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의 정연한 논리와 감동적인 진술은 그러나 군부정권의 하수인격인 판·검사들에게는 우이독경이 되었다. 그들은 이 같은 진술이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국민이 알 수 없으리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순간만 넘기면 책임을 면하고, 승진도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서성 판사는 김근태에게 국보법과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 7년, 자격정지 6년을 선고했다. 판사는 "승진은 따놓은 당상이군", "창피한 줄 아시오"라는 방청석의 야유를 귓전에 흘리면서 총총 자리를 떴다.
판사의 유죄판결 이유 중에는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갖고 있었다는 것도 포함되었다. 이 책이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검찰이 내외문제연구소라는 관변단체의 김영학에게 이 책의 감정을 의뢰하고, 그의 감정서를 바탕으로 유죄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김영학은돕의 주저인 정치경제학과 자본주의』, 『자본주의 발전연구』 등의 책이름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기 대명천지 밝은세상에서, 돕의 저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모리스 돕은 영국의 경제학자로 이론경제학, 경제사, 사회주의 경제학, 후진국 문제 등 다방면에 걸친 저작을발표한 세계적 학자다. - P149

김근태는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 소식을 전해 듣고 옥중에서 단식을 결행했다. 곡기를 끊고 절규해도 메아리조차 없었지만,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였다. 신라의 옛 고도 외곽에 자리한 감옥은 공동묘지처럼 스산했다. 감시병들만 없으면 공동묘지 그대로였다. 3월 12일 그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잘 잡히지 않는구려. 안개 너머에서 어른거리면서 초점이 모아지지 않는것이었소. 항의도 하거니와 내 마음을 모으기 위해 단식을 한 것이었소.
이 억울하고 불행한 죽음을 듣자마자 분노해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사흘째부터는 꽤 고통스러웠소. 얼굴 표정도 아마 찌그러졌을 것이오. 건강이 안 좋고, 또 자신감까지 없고 보니 더욱 그랬을 것이오. 공포심이 슬그머니 자리를 잡더니 달걀귀신처럼 자꾸만 커지는 것이었소. 몸과 마음을 비우고, 그 젊은 죽음을 가슴에 받아들여 서로 교감하고자 했던 당초의도는 힘없이 밀려버리고 말았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소. 배고픈 고통과 공포, 부끄러운 생각 등의 혼란 속에서 점점 선명하게 부각되어온 것은, 날카롭게 찔러온 것은,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소. 이 염치없는 끈적끈적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죽지 않았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렸던 것 같소. - P170

위기에 몰린 전두환 정권에서는 계엄령 선포 등 비상조치설이 흘러나왔다. 실제로 전두환은 6월 18일을 전후하여 계엄을 검토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측이 여러 채널을 통해 군 병력 투입을 자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계엄령 선포와 군 병력 투입을 막은 결정적인 요인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국민항쟁이었다. 1979년 부마항쟁과 1980년 광주항쟁은 제한된 특정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박정희와 전두환은 군 병력을 투입해 진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1980년 5월 70만 인구의 광주를 장악하지 못하고 계엄군이 한때 외각으로 밀려났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인구 1천만이 사는 서울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를 진압하자면 수도권의 군 병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만약 군 병력 투입으로 진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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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버르와 오르가 각각 니키와 단디를 좋아할 때는 발정기에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의 관계는 성적인 것이지만 그녀들이 다른 수놈과 전혀 접촉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참된 결속이라고는 할 수없다. 파트너인 두 수놈 역시 다른 암놈들과 규칙적으로 교미를 가졌다. 두 젊은 암놈들의 성적 수용 능력은 대단해서 다른 어른 수놈들뿐만 아니라 새끼 수놈들에게까지 미쳤다. 그러나 두 암놈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상대 수놈에 대해서만 성적 주도권을 행사했고, ‘섹스댄스‘ 역시 그들만을 위해 남겨두었다. 최근 몇 년간 이런 현상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성적 탐닉은 어쩌면 젊은 한때의 특징이기에 나이가 들면서 한결 부드러워지는 건지도 모른다. 아른험에서나 야생에서나 나이 든 침팬지들사이에는 성생활의 파트너가 대개 한정되어 있다. 이것이 침팬지들의 성생활이 완전히 난잡하지는 않다고 하는 한 가지 이유다. 다른 한 가지 이유로는 수놈간의 서열에 따라 성생활이 제한을 받는다는 점이다. - P238

