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리커버 특별판)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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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초판이 2020년 2월 25일에 발간되어 최근 2023년 6월 5일에 개정판1쇄를 출간했다.

이 책의 저자 정재찬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님 베스트셀러인 『시를 잊은 그대에게』 출간 이후, 다양한 방송과 매체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시 읽는 즐거움을 가르쳐 준 우리 시대의 시 에세이스트시다.

내가 정재찬 교수님을 처음 알게된 것은 본문에도 언급된 JTBC의 《김제동의 톡투유》방송을 통해서였다. 숱한 회차 중 마침 내가 봤었던 방송을 소개하고 있어 놀랐다. 그때 그 방송 장면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너무 공감이 됐다. 양희은님의 노래 <엄마가 딸에게>를 양희은님과 폴킴이 듀엣으로 부르는 그 장면... 또 그 노랫말에 맞춰 객석에 앉아 있던 소녀시대 유리와 많은 일반인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던 장면...

이미 엄마의 딸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도 울컥해서 절로 눈물을 흘렸던...

추억 소환을 한 김에 그 감동 느껴보고자 몇 번이고 동영상 재생 채널에서 다시 듣기를 했다.

이렇게 또 훌쩍...

그렇게 알게 된 정재찬 교수님의 어느 공대생의 가슴을 울렸다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사서 읽은 이후, 개정판까지 찍은 데다 속지에 저자 친필 사인과 문장까지 적힌 도서를 받고 보니 반가웠다.

교수님의 간결하고 편안한 문장만큼이나 책의 구성까지 깔끔하면서도 정성들여 편집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총 7장으로 구분한 삶의 단면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시의적절한 시를 소개하며. 책의 말미에 참고문헌과 추천사를 색삽지로 소개해주어 독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또한 시와 연관된 삽화는 소장 욕구를 불러 일으킬 법하다.

'1장-밥벌이'편에서는,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 요소 중 하나로 생존활동인 '생업'과 '노동'에 관한 담론을 제시한다. '밥벌이는 숭고하다'라는 전제로, 알베르 카뮈 소설 『페스트』의 주인공 의사 리외의 대사, 의사 남궁인의 『지독한 하루』의 에피소드와 '이마'라는 허은실의 시를 인용하며. 저자는 "삼시 세끼 때를 놓치지 아니하며 밥을 먹고, 그 밥벌이를 위해 종일토록 수고하며 땀 흘리는 것. 그것은 지겨운 비애가 아니라 업의 본질을 엄숙하게 지켜가는 저 성스러운 수도승에 비겨야 할 일이 아닐까요. 자신의 소명을 알고 죽을 때까지 서로를 살리려고 밥을 먹여주며, 불을 끄고, 수술을 하고, 이마를 덮어주는 것."(본문 p.35)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눈물을 짜내는 노동을 소금에 비유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은 눈물의 맛입니다."(본문 p.41)라고 한다. 게다가 "우리가 직장인을 샐러리맨이라고 부르는데, 그때 '샐sal'의 라틴어 어원이 바로 소금"(본문 p.41)이라고.

'2장-돌봄'편은, '아이'와 '부모'라는 주제로, JTBC의 《김제동의 톡투유》방송에 출연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양희은님과 폴킴의 듀엣 공연을 보며 울컥하셨다고. 그러면서 사춘기 아이들은 기다려줘야 한다며,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다양하게 달라지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세워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다시 태어나는 사춘기 아이들을 보며 우리가 할 일은 배 속에서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기다려주는 일뿐입니다. 인생은 호르몬입니다. 호르몬을 이길 의지는 없습니다. 호르몬이 쏟아져 나와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고 못생긴 오리가 되는 그 시기를 잘 넘겨 우리 아이들이 백조로 성장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겁니다."(본문 p.76)라고 사춘기 자녀를 둔 독자들을 위로한다.

또한, 저자가 자녀 입장에서 부모의 돌봄에 대한 현실적인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마음과 의지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육아든 봉양이든 돌봄은 시간과 비용의 허용 범위 내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비용을 대려면 직장을 다녀야 하고 시간을 맞추려면 직장을 관둬야 하는 갈등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두고, 요즘 사람들은 이기적이라든가, 자식 다 소용없다든가 하는 말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부모세대더러 노후 하나 준비 못했느냐, 그러기에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몸을 만들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식의 철없는 투정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돌봄이 여의치 못한 상황이라면 원망보다 연민을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님이 오죽하면 저러실까 이해해야 하고, 부모는 자식의 속앓이를 걱정하며 안타까워해야 합니다."(본문 p.97)라고.

'3장-건강'편에서는,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전제 조건인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제안한다.

"죽을 때까지 밥을 먹듯, 죽기까지 성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살다보면 입안에 돌이 서걱거리기도 하고, 멸치똥 같은 날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푸성귀처럼 유순한 눈빛도 키워야 한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좌절이 있다 하더라도 생선뼈 마디마디 발라내듯이 미끈하게 빠져나올 줄도 알아야 하고, 그러면서 늘 수저 한 벌마냥 가지런히 몸과 마음을 가눌 줄 알아야 합니다. 식후 한 모금 물 마시며 한 끼 한 끼 먹어 넘기듯, 그렇게 잘 넘기고 넘어가는 게 우리의 사는 법 아니겠습니까."(본문 p.121)라고.

