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목소리가 호텔에 둥둥 울린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로 가득했던 커다란 홀. 뜨거운 닭 국물과 향긋한 고수 냄새로 가득했던 오래된 벽돌 건물, 그들의 대답이 피아노 음처럼 건물 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어디선가 또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지나간시간, 역사,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기억으로 남아 건물 자체가된 모든 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의 목소리.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원한을 사랑으로 바꾸는 삶으로 걸어들어가기를 바라는 사람의 목소리. 그 이야기를 짓고, 계속 이어가는 사람의 이야기. 대불호텔 터를 떠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 건물을 고쳐가며 남아있는 사람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서 네 사람은 다 같이 나란히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그들은 안다. 언제 어디에 있든, 빛은 이렇게 따라올 것이다. 절대 잊지 않고 싶은 기억. 보물처럼 사랑스러운 마음. 그들은 그 한마음으로 조용히 오래도록...... 안심한다. - P2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883년, 인천 제물포항이 개항장이 되면서 서양의 외교관, 선교사, 상인 등 많은 사람들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인천에서 한성까지 가는 방법은 걷거나 우마차를 타는 것뿐이었다. 못해도 열두 시간이 소요되는 길이었기에 사람들은 인천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 이동하곤 했다. 이에 눈치 빠른 무역상 호리 히사타로繼久太郞가 제물포항 근처에 이층짜리 목조건물을 세우고 숙박영업을 시작했다. 주위에 별다른 숙박시설이 없던 터라 그의 건물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성황에 힘입어 호리 히사타로는 1888년 목조건물 옆에 붉은 벽돌의 삼층짜리 서양식 건물을 신축한다. 이것이 바로 다이부쓰, 그러니까 대불호텔이다. - P59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는 이야기를 왜 하는 걸까. 이야기라는걸 굳이 왜 하고 싶어하는 걸까. 누군가가 들어주기를 바라서? 왜? 잘 모르겠어요.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해받는 거요. 온전히 이해받고, 사랑받고, 그래서 편안한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 아닐까요. 아아. 그래서 옆에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집착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 실체를 가진 사람이니까요. 그 실체를 계속 느끼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대불호텔은 사람들을 떨어뜨려놓아요. 하나씩, 하나씩, 찢어놓죠. 현실을 알려주는 거예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드러내는 거예요. 혼자 남게 되는 것. 나의 이야기를 오직 나에게만 하게 되는 것. 그리하여 바다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무너지는것. 아득한 꿈이 되어버리는 것. 나는 당신들이 익숙합니다. - P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프롤로그

그러나 몇 년 전, 「니꼴라 유치원」이라는 소설을 쓸 때의 일이다. 그 소설은 안진이라는 도시의 어떤 소문난 유치원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그곳에 입학시키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때문에 나는 당연하게도 주인공을 꽤나 고생시켰다. 그녀는 후보 2번으로 접수된 민우라는 아이의 엄마였다. 나는 그녀가 애를 쓰면 쓸수록 유치원의 음험한 비밀을 알게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나는 모두가 궁금해하기를 바랐다. 과연 민우 엄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진실을 알면서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까. 아니면 아이와 함께 그 높은 담벼락 밖으로 빠져나올까.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니꼴라 유치원은 결코 어둡거나 우울한 소설이 아니다. 아마 내가 쓴 소설 중 가장 밝고 유머러스한 작품일 것이다. 정말이다. 나는 이 소설을 좋아하며 개인적으로 많이 아낀다. - P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스마일리의 죽음을 나는 쉽사리용서할 수 없다. 용감하고 재능 있는 청년이 글래스고대학에서 경력을 쌓을 기회를 내던지고 파시즘과 싸우러 달려왔다. 그리고 흠잡을 데 없는 용기와 기꺼이 나서는 자세로 전선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그를 감옥에 던져 넣고 방치된 동물처럼 죽어가게 했다. 피가 낭자한 거대한 전쟁 한복판에서 개인의 죽음을 가지고 지나치게 호들갑을 피우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북적거리는 거리에 비행기가떨어뜨린 폭탄이 수많은 정치적 박해보다 더 많은 고통을불러온다. 그러나 스마일리의 죽음 앞에서 화가 나는 것은그것이 철저히 무의미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전장에서죽는 것•••••• 그래, 그것은 이미 예상한 일이다. 그러나 하다못해 상상 속의 죄목도 없이 순전히 맹목적인 앙심 때문에 감옥에 갇혀 방치된 채 혼자 죽어가야 했다는 것, 이것은 다른 문제다. 어떻게 이런 행동이 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스마일리의 사례가 예외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 P260