또한 영장류학 문헌에서 ‘성적 훼방(sexual harassment)‘으로 묘사되는 어린놈들의 기묘한 행동도 연구했다. 어른들이 교미를 시작하면 새끼들이 달려들어 암놈의 등에 뛰어올라 수놈을 떼어놓거나, 수놈을 만지려 들거나, 커플 사이에 끼어들어 몸부림치며 훼방을 놓는다. 새끼들은 커플에게 모래를 뿌리거나 덩치도 작은 주제에 위협 과시 행동을 흉내내기도 한다. 하지만 커플에게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내가 본 가장 심한 예로는 니키가 폰스의 어미인 프란예 위에 올라탔을 때 폰스가 니키의 엉덩이를 깨문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갑자기 교미가 중단됐다. 대개 이런간섭은 적대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종종 긍정적인 친밀함으로 보이지만,
교미에 방해가 되는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새끼들이 교미 중인 커플의절반 정도에게 훼방을 놓고, 이 중 적지 않게 교미를 중단시키기에 이른다. 수놈들이 발정한 암놈에게 접근하기 전에 종종 반쯤 장난으로 새끼들을 멀리 쫓아보내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새끼들은 쫓아내도 몇 번씩이나 되돌아오며 귀찮게 따라붙는 파리와 비슷하다. 마치 자석처럼 어른들의 성적 접촉에 끌리는 것 같다.
••••••
그렇다면 어린 침팬지들의 성적 훼방은 어떤 이점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한 가지 가설은 어린 침팬지가 자신의 어미가 너무 일찍 임신을 해 동생이 빨리 태어나는 것을 방해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그 노력이 성공하면 새끼는 더 오랫동안 어미의 젖, 무등타기, 보살핌을 독점할 수 있다. 새끼들은 자신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의식하지는 않는다. 성행위 방해는 젖 먹는 기간을 연장시켜 생존의 기회를 높이려는 생득적인 반응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 P240

왜 이토록 너그렇지 못한 것일까? 어째서 수놈들은 다른 놈들을 가만 놔두지 못하는 것일까? 질투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관건은 그런 질투의 기능이 무엇인가이다. 질투에 수반되는 긴장과 위험이 아무런 긍정적인 기능을 갖지 못했다면 질투는 이미 오래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성행위를 둘러싼 수놈 간의 경쟁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암놈은 한 마리의 수놈에게서만 수정된다. 수놈은 다른수놈들을 암놈에게서 멀리하도록 해야 그 암놈이 낳은 새끼의 아비가될 확률이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너그러운 수놈보다는 질투심 많은 수놈이 자신의 자식을 임신시킬 확률이 높아진다. 만약 질투심이 유전되는 것이라면(이것이 이 이론이 전제하는 바이다) 이런 성질을 가진 새끼들이점점 많이 태어날 것이며 훗날 어른이 되어 다른 수놈들을 번식 행위에서 배제하려 들 것이다.
수놈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암놈들을 수정시킬 권리를 얻으려고 싸우는 반면 암놈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교미 파트너가 하나든 100마리든 암놈이 한 번에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수는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암놈들 사이의 질투는 수놈들보다 덜 두드러진다. 암놈들 간의 경쟁은 많은 조류들과 몇몇 포유류들에서처럼 대부분이 짝 결속을 이루는 종들에게만 발생한다. 그런 경우 암놈은 그 수놈들과 장기적인 유대관계를 확보하고 유지하려고 애쓴다. 우리 인간 종이 바로 좋은 본보기다.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주로 아내나 애인이 다른 남성과 섹스를 하는 것을 떠올릴 때 안절부절못하는 반면, 여성은 대개 남편이나 애인이 다른 여성과 섹스를 했건 안했건 상관없이 섹스 자체보다는 그 여성을 진짜로 ‘사랑‘하는지 여부에 더 관심을가지고 참지 못한다. 여성은 이런 일들을 관계의 측면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의 파트너와 다른 여성 사이의 감정적 유대가 생기는 것을 더욱 걱정하는 것이다.
수놈은 섹스와 권력에 집중한다. 수놈의 권력 지향성은 성적 우선권이 수놈간의 서열로 결정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더 높은 지위를얻기 위한 투쟁이 더 많은 자손으로 달리 해석될 수 있다면 더 많은 자손이 그런 권력욕으로 인해 태어날 것이다. 수놈이 가진 야망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런 이론은 단순하고 논리적이며 매우 그럴 듯하다. 그러나그것을 입증하려면 대단히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교미기간이 수정으로까지 이어지는지, 한 마리의 수놈이 청소년기부터 죽을 때까지 서열에서 어떤 지위들을 누리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 P248

