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현당 안을 보면 가운데 푸른 천과 붉은 천으로 두른 임금의 찬안饌案(진연 때 임금에게 바치던 음식 또는 그 음식상)이 반쯤 드러났고 찬안 뒤에는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아랫부분이 조금 보인다. 조선 궁중 행사 그림에서 임금은 그리지 않기 때문에 이때 임금을 상징하는 물건이 일월오봉병이다.  - P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들어가는 글 ·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하나의 방법은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답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사진으로 많이 남아 있는 조선 말과 일제시대 생활상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그런데사진을 들여다보니 국토는 대부분 민둥산이며 사람들은 양반이건 서민이건 기운이 모두 침체되어 있다. 이것은 나라의 정신과 살림이 가난하던 시대 상황 탓이다.
물론 조선 오백 년 내내 그랬을 리 없다. 사진이 담아낸 것은 기울어가던 시절의모습일 뿐이다. - P8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사람 구경이라고 했던가.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는 산수화만큼 사랑받았다. 그런데 중국생각으로 살던 시절에 그린 풍속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그러다가 조선 생각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풍속화 속 주인공들이 모두 조선인으로 바뀌었다. 남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보다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 이를 진경풍속眞景風俗이라 부른다.
진경풍속의 주인공은 양반 혹은 평민이다. 진경풍속은 선비 화가들이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처음 담으면서 시작되었고 소재를 평민들의 삶까지 넓히면서 완성되었다. 즉 양반 풍속으로 시작해 평민 풍속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진경풍속의 원조는 진경산수의 창시자인 겸재 정선이다.  - P12

풍속화와 더불어 조선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그림이 공공 모임을 그린 기록화이다. 기록화에도 당대 사람들과 물건이 나오기 때문에 넓은의미에서 풍속화라고 봐도 될 것이다. 기록화는 대부분 도화서 화원들이 그렸고 초상화와 더불어 회원들이 그린 가장 중요한 그림이었다. 기록화 가운데 압권은 임금이 등장하는 궁중기록화이고 그 가운데 역시 희귀성에 있어으뜸은 임금이 기로소에 들어간 사건을 그린 기사 이다.
문화 절정기 시절 숙종과 영조 임금이 연이어 기로에 들어가는 경사가있었다. 이때 일어났던 중요 모임을 시간 순으로 정확하게 그림으로 남겨놓았는데 이는 조선이 임금이 주인인 군주제 국가였고 노인을 우대했던 경로사회였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등장인물과 물건들을 모두 빠짐없이 그림 속에 표현하여 조선이 철저한 기록사회였음을 보여주었다.
기사 속 장면은 실록 기사 내용으로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낳았다. 한편 두 임금 모두 기로소 입소 행사를 경덕궁(경희궁의 원래 이름)에서 치렀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경덕궁이 숙종, 영조 시대 역사의 중요 무대였던 사실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기로소 건물 역시 마찬가지다. 궁중기록화는 지금은 사라진 궁궐 모습을 그림으로 만나게 해주는 사료 역할도 한다. - P1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 P223

아가야, 미안하다.
나는 부른 배를 잡고 헐떡이며 걷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알리와 나는 길을 메운 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차들 사이를이리저리 돌아서 길을 건너갔다. 내가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으면서 걷다가 돌아보니 알리도 울고 있었다. - P2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러나 도래할 위기의 원인이 단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 조선업에 있다고 할 수만은 없다. 외려 경쟁은 진정으로 글로벌하게 다가올 수 있다. 2017년 말, 조선 3사가 해양플랜트 1기 (FPSO)에 대한 입찰에 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 조선 3사는 해양플랜트 수주 잔량이 줄어들어 먹거리가 갈급했기 때문에, 최저가, 즉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입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종 수주를 따낸 말레이시아조선소는 한국의 조선소들보다 20% 가깝게 싼 가격으로 입찰가를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싱가포르에 상주하는 유럽엔지니어링 회사 지부의 축적된 설계와 시공 경험을 가지고있는 엔지니어, 동남아 역내에 산업 인프라 투자를 지속하려는 싱가포르 정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조합이 예상치 못한 대항마로 나타난 것이다. - P289

