한 욕심으로 베네치아의 기차타고 2시간 저녁투어는 급기야 지친 엄마의 화를 불렀단다. 그래도 귀국시엔 언제 화해를 했는지 딸인 김가람씨는 엄마를 안아주고, 엄마는 "잘 다녀왔다~"고 화답했다하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 모녀 싸움도 칼로 물 베기인가? ㅋㅋ

그래서 김PD님은 하나 배웠다며 효도 여행은 "일주일 이내 일정으로 조금 아쉬운 만큼만 짜라"고 조언했다.


 



 

(위)플뢰르와 함께한 암스테르담 시티투어, (가운데)전북 완주 한옥마을 옆 까페, 러시아 모스크바 성 바실리 성당(아래)

'3장-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편은, PD라는 직함을 뺀 '인간 김가람'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 싱가포르 미디어 기업의 6개월짜리 계약직에 합격해서 무작정 떠난 그 곳에서 같은 이방인 '플뢰르'와의 우정, 비록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PD로서 세계 곳곳 현지 출장을 다녔지만, 최장신국 출신답게 180센티미터의 그녀의 조국 네덜란드에 가서 그 유명한 자전거 투어를 플뢰르가 태워주며 구석구석 암스테르담 시티 투어를 마친 이야기, 그리고 종종 단풍철에는 남편 야니스씨와 어르신과 1인당 2만원 하는 새벽 출발 단체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떠나는 국내 여행을 즐긴다는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뒷좌석 아주머니들의 수다에서 저자는 여행에 대한 정의를 새로 쓴다.

어쩌면 여행은 그런 적절한 소음을,

익숙지 않은 불편을 찾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남들 사는 모습을 구경하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내 삶이 왠지 조금 낯설고 또 기특해 보이기도 하는 그런 것

본문 pp.213-214

이 여행에세이 3장의 후반부에서는 책날개 저자 소개편에도 기재되지 않은 김PD님의 명문 출신 학교가 등장한다. 정시 도착이 대체로 힘든 '아에로플로트(러시아 항공)'에 대한 후기를 들려주다가 자연스럽게..."'오늘은 아니야'하며 한 번도 오르지 않은 관악산처럼."(본문 p.224)이라고. 마치 호기심은 있지만 막상 혼자 여행하기엔 이런저런 걱정이 앞선다는 러시아에 비유하며.

또한, 마지막 에피소드는 아직은 연인 사이였던 야니스와 김가람 커플의 '따로 또 같이' 1박 2일 모스크바 여행기이다. 1988년생인 야니스씨는 아직 소비에트 연방 그늘에서 벗어나기 전이어서 같은 동네에 살던 러시아 형들에게 맞을까봐 열심히 배운 덕에 러시아어에도 능통하기에 현지 가이드 삼아 동반 여행을 계획하고 숙소까지 다 예약했는데 비자가 없어서 입국을 불허당했다고. 오히려 한국 국적의 김PD는 즉시 통과! 그래서 잠시 그냥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하나 고민했던 김PD는 서울가면 다시 볼 수 있는 라트비아 청년 대신 역사와 예술이 살아숨쉬는 러시아 땅을 기어이 혼자서라도 밟고야 만 사연을 들려준다.

에세이는 읽을 때는 참 편하게 읽히는 대신 서평을 쓰기는 참 어렵다. 한 사람의 인생을 녹여낸 사실적인 글이기에 감히 제3자인 독자가 어설픈 감상평을 내놓는 게 실례인 것 같아서다.

나의 여행이력은 누추하기 짝이 없다. 국내 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해외 여행은 20대 후반 결혼식 후 떠났던 호주로의 허니문 패키지가 그나마 여행이라 부를 만하고, 신랑이 해운회사 재직 당시 잠시 해상직원으로 승선 근무를 할 당시 배우자 자격으로 동승(배우자와 자녀에 한하여 배에 함께 승선할 수 있는 제도)하여 미국 서부 지역 롱비치항에 입항 후 때마침 '추수감사절 휴무'로 2박 3일의 자유 시간이 허락되어 하선하여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방문한 게 전부다. 그래도 사실 크루즈는 아니었지만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눈앞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배우자가 일하는 직장 기숙사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배우자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었고 힘들게 말 그대로 기관실에 다녀올 때마다 구슬땀을 흘리는 남편을 보면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갈 결심도 하게 되었다.

올해는 소소하지만 집을 나서는 발걸음을 많이 떼려고 한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꼭 아름답고 대단한 것을 찾아낸다는 김가람PD님의 평생 짝꿍, 야니스씨처럼.

본 서평은 한빛라이프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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