여기에서 우리는 세력 균형에 기반을 둔 사회체계의 완벽한 사례를 볼 수 있다.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 누리는 우위는 제3자의 지원에 의존하기 때문에 각자는 모두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니키였다. 다른 두 마리 모두 니키의 권력 강화에 기여하면서 제 몫을 챙겼다. 권력이 평등하게 분배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 마리의 수중에 모든 것이 집중된 것도 아니었다. 연합을이루는 경향이 강한 동물들 사이에서 이것 외의 다른 어떤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까? 국제정치에 대해 마틴 와이트(Martin Wight)가 쓴 글을 인용해보자. ‘세력균형 이외의 대안이라고는 완전한 무정부 상태이거나, 아니면 절대적인 지배 상태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침팬지 정치에 있어서 두 가지 대안 중 어느 것도 상상할 수가 없다. - P259

개체를 알아보는 능력이 안정된 서열 구조의 전제 조건이듯, ‘삼각관계의 인식(triadic awareness)‘도 연합에 바탕을 둔 서열 구조의 전제 조건이다. ‘삼각관계의 인식‘이란 다양한 삼각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자신이외의 다른 개체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예를 들어, 라윗은 이에룬과 니키가 연합을 형성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니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이에룬과 싸우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룬과 단독으로 마주쳤을 때는 기꺼이 싸우려고 든다. 이런 유의 지식이 뭐가 특별하단 말인가? 어떤 개체가 집단 내의 모든 이들과 자신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안다는 것은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자신이 다른 개체들의 ‘조합‘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적 환경에 존재하는 온갖 관계들을 감시하고 평가한다면 이런 능력들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3차원적인 집단생활의초보적 형태는 많은 조류와 포유류에서 발견되지만, 영장류는 이 점에서 분명히 독보적이다. 화해, 떼어놓기 간섭, 고자질, 연합 등은 삼각관계를 인식할 수 없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 P266

아른험 침팬지 집단에 속한 암놈들의 서열은 위로부터의 위협과 과시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아래로부터의 존경에 바탕을 둔 것처럼 여겨진다. 암놈들은 좀처럼 자기 과시를 하지 않으며, 자발적인 ‘인사‘가 수놈들 사이에서는 13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암놈들은 54퍼센트에 달한다. 다른 유인원 암놈들끼리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 오랑우탄의 암놈들이 같은 우리에서 사육되면 싸움이나 위협이 전혀 없이 곧바로 안정된 우열관계가 확립된다. 이 우열관계는 체격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어떤 종류의 성격이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야생에서는 연배와 구역이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 P271