 내가 정말 보잘것없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 이 전쟁이 내게 남긴 기억은 대부분 흉악한 것이지만, 그것을 경험하지 않는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스페인 내전은 어떻게 끝나든 살육과 물리적 고통을 차치하더라도 결국경악스러운 재앙이 될 테지만, 이런 재앙을 언뜻 목격했을때 그 결과가 항상 환멸과 냉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묘하게도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인간의 품위를 더 믿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제시한 설명이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일을 다룰 때는 누구도 온전히 진실만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신이 직접 본 일을제외하면, 무슨 일에든 확신을 갖기가 어렵다. 게다가 사람들은 누구나 글을 쓸 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는어느 한쪽 편에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혹시 내가 앞에서 아직 이 말을 안 썼을지 모르니 여기에 쓰겠다. ‘나의 당파성, 착오, 내가 본 것은 사건의 한 면에 불과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왜곡을 주의하라.‘ 스페인 내전 중이시기를 다룬 다른 책을 읽을 때도 항상 똑같은 점을 주의해야 한다.  - P282

그다음은 영국 잉글랜드 남부의 풍경은 십중팔구 세상에서 가장 말쑥할 것이다. 그쪽을 지날 때면, 특히 항구를 오가는 기차에서 호화롭고 푹신한 좌석에 앉아 평화롭게 뱃멀미를 다스리는 중이라면,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는 한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된다. 일본의 지진, 중국의 기근, 멕시코의 혁명? 걱정할 필요 없다. 내일 아침에도 우유가 문 앞까지 배달될 것이고, 금요일에는 《뉴스테이츠먼》이 발행될 것이다. 산업도시는 아주 멀리 있고, 그곳의 연기와 불행은 둥근 지표면 뒤에 가려져 있다. 이곳에는 내가 어렸을 때 알던 영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철로를 놓으려고 깎아놓은 길은 야생화로 뒤덮였고, 깊은 산속의 초원에서는 광택이 나는 커다란 말들이 풀을 뜯으며 명상에 잠긴다. 천천히 흐르는 개울가의 버드나무, 느릅나무의 초록색 품, 텃밭의 참제비고깔. 그다음에 보이는 것은 런던 외곽의 크고 평화로운 황야, 진창 같은 강 위의 바지선, 친숙한 거리, 크리켓 경기나 왕족의 결혼식을 알리는 포스터, 중산모를 쓴 남자들, 트래펄가 광장의 비둘기,
빨간 버스, 파란 옷의 경찰관, 이 모두가 깊고 깊은 영국의잠에 빠져 있다. 가끔 나는 우리가 이 잠에서 영영 깨지 못하다가 폭탄의 굉음에 화들짝 놀란 뒤에야 깨어날까 봐 두렵다. - P2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 마지막 여행이 내 머릿속에 묘하게 선명하고 상세하게 남아 있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느낀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좀 더 관찰자에 가까운 기분. 제대 서류도 손에넣었고, 거기에 29사단의 인장도 찍혔다. 의사의 확인서에는 내가 "쓸모없다"고 적혀 있었다. 이제 자유로이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이제야 스페인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거의 처음으로 들었다. 기차가 하루에한 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바르바스트로에서 하루를보내야 했다. 전에는 바르바스트로를 잠깐씩 스치듯 보았을 뿐이고, 그나마도 그냥 전쟁의 일부로 인식했을 뿐이었다. 차갑고 진흙투성이인 회색 도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화물트럭과 추레한 군대가 가득한 곳. 그런데 지금은묘하게 달라 보였다. 이 도시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나는 유쾌하고 구불구불한 길, 오래된 석조 다리, 사람 키만큼 커다란 통에서 술이 새어 나오는 주류 판매점, 사람들이 수레바퀴, 단검, 나무 숟가락, 염소가죽 수통 등을 만들고 있는 흥미로운 반지하 공방 등을 눈에 담았다. 어떤 남자가 가죽으로 병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전에는 미처 모르던 사실을 발견하고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가죽에서 털을 제거하지 않고 털이 있는 부분이 안쪽으로 가게 병을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실은 염소 털의 정수를 마시게 된다는 사실. 나는 몇 달 동안 그런 수통으로 물을 마셨는데도 이걸 몰랐다. 도시 뒤편에는 얕은 옥색 강이 있고, 그 강에서 수직으로 솟은 바위 절벽에 주택들이 지어져 있었다. 침실 창문으로 침을 뱉으면, 100피트 아래의 강물 속으로 침이 곧장 떨어질 정도였다. 절벽에 난 많은 구멍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둘기가 살고 있었다. 한편 레리다에는 낡아서 부서질 것 같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런 곳 처마에 수천 마리의 제비들이 지은 둥지가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건물이 로코코 시대의 불그스름한 몰딩으로 장식된 것 같았다. 거의 6개월 동안 내가 이런것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주머니에 제대 서류가 있으니 이제 다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관광객이 된것 같은 기분도 조금 들었다. 내가 정말로 스페인에 있다는 생각을 그때 거의 처음으로 했다. 여기는 내가 평생 와보고 싶어 하던 나라였다. 레리다와 바르바스트로의 조용한 뒷골목에서 모든 사람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스페인에대한 아득한 소문 같은 것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 P2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