중소형 조선소는 이제 중국뿐 아니라 더 싼 노동력을동원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조선소들과의 경쟁에 내던져졌다. 선박 시장에 초활황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 이상, 중소형선박에서 가격의 우위를 가져가기는 어렵다. 중국처럼 국가가 대량으로 선박을 발주하거나 국가 내 물동량을 자국 선박으로만 운영하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 이상 중소형 선박의 경쟁력은 좋지 않다.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를 위한 투자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말해 지금의 여력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업 노동자들이 적어도 인접한 중소기업으로 전환 채용될 수 있도록 보조해줄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이 조선산업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작 ‘동남권‘에 있는 ‘귀족 노동자‘들의 안위를챙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귀족노동자‘로 떵떵거리며 살아온 이들을 위해 국가가 왜 세금을투입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귀족 노동자‘를 운운하며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돌리는 것은 너무도 불합리한 일이다. 이는 산업의 거시적인 구조를 보지 못하도록 한다. - P306

그러나 경남의 주력 산업인 조선산업, 기계산업, 자동차산업 등의 전방산업이 선전하지 않는 이상, 부품-소재-장비를 제작하는 이들의 수익이 자동화를 통해 혁신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른 행주 짜기‘가 체질이 된 원청-하청 관계 자체를 손보지 않는 이상 이들의 추가 수익은다음 해에 있을 원가 절감 압박 속에서 손쉽게 사라질 것이다.
이는 결코 조선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GDP의 12%이상을 담당하며 전체 국토의 주요 축을 구성하는 동남권 벨트의 모든 제조업이 비슷한 숙제를 안고 있다. ‘인더스트리4.0‘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모태가 되었던 독일의 사례를 보더라도, 새로운 혁신의 기조는 기존 제조업, 특히 부품·소재·장비를 생산해 공급하는 중소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을 풀기 위해 시작됐다. 사물인터넷 IT, 자율주행차 등의 ‘신상품‘이아니라 기존의 산업들을 어떻게 더 잘 기능하게 할 것인지를쟁점화해야 한다. - P317

구조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흔히 몰락해봐야 변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몰락하지 않고도 변하고 성장하는 도시를 기대한다면 헛된 바람일까. 과거 조선소의 혁신은 노동자들이 모여 사소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축적되면서 이루어졌다. 일하는 사람들의 그 감각이 여전히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거제는 실험대에 올라 있다. 거제가 모쪼록 노동과 삶을 훌륭히 아우를 수 있는 산업도시가 되길 바라본다. 현장에서 분투하는이들, 혁신을 위해 궁리하는 이들, 공동체를 다시 세워보려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이 내일을 꿈꿀 수 있으면 좋겠다. - P3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조선산업 내부 사람들과 바깥 사람들의 온도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박의 계약 구조, 특히 대금결제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박 계약은 계약금을 받고 공정에 따라 대금을 고객사에게 지급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통상적인 대금 지급 비율로 계약금 20%를 먼저 받고나머지 80%를 주요 공정 이벤트가 진행될 때마다 나머지 네번에 걸쳐 20%씩 나눠 받는 것이 통상적이다. 계약 이후에는, 설계를 마친 후 시작하는 강재 절단식 때 20%, 탑재를 시작할매 20%, 진수식 때 20%, 인도할 때 20%를 받아 100%를 채운다. 물론 100%를 선금으로 받는 것이 가장 좋지만, 조선업계에서는 20%씩 나눠 받는 것이 관례로 정착되어 있다. 공정만계획대로 진행되면 자재 대금 지급이나 사내협력업체 기성(공정 진행비) 정산 등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자재구매 절차나 나머지 예산 역시 이런 계약 방식에 맞춰 짜여져있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이러한 표준 대금 결제절차가 헤비테일 방식으로 바뀌면서 조선소 운영이 까다로워졌다. 헤비테일 방식은 수주 계약 시 20%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계약 방식과 동일하지만, 주요 공정 이벤트마다 대금을 지급받지 않고 마지막 인도 시에 80%를 한꺼번에 받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 P262