 큰 수놈 한 마리와 서열 높은 암놈들 사이에서 보이는 세 가지 상호작용을 비교해보았다. 누가 누구에게 ‘인사‘
를 하는가에 따른 ‘공식적‘ 기준에 따르면 수놈이 암놈에 비해 100퍼센트 우위에 있었다. 한편, 공격적인 싸움에서 누가 이겼는가 하는 ‘실제적‘ 기준에 따르면, 수놈은 80퍼센트 우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물건이나 장소를 빼앗는 점에 관해서는 암놈이 81퍼센트의 우위를 나타냈다.
이 같은 암놈의 우위는 체격에 의한 것으로 볼 수는 없고 수놈들의 관용에 달려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왜 수놈들은 암놈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허용하는지 의구심이 남는다. 암놈들은 권력의 싸움터에 육체적 힘 이상의 무기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일까? 암놈들은 수놈들이 힘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것들, 예컨대 성적·정치적 호의, 성질을 죽일 수 있게 도와주는 침묵의 정책 등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들은 암놈들에게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만일 암놈들 사이의 인기가 수놈의 지도력을 안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힐을 한다면? 수놈은 당연히 암놈들에게 관대한 태도와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 P272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2,000년 전쯤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기록한 이래, 국가들은 공동의 적으로 간주되는 국가에 대항해 연합을 모색해왔다. 공포를 함께 느낀다는 것은 연합 형성의 기초가 되는데, 이때문에 힘의 균형에서 상대적인 약자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 결과 모든 국가들이 영향력 있는 지위를 갖는 권력의 평형상태가 이뤄진다. 사회심리학에서도 적용되는 이 원리는 ‘최소 승리 연합(minimal winningcoalitions)‘이란 용어로 불린다. 만일 실험 게임에 참가한 세 명의 선수중에서 가장 약한 선수가 최강자 혹은 2인자와 협력해 점수를 올릴 기회가 있다면, 그는 2인자와의 동맹을 선호할 것이다. 권좌에서 물러난 이에룬도 흡사한 선택에 직면했다. 즉, 더 강력한 상대인 라윗과 연합할것인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약한 니키와 연합할 것인가. 이에룬의 도움이 필요 없는 라윗의 지배 하에서는 이에룬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 라윗으로서는 이에룬이 중립을 지키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이에룬은 니키를 돕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를 니키의 지도력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만들었다. 결국 집단에서 이에룬의 영향력은 다시 커지게 된 것이다.
•••••••
합리적 선택은 ‘결과에 대한 추정(estimate of the consequences)‘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이에룬이 니키와 연합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 P274

자바 마카크 원숭이는 두 가지 방법으로 상대를 위협할 수 있다. 이를 연구한 결과 나는 두 가지 방법에는 제각각의 기능이 있음을 알수 있었다. 젊은 원숭이는 장차 서열에서 앞서야 할 놈들을 상대할 때는 시끄러운 형태의 위협 방식을 사용한다. 조용한 형태의 다른 한 가지 위협 방식은 이미 낮은 지위에 자족하고 있는 놈들에게 사용한다.
첫 번째 형태의 위협은 사회적 사다리를 오르는 데 쓰이는 반면, 두 번째 형태는 단지 기존의 지위를 확인하는 기능을 한다.
비슷한 차이점이 침팬지들의 과시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도 차이점은 침팬지들이 지르는 소리의 세기이다. 하나는 귀청이 찢어질 정도지만 다른 하나는 비교적 조용하다. 침팬지가 첫 번째 유형의 과시 행동을 할 때는 처음에 상체를 흔들다가 ‘후우후우‘ 하는 소리를 점점 크게 낸다. 그런 다음 경쟁자에게 돌진하고, 땅을 구르며, 마지막에는 큰 소리를 지른다. 이 소리에 동반되는 깊고 리드미컬한 들숨과 날숨으로 인해 이런 행동을 ‘헐떡 과시(ventilating display)‘라고 부른다. 우열을 다투는 모든 과정에서 이런 종류의 과시 행위는 특히 도전자 쪽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행동이다. 일단 불안정한 시기가 끝나고 경쟁자가굴복하면 도전자는 다른 형태의 과시 행위로 전환한다. 그것은 양 입술을 꼭 다문 채 숨을 참는 것이다. 이때 공기의 압력으로 가슴이 넓어지고 양쪽 볼이 부풀어오르는데, 이것을 ‘우쭐 과시(inflated display)‘라 부른다. 헐떡 과시가 도발적이며 야심찬 행위라면, 우쭐 과시는 승자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 P276

정리해보자. 협력은 반드시 공감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특히 어른 수놈들이 사회적 지위에 대한 경쟁을 벌일 때는 더욱더 그렇다. 반면 암놈들이나 새끼들은 공감에 치우친 개입을 보여준다. 집단 전체로 보면 그런 개입은 75퍼센트에 달한다. 그들은 싸움이 벌어지면 대개 친척이나 사이좋은 친구들의 편을 든다. 즉,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수단으로 어떤 사건에 개입하기보다는 오히려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사건 자체에 반응하고 있는 셈이다. 개입 패턴에 이런 성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 한쪽은 보살핌과 개인적약속을 중시한다면 다른 한쪽은 전략적이며 지위 상승에 민감하다. 너무 뻔한 도식인가? 내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침팬지와 인간이 이런 점에서도 놀랄 만큼 유사한 것일까? - P289

