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유머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청중의 반응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누가 웃는가?"라는 질문만큼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 ‘웃찾사‘의 흑인 분장 사건처럼 웃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 유머는 도태된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 P99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법무사 시험에서 문제지. 답안지와 시험시간을 모두에게 똑같이 주면, 시각장애인에게 불리하다. 제과제빵실기시험에서 모든 참가자에게 똑같이 수어통역사를 제공하지 않으면, 청각장애인에게 불리하다. 공무원 필기시험에서 다른 수험생과 똑같이 메모 대필을 허용하지 않으면, 뇌병변장애인에게 불리하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도리어 누군가를불리하게 만드는 간접차별indirect discrimination의 예들이다.
내가 유학을 한 학교에는 비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에게 입학 후 일정 기간 동안 시험시간을 더 주는 정책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시험시간이 1.5배 더 길게 주어졌다. 로스쿨이니 당연히 언어가 중요하지만 시험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마련된 정책이었다. 이 규칙 덕분에 비영어권 유학생이영어 때문에 일찌감치 시험을 포기하거나 늘 가장 낮은 성적을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듯 우리의 능력을 판단하는 많은 기준들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편향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해봐야 한다. 취업에서 토익 점수의 요건은 어떤가? 청각장애인 외에는 문제없는 공정한 기준일까? 꼭 필요한 직무능력이 아닌데도 거의 대부분의 회사에서 높은 영어 성적을 요구함으로써, 영어 접
근성이 좋은 사회계층 혹은 특정한 학력이나 학벌을 가진 사람을 유리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는 않은가? - P110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 더 불공정할 수 있다니 왜일까? 자신이 편향되지 않다고 여기는 착각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을 때 자기확신에 힘입어 더 편향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편견에 고삐가 풀리는 것이다. 브누아 모닌 Benoit Monin 과 데일 밀러 Dale Miller 의 실험에서도 성차별적인 발언에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성차별주의자가 아님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던 사람이 남성을 선호하는 행동을 더 거리낌없이 표출했다. 자신이 공정하다고 믿기에 더욱 편향되게 행동하는 이 현상을 카스티야와 버나드는 "능력주의의 역설"paradox of meritocracy 이라고부른다. - P112

그런데 노키즈존, 노스쿨존, 노장애인존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까? ‘진상‘ 손님이 성인 남성이라면 과연 ‘성인 남성 금지‘라는 표지판을 내세울까? 이런 ‘진상‘ 손님이 인근의 대기업 직원이라면어떨까? ‘○○기업 금지‘라며 모든 사원의 입장을 거부할까? 이런상황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반면 외국인에 대해서는 ‘그냥‘ 싫다는 이유만으로도 ‘내국인 전용‘이라고 붙일 수 있다. 왜 어떤 집단은 특별히 잘못이 없어도 거부되는데, 어떤 집단은 개별적으로만 문제삼고 집단으로는 문제삼지 않을까?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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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떤 소수자 집단은 낙인이 부착된 단어를 그들 스스로 전유 reappropriation 해버리기도 한다. 아예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단어로 사용하면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해버리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단어가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퀴어queer‘ 다. 퀴어는 본래
‘기괴한‘이란 뜻으로, 성소수자를 조롱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이 단어를 전유해버렸다. ‘기괴하다‘는 뜻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기괴함은 나쁜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이며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오히려 자랑스러운 특징이라고 선언해버렸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축제를 "퀴어문화축제"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이제 퀴어라는 단어는 성소수자의 단어가 되었다. 퀴어라는 단어를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전유함으로써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용도로서의 효력은 사라져버렸다. 비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 집단을 마음대로 규정하고 부르던 무기를 하나 잃었다. "우리는 퀴어야.
적응해 We are queer, Get used to 와 같은 슬로건은 언어적 권력과 편견에 도전하며 의미를 전복시키는 운동이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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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마 : 저는 ‘발생 자원이 유전자나 환경이냐?‘라고 묻는 것부터가 잘못된 이분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형질은 수많은 발생 자원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산출되며 ‘유전자/환경의 이분법은 그런 상호작용자들을나누는 수많은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흔히들 어떤 특성들이 자연선택에 의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고 알고 있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런 특성들은 발생 과정에서 매번 재구성된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보의 개체발생The Ontogeny ofInforrnation》이라는 책에서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가 아니라 발생계developmental system라고 주장했습니다.
굴드 :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야마 교수님의 주장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요? 유전자는 발생의 지휘자라기보다는 일개 단원일 뿐이고, 오케스트라 자체는 매번 새로 생긴다?
오아먀 : 아, 그것 참 멋진 비유네요.
- P155

키처 : 저도 비유를 좀 들겠습니다. 50미터 높이의 빌딩에서 분필을떨어뜨린다고 해봅시다. 자유낙하하는 이 분필에는 실제로 중력 외에도 여러 힘들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가령 마찰력은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겠죠? 물리학자들은 여러 방향에서 여러 종류의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다 압니다. 하지만 분필의 낙하운동을 기술할 때는 중력만 고려하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다른 종류의 힘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이 강력하니까요. 오야마 교수처럼 발생계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유낙하의 사례에서 중력보다 마찰력이 더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종의 억지죠.
도킨스 : 저도 키처 교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발생계 이론은 주류 생물학자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죠.
유전자와 표현형 간의 복잡한 관계는 유전자를 제외한 다른 발생 자원들의 개입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전자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이미 여러 유전자들이 상호작용하여 하나의 표현형을 산출한다는 ‘다인자 발현polygeny‘ 이나, 한 유전자가 여러 표현형의 발생에 관여한다는 ‘다면 발현pleiotropy‘과 같은 개념들을 발전시키지 않았습니까?  - P156

