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기도의 묘미는 잗다란 기도는 잘 들어주시는데 큰 기도는 잘 안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큰 기도는 과욕이나 허욕 아니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기도였으니 안 들어주시는 게 당연하고, 잗다란 기도는 잔근심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잗다란 근심은 기도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니까 들어주실 수밖에. 기도의 은총은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에 있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기도한다. - P168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몸에는 혀만 있는 게 아니다. 입맛이 원한다고 딴 기관에 해로운 걸 마냥 먹게 할 수도 없다. 내 몸의 그 까다로운 비위는 나 아니면 맞출 수가 없다. 또한 내 손맛에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곰삭은 맛, 내 고향의 맛, 엄마의 손맛이 깃들어 있다. 그걸 기억하고 동의해주는 게 내 몸이니 나하고 내 몸이 가장 죽이 잘 맞을밖에.
이 세상엔 맛있게 만든 음식과 맛없게 만든 음식이 있을 뿐, 인간의 몸이 몇만 년에 걸쳐 시험해보고 먹을 만하다고 판단한 자연의 산물 중 맛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 P186

비록 곱단이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요. 곱단이가 딴 데로 시집가면서 느꼈을 분하고 억울하고 절망적인 느낌을요. 나는 정신대할머니처럼 당한 사람의 원한에다 곱단이처럼 그걸 면한 사람의 한(恨)까지 보태고 싶었어요.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해요. 하긴 했지만 면하기 위해 어떻게 했나요. 강도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얼떨결에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강도는 죄가 없고 자살이 되나요?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기쁨 그 향기로운 숨결을 모조리 질식시켜버린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 P201

 늘 뭔가를 시키고 부탁만 해서 미안하지만 한가지만 더 하겠다. 만약 엄마가 더 늙어 살짝 노망이 든 후에도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되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면 그건 사회적인 노망이 될 테니 그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미리 네가 모질게 제재해주기를 바란다. 엄마가 말년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다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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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도 또한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 독자적인 인생의 보람을 창조하지 못함으로써 변동에 방치되고, 다양화에서 낙오되고 절망하게 되는 사람의 비중이 커지면,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잘못하면 전복되기 때문이다.
자기 나름대로 보람을 창조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 속에 잠자는가능성을 찾아내야만 한다. 아무리 어렵고 고생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시대를 살아나가기 위하여는 그것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나의 체험을 소개하면서 말한 것들이 21세기를 무대로 활약할 독자들의 인생에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된다면 나로서는 분수를 넘어서 자기 과거를 돌이켜 본 가치가 있을 것이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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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가 끝나고, 내가 재학 당시에는 ‘유우(宇)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지금의 ‘유우 소학교‘(일본에서는 국민학교를 소학교라 함옮긴이 주)의 강당에서 6백 명의 후배들 앞에서 강연을 하였다. 강연이라고 하지만 불과 15분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었는데,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던 탓에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입에서튀어 나왔다.
"나를 가리켜서 재주가 뛰어나다라든가 두뇌가 명석하다고 말해 주시는 것은 대단히 기쁩니다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廣中平祐)는 뛰어난 노력가일 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것을 뻔뻔스럽게 말했다고 여겨지지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향의 국민학교, 중학교후배들에게 그것이 제일 말하고 싶었고, 또 말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었다. - P182

요약해 보면, 학자는 자기 학문만을 연구하면 안 된다. 자기 학문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학문이나 경제 정세나 사회 현상 등과 관련시키는 다양성에 입각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현대 사회는 바로 그 다양한 길로 나가려 하고 있다. 하나의 명제(국가 목표)가 있어서 그것만 지키고 있으면 된다거나, 오직 그것을 향하여 노력하면 된다는 논리가 통하던 과거의 단순한 시대와는 다르다.
나는 21세기를 맡을 젊은이들이 그러한 넓은 시야를 가지고 학문을 하기를 원한다. 우선 인간은 각자 개성을 가지며 다양한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학구적인 시야로 학문을 전개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의 ‘학문의 발견‘으로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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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적 행동이 어떻게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개체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진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을 처음으로 제공한 사람은 영국의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이었다. 포괄 적합도 이론 또는 혈연 선택론kin selection theory 으로 알려진 해밀턴의 이론은 개체 수준에서는 엄연한 이타주의적 행동이 유전자 수준에서 분석해보면 사실상 이기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준다. 흔히 B>C라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공식으로 알려진 해밀턴의 법칙Hanilton‘srule에 따르면 이타적인 행동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적응적 이득B, benefit 에 유전적 근친도r, genetic relatedness 를 곱한 값이 그런 행동을하는 데 드는 비용C, cost 보다 크기만 하면 그 행동은 진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당연히 이타적인 행동이 진화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 P208