나는 각 개체가 다른 개체들의 싸움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를비교해봄으로써 연합의 양면적 특성을 통계적으로 연구했다. 안정기에는 그 같은 개입이 (두 마리가 서로를 지원하는 긍정적인 의미와 (두 마리가서로의 적을 지원하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모두 대칭적이다. 그러나 호혜성의 전체적인 모습을 알고자 한다면 더 많은 종류의 행동들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개입이 그것을 상쇄하는 또 다른 개입들로 계속해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정기적인 수혜자는 시혜자에게 관용을 베풀거나 털고르기를 해주는 방식으로 화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결국 아른험 침팬지들을 상대로 그런 분석을 해낼 수도 있으리라. 당분간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다. 침팬지 집단생활은 권력, 섹스, 애정, 지지, 편협, 적대감이 교환되는 시장과 같다고. 그리고 이런 교환은 다음의 두 가지 기본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고. ‘선은 선을 불러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P303

인간을 침팬지와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모욕적이거나, 혹은그 이상의 죄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동기를더욱 동물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팬지들 사이에서 권력 정치는 단지 ‘나쁘다‘거나 ‘더럽다‘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른험 집단에 사는 침팬지들에게 논리적 정합성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주적 구조도 안겨주었다. 모든 파벌들은 일시적인 권력 균형에 이를 때까지 사회적 영향력을 계속해서 찾는다. 그리고 이런 균형은 서열상의 지위를 새롭게 결정한다. 다소 유동적인 지위가 ‘고정‘될 때까지 관계는 계속해서 변한다. 이 같은 서열의 공식화가 어떻게 화해 가운데 일어나는지를 보게 되면, 집단 내의 서열이경쟁과 충돌을 제한하는 ‘적‘ 요소임을 이해할 수 있다. 육아, 놀이, 섹스, 협력 등은 그로 인해 찾아오는 안정 상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상황은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권력의 균형은 매일매일 시험되며, 만일 그것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침팬지들의 정치도 건설적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분류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야만 한다. - P312

나는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오랜 침팬지 동료들을 만나러 정기적으로 네덜란드로 간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그들을 방문하는데 나이 든 세대들은 여전히 나를 알아본다. 마마는 늘 관절염을 앓고 있는 몸을 이끌고 도랑까지 나와서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를 반겼고, 호릴라는 누구보다 즐거워하며 반겼다. 내가 호릴라에게 우유병으로 로셔를 수유하는 것을 가르쳐준 뒤로 우리에게 특별한 연대감이 형성된것 같다. 침팬지를 보러 갈 때마다 나는 늘 감사해한다. 정치의 기원에대한 전통적 주장에 의문을 던지게 해준 한 편의 정치적 드라마를 볼수 있었기에, 그리고 그런 올바른 시공간에 내가 존재했던 것에•••••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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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이 곤란한 것은 수줍어하는 사람에게도, 그와 소통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그것이 진공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줍음은 사람의 성격이라는 스튜에 들어 있는 한 가지 재료일 뿐이다. 수줍음은 다른 특징들과 섞여 있고 그리고 종종 다른 특징들에 가려져 있다 이것이 수줍음이 헷갈리게 느껴지는 한 이유다. 수줍어하는 사람 본인에게는 수줍음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지배적인 성격적 특질로 느껴질 테지만, 다른사람들의 눈에는 그 사실이 늘 그렇게 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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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문은 9월 20일 저녁 8시경부터 밤 10시 반경까지 자행되었는데, 전기고문, 물고문의 합동고문이었다. 김수현·김영두·정현규·박병선 · 최상남, 그리고 또 한 사람이 고문에 가담했다. 이제까지의 ‘자백‘과 ‘번복‘의 되풀이였다. 민청련이 반국가단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고문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김근태는 "아, 죽게 되는구나. 이렇게 해서 죽는 것이구나" 절망하고, 마구 눈물을 흘렸다.