캐럴 : 이런 점에서 Pax6 유전자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눈eyes 발생을조절하는 유전자는 척추동물에서는 Pax 이고 초파리의 경우에는 아이리스eyeless죠. 물론 곤충의 눈은 겹눈으로, 척추동물의 눈과는 구조, 구성 재료, 그리고 작동 방식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초파리의 아이리스 유전자를 생쥐의 배아에 이식시키거나 반대로 생쥐의 Pax6를 초파리의 배아에 이식시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놀랍게도 두 경우에 모두 정상적인 눈이 발생합니다. 즉 생쥐의 배아에서는 생쥐의 눈이, 초파리의 배아에서는 초파리의 눈이 정상적으로 발생하지요. 심지어 사람의 Pax6 유전자를 거미의 배아에 삽입하면 그 배아는 거미의 정상적인 눈을 발생시킬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Pax6와 아이리스 유전자가 배아 발생의 꼭대기에서 미분화된 세포의 운명을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Pax6 유전자를 발견하는 데큰 공헌을 한 스위스의 발생학자 윌리엄 게링william Gehring은 이런 유형의 유전자를 ‘마스터 조절 유전자 master control genes‘라고명명했지요. 곤충과 척추동물의 심장 발생을 동일한 방식으로관장하는 틴먼 유전자tinman gene도 그런 마스터 조절 유전자입니다.
이처럼 발생 과정에서 유전자의 역할, 즉 유전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정말로 결정적입니다. 이것을 온전히 이해해야 생물학의 오래된 수수께끼인 ‘하나의 수정란에서 어떻게 복잡한 성체가 나오는가?‘를 풀겠죠. 혹스 유전자 같은 조절 유전자 regulatory gene의 발견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그러니 죄송합니다만, 발생의 오케스트라는 유전자가 지휘하는 게 맞습니다. - P158

오늘도 여전히 비유가 넘쳐났다. 하지만 유전자와 관련하여꼭 언급해야 할 비유들이 빠진 것 같아 아쉬웠다. 유전자 결정론과 그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비유가 있다. 가령 유전자 결정론은 유전자를 ‘청사진blue print‘에 빗댄다.
건물을 짓는 사람은 청사진대로만 지어야 한다. 일꾼들의 실수로 청사진과는 조금 다른 집이 지어질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청사진은 건물의 모양과 특성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사실과 다르다. 다시 말해 유전자는 표현형을 결정하지 못한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현형을 산출할 뿐이다. 유전자결정론을 거부하는 이유가, 이념적으로 나쁘기 때문이어서는안 된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거부해야 한다.
유전자가 발생 과정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흥미로운 비유가 있다. 그것은 유전자를 청사진이 아닌 요리법 recipe 에 빗대는 방식이다. 요리사는 요리법대로 음식을 만들기는 하지만 어떤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조합하는가에 따라서 똑같은 요리법에도 아주 다른 맛을 내는 음식을 내놓을 수 있다. 유전자를 이런 요리법에 빗대는 것은, 유전자가 기본적으로 발생 과정을 지시하기는 하지만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느냐에 따라 최종 산물이 결정된다는 설명을 위해서다. 그러고 보니 요리법 비유는 오늘 나온 오케스트라 비유와 일맥상통 헌다. 유전자가 지휘자이긴 하지만, 단원들의 실력에 따라 연주하는 음악의 질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으니까.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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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아주 기분이 좋아. 걔가 나한테 몰입할 때 자주는 아니지만, 나한테 관심을 집중할 때….…."
"어떻게 너한테 관심을 안 갖는 사람이 있니.. 월터가 말했다.
패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뭔가 잘못됐나 봐. 다른 친구들도 좋아하지만, 그 애들과 나 사이에는 벽이 있는 것 같아. 걔들은 전부 같은 종류의사람이고 나만 다른 종류의 사람인 것 같아. 내가 더 샘이 많고 더 이기적이라는 거지. 그 애들이랑 같이 있으면 왠지 내가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엘리자와 있을 땐 가식적이지 않아도 돼. 그냥 나 자신 그대로이면서도 걔보다는 나은 사람일 수 있으니까. 내 말은, 나도 바보는 아냐. 걘 좀 엉망진창이긴 하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걔랑 있는 게 좋아. 너도 리처드와 있을때 그런 기분이 가끔 드니?"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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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포드 Thomas Ford 와 동료들은 비하성 유머가 마음속 편견을 봉인해제시킨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어떤 집단을 부정적으로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보통의 상황에서는 사회규범 때문에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비하성 유머를 던질 때 차별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 결과 규범이 느슨해지고, 사람들은 편견을 쉽게 드러내면서 차별을 용인하거나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설명을 편견규범이론prejudiced norm theory 이라 부른다. 
유머가 금기된 영역의 빗장을 순간적으로 풀어내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일탈적인 행위가 유머를 통해 놀이 또는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된다. 가벼운 대화일 뿐이므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게 여겨진다. 이렇게 금기된 영역을 넘나들기 때문에 권력에 도전하는 풍자가 가능하고, 사회는 그 가치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 금기의 빗장이 약자를 향해 풀렸을 때 잔혹한 놀이가 시작된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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