2007년 말 1조 원이었던 대우조선의 보유 현금은 공정지연이 심화됨에 따라 계속 줄어들었다. 2008년에는 4,000억원가량의 현금이 줄었고, 2010년, 2012년, 2014년에도 수천억원이 줄어들었다. 그사이 부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결국대우조선은 2015년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1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했지만, 또 한번의 공정 지연으로 2016년에도 1조 원이상의 현금이 줄어들게 된다. 현금이 감소하니 당장 자재 및 부품업체, 하청에 대금 결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들어오는돈만으로는 채무의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악전고투는 장기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 P264

한국 조선산업이 겪은 위기는 조선산업을 영위했던 나라들이 모두 겪었던 일이다. 사회과학에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는 개념이 있다. 국가, 사회,
기업, 개인 등의 선택이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현재의 선택지를 제한한다는 의미이다. 조선산업을 영위했던 나라들은 몇가지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각기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성공하거나 실패했다. 여러 조선산업 패권국들의 공통점과 차이를 파악하는 것은 한국 조선산업과 산업도시 거제의 현상태를 파악하고 미래의 대안을 도출하는 데도움을 줄 수 있다.  - P278

같은 시기인 1970~1990년대에 한국 조선업은 설비투자에 끊임없이 매진했다. 조선업이 국가가 주도하는 중화학공업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던 데다, 은행에서 저리로 차입해경영하는 게 가능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해외 차관으로, 1980년대부터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은행과 종금사의 차입을 통해 자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를 짓고, 설비를 끊임없이 보강했다. 공법 차원에서는 블록 대형화가 추진되었다. 작은 블록들을 도크에서 용접으로 합할 경우 도크 공정 자체가길어지게 되는데, 블록들을 선행 탑재 공장에서 미리 크게 만든 뒤 도크에서 최종 탑재만 하는 방향을 실현해 도크 회전을을 극적으로 향상시켰다. 조선소의 지반이 약하거나 대형 크레인이 부족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일본 조선소, 그리고그 이전의 영국 조선소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일본 조선업계는 건설하는 데 수천억 원이 드는 큰 도크를 지었다가일감이 줄어들면 산업이 지탱될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으나,
한국은 달랐다. 국가와 재벌, 그리고 관치금융의 힘을 통해
‘불도저식‘ 도크 대형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또한 바다의 선대(도크)에서 배를 건조하고 선대를 바다로 가라앉혀배를 진수시키는 플로팅도크(floating dock, 부유식 도크) 개발에도 성공한다.
물론 이러한 설비투자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조선산업의 세계적인 호황‘ 덕택이었다. 중국이 경제를 개방하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적 팽창의 단계를 밟게 되면서 물류량 자체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해상 운송이 늘어나면서 많은 선박들이 필요해졌다.  - P284

조선산업을 팽창으로 이끈 호황은 더 이상 찾아보기어렵다. 이제 ‘저성장, 저소득, 저수익률‘을 뜻하는 ‘뉴 노멀 new normal‘이 경제 상황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몇 년 전부터 조선 3사는 수주계약 시 종종 CEO와 노동조합위원장을 동행시키고 있다. 노조위원장은 주문주 앞에서 품질 보장과 납기 준수를 약속한다. 노동자들은 사측과는 싸울 수 있어도 고객과는 싸울 수 없다. 계약을 하는 자리에서 주문주는 노조위원장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아낸다. 쟁의 때문에 납기가 늦어지면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예전처럼 투쟁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 P2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