바깥 사회와 완전히 차단되었던 나는 정치적 사정이 정치군부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본인의 생명의 말살을 절대로 요청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각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끔찍한 고문, 말도 안 되는 각본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결심했습니다. "그래, 죽을 수도 있다. 40년을 살아왔다. 유관순도, 윤동주도, 그리고 김주열도, 80년 광주의 숱한 선량한 시민들도 그렇게 살해당하지 않았는가. 추하게 정치군부 너희들에게 굽실거리지는 않겠다. 절대로 휘청거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 P127

26일 오후 3시경 남영동 5층 15호실을 떠나기에 앞서 나는 김수현과 백남은을 찾았습니다. 잠시 책상을 사이에 두고 김수현과 방에서 앉아서 얘기했습니다. 별 의미 있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은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내가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울었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처참하게 고문을 당하고 간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간다. 이러고도 속수무책인 것이 원통하다. 더구나 너무 끔찍하게 당해서 분노하기조차 두려운 것이 한스럽다. 떠나는 지금도 내놓고 욕 한 마디 할 수없고 그런 용기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 말이다. 이 저주받을 인간들이, 악마 같은 자들이 내 생사여탈권을 가진 것처럼 군림하였으며 그에 아양조차 떨어야 했던 이 끔찍한 지옥을 All Mighty처럼 덮쳐왔던 것을....."

남영동에서 김근태에게 가한 살인적인 고문을 총지휘한 자는 9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이근안이었다. 처음에는 가명이어서 몰랐으나 뒷날에야 그가 이근안임을 알게 되었다. 이근안은 공군 헌병 출신으로 1970년 경찰에 입문한 뒤 1972년부터 대공 분야에 근무하면서 악질적인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날리며 특진과 승진을 거듭하다 1984년에는경감에 올랐다. 그에게 고문을 당한 인사들의 증언대로 ‘눈에 핏발이서 있었다"고 할 정도로 가학성을 지닌 인물이다. - P128

김근태는 비록 지옥 같은 남영동은 떠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풀려나는 것은 아니었다. 9월 26일 오후 김근태는 검찰청 구치소로 이감되었다. 이날 검찰청으로 호송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부인 인재근을만났다. 그동안 남편의 행방을 백방으로 찾아다니다가 그날 검찰로 이송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던 인재근과 해후한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그는 부인에게 발뒤꿈치의 고문당한 상처들을 보여주었다. 이 기적같은 일이 김근태의 고문 실상이 세상에 밝혀지는 계기가 되었다. 기적이었다.

계단을 경찰 한 사람과 본인의 처가 부축해 내려가면서 나는 망설이고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말했습니다. 불과 1분여 동안이었습니다. 그 고문은 나 개인에 국한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얘기했습니다. 고문얘기를 듣고 처가 괴로워할 것을 생각하고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그럴문제도 아니었고 도무지 원통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에 나는 말했습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침착하게 말하면서 신고 있었던 양말을 벗었습니다. 발뒤꿈치의 상처들과 발등의 꺼멓게 탄 부분을 보여주었고, 팔꿈치의 상처도 보여주었습니다.
이 만남은 정말 기적 같은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관례와는 달리 늦은 오후에야 도착한 본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리하여 정치군부의 고문과그 은폐 행위가 폭로되고 국내외적으로 맹렬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게 된이 만남은 본인에 대한 영원한 기적일 것입니다.  - P130

 용지는 주었지만 자신이 쓴 탄원서를 그대로 둘 리 없다고 의심하면서도 김근태는 심혈을 기울여 한자 한자 써 내려갔다. 그런데 예상대로였다. 애써 쓴 ‘탄원서‘를 출정하는 시간에 누군가가 훔쳐가고 말았다. 여러 날 고심해 쓴 ‘탄원서‘는 빼앗기고 말았지만, 마지막 부분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맨 끝으로 고문을 당하며 속으로 통곡하고 지내온 지난겨울, 이 감옥소에서 나는 애정 넘치는 수많은 학생, 그리고 버림받은 재소자들의 격려 속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그때 두 겹 비닐 창문을 때리는 북풍을 견디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되뇌고 되뇌었다.