또한 각종 목표와 결심들을 이루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우울해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목표가 이끄는 삶, 그래서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매일 결심과 각오를 새로이 하며 사는 인생도 훌륭하지만, 그저 과정에 충실하고 결과에 감사한 삶이면 가히 족하고 남습니다. 어차피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는 삶, 긍정도 하고 부정도 하는 삶이지만, 그래도 헛것에 빠지지 않고, 뭔가를 욕심내는 바람에 자기 삶이나 주위 사람들을 희생하는 일도 없이, 기왕이면 선한 말, 칭찬하는 말 많이 베풀며 이냥저냥 살아가면 마음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본문 p.154)라고 다독인다.

'4장-배움'편은, '교육'과 '공부'를 나누어 교수인 저자가 학자로서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개탄하며 '학업'이 아닌 진정한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학업만이 아니라 다양한 세계에 관한 공부의 아마추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어느 분야든 그 공부에 대한 사랑을 키워 주는 것이 먼저여야 합니다. 사랑하면 질문이 생깁니다. 더 알고 싶어지니까요. 알면 보입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됩니다. 관찰은 창의를 낳고 창의는 다시 더 큰 사랑을 낳는 선순이 이어집니다."(본문 p.181-182)라고.

또한, 진짜 공부를 시작할 때는 중년부터 라며,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늙음의 젊음의 반대말도 아니고, 젊음이 모자라거나 사라진 상태도 아닙니다. 늙음은 젊음을 나이테처럼 감싸안고 더욱 크고 푸른 나무가 되어 쉴 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를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겁니다."(본문 p.198)라고 재차 강조한다.

그래서 아직은 '쉰'이 아닌 나는 이제 진짜 공부를 시작해보려 한다. 공부 아마추어로.

'5장-사람'편에서는, 결혼 전의 뜨거웠던 '열애'를 즐기던 연인도 결혼 후엔 인생이라는 여정을 함께 '동행'하는 삶으로 변해감을 이야기한다. 세계적인 불후의 명작 『어린왕자』 내용중,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를 인용하며, 사랑은 서로를 길들이고, 구속하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책임을 다해야 함을 강조한다. "사랑은 책임인 것입니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함께해 온 그 사람을 책임지고, 그 사람에게는 나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란 말입니다. 부당한 억압이나 고통스러운 책무가 아니라 아름다운 의무이자 권리인 것입니다.(본문 p.223)라고 부연한다.

또한, 이성복 시인의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이라는 시를 소개하며, "우린 다른 사랑에 대해 관대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함부로 혐오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내 자식만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제발 알아야 한다는 거죠. 나의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과 그 유전자의 자기복제만 사랑하지 말고, 타자의 사랑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본문 p.236)라고 강조한다.

'6장-관계'편은,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라는 큰 상위 주제로 분류 후에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시를 소개하며 관계 유지를 위한 여러 가면을 써야 하는 인간의 숙명과 고독을 즐기는 힘을 기를 것을 담론으로 제시한다.

"페르소나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역할에 어울리는 가면을 쓰며 살아야 합니다. 그 탈은 가짜나 사기나 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쓴 마스크인 겁니다. 그래야, 그것까지 포함해서야 비로소 내가 존재합니다. 나아가 성장하고 성숙하여 자기완성에 이르게 됩니다."(본문 p.269)라고.

또한, "고독한 자유는 우리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꿉니다. 세상의 주인인 인싸들이 세상을 바꿔온 것 같지만 그것들은 늘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은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나본 적이 있는 자들이 만듭니다."(본문 p.295)라고 하여 고독할 수 있는 용기도 살면서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7장-소유'편은, 나의 편집증적 책 소유욕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하는 내용으로, '가진 것'과 '잃은 것'을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나도 읽었던 故피천득님의 수필 <은전 한 닢>의 내용을 소개하며,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소유 양식having mode보다는 존재 양식being mode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더 높은 가치라는 것을요. 하지만 이런 양식을 안정적으로 지켜나가는 데 위협이 되는 것은, 우리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존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 대한 철거하고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그게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경쟁에서 퇴보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자존감보다는 자존심에 휘둘리면서 약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로는 거품을 빼자 빼자 하면서도 거품 위에 휘핑크림까지 듬뿍 얹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본문 p.308-310)라고 꼬집는다.

또한,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디엠'이 맞닿아 있음을 일깨워준다. '세상의 모든 이별과 상실이 가슴 아프지만 죽음만큼 강렬한 건 없습니다."(본문 p.332)라고 단언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냥 정신없이 살 때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삶을 살 뿐이죠. 그런데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산다는 게 뭔지를 생각하는 것이죠.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의미 있는 건가?' 하고 말입니다."(본문 p.335)라고 한다. 죽음을 맞이할 때 오히려 삶을 떠올리게 되는 상황은 결국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카르페디엠은 메멘토 모리와 상통하는 말입니다. 카르페디엠과 메멘토 모리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교훈입니다."라는 말로 일깨워준다.

본문 속 인용된 시들을 다시 한 번 필사하며, 이 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의 내용들도 함께 떠올려 보시길 권한다. 정재찬 교수님께서 사인과 함께 전하는 "시의 숲에서 인생의 길을 찾는 이에겐 향기로운 빛이 납니다."라는 문장을 품으며...

본 서평은 인플루엔셜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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