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야마 : 저는 ‘발생 자원이 유전자나 환경이냐?‘라고 묻는 것부터가 잘못된 이분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형질은 수많은 발생 자원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산출되며 ‘유전자/환경의 이분법은 그런 상호작용자들을나누는 수많은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흔히들 어떤 특성들이 자연선택에 의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고 알고 있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런 특성들은 발생 과정에서 매번 재구성된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보의 개체발생The Ontogeny ofInforrnation》이라는 책에서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가 아니라 발생계developmental system라고 주장했습니다.
굴드 :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야마 교수님의 주장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요? 유전자는 발생의 지휘자라기보다는 일개 단원일 뿐이고, 오케스트라 자체는 매번 새로 생긴다?
오아먀 : 아, 그것 참 멋진 비유네요.
- P155

키처 : 저도 비유를 좀 들겠습니다. 50미터 높이의 빌딩에서 분필을떨어뜨린다고 해봅시다. 자유낙하하는 이 분필에는 실제로 중력 외에도 여러 힘들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가령 마찰력은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겠죠? 물리학자들은 여러 방향에서 여러 종류의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다 압니다. 하지만 분필의 낙하운동을 기술할 때는 중력만 고려하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다른 종류의 힘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이 강력하니까요. 오야마 교수처럼 발생계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유낙하의 사례에서 중력보다 마찰력이 더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종의 억지죠.
도킨스 : 저도 키처 교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발생계 이론은 주류 생물학자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죠.
유전자와 표현형 간의 복잡한 관계는 유전자를 제외한 다른 발생 자원들의 개입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전자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이미 여러 유전자들이 상호작용하여 하나의 표현형을 산출한다는 ‘다인자 발현polygeny‘ 이나, 한 유전자가 여러 표현형의 발생에 관여한다는 ‘다면 발현pleiotropy‘과 같은 개념들을 발전시키지 않았습니까?  - P156

캐럴 : 이런 점에서 Pax6 유전자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눈eyes 발생을조절하는 유전자는 척추동물에서는 Pax 이고 초파리의 경우에는 아이리스eyeless죠. 물론 곤충의 눈은 겹눈으로, 척추동물의 눈과는 구조, 구성 재료, 그리고 작동 방식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초파리의 아이리스 유전자를 생쥐의 배아에 이식시키거나 반대로 생쥐의 Pax6를 초파리의 배아에 이식시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놀랍게도 두 경우에 모두 정상적인 눈이 발생합니다. 즉 생쥐의 배아에서는 생쥐의 눈이, 초파리의 배아에서는 초파리의 눈이 정상적으로 발생하지요. 심지어 사람의 Pax6 유전자를 거미의 배아에 삽입하면 그 배아는 거미의 정상적인 눈을 발생시킬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Pax6와 아이리스 유전자가 배아 발생의 꼭대기에서 미분화된 세포의 운명을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Pax6 유전자를 발견하는 데큰 공헌을 한 스위스의 발생학자 윌리엄 게링william Gehring은 이런 유형의 유전자를 ‘마스터 조절 유전자 master control genes‘라고명명했지요. 곤충과 척추동물의 심장 발생을 동일한 방식으로관장하는 틴먼 유전자tinman gene도 그런 마스터 조절 유전자입니다.
이처럼 발생 과정에서 유전자의 역할, 즉 유전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정말로 결정적입니다. 이것을 온전히 이해해야 생물학의 오래된 수수께끼인 ‘하나의 수정란에서 어떻게 복잡한 성체가 나오는가?‘를 풀겠죠. 혹스 유전자 같은 조절 유전자 regulatory gene의 발견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그러니 죄송합니다만, 발생의 오케스트라는 유전자가 지휘하는 게 맞습니다. - P158

오늘도 여전히 비유가 넘쳐났다. 하지만 유전자와 관련하여꼭 언급해야 할 비유들이 빠진 것 같아 아쉬웠다. 유전자 결정론과 그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비유가 있다. 가령 유전자 결정론은 유전자를 ‘청사진blue print‘에 빗댄다.
건물을 짓는 사람은 청사진대로만 지어야 한다. 일꾼들의 실수로 청사진과는 조금 다른 집이 지어질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청사진은 건물의 모양과 특성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사실과 다르다. 다시 말해 유전자는 표현형을 결정하지 못한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현형을 산출할 뿐이다. 유전자결정론을 거부하는 이유가, 이념적으로 나쁘기 때문이어서는안 된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거부해야 한다.
유전자가 발생 과정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흥미로운 비유가 있다. 그것은 유전자를 청사진이 아닌 요리법 recipe 에 빗대는 방식이다. 요리사는 요리법대로 음식을 만들기는 하지만 어떤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조합하는가에 따라서 똑같은 요리법에도 아주 다른 맛을 내는 음식을 내놓을 수 있다. 유전자를 이런 요리법에 빗대는 것은, 유전자가 기본적으로 발생 과정을 지시하기는 하지만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느냐에 따라 최종 산물이 결정된다는 설명을 위해서다. 그러고 보니 요리법 비유는 오늘 나온 오케스트라 비유와 일맥상통 헌다. 유전자가 지휘자이긴 하지만, 단원들의 실력에 따라 연주하는 음악의 질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으니까.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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