내 귀여운 아이들아
느이들하고 놀아주지도 못하고
애비가 어디 가서 오래 못 와도
슬퍼하거나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
외로울 때는 엄마랑 들에도 나가 보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봐야지
바람이 차거들랑 옷깃 잘 여며
감기 들지 않도록 조심도 하고.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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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수놈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1인자로서의 지위는 이같은 의무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에룬의 몰락은 그가 라윗이나 니키의 공격으로부터 다른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로도 설명될 수 있다. 라윗의 행동도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해석될 수 있다. 라윗은 암놈들을 공격하거나 이에룬의 면전에서 암놈들에게 거만을 떨면서, 암놈들로 하여금 이에룬에게 지원을 요청해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 점을 시위했던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에 성공하고 나자 그는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서 스스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 P185

라윗의 선택은 침팬지 사이의 우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를 웅변하고 있다. 일찍이 라윗은 이에룬과 암놈들에 대항하기 위해 니키와 결탁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뒤집어서 니키에 대항하기 위해 이에룬과 암놈들을 자기편으로 만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놈들을 향한 니키의 공격은 라윗 자신의 권력투쟁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그래서 라윗은 가끔 암놈들을 공격하는 니키를 응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라윗은 니키와 암놈들 사이에 끼어들고, 때로는 서로 충돌이 벌어지기 전부터 개입했다. 니키가 털을 세우고 암놈들에게 접근해서 조금씩 몸을 흔들면서 정말로 공격하려 들 때 라윗은 니키의 옆이나 앞에 서서 감히 더 이상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 어떤 때는 니키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갈 때까지 라윗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계속되었다. 니키에 대한 라윗의 태도가 경직되면서 둘 사이의 충돌도 잦아졌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암놈 때문이 아니라 이에룬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둘 다 왕년의 지도자인 이에룬과 접촉하기를 바라던 터여서 서로가 어느 한쪽이 이에 곁에 앉는 행위를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 P187

8월이 되자 삼각관계의 형태가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니키와이에룬 모두 예전에 비해 라윗에게 덜 굴욕적이고, 자주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리더인 라윗이 그들 중 한쪽에게 과시 행동을 해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에룬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맹렬하게 라윗을 공격하면 니키는 라윗을 위협하듯 털을 곤두세우며 이에룬 편을 들었다. 니키는 다른 두 수놈을 분리시키는 데 점차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라윗은 니키의 그런 시도를 중단시키려고 애썼지만 니키가 위협을 계속할 경우 이에룬은 라윗 곁에서 멀어지려고 했고, 라윗은 이런 행동에 속수무책이었다. 간단히 말해, 이제 세력 균형은 2인자와 3인자의 연합 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1인자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위협을 의미했다. 전례 없던 불안감이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6주가 지나서 대규모 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에 이르기까지 몇 주 동안 먼저 니키가, 다음에는 이에룬이 라윗에게 ‘인사‘하는 것을 중단했다. 그리고 이 두 수놈들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진짜 연합을 이뤘다. 이연합은 그로부터 꼬박 3년이 지난 1980년까지 유지되었다. - P191

그로부터 며칠은 라윗에 대한 음모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라윗이암놈이나 새끼들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두 마리의 모반자는 하나가 되어 조금 떨어진 사육장 구석에 앉아 있었다. 호릴라만이 그들과 빈번하게 접촉을 가졌다. 우리는 호릴라가 니키에게 빈번히 키스하는 데에 주목했다. 라윗은 가끔 호릴라가 두 라이벌에게 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거나 과시 행위를 했지만 공격하지는 않았다. 지난 겨울호릴라는 이에룬에 대해 한결같은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그녀가 이에룬의 동맹 파트너인 니키에게 충성심을 보인다 해도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호릴라와 호릴라의 친구인 마마 사이에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었다.
수놈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마마와 다른 암놈들은 니키를공격해서 쫓아버렸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에룬과 호릴라가 니키를지켜주었다. 그런 경우에 호릴라는 여러 암놈들을 공격했지만 마마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마치 마마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 일은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호릴라의 행동이 마마의 노력을 무위로 만들어버렸지만 마마는 호릴라에 대해 어떤 보복도 하지않았다. 마마와 호릴라 사이의 우정이 대단히 깊었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고 해서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이들두 암놈 사이의 충돌은 단 한 번도 목격된 적이 없다.
니키는 항상 마마 곁에 붙어 있는 라윗에게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접근했다. 그는 목덜미의 털을 세운 채 그들과 마주 앉은 뒤에는 도발적으로 ‘후우후우‘ 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해서 용기를 북돋운 니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모래나 막대기를 집어던지기 시작하면 암놈들도 공세를 취한다. 그러나 라윗은 만사가 귀찮다는 듯 자신의 지원자들의 등뒤를 지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적대적인 2인조세력에 대항해 승리할 여지가 거의 없음을 이미 분명하게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일주일 만에 니키는 다시 왕좌에 복귀했다. - P206