이 논문에서 해밀턴은 이를 테면 개미 사회에서 일개미들이 왜 스스로 번식을 포기하고 어머니인 여왕개미로 하여금 모든 번식을 도맡아 하도록 평생 돕기만 하는지에 대해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두 일개미 자매는 어머니인 여왕개미로부터는 우리 같은 배수체 생물과 마찬가지로 50퍼센트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그 어느 날 혼인비행 때 당신의 정자를 어머니의 몸속에 넣어 주곤 세상을 떠난 아버지 수개미로부터는 그의 유전자 전부 100퍼센트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형제자매들끼리 평균 50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배수체 생물과 달리 평균 75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만일 일개미가 스스로 자식을 낳는다 하더라도 자식에게는 자기 유전자의 50퍼센트밖에 남겨 주지 못한다. 따라서 개미 사회의 번식을 순전히 유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스스로 번식을 하여 자기 유전자의 50퍼센트를 남기는 것보다 여왕개미를 도와 자매인 일개미를 낳게 하여 자기 유전자의 75퍼센트를 남기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번식을 포기하는 이타적 행동이 진화한 것이다. - P212

유성 생식을 하는 생물의 경우, 사실상 개체들이 직접 자신들의 복사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후손에 전달되는 실체는 다름 아닌 유전자이기 때문에 적응 형질들은 집단을 위해서도 아니고 개체를 위해서도 아니라 유전자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에 도킨스는 개체를 ‘생존 기계 survival machine‘라부르고, 끊임없이 복제되어 후세에 전달되는 유전자, 즉 DNA를 ‘불멸의 나선immortal coil‘이라고 일컫는다. 개체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수명을 다하면 사라지고 말지만 그개체의 특성에 관한 정보는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생명, 적어도 지구라는 행성에서 생명의 역사는 유전자의 역사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체들이 태어났다 사라져 갔어도 그 옛날 생명의 늪에서 우연히 탄생하여 신기하게도 자기와 똑같은 복사체를 만들 줄 알게 된 화학 물질인 DNA와 그의 후손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 엄청난 생물다양성을 창조해 냈다. 각각의 생명체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은 분명히 한계성ephemerality 을 지니지만 수십억 년 전에 태어나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DNA의 눈으로 보면 생명은 홀연 영속성 perpetuity 을 띤다. 지구의 생명의 역사는 DNA라는 매우 성공적인 화학 물질의 일대기이다.
- P215

그러나 결국 유전자도 개체의 번식을 통해서만 자신의 복사체들을 퍼뜨릴 수 있다. 한 개체 내의 유전자들의 운명은 그 개체에게 달려 있다. 다윈의 고민 두 가지에 대한 분석을 다룬 저서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y」 에서 헬레나 크로닌Helena Cronin은 다음과 같이설명한다.

유전자들은 스스로 발가벗고 자연 선택의 심판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꼬리나 가죽, 또는 근육이나 껍질을 내세운다. 그들은 또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이나 기막힌 위장술, 배우자를 매료시키는 힘, 훌륭한 둥지를 만드는 능력 등을 내세운다. 유전자들의 차이는 이러한 표현형phenotype의 차이로 나타난다. 자연 선택은 표현형적 변이에 작용함으로써 유전자에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들은 그들의 표현형적 효과의 선택 가치selective value에 비례하여 다음 세대에 전파된다. - P222

자연 선택은 유전자, 개체, 집단, 그리고 심지어는 종의 수준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만 적응은 표현형으로 나타난다. 선택의 대상과 결과는 종종 다를 수 있다. 철학자 엘리엇 소버Elliot Sober는 아이들이가지고 노는 ‘선택 장난감selection toy‘를 가지고 이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원통형으로 되어 있는 이 장난감에는 맨 위층으로부터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작은 크기의 구멍들이 뚫려 있다. 만일 가장 작은 구슬들의 색깔이 녹색이라면 맨 아래층에는 결국 녹색 구슬들만 모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제일 작은 구슬을 선택한 것이지 녹색 구슬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선택의 대상selection은 작은 구슬이었는데 결과적으로 selection for 작은 구슬들의 색깔인 녹색도 선택된 것이다. 자연 선택은 표현형에 작용하고, 그 결과로 후세에 전달되는 것은 유전자이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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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진화에 가장 구체적인 작업가설을 제공한 것은 흥미롭게도 ‘기생충 또는 병원균-숙주 공진화 가설‘이다. 대부분의 기생 생물들은 세대가 짧고 무성 생식을 하기 때문에 매우 빠른 속도로 새로운 ‘공격 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 유성 생식을 하는 숙주 생물이 이에 맞서는 방법으로 진화한 것이 바로 성이라는 설명이 포괄 적합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으로 우리에게 유전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있게 해 준 윌리엄 해밀턴의 이른바 ‘기생충 가설 parasite hypothesis‘의핵심이다.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생산하면 기생 생물의 공격 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다. 어느 기생 생물이 숙주 개체군에서 가장 흔한 유전형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 공격을 견뎌내는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성 생식이 보다 유리한 전략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면 기생 생물은 또다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어느 특정한 유전형을 공격하고 숙주는 새로운 면역력을 갖춘 새로운 유전형을 만들어 내곤 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게 된다. 기생생물과 숙주 생물은 일종의 진화적 군비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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