서양 과학자들은 동물의 사회행동을 연구할 때 전통적으로 경쟁, 세력권, 우열관계 등에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 1922년 노르웨이의 셸드럽-에브(Schjelderup-Ebbe)가 암탉 사회에서 먹이를 쪼아 먹는 순서를 발견한 이래로 서열 지위는 사회구조의 주요 형태로 여겨졌다. 그래서 원숭이와 유인원에 대한 연구에서도 개체들을 위에서 아래로 수직적인 순위를 매기려는 시도가 오랫동안 주를 이뤘던 것이다. 그러나 예외도있었다. 바로 일본의 영장류 학계에 소속된 연구자들은 혈연과 우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개체들을 수평적으로 분류해 그것을 거미줄과 같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표현했다. 이 거미줄망은 중심부와 동심원을 이루며 점점 커지는 주변부로 구분됐다. 그들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어떤 개체를 받아들이는 정도라든가, 그 개체가 어느 혈연집단에 속해 있는가 하는 따위에 흥미를 가졌다.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서구적 시각은 영장류 사회를 ‘사다리(ladder)‘ 개념으로 파악하려고 한 데 비해, 일본의 연구자들은 ‘그물망(network)‘ 개념으로 파악한 셈이다. 우리가 이들 두 가지 접근방식을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왜 안정된 우열관계가 사회 시스템의 평화를 보장하는 부분에만 영향을 미치는지 분명해질 것이다. 새끼들의 성장으로 인해 사회적 유대가 확립, 방치, 혹은 파괴되는 ‘수평적‘ 발전은 일시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수직적 요소, 즉 위계서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P212

라윗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도 역시 패자를 지원했다. 그는 암놈들의 지원을 받았고 평판도 상당히 높아져 암놈들은 이에룬보다 그에게 자주 ‘인사‘를 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런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즉, 리더는 질서를 유지해주는 대가로 집단 구성원들로부터 지원과 존경을 받는데, 이와 동일한 현상이 두 번째 정권 교체에서도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크게 달라진 점은 이런 자질이 지도자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평화를 수호한 대가로 광범위한 존경을얻은 것은 니키가 아니라 그의 연대 파트너인 이에룬이었다. 이런 상황전개가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 마리의 개체가 공식적인 지배와 이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룬과 라윗은 단독 지도자였던 데 반해, 니키는 다른수놈과 지도력을 ‘공유‘했던 것이다.
치안 유지는 이에룬의 몫이었다. 이에룬과 니키가 서로 간의 다툼에 개입한 많은 경우들을 제외하면 이에룬이 집단 내에서 벌어진 싸움에 개입해 약자를 도운 비율은 82퍼센트였던 반면, 니키는 22퍼센트에 불과했다(1978년~1979년). 니키는 1인자의 지위에 있었음에도 여전히 승자를 지원했다. 니키가 권력의 정상에 오른 직후에는 이에룬이 아주 효과적으로 니키에게 저항했기 때문에 니키가 실질적으로 집단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예를 들면, 젊은 지도자인 니키가 털을 세운 채 두 암놈 간의 충돌에 개입하려 들거나 실제로 개입했을 때,
이에룬은 즉각 니키를 공격해 쫓아버렸고, 간혹 이 과정에서 두 암놈들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1979년이 되어서도 니키가 완전한 지배권을 획득할 수 없었던 이유는 치안을 유지하려는 니키의 노력을 이에룬이 방해한 탓이었다. - P222

니키의 디위은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이키와 비교하면 리에룬과 라윗은 암놈들의 협력 덕분에 전능에 가까운 권력을 누렸던 셈이다. 니키의 지도력과 구질서와의 중요한 차이는, 니키가 야심 많은 타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인간 세계에서도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유의 리더가 갖는 상대적 무력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아래 《군주론> 인용문에서 ‘귀족‘
을 ‘서열 높은 수놈‘으로, ‘평민‘을 ‘암놈과 새끼들‘로 고쳐서 읽어보라. 그러면, 우리는 니키의 ‘군주권‘이 두 전임자의 ‘군주권‘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귀족의 원조를 받아 군주권을 얻는 것은 평민들의 지원을 받아 군주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귀족들은 스스로를 군주와 동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군주는 원하는 대로 그들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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